통섭적 인생의 권유 - 최재천 교수가 제안하는 희망 어젠다 최재천 스타일 2
최재천 지음 / 명진출판사 / 2013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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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평] 최재천 저 <통섭적 인생의 권유 : 최재천 교수가 제안하는 희망 아젠다>를 읽고 / 2013. 03., 236쪽, 명진출판


저자인 최재천 교수는 오랫동안 한국 사회에 ‘통섭(統攝,Consilience)’의 개념을 알리기 위해 노력해 왔다(그래서 어떤 이들은 그를 ‘통섭의 대부’라고 부르기도 한다). 덕분에 많은 사람들이 통섭이 무엇인지 알게 되었지만, 대체로 인문학과 자연과학을 아우르는 학문적인 노력쯤으로 이해하며 우리 삶과는 별 상관없는 개념으로 인식한다. 
그러나 최재천 교수는 이번 책을 통해 삶의 방식과 태도의 개념을 담은 ‘통섭적 인생’을 우리에게 권유한다. 그는 통섭적 인생을 "자연의 일부가 되어 더불어 사는 삶, 사물을 달리 볼 줄 아는 능력, 깨어 있는 마음으로 다양한 영역을 넘나드는 적극적인 삶의 태도"라 말한다. 이러한 이유로 21세기를 살아가는 우리에게 꼭 필요한 삶의 방식임을 주장한다.

자연과 생명에 대한 오랜 관찰과 학문의 경계를 넘나드는 자신의 '통섭적 사고'를 바탕으로 이루어진 그의 발언을 12개의 항목으로 분류해 제시한다. 
생물 다양성, 그린 비즈니스, 의생학(자연을 표절하는 학문), 미래형 인재, 기획 독서, 여성 시대, 경계를 허무는 삶 등 최재천만의 독특한 시각이 담긴 이야기에 귀를 기울이다 보면 ‘통섭적 인생’이란 과연 어떻게 사는 삶인지, 왜 그렇게 살아야 하는지를 맛보게 될 것이다.

저자가 말하는 "통섭적으로 산다는 것"의 첫 번째 의미는 자연의 법칙에서 해답을 찾을 수 있다. 사람도 결국엔 자연의 일부라는 사실을 먼저 깨달아야 한다. 받은 만큼 돌려주는 자연의 섭리를 따르는 것이야말로 가장 인간다운 삶이라고 그는 말한다. 
두 번째 의미는 20세기를 대표하는 천재 화가 피카소의 삶에서 발견할 수 있다. 피카소는 엄청난 다작을 통해 천재성을 발휘했다. 최재천 교수 또한 두려워하지 않고 자신에게 주어진 모든 것을 시도했던 피카소의 삶을 실천해 왔다. 한 우물만 파지 말고 이곳저곳 기웃거리면서 다양한 분야에 몸을 담그다 보면 어느새 통섭적 인생을 살고 있는 자신을 발견하게 될 것이다. 
이 책이 전달하고자 하는 핵심 메시지는 "21세기는 융합형 인재, 즉 통섭형 인재를 원하며, 그러한 인재가 되길 원한다면 먼저 통섭적 인생을 살기 위한 태도를 갖춰야 한다."는 것이다.

저자의 사회적 발언은 자연과학의 내용과 과학적 방식을 적용하지 못하는 인문사회계열 전공자와 출신자들에게 많은 시사점과 도움을 줄 수 있을 것이다. 실사구시 없는 학문이나 정치경제는 사상누각일 뿐이니까.
그리고 그가 한 말 중에서 가장 인상 깊은 대목은 "알면 사랑하고, 사랑하면 표현한다"이다. 무엇인가를 알게 되면 사랑하게된다는 것이며, 특히 보통은 무신경하게 흘려보내는 자연과 동식물, 어떤 사람이나 집단, 직업이나 활동을 구체적으로 잘 알게 되면 사랑하게 되고 그러면 표현하고 행동함을 의미한다.

하지만 내가 본 최재천 교수의 '통섭적 인생'의 긍정적인 면은 여기까지다. 나는 그가 자연과학자로서 부족한 인문학적 소양이 아직 일정 수준에 오르지 않았다고 평가한다. 그런 평가를 내리는 이유 중 하나는 그가 사용하는 몇 가지 단어와 논리 때문이다.

그는 지구 생태계 전체가 다양성과 상호의존성으로 개체 하나하나가 모두 중요함을 역설하면서도 '21세기 성공학'을 내세운다. 그리고 생물 다양성을 감소시키는 궁극적인 원인으로 이미 이론적으로 폐기된 맬서스의 '인구론'을 제시한다. 
나는 남보다 앞서 나가거나 더 많이 소유하거나 더 높은 지위로 올라가는 것을 '성공'이라 부르는 논리가, 인간 사회에서 '근대적인 성공과 패배'가 있다는 것을 전제한다고 생각하는 근대적인 세계관이라 감히 말한다. 저자가 주장하는 생물학적 세계관, 통섭적 세계관은 다양성과 상호의존성이 적용되는 인간 사회가 되어야 하지 않을까? 즉 다양성과 상호의존성(공생)에 기여하는 삶이 인간다운 삶이자 성공하는 삶이어야 한다고 생각한다.
맬서스의 '인구론'은 잘못된 전제와 논리적 허점이 가득하다. 인구가 많아서 제3세계 10억 인구가 굶어죽는 것이 아니고 생물 다양성이 무너지는 것이 아니다. 엄청난 식량생산이 잘못된 사회경제구조로 인하여 일부 계층에게 독점되기 때문이고 사람이 아닌 사육용 동물의 먹이로 사용되기 때문이다. 생물 다양성은 '값싸고 다량의 동식물'을 기르기 위해 자연을 파괴하는 다국적 금융자본 때문인 것다.

지난 대통령 선거에서 나타난 세대 갈등의 징후에 대해 저자가 내놓은 해법에도 무언가 미진하다. "눈앞에 놓인 모든 것을 일단 거머쥐었다가 슬며시 조금씩 내놓는 50~60세대와는 달리, 20~30세대는 자신이 필요한 곳이라면 따지지 않고 달려가는 공감의 세대다. 20~30세대여, 앞 세대가 아닌 세계와 상대하라." 
50~60 세대 중에서도 '모든 것을 거머쥔' 계층이 있고 단칸방에서, 지하에서, 실업자로, 국민연금도 없이 고통받는 계층이 있다. 세대간 갈등을 부추기는 듯한 그런 표현은 적절하지 않다. 20~30 세대는 앞 세대를 상대하지 않는 게 아니라 앞 세대와 공감하고 상생하고 조화를 이룰 수 있도록 이해하고 협력해야 하는 것이다. 국내에서 계층간에 화해와 조화를 이루지 못하면서 세계에 나가 다른 국가의 20~30 세대와 경쟁하라는 것이 과연 통섭적 인생관인지 잘 모르겠다.

[ 2013년 5월 03일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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