횡설과 수설 - 400년을 이어온 성리 논쟁에 대한 언어분석적 해명
이승환 지음 / 휴머니스트 / 2012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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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평] 이승환 저 < 횡설과 수설 : 400년을 이어온 성리 논쟁에 대한 언어분석적 해명 >을 읽고, 2012. 10., 456쪽, 휴머니스트

사실 개인적으로 조선 성리학에 대해 잘 모른다. 예전에는 그저 중고등학교 교과서에서 가르친 대로 '망국적인 당쟁'이라는 선입견만 가지고 있었고, 나이가 든 이후 여러 책과 정보를 접한 후에는 '당쟁'이라는 이미지가 일제의 식민지 사관인 것을 알고 기존 편견을 지우려고 애쓰는 편이었다.
그러다가 작년 초 이덕일의 <당쟁으로 보는 조선 역사>(석필, 1997)을 읽고서 '당쟁' 또는 '붕당'으로 이야기되는 조선시대의 사상논쟁과 그 논쟁의 뿌리, 과정 등을 일부 알게되었다. 조선 성리학의 뿌리로 일컬어지는 "동인의 뿌리는 퇴계 이황으로 퇴계의 이기이원론(理氣二元論)으로 시작"되었고. "서인의 뿌리는 율곡 이이로 이기일원론(理氣一元論)으로 시작"되었다는 것과 "동인과 서인의 정책의 차이는 토지를 둘러싼 싸움"이 컸다는 정도로 정리한 상태였다.

"퇴계학파와 율곡학파 간의 성리 논쟁은 왜 400년 동안이나 평행선을 달려왔는가?"

<당쟁으로 조는 조선 역사>는 '이기론(理氣論)'의 내용이나 쟁점이 아니라 당쟁의 과정과 주요 인물들과 사건, 당쟁의 배경 등을 주로 다루었기 때문에 사상이론이나 쟁점을 자세히 알기는 어려웠다. 저자는 이덕일과 달리 '이기론(理氣論)' 자체를 다룬다.
특히 저자는 조선 이후 400년 넘게 이어져온 '이기이원론'과 '이기일원론'이 왜 끝까지 평행선을 달리기 되었는지에 대해 오래도록 연구했다. 그의 연구결과는 서로가 '프레임'이 달랐다는 것이다.

저자는 학계를 뒤흔들 만큼 중요한 두 가지 문제를 해명하기 위해 동양철학을 비롯하여 기호학, 언어학, 논리학, 심리철학 등을 넘나들며 조선 유학 연구에 새로운 방법론과 뜨거운 쟁점을 제시한다. ‘횡설(橫說)’과 ‘수설(竪說)’이라는 기호학적 프레임을 통해 퇴계-고봉, 우계-율곡, 외암-남당 등 조선 유학사 속 성리 논쟁에 대한 독자적인 시각을 보여줄 뿐만 아니라, 유실된 것으로 알려졌던 정복심(程復心)의 [사서장도(四書章圖)] 초간본을 공개하며 [학기유편]에 얽힌 비밀을 명쾌하게 풀어낸다. 
퇴계와 퇴계학파는 ‘리(理)’와 ‘기(氣)’를 사람의 마음에 깃든 대비적인 관계로 파악했고, 율곡과 율곡학파는 양자를 각기 형이상의 원리와 형이하의 재료로 파악했다. 개념에 대한 시각차로 인해 발생한 두 학파의 갈등은 단순한 철학 논쟁에 그치지 않고 당대의 정치 경제 사회를 관통하는 쟁점으로 이어졌다. 

