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남 좌파 - 민주화 이후의 엘리트주의 강남 좌파 1
강준만 지음 / 인물과사상사 / 2011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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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평] 강준만 저 < 강남 좌파 : 민주화 이후의 엘리트주의 >를 읽고 / 2011. 07., 432쪽, 인물과사상사

'이념은 좌파적이나, 생활은 강남 사람 같다'는 모순적인 뜻을 지닌 '강남 좌파'. 이 표현은 2006년 3월 동아일보 칼럼에서 처음 등장한다. 우리 사회에서 '강남 좌파'에 대한 시선은 사회갈등 완충과 상류층의 위선이라는 평가가 엇갈린다. '강남 좌파'의 실체가 있을까? '강남 좌파'는 그저 정치 경쟁을 위한 맥거핀(트릭, 꼼수)에 불과한 것인가?
강준만 교수의 이 책을 읽고나면 정답을 알 수 있다. 굳이 정답이 아니라 하더라도 각자가 자신의 정답을 찾거나 저자의 주장을 토대로 자신만의 정답 노트를 마련할 수 있다. '강남 좌파' 논쟁의 배경과 내막, 그리고 한국정치의 속살을 들여다 볼 수 있다.

강 교수는 '강남 좌파' 현상의 실체와 논란을 새롭게 진단한다. '강남 좌파'라는 용어는 참여정부 집권 후 보수진영이 운동권 출신 486세대 진보인사들을 꼬집어 쓰던 용어다. 정치적 이념적으로는 좌파지만 행동은 '강남 주민스럽다'라는, 부정적 뉘앙스를 풍기는 말이다. 당시 분명 보수진영이 노무현 정권을 공격하려는 혐의가 읽히지만 본격적으로 논의해야 한다는 의견도 많았다. 아무튼 처음 강남 좌파 논쟁이 불거진 이후 지금까지 '강남 좌파론'은 대중적으로 사용되고 있다. 
저자는 이 책에서 2003년 이후 '강남 좌파' 현상의 논쟁과 과정을 분석하면서 주요 정치인들에 대해 비평한다. 2007년 오마이뉴스의 문국현이라는 강남 좌파 띄우기, 2010년 조국-오연호의 <진보 집권 플랜>을 통한 2차 강남 좌파 띄우기, 강남 좌파 현상에 대한 반동의 관점에서 박근혜 인기의 비결, 분당 우파에 대한 반동으로서 분당 보궐선거와 손학규의 재기라는 관점으로 자신의 주장을 끌어간다. 이어서 노무현 정신에서 일탈한 국민참여당의 유시민과 성찰 없는 반이명박 전선으로 끌려나온 '분노하는' 문재인, 강남 우파 오세훈의 강남 좌파적 언어에 대해 비판한다. 마지막으로 한국사회에서 가장 치열한 계급투쟁은 입시전쟁이라는 자신의 지론을 다시 상기시키면서 '강남 좌파' 논쟁을 둘러싼 정치 엘리트들의 밥그릇 싸움과 정치권의 진영논리 및 증오 마케팅을 비판하고 진정한 소통과 화합을 주문한다.

먼저 '강남 좌파' 논쟁에서 흔히 놓치거나 순진하게 혼동하는 생각이 있다. 첫째, 이 논쟁에서 '강남'의 의미는 강남 지역에 거주한다는 의미가 아니라 '강남스럽다'라는 비유나 상징이다. 어디에 살건 소득수준과 생활방식에 따라 강남 좌파일 수 있는 것이다. 생각이나 의견은 진보적인데 소득수준, 특히 생활방식이 '강남'스러운 것을 '위선'으로 인식하는 경우가 많다. 물론 정치인이나 유명인과 일반인까지 동일한 잣대를 들이대는 경우는 적절하지 않다고 본다.  
둘째, '좌파'에 대한 개념도 마찬가지다. '좌파'를 학문적, 이념적으로 세분하여 규정짓거나 구분하는 사람들은 드물다. 언론이나 유권자들이 통상 말할 때 사용하는 '한국 정치의 이념 지형도'일 뿐이다. 실제 많은 여론조사의 경우 조사 항목에 '당신은 진보적인가, 보수적인가'는 상대적 개념일 뿐이다. 이에 대해 발끈하는 '진짜 좌파'나 '순수 진보'들이 있을 수 있다. 하지만 '좌파'든, '진보'든 어느 누가 그런 단어를 처음부터 '소유'하거나 '독점'할 수 있는 것이 아니라는 점에서 유감일 뿐이다. 저자 말대로 "생각하기에 따라서 좌파라는 단어의 일상적 생활화가 오히려 그런 낙인찍기를 무력화하는 방법"일 수 있다. 조국 교수는 "우리 사회가 좋아지려면 강남 좌파가 많아야 한다"고 주장하기도 했다.

