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Book] 허균, 최후의 19일 (상) 허균, 최후의 19일 1
김탁환 지음 / 민음사 / 2014년 1월
평점 :
판매중지


[서평] 김탁환 저 <허균, 최후의 19일 上,下>를 읽고 / 2009. 01., 399/439쪽, 민음사

김탁환은 소설에 문외한인 나에게 역사적 사실을 바탕으로 하여 이야기를 창작한다는 '팩션 소설'을 처음 알게해 준 작가였다.
7년 전 그의 작품을 처음 접한 후 푹 빠져들어 <방각본 살인사건>, <열녀문의 비밀>, <열하광인>을 내리 읽었고, 그 이후 <혜초>, <나, 황진이>, <파리의 조선궁녀, 리심>, <노서아가비>, <눈먼 시계공> 등 과거 작품뿐 아니라 신작이 출간대로 연속하여 읽었다.
이 작품 <허균, 최후의 19일>은 중고서점에서도 찾기 힘들었는데, 우연히 후배 사무실 책꽂이에 꽂혀있는 걸 발견하여 기회가 된 것이다.

소설을 읽기 전에 교산 허균에 대해 여기저기를 뒤져보았다. 최초의 한글 소설 <홍길동전>으로만 유명한 교산(蛟山) 허균(許筠)... 국사책에는 광해군 재위 때 반역을 도모하다가 적발되어 능지처참(凌遲處斬)되었다는 사실만 기록되어 있었다.
위키백과에 기록되어 있는 내용은 "1569년생, 조선 중기의 문인으로 학자이자 작가, 정치가, 시인이었다. 1594년(선조 27년) 문과(文科)에 급제하고 1597년(선조 30년) 다시 중시문과(重試文科)에 급제하여 공주 목사를 거쳤으나 반대자에게 탄핵받아 파면되거나 유배당했다. 시류에 영합하지 않고 기생과 어울리기도 했고 불교를 신봉하여 논란을 야기(惹起)하기도 했다. 벼슬은 정헌대부 의정부좌참찬 겸 예조판서에 이르렀다. 광해군 때 대북에 가담하여 실세로 활동하였으나 1617년(광해군 10년) 인목대비 폐모론에 적극으로 가담하였다. 신분제도와 서얼 차별에 항거하려고 서자와 불만하는 계층을 규합하여 혁명을 계획하다 발각되어 이를 비판하던 기자헌을 제거하려다가 역으로 반역을 도모하려했다는 기준격의 밀고로 능지처참되었다"는 정도이다.

반란(혁명)에 착수하여 실패하는 날까지 19일간의 이야기를 작가는 허균이 참수되는 순간부터 거꾸로 풀어낸다. 그래서 처음 얼마간은 이야기의 맥을 잡기가 여의치 않았으나 금새 작가의 이야기 속에 빠져들었다.

작품 속 허균은 "임금/신분 없는 사회체제"를 꿈꾸는 것으로 그려진다. 현대사회로 보면 '공화국'을 꿈꾼 것이다. 물론 소설 속 이야기다. 조선왕조실록이나 여타 역사기록으로는 허균이 어느 정도까지 이상사회를 꿈꾸고 혁명의 목표가 왕을 바꾸는 것인지 아니면 자신이나 자신의 동지가 왕이 되려고 했는지 분명치 않다.
위키백과를 비롯하여 여러 곳의 설명에 민본사상과 국방 강화 정책 추진, 신분계급의 타파와 평등한 인재등용과 붕당배척론을 주장하였다 하니 그 자체만으로도 그 당시에는 '혁명'이라 할 수는 있을 것이다.
실제 역사적 사실도 임진왜란 당시는 조선 건국 후 200년 만에 정치는 기득권 파당이 심하고 지배계층은 외세의 침략에 무기력한데다가 나라와 백성의 안위에 무책임했고, 사회경제적으로는 신분제가 사회발전을 가로막고 전쟁 후과에 더해 삼정(전정 田政, 군정 軍政, 환정 還政)이 문란하여 백성들의 삶이 극에 달하는 등 조선이라는 체제 자체가 명분도 실리도 잃은 상황이었기에 객관적인 조건은 '혁명적 상황' 그 자체였을 것이다.

