수신확인, 차별이 내게로 왔다 - 평범하지 않지만 평범한 소수자들의 이야기 대한민국을 생각한다 11
인권운동사랑방 엮음 / 오월의봄 / 2013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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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평] 인권운동사랑방 저 <수신확인, 차별이 내게로 왔다 : 평범하지 않지만 평범한 소수자들의 이야기>를 읽고 / 2013. 4., 278쪽, 오월의봄

대한민국 헌법은 제11조 ①항 "모든 국민은 법 앞에 평등하다. 누구든지 성별·종교 또는 사회적 신분에 의하여 정치적·경제적·사회적·문화적 생활의 모든 영역에 있어서 차별을 받지 아니한다."을 통해 원칙적이고 근본적으로 주권자들 개개인에 대한 차별을 금지하고 있으며 평등함을 선언한다.
하지만 한국 사회에서 본인이 차별받지 않는다고 생각하는 사람은 대한민국 주권자 중 10%도 채 되지 않을 것이다.

국민의 사상적, 이념적, 정치적, 양심적 자유는 국가보안법과 종북몰이로 인해 근본적으로 침해받고 있으며, 정부의 재벌 대기업 기득권 위주의 경제정책과 황금만능주의 사회문화는 비정규직, 노인과 여성, 저소득층, 농민, 중소 상공인, 청년과 학생, 어린이 등에 대해 구조적인 경제적 차별을 당하고 있다. 사회문화적 차별 역시 사회적 소수자와 약자에 대해 광범위하고 일상적으로 이루어지고 있는 것이 현실이다.

'차별'은 현재 한국 사회를 살아가는 우리들이 겪는 다양한 사회적 경험을 설명하는 하나의 담론이다. 하지만 "누구를 차별하고 있다" 혹은 "누구에게 차별받고 있다"와 같은 표현은 흔하게 사용되지만, 그 차별의 의미가 정확하게 무엇인지는 충분히 합의되지 않은 것 같다.
우리들은 인격을 파괴할 수 있는 위력을 지닌 인간적인 멸시나 모멸의 경험을 차별로 인식하고 있을까? 설사 차별로 인식된다 하더라도 "마음 약한 놈"이나 "여린 놈" 또는 "피해자 코스프레"라는 식으로 매우 가볍게 치부되기 쉽지 않을까? 

인권운동사랑방은 차별이 "관계, 즉 구체적인 맥락 속에서 개인과 사회(혹은 다수 집단)와의 관계로부터 발생하는 것"이라고 규정한다. 즉 사회화된 인간이라면 자신의 다양한 삶의 조건으로 인해서 일상생활 속에서 흔하게 겪게 되는 사회현상이라는 것이다.

이 책은 구체적인 일상생활 그리고 삶의 맥락 속에서 받고 있는 이야기다. 하나의 정체성으로 호명되기를 거부하는 소수자들의 목소리라 말 할 수 있다.
사람들이 어떤 말로도 잘 설명할 수 없지만, 오히려 그 어느 말로도 쉽게 설명할 수 있는 차별에 대한 이야기를 담고 있다.

1장 승민의 이야기는 한 비혼모가 자기와 같이 수업을 듣는 동료 학생들에게 특강 형식으로 들려주는 이야기다. 이야기의 주인공 승민은 가장 힘든 것이 사람들의 동정어린 시선이라고 이야기한다. 그이는 이른바 정상가족에게는 어떠한 결핍도 없냐고 되묻는다. 
2장 희수의 이야기는 트랜스젠더로 사법부에 성별변경을 호소하는 탄원서다. 희수는 자신의 신분증이 자신의 신분을 증명하지 못하고 있다고 말한다. 그리고 자신과 같은 트랜스젠더들에게 ‘성별주체성장애’라는 꼬리표를 붙이는 것에 대해 자신은 한 번도 주체성을 잃은 적이 없다며 자신의 주체성을 인정하고 성별을 정정해줄 것을 호소한다. 
3장 수민의 이야기는 엄마가 딸에게 보내는 편지 형식이다. 베트남에서 결혼이주를 한 수민은 한국인 남편과 이혼하고 베트남에서 모셔온 베트남 국적의 엄마와 한국 국적인 딸, 이렇게 다국적 가족을 구성하여 행복한 미래를 계획하고 있다. 

반면 5장 타파의 이야기는 이주노동자로 한국에 들어와 가정도 꾸렸지만 결국 공장에서 일하다 안타깝게 세상을 떠난 타파를 기억하는 활동가의 회상으로 겉으로만 화려한 다문화 사회의 어두운 그늘을 드러내고 있다. 
4장 정현의 이야기와 8장 서윤의 이야기는 자신의 성정체성이 형성되어가는 과정을 생애주기에 따른 ‘키스’라는 성애적 경험과 ‘신공’(신촌공원)이라는 공간을 통해 성소수자 청소년의 성장사를 들려주고 있다면, 
6장 이숙의 이야기는 장애를 가진 청소년이 어떻게 세상과 사회에 때로는 맞서고 때로는 타협하며 살아가는지를 보여준다. 

7장 민우의 이야기는 흔히 에이즈라고 불려지는 ‘HIV 감염인’이 목소리를 통해 감염인들의 인권을 위해 차별의 문제를 어떻게 접근해야 할 것인지에 대한 고민을 들려주며 9장 영석의 이야기는 청소노동자인 명희와 노동조합 활동을 하는 영석, 그리고 청년실업 상태로 공무원 시험을 준비하는 영은, 세 명을 주인공으로 하는 단편소설 형식으로 삶의 현장, 일터와 삶터에서 만나게 되는 차별의 문제를 짚고 있다. 

