둥지의 철학 - 존재와 세계의 위기에 대한 전면적인 철학적 응전
박이문 지음 / 생각의나무 / 2010년 2월
평점 :
구판절판


[서평] 박이문 저 < 둥지의 철학 : 존재와 세계의 위기에 대한 전면적인 철학적 응전 >을 읽고 / 2010. 02., 292쪽, 생각의나무


"철학이 도대체 무슨 쓸모가 있는가?" 저자는 21세기에 들어서면서 철학이 '존재 위기'를 넘어서 '해체 위기'에 처해있다고 진단하면서 자신만의 철학적 담론을 제시한다. 저자가 책의 초반부에 비트겐슈타인의 <논리철학 수고>처럼 양적으로 작지만 핵심적인 철학적 문제를 깊이 있게 다루고 싶다고 말했다. 실제로 그는 책 속에 각주나 철학자들의 이름을 거의 언급하지 않으면서 철학에 관련된 쟁점과 이견을 논리적이면서 쉽게 풀어나가려고 한다. 수많은 철학자의 이름이 인용되지 않은 것은 그들의 철학적 업적을 소홀히 해서가 아니라 "중요한 것들이 그들의 생각이었기" 때문이라고 설명한다.
하지만 '철학'은 '쓸모' 이전에 '철학'이라는 단어나 개념이 사람들을 겁먹게 하고 피하도록 만드는 것이 사실이다. 저자 역시 철학이 무엇이냐라는 질문에 "궁극적으로 모든 현상, 모든 사실, 모든 경험을 총체적으로 단 하나의 총제적 대상으로 삼고, 그러한 대상에 대한 총체적 명제를 도출하는 학문"으로 대답하는데, 그 답문을 읽으면 '명제 덩어리'이고 '개념 덩어리'일 수 밖으니 웬만한 대졸자라도 머리 아플 수 밖에 없다.

책의 제목, 그리고 자신의 철학을 ‘둥지의 철학’이라는 이름을 붙인 까닭은 우주 전체를 자신의 철학인 동시에 그 속에서 감성적으로나 지적으로 편안하고 따듯함을 느낄 수 있는 둥지이며, 그러한 둥지의 건축은 "완성될 수 있는 것이 아니라 끝없는 리모델링 작업일 수밖에 없기 때문"이라고 밝힌다. 박이문은 “인간이 가장 행복하게 살 수 있는 삶의 거처가 집인 것과 마찬가지로 인간이 지적으로 행복할 수 있는 관념적 건축물이 바로 지식”이라고 한다. 그에게 철학은 관념적 집으로서의 세계관을 구축할 수 있으며 많은 분과적 학문들이 동시에 거주할 수 있는 곳이다. 다시 말해 "둥지는 존재의 토대인 자연과 우주에 거스르지 않는 건축물이며, 끊임없이 리모델링이 가능한 생태적 존재"인 것이다.

저자는 '둥지의 철학'을 전개하면서 과감하게 기존의 철학관을 넘어서고자 한다. 이 가운데 ‘존재-의미 매트릭스(The Onto-Semantical Matrix)’를 제시한다. ‘존재-의미 매트릭스’라는 잣대로 인간과 그 밖의 모든 것들 간의 존재론적인 동시에 의미론적인, 육체적인 동시에 관념적인, 연속적인 동시에 단절적인, 전일적인 동시에 분석적인 관점에서 관념적-언어적으로 ‘세계’라는 둥지로 재구성된 자연-우주-존재를 철학이라 한다면, 철학은 영원히 역동적으로 지속되는 세계관으로서의 둥지의 리모델링 작업이 된다는 것이다. 
‘존재-의미 매트릭스'는 한마디로 세계란 인간에 의해 언어적으로 구성되는 매트릭스라는 얘기다. 저자는 세계가 주관의 구성물이라는 칸트의 구성주의, 언어가 존재의 집이라는 비트겐슈타인과 하이데거의 언어철학, 세계가 일종의 매트릭스, 즉 프로그램이라는 보드리야르의 사상으로 엮은 사유의 구성물이라고 덧붙여 설명한다.