역사 이래로 당시 사회의 '상식'과 '제도', 그리고 그것을 떠받치고 고수하려는 세력이 자신들의 기득권만 챙기며 인민들의 삶과 처지를 악화시키고 사회의 진보를 가로막을 때, 항상 혁명 또는 혁명에 준하는 개혁을 통해 변해 왔던 흐름이 있었는데, 소설을 모두 읽은 후 조선왕조 500년이 어떻게 유지될 수 있었는지 왜 혁명이 이루어지지 않았는지 궁금증이 남는다.
마찬가지로 2013년 현재 대한민국의 주인인 민중(인민)들의 삶과 처지를 갈수록 악화시키고 사회 진보를 가로막는 '상식'과 '제도'는 무엇인지, 그것을 고수하려는 국내외 세력은 누구인지 그리고 이 시대에 '혁명'이라고 하는 것은 어떤 것일지 생각하게 한다.
물론 잠깐만 생각해 보더라도 분단체제와 종북이데올로기, 승자독식과 무한경쟁 이데올로기, 세계화와 민영화 프레임, 친일/종미 사대주의와 신자유주의가 그런 '구체제' 또는 '낡은 이데올로기'라는 것은 분명해 보이는데, 그 이외에 또 어떤 것들이 있는 것인지 고민하게 된다.

소설을 모두 읽은 후 생각해보니 허균은 내가 얼핏 알았던 역사적 인물의 수준이 아니라 조선 중기에 새로운 세상을 꿈꾼 사상가이자 혁명가일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들었다. 21세기에도 많은 것을 상상하게 해주는 작품이다.
조선 후기 박지원, 박제가 등 소위 '실학파' 보다 무려 200년이나 앞서 봉건 신분제도와 서얼 제도를 혁파하려한 선각자였던 것만은 사실이다. 그리고 그는 성리학뿐 아니라 불교와 도교 등 끊임없이 지리를 탐구한 사상가이자 철학가, 사회운동가이자 문인, 정치가이자 학자였다.
그가 창작한 <홍길동전>이 마냥 소설 속 이야기가 아니라 당시 허균 선생이 꿈꾸던 이상향일 수도 있다는 생각이 든다. 허균에 대한 더욱 풍부하고 근접한 평가는 이이화의 <허균의 생각>등 인물평전을 읽어야 가능할 것이다.
그리고 허균과 혁명세력들의 혁명의 실패원인이 '칠서의 변'에 이어 다시 한 번 측근에 의한 배신이었다는 설정(역사적 현실이기도 함)에서

소설을 읽으면서 영화와 방송 등 영상매체 속 작품들이 떠올랐다. 영상매체 관련 종사자들이 최근 지상파 TV에서 방영하는 드라마 <기황후>나 <정도전>처럼 각종 영화와 드라마를 제작하면서 광해군이나 다른 왕, 관료 등 인물이나 역사적 사실을 왜곡하여 학생들과 시청자들에게 잘못된 역사 인식을 만들지 않기를 바란다.
아무리 '시청률'에 목매다는 현실이라 하더라도, 작품이 과거를 재해석하는 것이 과거의 역사적 사실을 왜곡하거나 현대의 그릇된 정치사회 현실을 합리화하기 위함이 목적은 아닐 것이다. 그런 작품들은 '작품'도 아니고 '예술'도 아닐 뿐더러 후손들에게 그냥 권력자나 자본가의 '선전 도구'라고 평가될 뿐이다.

작가의 소설 속 혁명 이야기는 긴장이 넘친다. 500년 전에 꿈꾸었던 선각자가 있듯이 지금도 혁명을 꿈꾸는 선각자가 있을 것이다. 역사는 비록 혁명에 실패하여 허균처럼 능지처참을 당한다 하더라도 새로운 세상을 꿈꾸는 자는 반드시 나타나며, 그런 이들로 인하여 사회가 진보하고 인민들의 삶이 개선된다는 것을 보여주기 때문이다.

[ 2014년 1월 30일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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