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레드 콤플렉스 - 광기가 남긴 아홉개의 초상
강준만 외 / 삼인 / 1997년 6월
평점 :
절판
추천 [서평] 강준만 등 9인 공저 <레드 콤플렉스 : 광기가 남긴 아홉 개의 초상>을 읽고 / 1997. 6., 312쪽, 삼인
지금으로부터 17년 전인 1997년, 강준만 교수와 김교만, 김민웅, 김삼웅, 김진아, 문부식, 손석춘, 최종욱, 황광수의 글이 묶여 발간된 책이다.
책은 제목 그대로 한국사회에 뿌리깊게 자리잡은 '레드 콤플렉스'에 대해 비판한다. 누가, 어떤 목적으로 `레드 콤플렉스`를 전파하고 그 피해를 당하는지를 철저히 파헤쳤다. 1990년대 말까지 대표적인 레드 콤플렉스의 전파자와 그 피해자 9명을 집중 조명했다. 아홉 명은 박홍, 이문열, 김영삼 등 가해자라 할 수 있는 3명과 한완상, 김대중, 리영희, 조정래, 윤이상, 서준식 등 피해자라 할 수 있는 6명이다.
이 책이 다른 사회과학서나 인물평전과 다른 것은 `이념` 자체를 파고들기 보다는 사회병리현상의 하나인 레드 콤플렉스가 우리들 내면에 얼마나 깊숙이 감염돼 있는지를 다뤘다는 점이다.
레드 콤플렉스는 독재집단에게는`정치적 자산`과 같다. 그러나 민족, 국가차원에서 볼 때는 암과 같은 존재라고 저자들은 진단해 내고 있다. 또 레드 콤플렉스는 오히려 국가 안보에도 도움이 안된다고 지적하고 있다.
총론 "왜 레드 콤플렉스가 문제인가"에서 언론인 손석춘은 조선일보와 동아일보 등 친일파 언론으로 출발하여 해방 이후 생존본능으로 시작했다가 박정희 군사독재정권과 더불어 본격적으로 적색 공포증 조장에 앞장선 한국언론을 고발한다.
본문에 들어가면 가해자 3명과 피해자 6명에 대한 이야기가 나온다. 가해자 3명은 모두 한때는 민주주의를 위해 노력했지만 개인적 탐욕과 헛된 보복심으로 레드 콥플렉스의 가해자가 된 사람들이다.
"박홍 : 역사를 상대로 도박을 한 사제"에서 김진아는 1991년 폭압적인 노태우 정권 아래 민주투사들의 헌신을 "죽음을 사주하는 어둠의 세력" 등으로 몰아댔던 한때의 '민주총장 박홍'의 빨갱이 사냥을 통해 그 화려한 변식을 고발한다. 그는 극우언론이 만든 ‘연예인”이었으며, 권력의 속성을 빠르게 익히고 구사한 인물이었다.
"이문열 : 시대와의 불화"에서 최종옥은 이문열이 역사에 대해 개인적 보복을 가한 인물로 묘사한다. 그는 남로당 고위 간부였던 아버지의 월북으로 인하여 가정이 몰락하고 ‘빨갱이 가족’으로 지목되어 뿔뿔이 흩어져 해체되는 어려움을 겪은 유년기로 인하여 정치 문제는 본능적인 공포였기 때문에 스스로 허무주의자로 변호했다. 하지만 최종욱은 그가 "패배 의식에 사로잡혀 있는 보수주의자이면서도 수상쩍은 이론을 이용하여 자신을 어느 한쪽에도 기울지 않은 가장 중립적인 인사인 체하는, 대단히 자기 변명에 능란하고 영리한 지식인"이라고 규정한다.
"김영삼 : 고난의 시대에서 배반의 시대로"에서 김민웅은 김영삼의 좌절과 출로를 통해 그가 '우리의 자화상'임을 말한다. 김영삼은 권력욕이 가득하며 레드 콤플렉스에서 벗어나지 못하는 야당 정치인이 언제든지 변절할 수 있다는 산 교훈이라 할 수 있다.
피해자 6명의 이야기는 다음과 같다.
