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행운
김애란 지음 / 문학과지성사 / 2012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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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평] 김애란 저 <비행운>을 읽고 / 2012. 07., 350쪽, 문학과지성사

8개의 단편 소설을 묶어 고독한 현대인의 짓눌리는 삶을 보여주는 작품 <비행운>은 "날아가는 꿈을 飛行雲"꾸던 주인공들이 "행운이 없는 非幸運" 삶으로 전락하는 모습을 다루고 있다.
작품 속 주인공들은 외국에서의 새로운 삶을 동경하고('그곳에 밤 여기에 노래'), 비행기의 비행운(飛行雲)을 보면서 어디론가 훨훨 떠나고 싶고('하루의 축'), 실제 비행기를 타고 떠나기도 하지만('호텔 니약 따') 결국 더 나쁜 상황에 처하고 만다.

주인공들의 삶은 21헤기 한국 사회의 어두운 자화상이기도 하다. 대학을 졸업하고도 변변한 일자리를 얻지 못하거나('너의 여름은 어떠니'와 '호텔 니약 따'), 취업을 했다 하더라도 불안정하고 불만족한 수준이다('큐티클'과 '서른'). 중년 하층민의 고단한 처지를 다룬 '그곳에 밤 여기에 노래'나 '하루의 축'에서는 그 곤궁함과 처절함이 더하다.
사정이 딱하고 처지가 어렵다보니 이야기 속의 인간관계는 특별한 악의나 고의가 없더라도 더욱 나빠지기 일쑤다. '호텔 니약 따'에서 두 친구 사이는 더욱 멀어졌고, '너의 여름은 어떠니'나 '서른'에서는 자신이 좋아했던 남자에게서 어이없이 배신당한다. 나아가 '서른'의 경우는 남자친구에게 배신당했던 여주인공이 자기 제자를 배신하는 것으로 이어진다.
'물속 골리앗'은 이야기 전개가 악화일로를 거듭하는 구조이고, '벌레'에서는 최소한의 가능성이 있을지마저 회의하도록 결말로 이어진다.

우리는 방송 뉴스와 신문을 통해 '청년실업'이나 '저임금 알바', '계약직'이나 '비정규직 노동자(청소 노동자)', '독거청년'과 '다단계 폐해' 등에 대해 중성적 또는 인간의 삶이 사라진 사회적 용어에 대해 이런저런 통계나 정책에 대해 듣는다. 이 작품은 결국 그런 중성적인 단어, 삶이 탈각된 계층 개개인의 구체적인 삶의 애환이 어떤 것인지 말해주는 셈이다. 그들의 희망과 좌절, 욕망과 절망에 대해...
자신의 주변에 작품 속 캐릭터와 비슷한 친구나 선후배가 있는 독자라면 이 작품이 실감나게 느껴질 것이고, 그렇지 않다면 먼 나라의 이야기로 들릴 것이다. 하지만 이런 삶을 사는 이들은 한국사회에 부지기수다.

작품은 전체적으로 주인공들이 고독, 고립, 막막함, 좌절, 공포에 처하게 됨을 보여준다. 그들이 그러한 처지에 몰리게 되는 데에 누군가의 의도가 구체적으로 개입되거나 주인공 자신이 어떤 분명한 실수를 저지르는 것도 아니다. 보통의 사람들이 생각하는 욕망과 희망을 가지고 상식적으로 선택하게 되는 결정과 판단의 과정에서 주인공들은 점점 궁지에 몰리게 되고 좌절하고 절망하게 된다.
주인공들이 겪는 좌절과 절망, 막막함과 공포는 독자들이 직접 경험하지 않으면 느끼기 힘든 것들도 포함되어 있다. 간접 경험조차도 쉽지 않은...

정부와 여론조사 결과는 작품 속 주인공들, 즉 1~2인 가구가 전국 가구수의 50%에 달한다는 것을, 저임금 노동자와 실업자를 합하면 1천 만명이 넘는다는 것을 말해 준다. 결국 <비행운>은 1~2인 가구라는 이름으로 감추어져 있는 '버려진' '잊혀진' '고립된' 이들의 이야기인 것이다.
[ 관련 기사 ] - "4가구 중 한곳이 `1인가구'…10년새 1.9배 급증" 2011년 (http://www.yonhapnews.co.kr/economy/2012/12/11/0301000000AKR20121211091300002.HTML)
- "국민 6명 중 1명 빈곤층 연 1000만원도 못 번다" 2012년 12월 (http://m.hankooki.com/t_view.php?WM=hk&FILE_NO=aDIwMTIxMjIxMjExNTE1MjE1MDAuaHRt&ref=www.google.co.kr)
- "비정규직 노동자 831만명, 최저임금 미만 임금근로자 204만명" 2011년 5월 (http://www.saesayon.org/agenda/bogoserView.do?paper=20110615175143094&pcd=EA01)

최근에 읽은 <종이배를 접는 시간>이 희망과 행운을 안고 시작했다가 자본가와 경영자에게 무차함하게 짓밟히는 노동자들의 삶의 실체를 한진중공업을 통해 보여주는 것이라면, <비행운>은 희망도 없이, 행운도 기대할 수 없는 '배제된 사람들'의 끝없는 좌절에 대한 '감추어진' 이야기다.
이 작품 속의 주인공들은 한진중공업 노동자들보다 더욱 열악한 처지다. 언론이나 시민사회단체, 종교단체, 정당의 손길도 미치지 못한 상태에서 질식해가고 있기 때문이다.(물론 시민단체, 종교닺체, 정당의 책임이라고 주장하는 것은 아니지만...)

단편 소설을 하나씩 읽을 때마다 화가 나고 답답한 그 무엇이 가슴에 맺혔다. 왜 작가는 주인공들에게 희망을 보여주지 않고 행운을 선사하지 않았을까? 그것이 지금 이 땅의 현실이기 현실이기 때문일까? 
작가는 작품 속에서 사회구조적 모순이나 그 안에서 인간 군상들의 이전투구를 적나라하게 드러내려 하지 않았다. 주인공들에게 '피해자'라고 명시적으로 규정하지도 않았고 독자들이 측은해하기를 원하지도 면죄부를 위한 알리바이도 주지 않았다.
그렇다면 '공감'을 위해서일까? 책의 말미에 작품을 '해설"한 우찬제의 글 "본래 추락하는 것에는 날개가 없다지만, 함께 아파하기를 통해서라면 새로운 날개를 달 수 있을지도 모른다고 김애란(작가)은 생각한 것 같다"(p.347)에 일부 공감이 되었지만 독자로서 나는 완전히 이해되지는 않았다.

소설을 읽다가 나이 '서른 즈음에' 이런 작품을 낸 작가가 어떤 사람인지 문득 궁금하다.

[ 2013년 6월 14일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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