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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웨덴이 사랑한 정치인, 올로프 팔메
하수정 지음 / 폴리테이아 / 2012년 12월
평점 :
구판절판
[서평] 하수정 저 < 올로프 팔메 Olof Palme, 스웨덴이 사랑한 정치인 >를 읽고 / 2012. 12., 386쪽, 폴리테이아
1986년 2월 28일, 스웨덴의 수도인 스톡홀름 도심에 울려 퍼진 두 발의 총성. 그 총성은 스웨덴인이 사랑했던 한 정치인, 올로프 팔메의 비극적인 죽음을 알리는 소리였다. 저자는 이 책을 통해 짧았지만 빛나는 삶을 살았던 그를 한국에 소개했다. 그는 현대 스웨덴의 보편적 복지의 틀을 매듭지은 사민당 총리로, 미소 열강 사이에서 약소국이 운신할 틈을 만들며 ‘중립 노선’을 새롭게 정의한 외교가로, 그리고 정치인의 신념과 정치의 역할에 대해 고민하게 하는 매력적인 정치가로 인정받은 사람이었다.
“나는 내 마지막 숨이 다할 때까지 그 생각을 하지 않았으면 좋겠다. 자신의 부고에 뭐라 쓰일지를 신경 쓰기 시작하는 순간부터, 사람의 마음속에 두려움이 생긴다. 용기가 사라진다. 생명력을 잃는다. 그 생각이 내 마음속에 떠오르지 않도록 당신도 나를 도와주길 바란다.” 1969년 올로프 팔메는 한 인터뷰에서 “사람들이 당신을 어떤 사람으로 기억했으면 좋겠는가?”라고 물었을 때 이렇게 답했다. 정치인의 신념에 대해 담담히 밝힌 이 발언은 그의 느닷없는 죽음을 한층 비극적으로 보이게 하지만, 저자는 오히려 아직 한국에 온전하게 소개된 바 없는 그의 삶에 주목할 것을 권한다.
1927년 태어나 1986년 세상을 떠나기까지, 개인이자 정치인으로서 그의 일생을 20세기 스웨덴의 근현대사와 떼어 놓을 수 없다는 점에서, 이 책은 격동기에 나라를 이끈 지도자를 다루며 정치와 정치가의 모델을 보여 주는 설명서이자, 스웨덴 정치와 사회를 이해할 수 있도록 돕는 길잡이다. ‘낯선 정치인’을 우리 관점에서 돌아보게 함으로써 좋은 정치인, 좋은 시민, 좋은 사회란 과연 무엇인지를 고민하게 한다는 점은, 한국인들에게 잘 알려지지 않았던 올로프 팔메를 국내 저자가 직접 다룬 데서 이루어진 성과이기도 하다.
나는 개인적으로 이 책 직전에 읽었던 강준만 교수의 <강남 좌파>와 비교하면서 의미를 찾기도 했다. 그동안 한국의 '강남 좌파'가 위선과 엘리트주의의 상징이었다면, 앞으로 올로프 팔메처럼 강직하게 원칙과 철학을 가지고 올바른 사회를 위한 정치를 펼쳐나가기를 바라는 마음에서다.
올로프 팔메를 한국식으로 부르자면 '강남 좌파'였다. 그는 스톡홀름 외곽의 외스테르말름의 출신이다. 스웨덴에서 그곳 출신은 '부유한 집안이며 보수 성향'이라는 의미로 통했다. 그는 한국식으로 보면 70~80년대 한남동이나 평창동의 부유한 가문의 대저택에서 태어나서 자랐다. 그럼에도 팔메는 학창 시절 이미 노동자당인 사민당에 가입했고, 사민당 출신 중에서도 가장 급진적인 총리로 곱힌다. 신자유주의에 맞서 그 폐해를 지적하며 세금을 올리고 규제를 강화했다. 노동자의 권리를 강화하기 위한 제도도 잇달아 도입했다.
