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회생물학의 승리 - 다윈 에드워드 윌슨과
존 올콕 지음, 김산하.최재천 옮김 / 동아시아 / 2013년 3월
평점 :
절판


[서평] 자연선택이 동물의 사회 또는 사회적 행동의 진화에 어떤 역할을 하였는가 <다윈 에드워드 윌슨과 사회생물학의 승리>


[서평] 존 올콕(john Alcock) 저, 김산하, 최재천 역 < 에드워드 윌슨과 사회생물학의 승리 The Triumph Of Sociobiolog >를 읽고 /  2013. 03., 383쪽, 동아시아

인간이 40억년이 넘는 지구의 역사 과정에서 탄생한 생명체 중의 하나이고, 역사적 진화의 소산이라는 것에 동의한다면 인간만을 따로 연구하는 '사회과학'은 절름발이일 수 있다. 인간이 구성하여 유지하고 있는 '사회'라는 집단 시스템은 어느 날 갑자기 하늘에서 신이 던져준 것은 아니기 때문이다. 그런 면에서 나는 진화생물학과 더불어 사회생물학에 관심이 많다. 기존 사회과학은 너무 인간을 '별종'으로, 또는 동물과 상관 없이 분리된 '품종'으로 다루기 때문이다.
사회생물학은 별도의 과학이라는 학문으로 분류된지 얼마 되지 않았다. 사회생물학자들은 사회생물학을 "자연선택이 동물의 사회 또는 사회적 행동의 진화에 어떤 역할을 하였는가"를 연구하는 학문이라고 정의한다. 그렇다면 어떤 동물의, 어떤 행동을 연구하는 것일까?

동물 중에서 일부다체제나 일처다부제는 흔한 편이다. 그리고 일부일처제로 진화한 동물 중에서 '혼외정사'를 하는 경우도 있다는 사실이 인간에게 호기심을 유발한다. 예를 들어 조류의 한 종인 붉은날개지빠귀는 왜 기회만 있으면 배우자 몰래 옆 동네 수컷과 교미하는 것일까?
파트너가 좋은 둥지나 충분한 정자를 제공하는데도 암컷은 은밀한 ‘혼외정사’를 찾아 시간과 에너지를 투자한다. 한때 새는 ‘일부일처제’의 전형으로 여겨졌지만, 일부일처제로 보이는 여러 종에서 암수 모두 번식기 동안 여러 개체와 교미한다는 사실이 알려졌다. 사회생물학자가 핵심적으로 의문을 갖는 점은 짝이 있는 암컷(그리고 수컷)이 둥지 짓기, 먹이 찾기 등 유용한 일을 할 시간에 굳이 혼외교미에 시간과 노력을 소비하는 이유이다.
예를 들어, 일부일처제를 하지 않는 붉은날개지빠귀 암컷의 혼외교미 파트너가 암컷의 새끼에게 여분의 음식을 주거나 포식자로부터 보호해줬다면, 파트너를 여러 명 거느리는 성향을 가진 암컷은 그렇지 않은 암컷보다 더 많은 자손과 유전자 사본을 남겼을 것이라는 설명을 할 수 있다. 만약 그렇다면 과거 암컷들의 성적 정절의 차이가 종의 진화를 결정했을 것이다.
하지만 붉은날개지빠귀나 다른 명금류 암컷이 여러 수컷과 관계를 맺는 그 밖의 이유가 얼마든지 있을 수 있으므로 문제는 끝나지 않았다. 지금까지 완전하게 검증이 된 가설은 없다. 게다가 붉은날개지빠귀에서 혼외교미의 적응적 가치에 대한 중요한 예측 중의 하나는 매우 상반된 결과를 낳았다. 한 연구는 여러 수컷과 교미하는 암컷의 번식성공도가 일부일처제 암컷의 번식성공도보다 높았다고 보고했지만, 다른 연구는 정확히 정반대의 결과를 보고했다. 결국 이 다윈적 수수께끼는 아직 완전히 풀리지 않았다.

