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란음모의 블랙박스를 열다
김갑수 외 지음 / 615(육일오) / 2013년 11월
평점 :
절판


추천!! [서평] 이시우, 이병창, 손우정, 김갑수 등 공저 <내란음모의 블랙박스를 열다>를 읽고 / 2013. 11., 245쪽, 615출판사


지난 8월 28일 아닌 밤중의 홍두깨처럼 한국사회에 내던져진 이석기 의원 등에 대한 '내란음모 사건'

모든 언론을 떠들석 난리를 떨며 시작된 이 사건이 발생한지 벌써 만4개월이 지났고, 작년 11월부터 재판이 시작되었다. 지난 2개월 간 진행된 법정 공판에서 검찰측과 변호인측이 증거 채택 여부와 공소 적절성 등을 다투었고, 그 결과 녹취파일 원본의 상당수가 훼손되거나 제대로 증거로서 적법성이 상실당했으며, 당시의 녹취록에서 제기한 주요 문장과 맥락이 270여 곳 이상 조작, 변조되었다는 것도 드러났다.
제보자로 불리는 프락치의 증언을 통해 'R.O'라는 존재 자체가 추측과 망상에 근거했다는 것도 재판을 통해 대부분 드러났다.
처음부터 국정원과 검찰의 무책임하고 무능하고 무리한 수사와 기소였다는 점이 드러난 셈이다.(http://blog.daum.net/hy2oxy/8691760)

이 책은 재판이 공식적으로 진행되기 직전에 출간되었기 때문에, 녹취록이나 내란음모의 팩트 또는 진실에 대해 명확한 근거나 팩트를 제시하지는 않는다. 국정원이 언론에 흘리면서 시작된 내란음모 사건에 대해 언론과 정치권에서 구체적인 근거나 논리적인 사실취재보다 국정원이 흘려주는 '카더라'식 정보를 마구잡이로 확대재생산하면서 마녀사냥식 언론재판을 벌이는 것에 대해 저자들이 대응하기 위해 서둘러 출간한 것이다.
따라서 당시 국정원이나 언론, 정치인, 지식인들이 주장하고 내세우는 논리나 주장에 대한 비판에 불과할 수도 있다.

그러나 난 책에 담긴 세 명의 공저자의 글 때문에 이 책을 구입했다. 바로 김준식 작가와 이시우 작가, 그리고 이병창 교수다.(물론 다른 분들의 글 역시 큰 도움이 되며 한꺼번에 대할 수 있는 장점도 책을 구입한 주된 이유 중 하나이기는 하다..^^)
세 명은 작년 통합진보당 부정경선 사태 때에도 사실관계를 근거로 사태를 바라보는 식견과  언론과 지식인 그룹에 의해 확대재생산된 여론몰이가 어떤 토대에서 발생하는지 철학적, 심리적, 사회학적, 논리적 식견을 나에게 가르쳐 주었기 때문이다. 즉 사건과 상황을 바라보고 해석하는 눈을 뜨게 한 것이다.
특히 이병창 교수의 사이비 언론인에 대한 비판은 냉엄하고도 준열했다.(http://blog.daum.net/hy2oxy/8691761)

 


8월 말 이후 한 달 가까이 모든 언론에서 국정원이 흘린 녹취록과 각종 수사 정보를 받아쓰기 하면서 크게 다루었다. 그 결과 이석기 의원과 구속된 진보당 당원들은 하루아침에 '국가 중대 범죄자'로 마녀가 되었고, 박근혜 정권은 이를 근거로 통합진보당에 대한 해산을 헌재에 청구했다.
명색이 진보언론이나 진보지식인이라는 사람들의 글이 고작 당시의 당국의 발표나 언론보도 내용과 크게 다르지 않았다. 편견과 추측에 기반한 혐오스러운 표현들, 진영논리라고 밖에 해석되지 않는 정치적 마타도어, 중립이나 중도를 내세우며 날을 세우는 양비론 등이 주류를 이루었다. 작년에 이어 다시 한 번 크게 실망하지 않을 수 없었다.