저자는 '강남 좌파'의 등장 배경을 설명하고 전 세계적인 동시대적 현상으로서 모든 정치인이 '강남 좌파'일 수밖에 없는 논리와 근거를 제시한다. 그의 논리는 "좌우를 막론하고 리더쉽을 행사하는 정치 엘리트가 되기 위해선 학력, 학벌에서부터 생활수준에 이르기까지 어느 정도 사회적 성공을 거두어야 하므로, 정치 영역에서 활동하는 모든 좌파는 강남 좌파일 수 밖에 없다. 또한 우파라도 유권자의 대다수인 서민을 상대로 포퓰리즘 자세를 취하는 '정치의 문법'을 사용하는 바, 우파 정치인에게도 강남 좌파 요소가 농후할 수 밖에 없다. 따라서 '모든 (한국의) 정치인은 강남 좌파'라는" 것이다.
실제로 정치인들의 경력과 직업은 저자의 주장을 뒷받침한다. 전현직 국회의원과 청와대 및 정부 고위 관료 등을 조사한 통계들을 보면 정치인이나 관료 이전의 직업의 거의 대부분이 변호사나 언론인, 교수, 기업인, 공무원 출신이고 학력 및 학벌 역시 SKY 출신이 압도적인 비율을 차지하기 때문이다. 반면에 노동자, 농민, 중소 상공인, 직장 여성, 주부, 중하위 공무원 등은 몇 명에 불과하고, 저학력 출신이나 지방대 출신은 찾아보기 어렵다.

'강남 좌파'에 대한 강 교수의 분석에서 인상 깊은 점 몇 가지가 있다. '강남 좌파'가 왜 노무현 정권에서부터 부각되어 몇 년 전부터 큰 관심의 대상이 되었는가와 '강남 좌파' 논쟁의 이면에 숨어 있는 엘리트주의. 그리고 노무현 전대통령이 자살 이후 나타난 대규모 추모 물결을 '우리 안의 노무현의 총궐기'로 분석한 것과 박근혜의 인기 비결을 보수진영과 진보진영의 공통적인 강남 좌파 현상에 대한 반감과 반동으로 파악하는 과점이다. 보통 사람들이 '강남 좌파' 논쟁에서 놓치는 부분이다.
그는 '강남 좌파' 논쟁이 노무현 정권 때부터 부각된 이유를 '민주화'라고 이야기한다. 김대중 정권을 거치면서 형식적인 민주화가 완료되었고, 연이은 민주정권의 집권으로 절박한 이슈가 사라지면서 정치 엘리트에 대한 시각이 변했다는 것이다. 그런데 '촌놈'과 '상고 출신 변호사', 그리고 '돼지 저금통'으로로 당선되었던 노무현 정권은 '골프 치는 노무현'과 '이해찬 총리의 3.1절 골프 파동'으로 이미지가 구겨지기 시작했다. '강남 좌파' 비난의 직접적인 계기는 이해찬의 골프 파동이었지만 그 이후에도 남상국 사장 자살 사건, 노건평씨의 세종증권 인수 알선수재 구속, 아파트 분양원가 공개 거부, 고위 공직자 재산 공개 결과, 인사청문회 대상자들의 치부, 낙하산 인사, 청맥회 논란, 삼성과의 밀월 등 구조적인 문제는 정권 내내 이어졌다.
 
'맺는 말'에서 저자는 강남 좌파 논쟁의 성격을 '밥그릇 싸움'으로 비판한다. "강남 좌파로 불리게끔 만든 좌파 담론 또는 제스처가 정치 엘리트들의 '밥그릇 싸움'을 무슨 심각한 이념 투쟁인 양 포장하는 효과를 내고 있지 않느냐. ... 정치가 출세, 입신양명, 인정 욕구 충족의 도구로 기능하는 사회에서 엘리트는 모두 '강남파'일 수 밖에 없다. 강남 좌파에서 '좌파'는 부차적인 것이지 본질적인 것이 아닏. 제한된 정치적 자원을 놓고 경쟁하는 승자 독식 상황에서 이념과 노선은 국리민복을 위한 것이라기보다는 경쟁 세력에게 타격을 입히기 위한 정략적 도구의 성격이 강해진다."
그리고 한국 정치 문제의 핵심은 '이념의 틀'이라기보다는 진영 논리와 증오 마케팅, 그리고 '인물 중심주의'임을 지적한다. "'이념의 틀'은 인물 중심주의에 따라붙는 부수적인 것일 경우가 대부분이다. 따라서 중요한 것은 강남 좌파와 막걸리 우파들이 더 많이 늘어나게 하는 것이 나리 그들이 어떤 방식으로 세를 규합하고 상대편을 대하는지 집단적으로 성찰할 수 있느냐는 점이다."

