추천 [서평] 김갑수 저 < 압록강을 넘어서 : 근현대사의 정수를 꿰뚫는 김갑수의 역사팩션 >을 읽고 / 2012. 08., 414쪽, CNC Books

일본 제국주의에 의해 조선의 외교권을 박탈하는 내용을 중심으로 강제 체결된 을사늑약이 체결된 1905년부터 상해임시정부가 수립된 1919년까지를 시대 배경으로 한 '역사 팩션'이다. 등장인물과 주요 상황설정이 역사적 사실을 배경으로 하기 때문에 사실 팩션이라 부르기도 어렵기는 하다.

나는 일제시대 국내와 해외, 특히 만주와 상해 등에서 진행된 항일 독립투쟁에 대해 제대로 공부한 기억이 없다. 특히 1919년 기미독립투쟁 이전에 대해서는.
그런 면에서 이 작품은 소설로서의 '이야기'를 따라가면서도 역사적 사실의 실제 모습을 알게 해준다.

중고등학교 국사 시간에 배우는 머저리 같은 '암기'와 가끔씩 TV나 잡지에 등장하는 독립투사 일대기, <해방전후사의 인식>, <태백산맥> 등 대학 시절 부분적으로 읽은 책들과 졸업 후 <아리랑>이나 기타 자료 등에서 간헐적으로 읽은 기억이 나에게는 전부였다. 그만큼 일제 식민지 시절 항일 독립투쟁에 대한 사실을 잘 모르는 상태이고, 그나마도 오래전 일이라 기억이 가물가물하다.
몇 년째 책을 읽으면서도 계속 뒷머리가 땡겨지는 느낌이 드는 이유이기도 하다. 아무튼 우연한 기회에 직접 작가에게서 구입하게 된 이 책은 나에게 소중한 기회와 계기를 주었다.

작품 속에는 역사 소설답게 많은 등장인물이 나타난다. 충청도 갑부의 아들 김태수, 조선근위대 간부 신규식, 지식인 민제호와 민필호 형제, 파란만장한 탄생사를 간직한 백주원 등이 주인공이며 그 이외에 실제 상해와 만주의 독립투쟁을 진행했던 개인과 단체가 등장한다. 박찬익, 동세사와 박달학원, 박은식, 조용은, 신채오, 이동녕, 이시영, 김좌진, 안창호, 신채호, 조소앙, 장덕수, 김규식, 안중근, 여운형, 이상설,이준, 상해임시정부, 대한광복군 등이 그들이다. 또한 이완용, 최남선, 이광수와 이승만 등 변절자와 기회주의자의 면면도 나타난다. 물론 이토오 히로부미와 테라우치 등 일본 제국주의자들과 원세개, 쑨원 등 중국인들과의 관계에 대한 이야기 전개도 이루어져 있다.
저자는 이들이 각각 어떤 조건과 처지에서 항일 무장투쟁을 시작하게 되었는지, 어떤 경로를 통해 상해와 만주로 넘어가 독립운동에 가담했는지, 어떤 고민과 노력이 전개되었는지, 어떤 과정을 통해 실패하고 생을 마감했는지 세세한 이야기를 들려준다.

작품의 결말이 '두 연인 간의 사랑'으로 마무리되는 듯한 장면에 대해 어떤 분이 비판적인 의견을 제시한 적이 있다. 하지만 나는 두 사람의 '사랑'이 자신들만을 위한 이기적인 사랑이 아니라 동지에 대한 사랑, 민족과 민중에 대한 사랑, 인간에 대한 사랑과 함께하는 것인 이상, 아니 함께하는 것이 제대로 된 독립투쟁이고 혁명이고 사랑이라는 저자의 속내에 공감한다. 오히려 인간이 아닌 권력이나 이념이나 돈을 더 '사랑하는' 듯한 현대 한국사회의 모습에 대해 비판적이다.
주인공 신규식의 의견, "인간이 인간이 아닌 것에 이성의 힘과 열정을 쏟은 것은 어떠한 경우든 그것은 우상숭배와 같다"에 전적으로 동의하기 때문이다.

"이 소설은 실천적 삶으로 독립운동에 매진한 실제 인물들을 등장시켜 한국 독립운동사에서 대단히 의미 있는 공적을 이루고도 안타깝게도 감추어져 있는 인물들을 발굴하여 세상에 알리려는 것도 이 소설의 중요한 의도 가운데 하나로 보인다.
특히 항일투쟁의 일환으로 간도의 독립군 투쟁인 봉오동과 청산리에서 세계 독립운동사상 유례를 찾을 수 없는 성과를 남겼음을 사료를 기초로 세세하게 다룬 장면들이 압권이었다.
외세의 지원 없이 자발적으로 만들어진 군대가 제국주의의 정예군과 맞붙어 두 번씩이나 대첩을 이루어낸 역사는 대단히 이례적인 것이었다. 이미 구한말부터 의병을 이끌고 치열한 전투 경험을 쌓았던 홍범도는 간도국민회 산하 대한독립군 700명을 지휘하여 독립군의 근거지인 봉오동까지 들어온 일본군을 궤멸시켜 버렸다."

미디어오늘 2012년 9월 17일자 '김상수 칼럼'에 이 작품에 대한 평이 있다.("역사는 모욕이나 능욕의 대상이 아니다" http://media.daum.net/culture/others/newsview?newsid=20120917134526374) 내가 한국근대사에 대한 공부가 부족하여 '인물 발굴'이나 '사료를 기초'로 했다는 평론의 사실관계를 확인할 수는 없으나, 김상수씨의 주장을 액면 그대로 인정한다면 대단한 작품이라는 데 이의가 없다.

이 작품을 통해 중고등학교 국사 시간에 교과서로 어설프게 배우고 만 후 항일 독립운동에 대해 방송이나 신문으로만 접한 이들이 보통 기억하고 있는 상해임시정부의 주요 인물과 역할에 대해서, 특히 초창기 독립투쟁의 기틀을 마련한 이들에 대해서 많은 것을 배울 수 있었다. 동세사와 박달학원, 항일 독립투사들의 1912년 신해혁명 가담, 신한청년당과 신한혁명당, 무오독립선언(1918년 11월 중국에서 독립운동가 39명의 대한독립선언문 발표) 등은 이번에 처음 알게 된 사실이다.

항일 독립투사들의 이야기를 따라가다 보면 항일 독립투쟁에 대해 국내파와 해외파, 상해파와 만주파, 무장투쟁파와 실력양성파, 우익과 좌익 등으로 단순한 이분법으로 갈라치는 이들은 이해하기 어려운 독립투사들의 고민과 갈등을 접할 수 있다. 그들의 고민과 갈등은 1980년대 이후 분단 이데올로기 속에서 지속적으로 분열과 반목을 계속해온 운동권 또는 민주진보진영에 대해 많은 공감을 불러오면서도 깨닫게 해주는 바가 있다.

* 참고로 이 책은 일반 인터넷 서점에서는 구입할 수가 없다. 출판사인 CNC Books 사이트에서만 가능하다. (http://www.cncbooks.co.kr/front/php/product.php?product_no=30&main_cate_no=1&display_group=2)

[ 2013년 4월 06일 ]


댓글(0) 먼댓글(0) 좋아요(0)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