'강남 좌파'로 태어나 자랐지만, 사회민주주의자로 변화해간 팔메의 청춘시절도 서구적이면서도 아주 인상적이었다. 팔메는 자유에 대한 동경으로 찾아간 미국에서 유학을 마치고, 미 대륙을 히치하이크로 횡단하며 여행하는 과정에서 각자의 노력에 따른 결과나 선택이 아니라 피부색이나 타고난 가난에 의해 삶이 결정되는 미국의 극심한 사회적 불평등을 확인한 젊은 시절의 경험, 그리고 스웨덴 총합생연합에서 펼친 국제적 활동은 2~4장에서 소개된다. 이를 통해 보수당의 대표적인 정치인이 되었다고 해도 손색이 없을 만큼 부유한 가문 출신인 팔메가 사민당 역사상 가장 급진적인 총리로 자리매김하고, 약소국의 이익을 대변하는 외교가로 활동하게 된 출발점을 확인할 수 있다. 1953년 타게 에를란데르(23년간 총리로 재임)의 보좌관으로 정치에 입문한 이래, 그의 뒤를 이어 총리가 된 이후 행적까지 소개한 부분에서는 정치가 팔메의 삶을 따라가는 한편, 그가 총리로 있을 때 도입한 제도들을 비롯해 그 바탕에 놓인 이론적인 고민과 당시 사회상, 사민당을 중심으로 펼쳐진 정치 활동 등을 엿볼 수 있다(5~8장).
한국과 스웨덴을 비교하기에 너무 많은 정치경제적, 사회문화적 격차가 크긴 하지만, 그가 학창시절과 청춘을 보내면서 경험하고 고민했던 지점과 방식은 열정이 넘치는 한국의 젊은이들에게 충분히 시사점을 제공해 준다.
팔메가 총리가 되어 집권한 시기(1969~76, 1982~86)는, 스웨덴 사민당과 전국노동조합연맹(LO)의 강력한 연합에 힘입어 안정적으로 이어지던 복지국가의 전선에 균열이 생겨남과 동시에, 스웨덴 복지 제도가 새로운 단계로 진입하게 된 기점으로 평가받는다. 스웨덴 사민당에 사회민주주의를 정착시킨 비그포르스의 오랜 염원인 '기업 민주화'의 정책 중 하나가 '임금노동자 기금'이었다. 오랜 산고 끝에 도입된 임금노동자 기금이 이에 반대하는 기업인과 보수당의 거센 저항 끝에 결국 유명무실한 제도가 되면서, 사민당과 LO의 관계는 이전과는 사뭇 달라졌다. 한편, 이 시기 스웨덴의 지니계수는 눈에 띄게 낮아졌고, 부모 육아휴직 제도가 개혁되어 여성의 노동시장 참여가 늘었으며, 보육 시설과 교육 기회가 확충되는 등 양성평등 지표는 높아졌다. ‘국민의 집’으로 일컬어지는 기존의 스웨덴 복지 제도가 미처 챙기지 못한 부분까지 포괄하며 사회 안전망을 한층 더 촘촘하게 한 결과, 현재의 보편적 복지의 기틀이 완성된 시기인 셈이다.
그런 점에서 44년간 이어져 온 사민당의 장기 집권이 팔메의 첫 번째 총리 임기를 끝으로 막을 내렸다는 사실은 역설적이다. 그 뒤 1982년 팔메가 다시 총리가 되었다가 1986년 암살당하는 것으로 마감된 두 번째 임기를 포함해, 지금까지도 스웨덴에서는 보수 연합과 사민당이 번갈아 집권하고 있다. 이 시기에 복지국가 스웨덴의 전망이 어두워졌다는 이들도 있었으나, 복지 제도 및 실태가 후퇴했다는 명백한 지표를 발견하기는 어렵다. 오히려 집권당의 부침 및 교체와 무관하게 스웨덴의 복지 제도가 사회에 뿌리를 내렸다는 징표로 해석되고 있음에 주목한다면, 오늘날의 스웨덴 복지 제도와 정치 지형을 이해하고 싶은 이들은 팔메가 총리로 있던 10년, 즉 스웨덴의 복지에 근대성이 가미된 그 시기를 살펴볼 필요도 있다.
