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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차 산업혁명 - 수평적 권력은 에너지, 경제, 그리고 세계를 어떻게 바꾸는가
제러미 리프킨 지음, 안진환 옮김 / 민음사 / 2012년 5월
평점 :
[서평] 제레미 리프킨(Jeremy Rifkin) 저, 안진환 역 < 3차 산업혁명 The Third Industral Revolution : 수평적 권력은 에너지, 경제, 그리고 세계를 어떻게 바꾸는가 >를 읽고 / 2012. 05., 424쪽, 민음사
<육식의 종말>, <엔트로피>, <수소 혁명>, <유로피언 드림>, <공감의 시대> 등으로 저에게 많은 공부를 시키고 영감을 주었던 리프킨 리프킨이 예고하는 '3차 산업혁명'이 무엇일까? 당연히 궁금한 책이었다.
리프킨이 중요하게 생각하는 경제혁명의 본질은 '커뮤니케이션 기술'과 '에너지 체계'다. 19세기에 인류는 증기기관과 석탄을 동력 삼아 대량 인쇄와 공장 생산 경제 시대를 열었다.(1차 산업혁명) 20세기 들어서는 전기 커뮤니케이션 기술과 석유 자원이 만나면서 전화, 라디오, 텔레비전 등 새로운 매체가 등장하고 자동차, 석유, 전자 등 대기업이 세계 경제를 부양하게 되었다.(2차 산업혁명)
하지만 그가 판단하기에는 화석연료를 기반으로 한 1차, 2차 산업혁명의 수명은 이제 끝났다. 2008년 부동산 거품이 터져 최악의 경제 위기에 빠졌고, 엄청난 이산화탄소 배출로 인한 환경 파괴가 인류의 생존을 위협하고 있다는 것이 그 증거이다.
그렇다면 이제 우리는 무엇을 해야 하는가. 새로운 유전을 파고 유가를 낮추기 위한 소극적인 대책을 내놓고 국지적?근시안적 정책을 내놓는 것으로는 문제를 해결할 수 없다. 현실을 직시하고 새로운 에너지 체제와 경제 모델로 옮겨 가기 위해 3차 산업혁명을 준비해야만 지속 가능한 미래를 불러올 수 있다. 오늘날 우리는 다시 출발점에 서 있다. 인터넷 기술과 재생에너지의 결합이 3차 산업혁명을 일으키고 있다. 이를 통한 수평적 네트워크를 중심으로 새로운 비즈니스들이 부상할 것이며, 수많은 일자리가 창출되어 위기에 빠진 인류를 구원해 줄 것이다.
그렇다면 "이제 인류는 무엇을 해야 하는가?"라는 질문에 대한 그의 해답, 즉 21세기 3차 산업혁명의 단서는 인터넷 IT 기술과 재생에너지다.
그는 3차 산업혁명을 통해 수천 개의 비즈니스와 수백만 개의 일자리가 창출되고, 수평적 관계가 정립되고, 경제,사회,문화,교육 전반에 변화의 바람이 불어올 것이라고 말한다.
그가 주장하는 3차 산업혁명의 핵심 요소는 다섯 가지다. ⑴ 재생 가능 에너지로 전환한다. ⑵ 모든 대륙의 건물을 현장에서 재생 가능 에너지를 생산할 수 있는 미니 발전소로 변형한다. ⑶ 모든 건물과 인프라 전체에 수소 저장 기술 및 여타의 저장 기술을 보급하여 불규칙적으로 생성되는 에너지를 보존한다. ⑷ 인터넷 기술을 활용하여 모든 대륙의 동력 그리드를 인터넷과 동일한 원리로 작동하는 에너지 공유 인터그리드로 전환한다. ⑸ 교통수단을 전원 연결 및 연료전지 차량으로 교체하고 대륙별 양방향 스마트 동력 그리드상에서 전기를 사고팔 수 있게 한다.
3차 산업혁명은 산업 시대의 마지막 편이자 앞으로 다가올 협업 시대의 첫 편이다. 산업 시대에는 엄격한 규율, 근면한 노동, 상명하달식 권위적 체제, 금융 자본과 소유권이 중시된 반면, 협업 시대에는 창의적인 놀이, 피어투피어(Peer to Peer) 상호작용, 사회적 자본, 개방형 공유체, 글로벌 네트워크가 더욱 중요해질 것이다. 그 과도기에 서 있는 현재, 겉으로는 친환경 에너지와 디지털 그리드를 내세우면서 실제로는 화석연료 시대의 내러티브를 고수하는 정부와 기업이 수없이 많으며(미국 오바마 대통령이 가장 대표적인 예이다.) 이들은 결국 이 흐름에서 도태될 가능성이 크다. 향후 수십 년에 걸쳐 빠르게 진행될 3차 산업혁명의 한가운데에서 끝까지 살아남으려면 근본적으로 모든 것을 바꿔야 한다.
리프킨이 세계 정치경제 구조에서 나타나는 문제점으로 권력집중 체계를 지적하는 것에 대해서는 충분히 공감할 수 있다. 그리고 재생 에너지와 인터넷 커뮤니케이션 기술이 '분산 자본주의'와 권력 분산의 수단이 될 가능성이 있다는 점에도 동의한다.
그런데 권력집중에 대한 근본적 원인과 대안에 대해서는 회의적이다. 그는 인류사회의 독특한 특징인 정치와 제도, 권력의 문제를 간과하고 있다고 느낀다. 재생 에너지와 인터넷 기술이 곧바로 '수평적 권력'을 가져온다는 것은 단순 논리이자 비약이 될 가능성이 크다.