저자는 바로, ‘리’와 ‘기’ 두 가지 기호를 수평적으로 배치한 ‘횡설(橫說)’, 수직적으로 배치한 ‘수설(竪說)’이라는 기호학적 프레임을 통해 그 의미층위를 밝혀내고자 했다. 퇴계학파가 견지했던 ‘횡설’의 프레임과 율곡학파가 견지했던 ‘수설’이 논리적으로 부딪히게 되었던 원인을 차근차근 논증해가면서, 결론적으로 성리 논쟁을 명쾌하게 해결할 수 있는 통합적 프레임을 제시한다. 
출판사는 저자의 연구결과가 조선 유학 역사 속 해결되지 않았던 오랜 질문에 대한 해명일 뿐만 아니라 성리 논쟁 연구를 새로 쓰는 단초로 작용할 수 있다고 설명한다. 사단과 칠정(四端 七情), 도심과 인심(道心 人心), 도와 기(道 氣), 성과 형(性 形) 등의 성리학 개념들을 종합적으로 해석할 수 있다는 것이다.

"조선의 유학자들은 성리학의 세 가지 프레임 가운데서 상하의 프레임과 좌우의 프레임을 두고서 격돌했다. 횡설과 수설이 바로 그것이다. '횡설'은 '리'와 '기'를 좌우로 배치하여 서로 갈등하며 승부를 다투는 가치론적 대비 관계로 파악하는 기호 배치 방식이고, '수설'은 이 두 기호를 상하로 배치하여 '리'가 '기'에 타고 있는 존재론적 관계로 파악하는 기호 배치 방식이다. 좌우로 된 프레임(횡설)은 좌파와 우파처럼 서로 갈등관계에 놓인 '가치론적 속성들(도덕과 욕망처럼)'을 이분법적으로 표시하기에 시지각으로 효과적이고, 상하로 된 프레임(수설)은 형이상의 '원리'와 형이하의 '재료'라는 '존재론적 속성들(육체와 의식처럼)'을 승반 관계로 표시하기에 시지각적으로 적합하다."(p.15)

 

 

 

 

 

 

이 책을 통해 공맹사상, 주자학, 그리고 성리학에서 사용했던 단어들의 개념에 대해 많은 것을 배울 수 있었다. 예를 들어 리(理), 기(氣), 심(心), 성(性), 정(情), 발(發) 등 성리논쟁에 사용된 핵심 개념들이 보통 수십 가지 이상의 의미를 지닌 다의어라는 점이다. 저자는 이런 점을 통해 바로 이 개념의 다의성이 당대의 성리 논쟁이 서로 간에 합치될 수 없었던 구조적인 문제였음을 예증해낸다. 
퇴계사상의 독창성이 리발(理發)·리동(理動)·리도(理到)로 대변되는 ‘리의 능동성’에 있다고 본 학계의 주장과 달리, ‘리의 능동성’ 테제가 송대 고백화(古白話)에 대한 이해의 부족에서 비롯되었다고, 율곡계열의 학자들이 견지했던 승반론(乘伴論)이 현대 심리철학, 윤리학, 미학에서 사용하는 수반이론(supervenience theory)과 필적할 만큼 뛰어난 분석 도구라는 저자의 주장도 흥미롭게 다가왔다. 

저자는 또한 '횡설 : 수설'의 프레임이 단지 성리논쟁에 국한된 이해의 틀이 아니라 이 프레임을 근대 전야의 다양한 문명담론에 적용함으로써, 위정척사, 동도서기, 중체서용, 화혼양재 등의 구호에 내포된 ‘허’와 ‘실’을 기호학적으로 밝혀내고 있다. 

그런데 21세기에 사는 한국인들도 조선시대 유학자들처럼 '횡설 : 수설' 프레임에 빠져있는 게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든다. 특히 치열한 이론이나 노선 경쟁을 벌이고 있는 진보진영 학자들, 진보정당 이론가들, 정치인들, 일꾼들 사이에서...
논쟁과 경쟁이 치열하다가 엇나가거나 애초에 경쟁이 선의가 아니라 무언가 자리와 권력을 탐하기 위함이라면 조선의 유학자들처럼 '서로 죽이기'라는 나락으로 빠지게 되지 않을까 우려된다. 아니 이미 그러고 있는 것 같다. 우리 역사에서 교훈을 얻어야 한다.


 

[ 2013년 7월 14일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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