올로프 팔메는 약소국의 외교와 평화에 대한 전략과 태도라는 측면에서 한국 정치인에게도 귀감이 된다. “평화가 위협당하고, 정의가 거부되고, 자유가 위기에 처하는 곳마다. 그곳이 중동이든, 중앙아메리카든, 남아프리카든, 핵무기 사용이 논의되는 곳이든, 팔메는 그곳을 찾아 중재를 이끌었다.” 미국의 국무 장관이었던 헨리 키신저는 1986년 3월 팔메의 장례식에 참석해, 국제 외교 무대에서 선보인 팔메의 역할을 이와 같이 기렸다. 제1차 세계대전 이후로 중립 노선을 견지하며 국가 안보를 지켰던 스웨덴이 국제 무대에서 가장 돋보인 시기는 팔메 집권기였다. 이는 학문적으로 팔메를 다룬 연구들이 대부분 그의 외교정책에 주목하는 이유이기도 하다. “중립은 침묵을 의미하지 않는다.”라는 팔메의 말은, 당시 미소 열강 사이에서 약소국이 운신할 틈을 만들어 낸 그의 외교적 역량과 의지를 잘 드러낸다. 1970년 영국의 "더 타임스"는 “스웨덴은 오히려 국제 정세에 깊게 관여하기 위한 시발점으로 중립을 활용하고 있다.”라고 논평하기도 했다.
1968년 2월 21일, 베트남전에 반대하는 시위대 앞에서 팔메는 미국을 맹렬히 비판했다(270-273쪽). 이후 스웨덴과 미국의 관계가 1년 넘게 단절되기도 했는데, 더 흥미로운 것은 이 연설이 있고 나서 몇 달 뒤 소련이 체코슬로바키아를 침공했을 때였다. 그날 저녁 침공에 반대하고자 모여든 10만여 명의 스웨덴 시민 앞에서 연단에 오른 팔메는 의도적으로 베트남전 반대 연설을 그대로 차용해 국가 이름만 ‘미국’에서 ‘소련’으로 바꿔, 약소국에 대한 강대국의 잔인한 공격을 비난했다. 이후 이란과 이라크 사이의 분쟁을 적극적으로 중재하거나, 남아프리카공화국의 아파르트헤이트를 철폐하는 데 목소리를 내는 등 스웨덴식 중립이 “어떤 세력을 향해서든 자유롭게 자신의 신념을 드러낼 수 있는 적극적 중립”으로 자리매김하는 데 팔메가 기여한 바는 컸다. 팔메의 죽음을 다룬 이 책 1장에서, 여전히 밝혀지지 않은 암살의 배후를 손꼽을 때 극우 세력, 쿠르드노동자당, 군수산업, 남아공 인종 분리주의자 등이 포함되었다는 점도 팔메의 적극적인 외교 활동과 무관하지 않다.
이 책의 부록에는 스웨덴의 정치와 사회를 좀 더 상세히 들여다본 항목들과, 한국과 스웨덴 사회를 한눈에 비교할 수 있는 지표를 실어 독자의 이해를 도왔다.
스웨덴은 전세계인이 부러워할 정도로 복지체계와 높은 일인당 국민소득, 낮은 소득불평등, 높은 민주주의 수준이라고 알려져 있다. 한국에서도 많은 학자들과 전문가들, 정치인들이 스웨덴의 사례를 제시하곤 한다. 그런데 정치 분야에 대해서는 잘 알려져 있지 않다.