다른 사례로 '개체 또는 개체군의 희생'이 있다. 동물이 자신의 유전적 성공을 기꺼이 희생하는 행동은 다윈에게는 수수께끼였다. 해밀턴은 유전자와 유전적 발달에 대해 아무것도 알 수 없었던 다윈의 생각을 발전시켜 극단적 이타주의에 따른 유전적 결과에 집중했다. 극단적 자기희생, 예를 들어 불임 개체가 자살로 집단을 방어하는 행동 등은 거의 항상 가족 안에서 일어난다. 
가장 좋은 예는 척추동물 중에서 개미 집단과 가장 가까운 특징을 보이는 동물인 케냐, 에티오피아, 소말리아의 벌거숭이 두더지쥐이다. 털이 없고, 작고, 피부 본연의 색을 띤 이 요상하게 생긴 동물의 집단 대부분을 이루는 불임 일꾼들은 복잡한 굴들의 네트워크로 연결된 지하 벙커에서 생활한다. 통상 70~80마리로 이뤄진 집단에서 단 하나의 암컷만이 최대 세 마리의 수컷과 번식한다. 나머지는 이 극단적 소수를 위해 노동하며 때로는 굴을 침범한 뱀에 맞서 죽음을 감수하기도 한다. 
유전자 분석에 의하면 이 집단은 거의 전체가 가임 지배자들의 자손으로 이루어져 있어, 위험한 뱀을 퇴치하는 과정에서 죽는 일꾼 쥐는 자신과 매우 가까운 친척을 위해 희생을 치룬 셈이다. 집단 내의 유전적 연관도는 형제자매 또는 어미와 아들 간의 근친상간에 의해 더욱 높아질 수 있으며 그 결과로 자손이 부모의 특정 대립유전자를 공유할 확률이 높아진다.

그런데 이렇게 동물을 연구하던 사회생물학자가 ‘인간의 행동’에 대해 진화적 가설을 제기하면 그 행동이 ‘자연스럽다’는 이유로 도덕적인 비판이 가해진다. '자연스럽다'는 것은 인간의 행동에 도덕적인 면죄부를 준다는 것이다. 그러나 저자는 "자연선택으로부터 도출되는 도덕적인 교훈이란 없다"고 주장한다. 사회생물학적 분석은 인간의 사회행동에 대한 중립적인 설명을 제공할 뿐이며, 정당화나 도덕적 진단, 무엇이 ‘마땅히’ 어떠해야 된다는 규범적 선언이 아니다는 것이다.

예를 들어, 남자가 강간을 하는 이유를 설명하려는 생물학자는 자신의 가설이 위험할 뿐 아니라 도덕적으로 불쾌하다는 반응을 반드시 듣게 되어 있다. 그리고 더 나아가 “강간을 생물학적으로 설명하면서 사회적 또는 ‘도덕적’ 인자를 제거하는 행위는 강간을 정당화할 것임에 분명하며,” “강간을 폭력적이고 반사회적인 행동과 분리시켜 적응적 의미를 담아 격상시키는 것은 환원주의적이고 반동적이다”라는 얘기를 들을 것이다. 물론 ‘진화적인’과 ‘도덕적인’이라는 두 가지 수식어가 갖는 의미의 차이를 완전히 이해하기가 쉽지 않지만 생물학적으로 적응적인 형질이 반드시 사회적으로 옳다는 결론에 이르게 할 만한 것은 아무것도 없다.
그렇다면 '강간은 성적 동인의 자연적인 현상일까?'라는 질문을 던져볼 수 있다. 보통 강제적 성관계에 대한 페미니즘의 일반적인 시각은 증거보다는 이데올로기적 근거에 기초한다. 수전 브라운밀러(Susan Brownmiller)은 자신의 저서 <의지에 반하여 Against our will>에서 “모든 강간은 힘의 행사일 뿐이며, 모든 남성이 모든 여성을 공포 상태에 두기 위해 행하는 의식적인 위협의 과정에 더도 덜도 아니다.” 라고 말한다. 즉 강제적 성관계에 대한 페미니즘의 기본 입장은 강간이 성보다는 힘에 관한 것이라는 주장이다. 이 관점에 따르면, 남성권력을 보존하는 것이 목적인 가부장적 사회의 영향으로 여성을 지배하고 위협하려는 욕구가 강간범의 행동 동인이다.

그러나 강간범의 절대다수가 발기된 상태에서 피해자에게 사정할 정도로 성적으로 흥분했다는 사실을 감안하면 강간에 성적인 동기가 전혀 없다는 생각은 상당히 반직관적이다. 그럼에도 많은 사람들은 강간범의 행동과 성적 욕망은 관련이 없다고 확신한다. 이런 주장이 받아들여지는 것은 많은 이들이 성적 욕망을 ‘자연적인’ 현상으로 여기므로 강간도 어떤 의미에서 ‘자연적’이라고 여김으로써 사회가 강간범을 용인하는 것을 페미니스트들이 우려하기 때문이다. 반대로 강간이 누군가를 수치스럽게 하려는 단순 명백한 범죄적 행위라고 하면 아무도 강간범을 용서하거나 이 행동을 이해하려 하지 않을 것이다. 다른 말로 하면, 자연주의의 오류를 범하기 때문에 강간에 ‘자연적인’ 원인이 없다는 주장을 펼치고 싶은 것이다.

