긍정의 배신 - 긍정적 사고는 어떻게 우리의 발등을 찍는가 바버라 에런라이크의 배신 시리즈
바버라 에런라이크 지음, 전미영 옮김 / 부키 / 2011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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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평] 바버라 에런라이크(barbara ehrenreich) 저, 전미영 역 < 긍정의 배신 bright-sided : 긍정적 사고는 어떻게 우리의 발등을 찍나 >를 읽고 / 2011. 04., 304쪽, 부키

<노동이 배신>과 함께 공부모임 교재로 채택된 책이다. 처음 책 이야기를 듣고 인터넷에서 책 소개를 간략하게 훑어보았을 때에는 관심이 별로 없었고, 숙제하는 기분으로 책을 구했다.
그런데 책을 받은 후에, 목차를 읽어보고 소개글과 저자의 머리말을 읽으면서 급관심이 생겼났다.

예전에 <시크릿>을 읽으면서 <오프라 윈프리 쇼>를 보면서 현실을 넘어 서는 '마음'과 '태도'를 강조하는 그들에게 적지 않게 불편한 마음이 있었다. 그리고 그과 비슷은 처세술이나 긍정적인 심리를 특별하게 강조하는 책을 읽으면서 책 내용과 저자에 대해 늘 비판적이고 불만스러웠는데, 이 책을 통해 '긍정적 사고' 또는 '긍정주의'의 기원과 구체적인 사례 그리고 논리적인 관점을 배울 수 있게 되었다.
한마디로 이 책은 '무분별한 긍정주의를 고발'하는 책이다. 다르게 말하자면 20세기 후반기부터 서구사회와 한국을 지배하고 있는 신자유주의의 사회.문화 이데올로기를 비판하는 것이라 할 수 있다.

저자가 '긍정'에 대해 의심을 품기 시작한 것은 자신이 유방암 진단을 받고난 이후부터다. 그녀의 생각과 달리, 암을 선고받고 비관의 나락으로 떨어져 마땅할 듯한 투병자들 사이에 의외로 낙관과 긍정의 에너지가 가득한 묘한 분위기를 감지했기 때문이다. 
암이야말로 인생이 얼마나 좋은 것인지를 알게 해 준 선물이라는 투병자들의 수기, 불행하다고 느끼면 죄의식이라도 가져야 할 만큼 '병을 긍정적으로 받아들이라'는 일상적 충고들, 한술 더 떠 단지 긍정적이고 낙천적인 태도를 갖는 것만으로도 암의 위험을 줄일 수 있다는 입증되지 않은 과학까지 결합해 핑크 리본과 곰 인형으로 상징되는 유방암 문화를 형성한다. 

저자는 자신의 경험을 통해 '긍정주의'의 허구성과 폐해를 느낀 후, '긍정주의'가 언제 어디서 시작되었으며 그 이론적, 역사적 흐름이 어떻게 이루어졌는지 그리고 다양한 사례와 인물에 대해 분석하기 시작했다.
긍정적 사고의 핵심에는 '불안'이 놓여 있다. 긍정적 사고를 위한 훈련은 수많은 모순적인 증거에 직면한 상황에서 믿음을 주입하기 위한 것이다. 이런 훈련을 제공하는 이들은 '자기 최면'이나 '마인드 컨트롤' 또는 '생각 조절'이라는 그럴싸한 이름을 붙인다.
저자가 연구한 결과, 긍정적인 사고가 체계를 갖추기 시작한 것은 19세기 들어서였다. 그리고 20세기가 되자 긍정적 사고는 주류에 진입해 민족주의와 같은 강력한 신념체계들 속에서 자리를 마련했고, 자본주의의 필수요소로서 자기 가치를 설득해 나갔다. 긍정주의는 본격적인 산업의 일부로도 자리잡았다. 한국의 방송에서 인기 강사인 '김미경'씨는 한국판 지그 지글러(zig ziglar)라 할 수 있다.