작년 대선 선거운동 초반 안철수 후보가 '정치개혁'을 화두로 던졌을 때, 한국 정치권과 유권자들 사이에서 많은 논쟁이 있었다. 당시 나 역시 안 후보의 제안 중 일부는 반대하고 일부는 찬성하는 의견이었는데, 대선이 끝난 후 여야 정치권에서는 언제 그랬냐는 듯이 '정치개혁'은 실종되었고, 오히려 새누리당은 이동흡 헌재소장 후보자의 인사청문회 여론을 호도하기 위해 '통랍진보당 이석기, 김재연 의원에 대한 자격 심사'라는 정치 공세를 펼친 바 있다. 두 의원에 대한 검찰의 '먼지털이 수사'가 이미 작년에 강력(?)하게 진행되어 김재연 의원에게는 아무런 '먼지'도 발견하지 못한 채 끝났고, 이석기 의원에게도 고작 '먼지 수준'의 혐의를 가지고 무리하게 기소한 바 있다. 그럼에도 정치적인 목적으로 이데올로기 공세를 하는 정치권의 후진성은 여전하다.
'정치개혁' 또는 '정치쇄신'이라는 말이 나오고 보니, 이 책의 부록에 저자가 한국과 스웨덴의 정치 분야중에서 여러 특징을 정리, 비교해 놓은 부분이 있어 소개한다.
1. 스웨덴 의회 (스웨덴은 인구 950만명입니다. 기타 비교 통계는 아래 사진에...) : 스웨덴은 1866년 입헌군주제 헌법을 만들고 양원제 의회를 구성했습니다. 의원내각제죠. 상원의원 155명과 하원의원 233명(총 388명)이었습니다. 1970년에 헌법을 수정하여 한국과 같은 단원제 총 349명으로 변경
=> 스웨덴과 한국의 산술적인 인구 대비로 생각하면 한국 국회의원은 5배인 1,750명이 되어야합니다. 즉 의원의 숫자는 국가마다 의무와 역할에 따라 상대적인 것이라고 봅니다...^^
2. 민주주의 수준 : 2011년 영국의 잡지 [이코노미스트]가 발표한 167개국의 민주주의 지수에서 스웨덴은 10점 만점에 9.5점으로 4위, 한국은 22위입니다.(평가 항목은 선거 절차 및 다원주의, 시민의 권리, 정부의 기능, 정치 참여, 정치 문화 등 5가지) '제도가 보장하는 절차'에서는 한국도 9점대라 하네요.
3. 정당 지원 제도 : - 원내 정당의 경우, 기본 지원금과 의석당 지원금 외에 여당에는 의석당 270만원, 야당에게는 의석당 400만원을 배정한다네요. 이것은 한 정당의 독주를 막고 다양성을 장려하기 위한 스웨덴 정치계와 사회의 의식이 반영된 것이라 봅니다. 원내 교섭단체에게도 여당보다 야당의 지원금이 두 배입니다.
=> 한국의 경우, 18대 국회 의석을 기준으로 새누리당이 전체 국고보조금의 46.4%를, 민주통합당이 36.7%를, 자유선진당이 6.9%를, 통합진보당이 6.4%를, 창조한국당이 2.1%를 배정받았죠. 새누리당은 249억이나 됩니다.
=> 스웨덴은 경제사회 뿐 아니라 정치분야에서도 독식과 독점을 방지하고 다양성을 키우려는 취지이고, 한국은 부익부 빈익빈 식으로 순환되어 정당 구성을 고착화시키고 다양성의 싹을 잘라 버립니다.