같은 목적을 위해 강간이 다른 생물에서는 일어나지 않는 순전히 인간만의 현상이라는 주장을 하기도 한다. 아예 순수하게 문화적인 현상으로 강간이 특정 사회의 남성들이 만들어낸 발명품이라고 주장할 법도 하다. 그렇다면 그 사회의 구성원을 교육해서 강간에 대한 남성 이데올로기를 바꾸어 문제를 제거해버리면 된다. 실제로 많은 페미니스트들은 강간이 모든 사회에 보편적으로 일어나지 않으며 단지 남성의 태도와 행동을 결정하는 특정 이데올로기가 지배하는 몇몇 사회에서만 나타나는 현상이라고 한다.
그러나 암컷의 저항에도 불구하고 강제로 교미하는 행동은 곤충에서부터 침팬지, 오랑우탄, 기타 영장류에서 많은 사례가 수집되었다. 예를 들어, 사막 풍뎅이(Tegrodera aloga) 수컷이 암컷을 옆으로 눕히려고 거칠게 몸싸움하는 것이 종종 목격된다. 이에 성공하면 수컷은 암컷의 몸부림에도 불구하고 자신의 음경으로 암컷의 생식기를 더듬거리다가 때로는 삽입하기도 한다. 흥미로운 것은 수컷이 얼마든지 점잖은 방식으로 구애할 수도 있다는 점이다. 그럴 경우에 수컷은 작은 사막식물을 먹는 암컷의 앞으로 조심스레 와서 자신의 더듬이로 암컷의 더듬이를 쓰다듬어 자신의 머리 앞에 난 두 개의 홈으로 인도한다. 둘은 몇 분이 지나도록 서로 마주본 상태에서 암컷은 계속해서 먹이를 먹고 수컷은 계속해서 더듬이를 쓰다듬는다.
즉 인간이란 종만이 강간 또는 강제적 성관계를 맺는 것은 아니라는 것이다.

거의 모든 사람은 스스로를 인간행동의 전문가로 여긴다. 사람들은 '인간행동'이라는 주제에 대해 관심이 깊고, 다른 사람의 동인이나 의도를 분석하는 데 인생의 많은 시간을 소비하면서 자신의 행동을 더 잘 조절하려고 노력한다. 사회생물학은 이 분석에 진화적 측면이라는 색다름을 제공한다. 
저자는 이런 인류의 가장 고유한 특징이자 자랑스러운 유산인 문화에 사회생물학자들이 현미경을 들이대면서 ‘전쟁’이 시작되었다고 말한다. 굴드가 사회생물학 분야와 학자들을 수년간 계속 비방해왔기 때문에 갈수록 더욱 심했다. 이 과정에서 굴드는 사회생물학이 사회적으로 유해하며 방향성을 상실했다고 치부하고자 하는 여러 페미니스트와 사회과학자들과 동맹을 형성했다. 그러나 비사회생물학자에 의해 가장 자주 제기되는 비판들은 대부분 불필요한 오해와 혼동에 기반하고 있다. 

이 책은 실제 연구 사례와 구체적인 자료를 바탕으로 이 핵심 오해사항들을 다룸으로써 사회생물학적 접근법이 인간은 물론, 개미에서 영양에 이르는 기타 사회적인 동물을 이해하는 하나의 좋은 자료로서 관심과 존경, 찬사를 받을 만하다는 것을 보여주고자 한다. 
특히 성적 질투심, 여성의 아름다움, 남녀 성의 차이, 부모 자식 간의 관계, 강간, 간통, 집단학살 등 인간을 주제로 한 여러 사례들을 설득력 있게 분석하며, 과학과 이데올로기적인 반론에 정면으로 맞선다. 그리고 사회생물학을 둘러싼 논쟁에서 마침내 사회생물학자들의 승리를 외친다. 
하지만 최재천 교수가 역자 후기에서 조언하듯 책에서 제기하는 기존의 인문사회학적 문화 연구에 대한 비판과 사회생물학적 인간문화 연구의 실효성에 대한 비교와 판단은 독자의 몫이다.
진화생물학과 사회생물학에 대해 좀 더 많이 공부하고 고민해야만이 기존 서구식 사회과학이나 인문과학에 대한 비판적 의견이 가능할 것 같다.

[ 2013년 7월 20일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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