출판사는 저자의 철학을 "실존철학과 분석철학을 아우르는 과감한 철학적 시도이며 박이문 철학의 결정판인 ‘둥지의 철학’은 한국철학의 자생성과 독창성을 위한 디딤돌이자 이정표로 기억될 것이다."라고 평가한다. 내 수준에서는 출판사의 서평에 쉽게 공감하기 어렵다. 전공 여부를 떠나서 철학사 한 번 제대로 읽어보지 않았기 때문이다. 동서양 철학 자체에 대해서도, 한국철학에 대해서도 문외환이기 때문이다.
저자가 간략하게 다루고 평가하는 노자의 <도덕경>, 플라톤, 푸코의 <말과 사물>, 헤겔의 <정신현상학>, 하이데거의 <숲길>, 베케트의 <고도를 기다리며>, 니체의 <비극의 탄생>과 <도덕적 계보>, 그리고 칸트나 프레게, 데리다의 책도 거의 읽지 않았다. 따라서 내가 저자의 논리를 따라 읽어가는 데 있어 전제는 기존 철학자와 그들의 '이론'에 대한 저자의 '평가'와 '판단'을 인정하는 것에 기초해서 진행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저자의 논리와 주장의 기본적인 근거와 방식에 대해서는 공감하고 동의한다. 특히 지각과 인식, 존재와 세계에 대한 저자의 규정이 그렇다. 그는 인식은 "어떤 대상의 관념적 재현이 아니라 재구성이며, 모든 재현과 재구성은 언어적 재구성이며, 언어적 재구성은 인식자가 완전히 자유로울 수 없는 어떤 인식의 선험적 틀에 의존해서만 가능"하다고 정의한다. 우리의 지각은 "대상과의 감각적 접촉이 아니라 이미 하나이 해석"이며, 인식은 "일종의 사진이라는 영상 촬영이 아니라 상상 속의 건축"인 것이다. 즉 '진리'라고 믿는 세계 전체와 그것을 구성하는 요소들로서의 인식대상들은 "이미 결정되어 있는 발견과 소유대상물"이 아니라, "각자 우리 자신이 창의적으로 상상하고 설계해서 세운 예술작품 같은 언어적 구조물'인 것이다. 인식은 선천적으로 주어인 것이 아니라 '후천적'으로 구성된 구조물이고, 인류에게 보편적으로 불변하는 것이 아니라 각 인식주체의 교육적, 문화적, 역사적 배경에 따라 상대적이어서 가변적이며 그 구조물의 자재, 자료는 의식이 아니라 언어인 것이다.
마찬가지로 우리가 말하는 '자연, 우주, 존재'는 인식주체로서의 인간의 출현과 더불어 인간적 으미를 지닌 세계로 변신한 것이다. 즉 인간이 말할 수 있는 존재는 언제나 인간에 의해 인식되고 인간적 주체에 의해 개념적으로 다양한 방식으로 분절, 분류되어 재구성된 주관적 세계일 뿐인 것이다. 인간에 의해 인식되지 않는 존재의 객관적 속성에 대한 언급은 논리적으로 자가당착적일 수 밖에 없다. 

"인간의 탄생과 더불어 그냥 '존재'는 '세계'로 변하고, 모든 문제는 자동적으로 오로지 그리고 언제나 세계 안에서 사는 인간에 의한 인간적 의미를 갖는다." 그래서 저자는 우주의 구조적 모태를, 인간의 모든 지적 문제는 근본적으로 '존재-의미 매트릭스'라는 개념으로 서술해야 한다고 말하는 것이다. 
저자는 그런 '존재-의미 매트릭스' 개념으로 존재의 범주, 진리의 보편성과 존재의 객관성, 우주의 본질, 인류의 존재양식으로서의 윤리적 규범, 가치로서의 윤리를 풀어나간다.

* 참고로 [기독교 사상]이라는 잡지의 2009년 7월호에 정기기획물 '이 사람의 서가'에 '철학자 박이문 교수'라는 제목으로 대담이 실려 있다. 관련 글은 링크(http://blog.daum.net/boguses/8578652) 참조...

[ 2013년 02월 10일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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