'긍정주의'의 폐해는 무엇일까? 예를 들어 1994년 미국 최대의 통신회사 AT&T는 2년 동안 1만 5,000명을 정리 해고하겠다는 계획을 발표한 당일, 직원들을 '성공 1994'라는 동기 유발 행사에 보냈다. 행사의 주연급 연사인 동기 유발 강사 지그 지글러가 전한 메시지는 이랬다. "(해고를 당하면) 그건 당신의 잘못입니다. 체제를 탓하지 마십시오. 상사를 비난하지 마십시오. 더 열심히 일하고 더 열심히 기도하세요."
청년실업자들이나 구조조정으로 일자리를 잃은 직장인이 제도의 불합리성과 사회복지 제도의 미비함에 목소리를 높이는 대신, 자신의 긍정성 부족을 탓하고 동기 유발에 더욱 매진하게 만든다면, 이러한 긍정주의는 경쟁과 구조조정이 일상화되고 시장에 모든 판단을 맡기는 신자유주의 시대가 원하는 최적의 이데올로기가 아닐 수 없다. 
이렇듯 긍정적 사고는 자본주의 시장경제의 잔인함을 변호한다. 낙천성이 물질적 성공의 열쇠이고 긍정적 사고 훈련을 통해 누구나 갖출 수 있는 덕목이라면, 실패한 사람에게는 변명의 여지가 없게 되기 때문이다.

또 하나의 대표적인 사례는 정치행정 분야에서 찾을 수 있다. 미국 제43대 대통령인 조지 w. 부시(george w. bush)는 고교 시절 치어리더였다. 미국의 발명품임에 분명한 치어리더는 긍정산업의 핵심인 코칭과 동기유발의 선조 격이라 할 수 있다. 
대통령이 거의 언제나 낙관론을 요구하고, 비관론과 절망과 의심을 싫어했기 때문에 콘돌리자 라이스 국무장관은 부시 앞에서는 우려를 겉으로 드러내지 못했다. 2001년 9.11 테러 이전, 여름부터 곳곳에서 테러를 의심할 만한 징후들이 감지되었음에도 연방수사국, 이민귀화국, 부시, 라이스 등 어느 누구도 그런 불편한 단서에 주의를 기울이지 않았다.
미국의 개신교는 신복음주의 '긍정주의 신학'으로 물든지 이미 오래되었다. 그들은 돈과 권력 이외에 전통적인 원죄, 은총, 회개 등이 중요하지 않다. 미국의 4대 종교 중 3대 종교는 확실한 '긍정주의 신학'이고 나머지 1개 교단마저도 그 범주에 들어간다. 한국의 개신교는 미국과 얼마나 다를지 궁금했다.

AT&T나 부시와 같은 사례와 흐름은 IMF 이후 한국사회에도 상륙한 것으로 보인다.  IMF 이후 경제적, 정서적 불안에 사로잡힌 한국인들에게 긍정주의와 황금만능주의는 짝이 되어 10년 넘게 한국사회 전체를 지배했다. 정치분야에서는 이명박 전대통령의 "내가 해봐서 알아"가 유사한 사례라 할 수 있을 것이다.

저자는 2008년 서브프라임 위기를 미국사회 전체에 수십 년 동안 긍정주의가 끼친 악영항의 결정판이라고 평가한다. 

그녀가 주장하는 인생에서의 진정한 가치는 긍정이냐 아니면 비관이냐는 선택의 문제가 아니라, 사실에서 출발하느냐 아니면 마음가짐에서 출발하느냐가 핵심임을 지적하는 것이라 할 수 있다.
그리고 미소와 웃음, 포옹, 행복, 그리고 즐거움을 더 많이 보기 위해서는 '긍정적 사고'라는 대중적 환상에서 깨어나는 것이 필요하다는 것이다. 

그렇다면 저자의 대안은 무엇일까? 그것은 인류가 지금까지 해온 노력을 지속하는 것이다. 
"좋은 일자리와 의료 서비스처럼 사회적 안전망이 더 탄탄하고 파티와 축제, 길거리에서 춤을 출 기회가 더 많은 곳이 내가 그리는 유토피아다. 기본적인 물질적 욕구가 충족된다면(이는 내 유토피아의 전제다), 삶은 영원한 축하 무대가 될 것이고 모든 사람이 무대 위에서 재능을 발휘할 것이다. 하지만 단지 희망하는 것만으로 그런 축복받은 상태에 이를 수는 없다. 우리는 스스로 초래했거나 자연 세계에 놓여 있는 무시무시한 장애물과 싸우기 위해 정신을 바싹 차려야 한다."

나 역시 '긍정주의'에 대한 저자의 대안이 합리적이라는 생각이 들고 십분 공감이 된다.