"한완상 : 냉전의 덫에 걸린 자유주의자의 꿈"에서 김교만은 통일 총리 한완상의 예견된 좌절을 겪는 과정을 다룬다. 한완상은 동서냉전이 해체되는 시기에 등장한 김영삼 문민정권의 등장에 힘입어 통일부총리로서 의욕적으로 남북화해를 시도했지만, 냉전 해체와 문민정권 등장에 위기감을 느낀 공안세력의 ‘한완상 죽이기’와 북미간 핵갈등의 소용돌이를 해쳐나오지 못함으로써 좌절했다.
"김대중 : 김대중 죽이기는 끝나지 않았다"에서 김삼웅은 60년대 이후 김대중을 둘러싼 광기의 정치사를 보여준다. 친일파 반공극우주의자인 박정희와 친일파 언론은 부정부패와 권력찬탈을 위해 김대중에게 레드 콤플렉스를 덧칠해 수십년간 마녀사냥을 했다. 김대중은 1997년 합법적 선거로 대통령으로 당선된 이후 그리고 죽은 뒤에도 여전히 친일파들이 씌운 '빨갱이, 간첩'이라는 색깔에서 온전하게 벗어나지 못했다.
"리영희 : 새는 좌우의 날개로 난다"에서 강준만은 리영희의 진실을 위한 투쟁을 말해준다. 한평생을 ‘오로지 진실’을 위해 싸운 리영희에게 공안세력과 극우언론은 새깔 칠하기에 광분했다. 그러나 리영희는 휴머니즘에 입각하여, 어느 쪽에 치우치지 않는 진실에 근거하여 오직 진실만을 추구한 저널리스트로 기억한다.
“자유롭게 생각하고 판단하는 재량을 지니는 자율적인 인간의 창조를 위하여, 당시 사회를 지배했던 광신적 반공주의에 대해 저항적 입장에서, 군인 통치의 야만성, 반문화성, 반지성을 고발하기 위하여, 시대 정신과 반제 반식민지 제3세계 등에 대한 폭 넓고 공정한 이해를 위하여, 남북 민족간의 증오심을 조장하는 사회 혀실에 반발하면서 두 체제간의 평화적 통일을 위한다는 입장에서 글을 썼다”(리영희)
"조정래 : 두 벌의 시나리오와 두 통의 유서”에서 황광수는 조정래가 공안세력과 극우언론의 레드 콤플렉스를 극복하고 <태백산맥>이라는 소설 작품으로 분단의 벽을 뛰어넘었다고 평가한다.
"윤이상 : 좌절된 귀향의 꿈”에서 문부식은 윤이상을 "세계 속에 통일음악을 꽃피운 음악가”로 평가한다. 윤이상이 타향에서 독립적인 예술가로 살아갈 수 밖에 없게 만든 1967년의 '동백림 사건’은 그해 5월 박정희가 대통령 선거에서 윤보선을 누르고 3선 개헌을 위한 개헌선 확보를 위해 6월 총선에서 대대적인 부정선거를 자행하면서 시작되었다. 이에 서울대생을 필두로 대학가의 학생 시위가 잇따르게 되었고, 박정희는 주권자들의 부정선거 저항을 억누르기 위해 동백림 사건’을 조작하여 터트린 것이다.
2012년 대선 부정선거와 2013년 NLL 대화록 공개, 간첩조작 사건 그리고 내란조작 사건이 연상되는 장면이다.
“분단 구조에 기반한 독재 권력은 반공주의를 기반으로 하고, 이 반공주의는 그것을 합리화시켜 주는 이러저러한 ‘사건들’을 필요로 하며, 이러한 사건의 발생과 적발을 통해 권력은 자신의 기반을 강화해 간다는, 또 자본은 자신을 보호해 주는 권력의 이러한 권위주의 통치 아래 자본의 무한한 이해를 무서운 속도로 추구해 간다는 ‘먹이 사슬’이 성립하는 것이다.”(문부식)
"서준식 : 인간은 과연 존엄한 존재인가”에서 강준만은 인권전도사로서 서준식의 삶과 투쟁을 말해준다. 서준식은 1971년 형 서승 및 서로 무관한 여러 사람들과 함께 박정희가 만들어 낸 ‘학원 침투 간첩단 사건’에 7년간 옥살이를 하였고, 형기를 마친 후에도 반인권적인 전향 제도를 거부하고 10년간 더 감옥에 갇혀 있었다. 그는 한국 인권의 대부로 인정받는다.(서준식은 2000년대에 인권운동사랑방의 후배 활동가들에게 배신을 당하고 개인적인 어려움도 겹쳐서 인권운동 일선에서 물러나 현재 외롭고 힘들게 지내고 있다고 합니다…ㅠ)
레드 콤플렉스와 관련하여 등장하는 한 명 한 명에 대한 사례와 가해/피해과정을 읽고 있는데, 2014년의 레드 콤플렉스가 17년 이전과 비슷하다는, 아니 그 때보다 더욱 심해졌다는 것을 느끼게 된다.