4. 의원 급여 등 : 스웨덴 의원의 월급은 약 924만원이고 한국은 1,031만원입니다. 의원 연금은 12년 이상 의원직을 유지해야 받을 수 있다네요. 스웨덴 의회는 공무상 해외 출장비를 임기 내에 825만원을 한도로 규정하고 사용내역도 공무상으로 제한하여 한국 국회의원보다 까다롭습니다. 스웨덴은 의원당 보좌관 고용지원액이 연간 1억3백만원으로 연간 3억2천만원을 받는 한국보다 적습니다. 스웨덴 의원의 일주일에 평균 66간 일하고 일 평균 6.5시간 수면을 취한다네요. 스웨덴 노동자의 일주일 평균 노동시간이 30시간이니 엄청나게 일하는 것이죠. 한국의 경우 진보정당 의원들과 민주당 일부 의원 정도가 그 정도로 일하겠죠? ^^
=> 의원들에 대한 급여,복지도 역시 단순 비교는 어렵습니다. 인구 기준 국회의원 수는 스웨덴이 5배 이상이 되고, 의원의 급여는 한국이 조금 많을 뿐이며 보좌관은 3배 정도이니까요. 다만 통계치는 제시되지 않았지만 의원들의 부정부패와 무능, 게으름 등을 비교하면 엄청난 차이가 발생하겠죠? 즉, 가장 중요한 것은 숫자가 아니라 제도와 자질, 능력, 문화라고 생각합니다.
5. 선거제도 : 스웨덴은 대선거구제이고 정당명부 비례대표제입니다. 그래서 2012년 현재 원내에 진출한 정당이 무려 8개라고...ㅋㅋ 투요용지가 3장이라네요. 정당별 후보 명단에 표기할 수도 있고, 직접 이름을 쓸 수도 있고, 특정인을 뽑지 않고 정당에만 투표할 수 있다고...
=> 자세하게는 모르겠지만, 선거관리위원회나 정당의 편리함이라 유리함이 아니라 유권자의 선택을 최대한 보장하려는 노력이라고 느껴집니다. 정당이 정한 후보 중에서 무조건 선택하는 게 아니라 낙선시킬 수 있는 장식이라 매력적으로 느껴지고요..^^
- 그럼에도 스웨덴의 투표율은 보통 80% 중반이고 가끔은 90%를 넘는다고 합니다. 물론, 투표는 일요일에 실시합니다. 투표 시간이 밤 몇 시까지인지는 모르겠고요...
6. 정치박람회 : 굉장히 독특하고 신선하다고 느낀 것 중의 하나가 '알메달렌'이라는 이름의 정치박람회였습니다. "정치가 일상의 담론이 될 때 정치라 좋아진다"는 독일 사회학자 하버 마스의 말을 실천하고 있다는 저자의 평가... 매년 의회가 회기를 종료하는 마지막 주 8일(일요일~일요일, 원내 정당이 8개라서)에 스웨덴 알마달렌이라는 공원에서 매일 정당 하나가 정책설명회와 연설, 세미나, 청문회, 파티, 문화행사 등 각종 행사를 통해 정당을 홍보하고 유권자와 소통을 넓히는 것입니다. 요일을 추첨으로 정하고, 정당 뿐 아니라 각종 연구소, 단체, 학회 등 전국의 정치와 관련한 주체들과 유권자들이 자발적으로 '정치에 대한 소통'을 집중적으로 진행하는 것입니다. 2011년에는 8백개 조직이 참여했고 공식 등록 행사만 1,476였다네요. 하루 평균 행사가 300개인 셈이죠. 유권자나 관중을 제외한 참가자(주최 또는 주체)만 1만 4천명이었다는... 950만명 인구 중에서... 정치박람회는 1970년 들어 시작, 정착되어 1991년부터 공식적인 행사가 되었습니다. 이러니 정치 참여가 생활화되고 정치 담론이 일상이겠죠.
=> 무지무지하게 부러운 방식이고 한국 정당도 선관위의 지원과 협력으로 몇 년 안에 진행했으면 합니다.
=> 물론, 스웨덴 유권자의 정치박람회 참여에는 복지국가와 경제민주화, 소득격차 축소, 적은 노동시간, 노조 조직율 71%, 합의에 기반한 정치문화 등이 없으면 불가능했겠죠...ㅠㅠ 그렇다고 애써 무시하기에는 정치박람회의 가능성과 장점을 무시하기는 어려울 듯 합니다.
[ 2013년 02월 02일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