○ 인상 깊은 문장 : 

- "심리학자들이 각 나라 사람들의 상대적 행복도를 측정한 결과 놀랍게도 미국인들은 긍정성을 자랑스레 내세움에도 불구하고, 경제가 한창 활황일 때조차 행복한 축에 끼지 못하는 것으로 나타났다. 세계 각국의 행복도에 관한 100건 이상의 자료를 종합 분석한 자료에서 미국인의 행복지수는 23위에 머물러 네덜란드인과 덴마크인, 말레이시아인, 바하마인, 오스트리아인은 물론 음울한 사람들로 알려진 핀란드인보다 순위가 낮았다. 한편 세계 우울증 치료제의 3분의 2가 미국에서 소비되고 있다는 사실도 미국인들이 느끼는 고통을 시사해 준다." (머리말/ p.22) 

- "긍정적 사고는 분노와 공포라는 실체적 감정을 부정하고 쾌활함의 분칠 아래 묻어 두도록 요구한다. 불평을 듣느니 가짜 쾌활함을 상대하는 것이 나은 만큼 의료 종사자나 환자의 친구들에게는 몹시 편리하다. 하지만 환자 자신에게는 쉽지 않은 일이다. 이점 발견에 관한 한 연구는 "유방암 환자들은 다른 사람들이 선의를 갖고 이점을 발견하려 노력하는 것조차 둔감하고 서투르다고 보고, 되풀이해서 반감을 표시했다. 환자들은 그런 노력을 자기에게 지워진 고유한 짐과 과제를 경시하는 불쾌한 시도로 해석했다."고 밝혔다. 2004년에 발표된 연구에서는 긍정적 사고의 신조와는 완전히 반대되는 결과가 나왔다. 암 선고를 받고 이점을 더 많이 자각한 여성들이 그렇지 않은 여성들에 비해 (정신 기능의 저하를 포함해) 삶의 질이 더 떨어지는 경향이 있다는 것이다."(1장 암의 왕국에 오신 것을 환영합니다/ pp.68~69)

- "심리학자들은 억압된 감정은 그 자체가 해로운 것이라고 주장하지만 정말로 그런지 나는 알지 못한다. 하지만 긍정적 사고가 '실패'해 치료 효과가 나타나지 않고 암이 퍼지게 되면 문제가 발생한다는 것은 분명하다. 그럴 때 환자가 비난의 화살을 돌릴 수 있는 것은 자기 자신밖에 없다. 충분히 긍정적이지 못했다고, 애초에 암이 생긴 것도 부정적인 태도 탓이었다고 자책하게 된다. 이 지점에 이르면 긍정적으로 생각하라는 충고는 "이미 피폐해진 환자에게 추가적인 부담이 된다."고 종양학 간호사 신시아 리텐버그는 썼다. 뉴욕 슬로안케터링 기념 암센터의 정신과 의사인 지미 홀런드는 암 환자들이 일종의 희생자 비난을 경험한다고 밝혔다. 
- "10년쯤 전부터, 정신과 육체는 연결되어 있다는 대중적 믿음을 토대로 우리 사회가 환자들에게 불필요하고 부적절한 부담을 지운다는 것을 나는 분명히 느끼게 되었다. 나를 찾아온 많은 환자가 선의를 가진 친구로부터 "암과 관련된 글을 모조리 읽어 보았는데, 네가 암에 걸린 건 네가 암을 원했기 때문이래."라는 이야기를 들었다고 털어놓았다. 여기에 더해 환자가 "항상 긍정적인 자세를 가져야 한다는 걸 알고 있습니다. 그것만이 암에 대처할 수 있는 유일한 길이니까요. 하지만 너무 힘듭니다. 내가 슬퍼하거나 두려워하거나 화를 내면 결국 암세포를 더 빨리 자라게 할 테니 스스로 명을 재촉하는 것밖에 안 됩니다."라는 말을 할 때면 나는 더더욱 고통스럽다."
긍정적인 사고에 실패한 암 환자는 제2의 병과 같은 부담을 더 지게 될 수도 있다."(1장 암의 왕국에 오신 것을 환영합니다/ pp.70~71)