강 교수의 결론은 못내 아쉽다. 그는 소통과 화합을 위해서 승자 독식이 가능한 구조를 바꾸어 '정치 과잉'을 줄이는 것과 인물 중심의 참여에서 목적 중심으로 참여로 바꾸자는 것, 그리고 권력 중심적인 '인정 투쟁' 문화, 입신양명 문화에 대한 성찰이 필요하다고 결론을 내린다.
더욱이 아쉬운 점은 그가 '강남 좌파' 논쟁의 핵심을 '엘리트주의'로 분석하면서 '강남 좌파'로 지칭되는 개인이나 세력에 대한 비판에 그치고 있다는 점이다. 그의 평소 지론대로 학력, 학벌주의에 대한 대안은 긍정한다고 하더라도 한국정치가 '엘리트주의'에서 벗어나기 위한 구조적, 제도적인 방향이나 대안을 제시하지 않았다. 그런 측면에서 '공익제보자와 함께하는 모임'의 대표 이지문씨의 서평이 공감이 된다. 이지문씨는 강준만 교수의 분석이나 비판에 일면 공감하면서도 한국정치의 엘리트주의를 유도하는 선거제도, 즉 '강남 좌파'만이 가능한 현실을 극복하기 위해 '추첨제 민주주의' 등 '평등한 참여'를 보장하는 제도의 도입을 주장했다.(http://blog.daum.net/allgreenkorea/17135163)

"지금 중요한 것은 누가 ‘강남 좌파’인가, 이들이 좌파인지, 그렇지 않은지와 같은 지엽적 논쟁이 아니라, 어떻게 하면 우리 사회의 다양한 사회경제적 배경을 가진, 특히 하위계층들을 포괄할 수 있는 진정한 대표 체계를 우리 정치 현실에서 구축할 수 있을지에 대한 보다 건설적 논의가 필요한 것이다. 민주주의는 과거 독재권력 하에서 배제된 속칭 ‘민주화 세력’이 ‘강남 좌파’로 탈바꿈하여 기존 보수 엘리트들과 경쟁하는 장에 우리 국민이 단지 한 표를 행사하는 것이 아니라, 성공회대 조희연 교수가 제시한 것처럼 독재 하에서 억압받고 배제된 다양한 경제적 사회적 하위주체들이 제도정치의 장에 진입함으로써 정치의 성격과 경계 자체가 변화하고 민주주의가 갖는 내용과 경계가 변화하는 것이어야 하기 때문이다. 

그러나 우리 정치 현실이 갈수록 ‘강남 좌파’만이 좌파를 대표하는 괴리가 심화되고 있는 것에 대한 보다 진지한 대안에 대한 탐색이 요청되어야 한다. 그 대안을 탐색하기 위해서는 먼저 “모든 정치인이 강남 좌파일 수밖에 없게 만드는” 선거에 먼저 주목할 필요가 있다. 선거 자체가 ‘강남 좌파’로 상징되는 상위계층에 절대 유리할 수밖에 없기 때문이다. 실질적으로 출마하여 대표가 될 수 있는 이들은 선거에서 절대 유리한 재정적 여유를 바탕으로 지역 조직 활동에 열심이거나 전국적 인지도를 갖춘 유명 인사이거나, 또는 정당 관료나 활동가가 아니면 정당 보스와의 긴밀한 인연을 맺고 있을 때 가능할 뿐이다. 

특히 가장 큰 문제는 선거에 막대한 자금이 들어가기 때문에 보통 시민들이 감당하기 힘들다는 것이다. 공천을 받아 출마하여 공식 선거운동기간 동안 지출하는 금액보다는 최근 당내 경선을 통해 후보자를 선출하는 과정에서 오히려 ‘돈’의 영향력이 더 커지고 있는 현실이다. 정치 신인일수록 현역의원에게 맞서 사조직 가동비가 엄청나게 들어가며, 이름 알리기 차원에서 여론조사 명목으로도 막대한 돈을 사용하고 있다. 

또한 당내 경선 여론조사와 경선대회 개최 등에 들어가는 비용 역시 참여하는 예비후보자들이 일정금액을 기탁금 형식으로 정당에 납입해야 하기 때문에 본 선거 이전에 돈이 없는 ‘좌파’들은, 아니 ‘우파’ 역시 마찬가지로 출마를 생각할 수 없게 된다. 결국 대표는 일반 시민들과 다른 재력 있거나 전국적 인지도에서 유리할 수밖에 없는 보다 높은 사회계층의 구성원으로 국한되고 있다. 이러한 선거 현실에서는 결국 좌파 중에서도 ‘강남 좌파’ 위주로 대표가 될 수밖에 없게 되는 것이다.

‘강남 좌파’에 대한 논쟁이 보다 생산적으로 발전하기 위해서는 강남 좌파 위주로 정치적 대표자로 충원되는 선거 현실을 개선할 수 있는 정치 민주화에 대한 보다 진지한 논의가 선행되어야 한다. 사법 민주화 차원에서 국민참여재판제도를 시행하고 기소배심을 논의하는 정치권이라면 정치 민주화 차원에서도 일반 국민들이, 특히 사회경제적 약자들이 실제 정치의 장에서 자신의 목소리를 낼 수 있는 실질적 공간을 제공하기 위해서 추첨을 통한 시민의회 창출이나 양원제 도입시 한 원을 선거가 아닌 추첨으로 충원하는 것과 같은 보다 ‘평등한 참여’를 보장하는 다양한 방안에 대한 논의가 요청된다."

[ 2013년 1월 25일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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