특히 십수 년 전에는 김대중, 리영희, 서준식 등 수구세력의 탄압에 굴하지 않고 레드 콤플렉스와 맞서 싸우는 정치 지도자와 지식인들이 든든하게 버티고 있었는데, 2014년 현재는 유력 지도자는 커녕 그런 중량감 있는 분들이 거의 존재하지 않다는 것이 더욱 안타깝다.
군사정권 때의 반공이데올로기와 레드 콤플렉스는 민간정권에서도 여전한 위력을 발휘하여 책이 발간된 지 20년이 지난 지금도 분단 트러우마(종북 콤플렉스)라는 이름으로 이름만 바뀌어 이 땅을 온통 뒤덮고 있다. 극우보수세력에 대한 공포, 야권과 진보개혁세력 내의 권력욕과 분열이 종북이라는 마녀사냥에 대한 저항력을 상실시키고 있는 것이다. 그로 인하여 일반인들까지 저들의 공격에 무기력해지고 있다. 2012년 총선-대선의 패배, 2013년 부정선거 투쟁의 패배, 2014년 지빙선거와 보궐선거의 연이은 패배의 주요 원인 중 하나가 바로 야권 분열을 가져온 내부의 레드(종북) 콤플렉스다.
더욱 얼척이 없는 것은 20여년 전에는 수구세력(극우보수세력)의 용공조작과 반공이데올로기 공세에 대해 제1야당이 전면에 나서서 방어막을 형성하며 싸웠는데, 지금은 제1야당 뿐 아니라 소위 진보개혁세력이라는 집단들 일부까지도 종북공세와 반북이데올로기를 내면화하여 함께 춤을 춘다는 것이다. 심지어 가끔은 먼저 나서서 칼을 휘두르기도 한다.
레드 콤플렉스와 종북공세의 희생양, 피해자는 겉으로는 일부 진보정당이나 진보세력이라고 보여지지만 실질적인 피해자는 대다수 민중이다. 노동자, 농민, 서민, 중소상공인 등 약자들인 것이다.
친일세력을 뿌리로 하여 군사쿠테타와 부정부패로 정치, 경제, 사법, 언론, 문화 등 대다수 기득권을 장악하고 있는 극우보수세력의 유일무이한 무기가 바로 레드 콤플렉스이고 종북공세다. 국정원 부정선거와 세월호 참사처럼 아무리 그들이 무능하고 무책임하고 부정부패를 일삼는다고 해도 "너도 종북이지"라는 한마디에 움추러드는 상황, 그런 허약한 정치세력은 민중들로부터 신뢰를 얻을 수 없다.
우리는 김대중, 노무현 전 대통령의 생애를 똑똑히 기억해야 한다. 특히 그분들이 얼마 되지도 않는 소수야당으로도 집권할 수 있었던 근본적인 리더쉽을. 그 리더쉽의 핵심 중 하나는 레드 콤플렉스에 굴하지 않고 야당과 진보세력의 중심에 서서 맞서 대항한 것이다. 그럴 때만이 레드 콤플렉스에 주눅들어 있는 일반인, 주권자들도 그 리더와 정치세력에 힘입어 공포에서 벗어나게 되는 것이다.
레드 콤플렉스, 종북 콤플렉스를 전면에서 맞받아치지 않는 그 어떤 정치세력, 정치지도자도 한국인의 리더로 일어설 수 없을 것임을 분명히 인식해야 한다.
[ 2014년 9월 14일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