8월말 언론보도 이후 4개월이 지난 지금 돌이켜보면 그때 당시 경악하고 흥분하며 핏대를 올리고 조롱하던 많은 이들이 머쓱해져 있을 것이다. 자신들이 전제로 내세웠던 "녹취록이 사실이라면~" 자체가 사실이 아님을 국정원이 스스로 인정해 버렸고, 언론과 종편에 도배되었던 수많은 선정적 보도들 역시 거짓과 위선으로 가득찼다는 것을 알았기 때문에..(물론, 사실관계를 알려고 노력하지 않고 여전히 종편이나 조중동만 읽으면 결코 진실은 알 수 없지만...)
자신이 이전에 접했던 정보가 사실이 아니라 의도된 조작이고 편집이었음을 안다면, 그런 잘못된 정보를 토대로 누군가를 공격했고 종북몰이에 일조했다는 사실을 이제라도 알았다면 스스로의 잘못을 되돌아보고 다시는 지난 잘못을 되풀이하지 않는 것이 중요할 것이다. 굳이 공개적으로 자기비판할 것까지는 필요한 게 아니라...(특히 얼토당토 않은 시리즈 인터뷰를 연재한 오마이뉴스와 시리즈 연재에 아무 생각 없이 동참한 권영길, 주대환, 조승수, 김창수, 이진경, 김기식... 김영환은 기대도 하지 않음..ㅋ)

몇 년째 내가 고민하고 혼란스러워 하는 것 중 하나가 소위 진보진영의 분열과 비이성과 비겁함이었다. 사상의 자유(주의)니, 민주주의니, 사회민주주의니, 인민주권이니 하는 고상한 담론들이 현실 앞에서 여지 없이 무너지는 것을 보면서 한 때는 그런 철학적, 정치적 용어들이 경멸스럽기도 했다.
다행히 김준식, 이시우 작가, 이병창 교수의 글이 21세기 한국사회의 현실, 사건사고 속에서 자유와 평등, 민주주의와 인민주권, 정치적 언행과 철학적 연관성 등을 연결시켜 보는 관점과 기준을 제시해주었고 혼란에서 벗어나는 데 다시 한 번 도움이 되었다.

* 인상 깊은 문장 :

"이렇게 글과 문장이 악의적으로 쓰이고 있음에도 침묵하고 있는 작가들에게서 일제시대 친일작가와 지식인의 잔영을 본다. 아니, 조중동 등 거대언론에 순치된 우리 문단의 구조적인 모순과 나약함을 다시금 절감한다. 지금 국정원과 박정권이 문장 조작으로 범죄를 만들고 있는 것, 이건 단순히 녹취록이나 기소문 등 실용문을 작성하는 일상적 차원으로 볼 수 없다.
그 안에는 우리말의 의미를 왜곡하고 오염시키는 과정이 있으며, 이후 그런 방식을 통해 표현의 자유를 극도로 억압하려는 저의가 담겨 있다. 더구나 저들은 논리적 추론만으로 사람을 범죄로 몰고 압살하려한다. 그런데도 글을 다루며 산다는 사람들이 이토록 냉정하게 거리를 두는 건 분명 자기 성찰에서 비롯된 자제력은 아닐 것이다."(p.112)

“진보적이고 배운 사람들이, 여전히 현상에 압도되어 본질을 보지 못한다는 점에서는 매카시즘의 노예들과 별 차이가 없다.” 김대규(서울 디지털대 교수, 법학)

“결국 이들은 사회적 약자였고, 평균적 국민들보다 전쟁에 대한 공포를 먼저 느끼고 울음을 터트린 것이라고 나는 생각한다.” 김준식(소설가)

“어마어마한 사건의 증거는 달랑 내부 협력자, 즉 프락치가 구해준 정체불명의 녹취록이 전부였다. 그만큼 남재준 원장은 다급했던 것일까?” 문경환(‘동북아의 문’ 대표)

“‘헌법 밖의 진보는 진보가 아니다’라는 식의 요상한 말들은 스스로 체제의 안전한 공간에 둥지를 틀겠다는 선언인 동시에...” 손우정(시사평론가)

“일단 주체사상이 대한민국에서 금지된 것이라고 하자. 지금 진보당 안에서 주체사상이 공적으로 표현되는가? 진보당의 어디에서도 그런 조짐은 발견할 수 없다.” 이병창(동아대 명예교수, 철학)

“우리 역사에서도 법은 김대중내란음모사건은 기각했지만 전두환의 내란죄는 확정했다. 자유국가가 싸워야 할 진정한 적이 있다면 그것은 반혁명세력이다. 진정 자유로운 국가를 원하는가? 그렇다면 혁명하라.” 이시우(사진작가)

“어떤 사람들은 말합니다. 그래도 설마 뭔가 했으니까 구속된 거 아니냐고. 국정원이 언론을 동원해 엄청난 여론몰이를 해댔으니 그렇게 생각하는 것도 무리가 아니겠지요.” 임이화(구속자 가족)

[ 2014년 1월 04일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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