이렇게 재현된 각각의 이야기마다 반차별운동을 함께 모색하고 실천해온 활동가들의 글을 한 편씩 덧붙였다. 장애, 퀴어, 이주, 성별정체성, 반성매매, 노동 등 각 분야에서 오랫동안 활동해온 이들의 글은 차별이 한국사회의 어떠한 맥락 속에서 발생하는지를 보여주며, 한 개인이 가진 여러 정체성 중에서 하나의 정체성에 갇힌 차별이 아니라 중첩되고 교차하는 정체성 가운데 차별이 놓인 자리를 짚어주는 역할을 한다. 
또한 마지막에 실린 남은 이야기 ‘일터에서, 우리는 어떻게 만날까’와 ‘반차별운동은 정체성을 어떻게 다룰 수 있을까’는 한국사회 반차별운동이 어떤 고민을 중심으로 차별 문제를 대해 왔는가와 함께 앞으로 반차별운동이 풀어가야 할 숙제가 무엇인지를 알려준다. 

책은 '평범한 소수자들'의 이야기를 들려 주고 연이어 소수자들과 인터뷰한 인권운동사랑방의 활동가들의 느낌과 생각도 함께 들려 준다. 내가 그들의 느낌을 십분 공감할 수는 없지만, 그들의 이야기를 통해 어느 정도 공감하고 이해할 수 있었다.
다만, 활동가들의 의견이나 주장이 어려운 학문 용어나 개념을 자주 사용하고 있고 접근하기 어려운 이론이나 논리를 내세우는 경우가 종종 담겨 있어 재미 있던 책이 중간 중간 딱딱해지고 마는 것이 흠이다. 반차별운동이 대중적으로 확산되지 않는 현실에 활동가들의 운동 태도나 언어 사용에 문제가 없는지 되돌아 보아야하지 않을까 싶다.

"며느리가 남자라니, 동성애가 웬 말이냐!”
2007년 참여정부가 내놓은 차별금지법은 많은 논란을 불러왔다. 그중에서도 가장 뜨거운 감자는 차별금지 사유에 적시된 ‘성적 지향’이었고, 이를 삭제하라며 열린 집회에서 등장한 저 문구는 반차별운동 활동가들을 당혹하게 했다. 
어떤 사람이 아무런 이유도 없이 자신의 성별정체성 때문에 차별받거나 고통 받아서는 안 된다는 지극히 상식적인 요구는 ‘동성애 차별금지 = 동성애 조장 = 남자 며느리’라는 등식을 통해 일어날 수도 없고 일어나서도 안 되는 반인륜적, 반사회적 주장으로 내몰렸다. 결국 참여정부는 차별금지법에서 성적 지향을 비롯해 출신 국가, 가족 형태, 범죄 경력, 학력과 병력 등 7개 항을 슬그머니 지워버렸고 그럼에도 차별금지법은 만들어지지 못했다. 그리고 7년의 세월이 지나 다시 2013년, 차별금지법과 성적 지향은 여전히 논란의 중심에 있다.

"2007년 그 사건 이후 반차별운동 활동가들의 고민은 깊어졌다. 많은 언론들은 차별금지법에서 제외된 항목들에 해당하는 차별 피해 사례를 알려달라고 했다. 마치 그동안 아무것도 모르고 있었다는 듯이 누가 미혼모라는 이유로, 이주민이라는 이유로, 전과자와 성소수자라는 이유로 어떤 피해를 당했는지 구체적으로 알려달라는 주문 앞에서 반차별운동 활동가들은 차별 당사자, 소수자를 직접 만날 필요를 절감했고 2011년 인권운동사랑방의 ‘변두리스토리 프로젝트’는 그렇게 시작되었다. 
전문 인터뷰어나 생애구술 작업을 업으로 삼는 학자가 아닌 활동가들이었기에 작업은 서툴 수밖에 없었다. 원래는 보고서를 계획했다. 차별의 다양하고 생생한 양상을 드러내고 차별이 이러저러한 문제를 낳으니 “우리 함께 차별에 맞서 싸우자”는 결론에 이르게 되는 보고서. 하지만 인터뷰 녹취를 풀고 함께 읽어나가는 과정에서 활동가들은 자신들이 들은 이야기를 다른 이야기의 형식으로 전하고 싶어졌다. 억울하고 불쌍한 사람들, 대중매체에 흔히 등장하는 전형적인 피해자의 사례나 사건이 아니라 그들의 이야기를 들으면서 자신들이 느꼈던 설렘과 먹먹함으로 생생하게 재현해보고자 했던 것이다."(인권운동사랑방)

차별금지법은 여전히 진행형이다. 인권단체와 인권운동가들과 시민사회단체, 진보정당 그리고 일부 보수정당의 정치인들도 차별금지법 제정을 위해 오늘도 노력하고 있을 것이다. 그러나 차별에 대한 근본적인 고민도 병행해야 할 것이다. 즉, "차별금지법은 과연 차별을 없앨 수 있을까?"
차별금지법 제정운동, 그리고 반차별운동은 지금 이 순간에도 차별에 대한 법적인 구제 장치를 만드는 것에 한정되지 않고 진정으로 한국사회에서 차별이 없어지도록 하기 위해 무엇을 어떻게 해야 할지 모색해야 할 것이다. 인권운동사랑방은 그 첫 출발로 이 책이 전하는 이야기를 수신하고 전송하는 것이라 말한다.

이 책을 읽는 내내 나 역시 무의식적으로 또는 아무런 생각 없이 종종 비혼모, 트랜스젠더, 레즈비언과 게이, 이주자, 청소년과 장애인, 비정규직 노동자 등 사회적 약자를 차별했다는 걸 깨달았다..ㅜ

[ 2014년 9월 18일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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