희망의 배신 - 화이트칼라의 꿈은 어떻게 무너지고 있는가 바버라 에런라이크의 배신 시리즈
바버라 에런라이크 지음, 전미영 옮김 / 부키 / 2012년 10월
평점 :
절판


[서평] 바바라 애런라이크(Barbara Ehrenreich) 저, 전미영 역 < 희망의 배신 Bait and Switch : 화이트칼라의 꿈은 어떻게 무너지고 있는가? >를 읽고 / 2012. 10., 304쪽, 부키


<긍정의 배신>을 통해 긍정을 강요하면서 억압되고 잘못된 현실을 왜곡하는 '긍정주의'의 본질을 폭로하고, 자신이 직접 산업현장에 뛰어든 체험을 바탕으로 저술한 <노동의 배신>을 통해 비정규직, 저임금 노동자가 선의와 성실을 다바쳐도 먹고 살 수 없는 '워킹 푸어' 노동 현실을 폭로한 저자 애런라이크의 '배신 시리즈 3부작' 완결판..

<긍정의 배신>은 자기계발서, 초대형 교회, 긍정심리학 등 긍정주의가 사람들을 체제에 순응하게 만드는 신자유주의의 도구이자 신념 체계로 작동하고 있음을 파헤쳐, 미국에서 출간되자마자 아마존 사회 부문 베스트셀러에 올랐으며 독자들 사이에 격렬한 찬반 논쟁을 불러일으켰다.

<노동의 배신>은 저자가 3년에 걸쳐 웨이트리스, 청소부, 월마트 직원 등으로 일하면서 가난하기 때문에 돈이 더 드는 워킹 푸어의 진짜 현실을 드러내 '게으르기 때문에 가난하다'는 '신화'를 깨뜨렸다.


저자는 이번에 화이트칼라 구직 현장에 직접 뛰어들어 '열심히 일하면 잘살 수 있다'는 소박한 희망마저 배신당하고 일자리 불안과 과다 노동에 지쳐 가는 신자유주의 시대 미국 중산층의 암울한 현실을 고발한다.

10개월 동안 이력서를 고치고, 취업 박람회 등 온갖 행사를 쫓아다니고, 화장은 물론 성격까지 고분고분하게 바꾸며, 돈과 시간과 노력을 기울여 기업에 들어가려고 애쓴다. 그 과정에서 능력과 경력보다는 쾌활하고 복종하는 태도를 더 중시하는 기업 문화를 목격한다. 

몸 바쳐 충성해도 버림받고 몰락해 가는 화이트칼라의 모습을 그린 이 책은 출간 직후 미국에서 전문직 노동조합이 결성될 정도로 큰 사회적 파장을 불러일으켰다. 미국에서 출간된 직후 수천 건의 공감 댓글이 저자의 홈페이지를 달궜다. 이런 호응을 바탕으로 이듬해 화이트칼라를 위한 조합 조직 'United Professionals'가 설립되기도 했다.


먼저 저자는 구직 세계의 법칙에 따라 자신을 취업의 길로 인도해 줄 커리어코치를 구하고 연줄을 찾아 네트워킹 행사를 쫓아다닌다. 그런데 그 세계에서 마주친 것은 '모든 것은 내가 생각하는 대로 된다'는 대책 없는 낙관주의다. 저자의 커리어코치는 나이 때문에 걱정하는 저자에게 '본인이 37살이라고 생각하면 37살이 된다'는 황당한 믿음을 강요한다. 또 '전문직 이직'이라는 사이트는 '승리자의 태도'를 가지라면서 예전 고용주에게 부정적인 태도를 보이면 취업하기 어렵다고 조언한다. 

구직자가 갖춰야 할 가장 '올바른' 태도는 '순응'이다. 외모에서도 기업에 순응하겠다는 의지를 드러내는 '올바른 옷차림과 적절한 액세서리'를 갖춰야 한다. 이미지 매니지먼트 회사는 이렇게 조언한다. "권위적이어선 안 되고 가까이 다가가기 쉽다는 인상을 주어야 해요. 같이 일하기 편하겠다는 느낌을 주어야 합니다." 

이런 상황은 <긍정의 배신>이 고발한 '긍정주의'가 재취업 현장에 스며든 상황이라 할 수 있다.