- "[시크릿]은 언론으로부터 비교적 따뜻한 응대를 받았지만, 식자층의 경악과 조롱을 받았다. 비판하는 사람들 입장에서는 대체 어디서 시작해야 할지 모를 정도로 문젯거리가 풍부했다. dvd에는 쇼윈도에 진열된 목걸이를 보고 감탄하는 여성이 등장하는데 다음 장면에서 그녀는 그 목걸이를 목에 걸고 있다. 그저 목걸이를 '끌어당기려고' 의식적으로 노력했던 게 전부였다. 책 내용도 마찬가지다. 수십 년 동안 체중을 줄이려고 애썼던 저자는 음식 때문에 살이 찌는 것이 아니라고 선언한다. 음식이 살로 갈 것이라는 '생각' 탓에 실제로 체중이 는다는 것이다."(2장 주술적 사고의 시대: 끌어당김의 법칙/ p.95)

- "긍정적 사고는 고용주의 손에 의해 19세기의 주창자들이 짐작도 하지 못했을 용도로 바뀌었다. 떨치고 일어나 앞으로 나아가라는 권고가 아니라 직장에서의 통제를 위한 수단, 더 높은 실적을 내라고 들들 볶는 자극제가 되었다. 노먼 빈센트 필의 [적극적 사고방식]을 낸 출판사는 1950년대에 일찌감치 기업 시장으로 눈을 돌려 "기업 임원 여러분, 이 책을 직원들에게 주십시오. 커다란 이익을 낼 것입니다."라는 광고를 냈다. 광고는 영업사원이 이 책을 읽으면 자신이 파는 상품과 자기가 속한 조직에 새로운 신뢰를 갖게 될 것이며, 내근 직원들의 효율성도 높아져 퇴근 시간만 기다리는 사람이 현저히 줄어들 것이라고 장담했다. 동기 유발이 채찍으로 사용되면서 긍정적 사고는 순응적인 직원의 품질 보증서가 되었고, 1980년대 이후 다운사이징 국면에서 고용 사정이 악화됨에 따라 채찍을 쥔 손에는 더욱 힘이 들어갔다."(4장 기업에 파고든 동기 유발 산업/ p.146)

- "급격히 성장하는 분야인 경제 자기계발서들도 화이트칼라 노동자들이 다운사이징에 적응하도록 일조한다. 다운사이징 선전의 고전인 [누가 내 치즈를 옮겼을까?]는 1000만 부가 팔렸는데 기업에서 뭉텅이로 사서 직원들에게 나눠 준 것이 상당 부분을 차지한다. [누가 내 치즈를 옮겼을까?]는 책을 읽기 싫어하는 독자의 손에 들어갈 가능성을 염두에 둔 듯 94쪽밖에 안 되는 얇은 두께에 활자도 큼지막하고, 어린이용 책에 적합한 우화 형식을 취하고 있다."(4장 기업에 파고든 동기 유발 산업/ p.167)

- "2001년부터 2006년 사이에 주간 예배 참석자 수가 2000명 이상인 초대형 교회의 수는 배로 증가해 1210개에 달했고, 총신도 수는 약 440만 명에 이르렀다. 초대형 교회의 (그리고 많은 작은 교회의) 새로운 긍정신학은 고난과 구원에 관한 참혹한 이야기나 가차 없는 심판을 접어 두고 현생에서의, 그것도 아주 빠른 시간 안에 가능한 부와 성공과 건강을 약속한다. 당신은 새 차와 새 집, 탐내던 목걸이를 가질 수 있다. 하느님은 당신이 번창하길 원하시기 때문이다. 2006년 [타임] 조사에서는 종파나 교회 규모를 막론하고 미국 기독교인들의 17퍼센트는 자신이 '번영신학(prosperity gospel)' 운동에 속해 있다고 생각하며, 61퍼센트가 '하느님은 사람들이 번창하길 바라신다'는 서술에 동의한 것으로 나타났다." (5장 하느님은 당신이 부자가 되기를 원하신다/ p.178)

- "1920년대 대공황을 앞둔 시기에는 양극화가 심해지자 부자들의 무절제와 빈자들의 비참함에 격분한 노동운동가와 급진적 활동가들이 많이 있었다. 하지만 21세기에는 아주 성격이 다른 다양한 종류의 이론가들이 정반대의 메시지를 퍼뜨리고 있다. 그들은 고도로 불평등한 이 사회에는 아무 문제가 없으며, 노력할 의사가 있는 사람의 삶은 조만간 훨씬, 훨씬 더 좋아질 것이라고 말한다."(7장 긍정적 사고는 어떻게 경제를 무너뜨렸나/ p.249)

[ 2013년 9월 29일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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