먼저, 화석연료와 전기통신을 기반으로 한 산업 인프라와 커뮤니케이션 체계가 권력집중을 가져오고 실업율, 부채, 생활수준을 떨어뜨렸을 것이라는 원인분석에 부정적이다. 오히려 구조적인 측면에서는 자본증식의 자본주의 메커니즘이나 승자독식 신자유주의가 대량 산업생산 체제와 권력집중의 구조적 원인을 제공한다는 것이 적절한 원인분석일 것이다.
둘째, 재생에너지나 인터넷 통신 기술이 '분산'의 가능성을 높이는 수단일 수는 있지만 기존 경제체제와 마찬가지로 인류는 '중앙집중적'으로 이용할 수 있다. 미국 텍사스와 동부를 연결하려는 사막의 태양광 발전설비 체계처럼 재생에너지 역시 권력을 손에 쥔 자들이 중앙집중적으로 소유할 수 있으며, 인터넷 통신 체계도 얼마든지 기술적으로 '독점적 소유'가 가능하다. 사람들의 의식과 문화, 경제활동에서 자신의 필요성을 깨닫고 느끼고 시도하는 과정에서 '수평적 권력'은 정착될 것이다.
프란츠 파농이 <대지의 저주받은 사람들>에서 썼던 문장은 여전히 유효하다. "하나의 다리를 건설하는 일이, 만일 그곳에서 땀 흘리며 일하는 이들의 의식을 풍요롭게 하지 못한다면, 차라리 그다리는 만들지 않는 편이 낫다. 다리는 하늘에서 떨어지거나 땅에서 솟아오른 것이어서는 안 된다."
나는 오히려 현대 경제체제는 '권력(정치력, 경제력) 집중'과 '독과점'이란 관점에서 분석해야 한다고 본다.
21세기 전 인류의 생산력으로 이미 충분히 전체 인류가 기본적인 식생활을 영위할 수 있음에도 아직도 제3세계에서 하루 2달러 미만으로 사는 30억명(2008년 기준)이 존재하는 이유는 화석연료나 전기통신 체제의 문제가 아닌 것이다. 정치권력과 경제권력이 특정 계층과 집단에게 독과점되어 있고, 언론을 비롯한 사회문화 권력마저도 편중되어 있기 때문이다.
인류사회의 정치경제 체제가 '사람 중심'이 아니라 '자본 중심', '성장 중심', '무한 경쟁'으로 구성되어 있고 정치와 경제, 사회와 문화분야가 이에 대한 대안을 만들어내지 못하기 때문에 전 지구적 차원에서 그리고 일국 내에서도 빈부격차와 양극화가 발생하는 것이고, 한 쪽에서는 성인병과 우울증으로 사람이 죽어가고 다른 쪽에서는 헐 벗고 굶주려서 사람이 죽어가는 것이다.
그리고 그가 제시하는 3차 산업혁명의 인프라 5가지 요소에서 결정적으로 간과하는 것이 있다. 사회적 자본, 다르게 표현하면 분산 및 협업 체제를 구성하는 가정 단위, 소기업 및 소집단 단위, 소지역 단위의 자발성과 자립, 다양성과 소통이나 공감에 대한 고려(p.342에 일부 거론)가 없다는 것이다.
경제 구조와 시스템도 중요하고 필요하지만 직접적인 사용자, 생산자, 제공자의 기본 단위에서 3차 산업혁명에 대한 문제의식과 지식과 태도가 준비되지 않으면 통화기능만 사용하는 스마트폰, 게임이나 불법다운로드만 찾는 인터넷이 될 수 있다.
리프킨에 대한 또 다른 핵심적인 문제의식은 그가 3차 산업혁명의 문제를 해결하는 방향에 있어서도 지적할 수 있다.
그는 화석연료가 중앙집중식 경제체제와 부의 독점을 가져오고 3차 산업혁명이 분산과 협업 체제로 기능하여 부의 분산 또는 분배가 이루어질 것이라고 말하면서도, 3차 산업혁명을 논의하는 상대는 기존 체제의 수혜자이자 결정권자들이다. 그가 3차 산업혁명을 논의하는 대상은 늘 유명 정치인, 기업인, 고위 관료이다. 기존의 정치경제 권력을 독점하고 있는 이들에게 향후 산업 변화의 패러다임을 주도하기를 컨설팅하는 것이라 할 수 있다.
다시 말해 그는 권력에서 배제되어 있는 주체들과의 거버넌스나 개인들의 자발성, 자율성에는 관심이 없다. 나는 정치든 경제든 문화든 민주주의의 가장 중요한 요소는 자발성과 참여에 있다고 생각한다.
물론, 리프킨이 주창하는 3차 산업혁명의 요소들이 앞으로의 세계 경제 체제의 주도권이나 경쟁 요소에서 중요할 수 있다. 그런 측면에서 유럽은 이미 미국이나 일본, 한국보다 수십 년 앞서고 있다. 더군다나 한국은 무능한 정치권과 관료, 부정부패한 경제주체들에 의해 산업시대 방식을 고수하고 있고 박근혜 정부 들어서는 오히려 회귀하는 모습마저 보인다.
한국사회는 외형적으로라도 꾸준히 성장하는 과정에서도 중산층, 하층민들이 권력과 소득에서 소외되고 배제된 바 있다. 그렇다면 앞으로 급변하는 세계경제 체제에서 그들은 더욱 배제될 것이고 심지어 먹고 사는 문제에서도 극한에 내몰릴 가능성이 있다는 말이다.
[ 2013년 5월 12일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