저자는 인성 검사도 받는데 '고대의 지혜'가 담긴 에니어그램이나 MBTI 등 기업에서 널리 쓰는 이런 검사들은 실은 전혀 과학적이지 않다. 그런데도 기업이 선호하는 것은 '인성'을 강조해 직원들이 순응하게 만들려는 속셈이 깔려 있음을 간파한다. 이것은 '내가 해고된 것은 결국 내 탓'라는 희생자 비난 이데올로기로 이어진다. 회사에서 쫓겨난 것도, 취직을 못하는 것도 온전히 개인의 책임이 된다. 이런 식으로 사회 경제적 불평등이 정당화되는 것이다.

더욱이 전문직 실업자들에게는 구직 자체가 일종의 '직업'이 된다. 화이트칼라 세계에는 '실업'이 존재하지 않는다. '실업'이 아니라 '이직'이며, '실업자'가 아니라 '구직자'다. 커리어코치나 네트워킹 회사들은 예전 직장 생활을 필사적으로 '모방'하고 바쁘게 지내면서 '자기 관리'를 해야 한다고 강조한다. 일자리를 찾는 화이트칼라들은 구직자라는 '일'을 하느라 현실에 불만을 제기할 여유를 갖지 못한다. 

그런 면에서 단어와 개념을 조작하여 노동자와 실업자가 처한 심각한 구조와 현실을 가려버리는 상징조작과 말장난이 미국이나 한국이나 점점 최악의 상황으로 몰아갈 가능성이 매우 크다.


자영업 분야도 마찬가지다. 저자의 주변에서도 친오빠, 형부 등이 부동산 중개업에 뛰어들었다. '험하지 않아' 보이면서도 진입 장벽이 낮은 부동산 중개업은 화이트칼라가 '만만하게' 뛰어드는 업종이다. 

그러나 1년 만에 실패하는 비율이 86퍼센트에 달하고 '생존자'도 70퍼센트가 연 소득 3만 달러가 안 된다. 프랜차이즈 사업도 마찬가지다. 2008년을 기준으로 자영업자 수가 559만 명으로 전체 취업자의 31.1%에 이르고, 그 중 절반이 창업 3년 이내에 문을 닫는 우리나라의 현실 또한 미국과 다르지 않다.

화이트칼라가 선택하는 또 하나의 일자리는 저자가 제안 받은 보험, 화장품 판매처럼 수수료만으로 먹고사는 영업직이다. 그러나 이런 업종에 발을 들였다가 사기를 당해 돈만 버리는 경우가 적지 않으며, 사기가 아니라 해도 수수료가 너무 적어 생활이 어려운 실정이다. 1년에 5만 달러 이상 버는 사람은 8퍼센트에 불과하고 절반은 1년에 1만 달러도 벌지 못한다.


저자가 직접 경험한 현실의 대부분은 미국뿐 만이 아니라 바로 한국이 처한 현실이자 한국인의 일상이고 한국 중산층에게 다가올 미래라 할 수 있다. 미국에서 중산층과 전문직, 퇴직자를 꼬드겨 빈곤의 나락에 빠뜨리는, 화이트칼라를 꾀는 프랜차이즈, 부동산, 영업직 등의 '미끼 상술'은 이미 한국에서도 IMF 이후부터 판치기 시작했기 때문이다.


기업 밖으로 밀려난 구직자 못지않게 '생존자'인 기업 내의 화이트칼라 역시 '시름시름 죽어 가고' 있다. 이제 기업은 직원을 사람이 아니라 '물건'으로 본다. 수익이 나지 않으면 언제든 내다 버린다. 그런 CEO에게는 주주에게 이익을 안겼다며 오히려 높은 보수가 주어지는 상황이다. 실제로 대부분의 서비스직을 아웃소싱 한 50개 미국 기업 CEO의 보수 인상폭은 다른 회사 CEO에 비해 5배나 높다. 이것이 바로 현대 자본주의와 신자유주의의 본질이다.

이제 기업은 '포식자의 세상'으로 변했다. 살아남기 위해서는 '열정'과 '에너지'와 '헌신'을 제물로 바쳐야 한다. 특히 의사나 과학자 같은 '진짜' 전문직과 달리 일반 화이트칼라들은 '임원실'을 차지한 이들에게 완전한 충성을 서약하고 '자기 자신'까지 판매해야 한다. 이 때문에 일자리의 안정성뿐만 아니라 인간으로서의 존엄성마저 잃는 상황이다. 더 안타까운 것은 그렇게 충성을 바쳐도 '배신'당하는 것을 피할 수 없다는 사실이다. 아이러니하게도 현실에서는 '가장 성격이 좋고, 충성심이 제일 강하고, 가장 복종적인 직원이 감원 1순위에 오르는 경우가 많다.'

기업에서 밀려난 화이트칼라는 여러 일자리를 전전하면서 아래로 아래로 굴러떨어진다. 일자리를 잃었다가 다시 취직한 사람들의 수입은 전 직장에 다닐 때보다 평균 17% 줄어든다는 미국의 통계 결과가 이를 말해 준다. 한국의 경우는 17%가 아니라 50%를 넘을 것이다.


많은 사람들이 일단 무슨 일이라도 해야겠다는 절박함 때문에 학력이나 능력과 무관한 저임금 전업 일자리, 즉 월마트나 스타벅스 매장 직원으로 취업한다. 하지만 이런 '생존용' 임시 일자리에서 온종일 육체노동을 하는 동안에는 구직 활동을 하는 것은 현실적으로 불가능하다. 

기업 안에 있을 때는 '노예'로, 기업에서 밀려나고 나면 빈곤에 대한 공포를 안고 워킹 푸어로 전락하는 화이트칼라. '열심히 일하면 잘살 수 있다'는 소박한 희망마저 무너져 가는 것이 오늘날 미국과 한국 중산층의 아픈 현실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한국의 언론이나 대학과 연구소, 지식인들은 한국사회의 중산층의 현실, 재취업 시스템의 붕괴, 해고와 실직과 자영업의 연결구조 등에 대해 애런라이크처럼 대중적으로 고발하는 저서를 내놓고 있지 못하고 있다. 오히려 김미경이나 박경철 류의 온갖 성공학이나 처세술, 마인드 컨트롤 같은 긍정주의 강사들이 언론과 출판시장을 장악했다.

그런 모습이 더욱 한국사회의 현실과 미래를 암울하게 만든다. 도대체 언론의 왜 존재하며 '지식인'이란 무엇일까...


미국이나 한국이나 행정부와 정치권은 현실을 인정하고 해결책을 제시하기는 커녕 오히려 재벌, 기득권자들의 편을 들면서 기업들이 해고와 실직을 더 쉽게 만들고 경제민주화와 사회복지를 더 악화시키는 등 상황을 악화시키는 데 일조하고 있다. 미국의 클린턴/오바마 정부가 집권했을 때나 한국에서 김대중/노무현 정부가 집권했을 때도 상황이 악화되는 데 아무런 제동을 걸지 못했음을 돌이켜 볼 때, 미국이나 한국의 여야 거대 정당이 대안이 될 수 없다는 것은 명확해 보인다.

이런 상황에서 미국과 한국의 중산층과 빈민에게, 실업자와 워킹 푸어에게 미국의 민주당과 한국의 민주당에게 정권을 맡기자고 선동하는 지식인들과 언론은 무슨 생각을 하고 있는 것일까...


그렇다면 어떤 해결책이 가능한가? 애런라이크는 "화이트칼라 노동자들이 뭉쳐 자신들의 존엄성과 가치를 주장하기 전까지는 아무 것도 변하지 않을 것"이라고 말한다. 단순한 문장이지만, 정말정확한 진단이자 해결책이라 할 수 있다. 노동자든 농민이든 중산층이든 빈민이든 자신이 처한 구조와 조건을 스스로 해결하려 하지 않고서는 어떤 정당도, 단체도 그냥 대변하지 않을 것이기 때문이다.

자신들의 대중조직을 결성하고 네트워크를 형성해야 하며, 그 대중조직을 기반으로 진보정당과 연합을 하든지 거대 정당을 압박하는 것이 기업과 자본가를, 언론과 사회문화 현상을, 행정부와 입법부를 변화시킬 수 있을 것이다.


마지막으로, 이 책에서 아쉬운 점은 '범주'에 대한 것이다. 

사실 중산층, 특히 화이트칼라라는 계층 개념은 가진 것이라고는 자신의 몸(신체와 지능을 포함한) 밖에 없는 '일하는 사람(노동자)'을 생산직과 사무직, 서비스직이나 전문직으로 분리시키게 된다.

노동하는 공간이나 노동의 내용, 방식 등이 달라도 '노동자'라는 큰 범주에 속하는 것이며, 결국 자본주의 체제나 신자유주의에서 처하는 조건은 동일한 하위 개념이라 할 수 있기 때문이다. 


[ 2014년 1월 15일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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