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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은 것이 아름답다 ㅣ 범우사상신서 35
E.F.슈마허 지음 / 범우사 / 1986년 12월
평점 :
품절
[서평] E. F. 슈마허(Ernst Rriedrich Schmacher) 저, 김진욱 역 < 작은 것이 아름답다 Small is Beutiful :인간 중심의 경제학 >를 읽고 / 1999. 12., 338쪽, 범우사
1973년에 출간된 이 책은 발간 이후 현재까지 수 많은 다른 책과 보고서, 논문에 인용되고 있다. 책의 제목인 '작은 것이 아름답다'는 이제 보통명사처럼 인구에 회자되고 있으며, '녹색연합'이라는 한국의 환경단체가는 자신들이 발간하는 잡지의 제목을 [작은 것이 아름답다]라고까지 정했다.
이 책의 내용이 무엇이길래 이토록 세계인의 관심을 꾸준히 받고 있을까? 나 역시 오래 전부터 궁금하여 읽고 싶었지만 법정스님의 추천도서 리스트에 포함되어 있기 때문에 리스트 순서에 따라 지금에서야 읽게 되었다.
"빠르게, 높게, 멀리".... 이 구호는 올림픽 구호만이 아니다. 인류는 언젠가부터 빠르게, 높게, 멀리, 그리고 크게 만드는 것이 '발전'이고 '진보'라고 생각하기 시작했다. 물론 그런 경향은 고대에도 존재했다. 기원전 2,500년 이집트인들의 피라미드가 그랬고, 그리스인의 파르테논 신전이 그랬다. 하지만 인류 전체가 본격적으로 그러한 경향을 추구하기 시작한 것은 산업사회가 들어서부터였다. 특히 자본주의는 이러한 경향을 거의 신격화했다. 사회주의 주류 역시 마찬가지였다.
인류는 어느 순간부터 과학기술의 발달이 곧 인류의 행복과 발전의 첩경이라는 신앙에 빠졌고, 그 이후로 지금까지 초음속 제트기와 바벨탑과 같은 마천루, 은하계를 벗어나는 우준선을 만들었고 거대한 도시, 거대한 항공모함, 거대한 운동장 등 물리적인 '거대함' 뿐 아니라 거대한 교통체계, 통신체계, 물류체계, 생산체계, 에너지체계 등 시스템에 적용되면서 거대한 관료조직까지 만들게 되었다. 그리고 무한한 생산은 무한한 소비를 불러 온다.
슈마허는 근대의 사상, 과학, 기술에 의해 형성된 세계는 세 가지 위기에 빠져있다고 진단한다. 그것은 첫째, 인간의 본성은 비인간적인 기술과 조직 속에서 질시하고 쇠약해져 가고 있다. 둘째로, 인간의 생명을 지탱하는 생활환경이 파괴도이어 절반쯤 붕괴의 징후를 보이고 있다. 셋째로, 인간 경제에 없어서는 안되는, 재생이 불가능한 자원, 특히 화석원료 자원의 고갈이 눈 앞에 보이고 있따. 슈마허는 이런 현상의 근원이 되는 것은 "물질 지상주의와 거대 기술 신앙, 그리고 탐욕과 질투심에 다름 아닌 풍요의 추구"라고 말한다.
저자는 인류가 지니고 있는 가장 중대한 오류 중 하나를 "인류에게 '생산의 문제'가 이미 해결되었다"라고 규정한다. 그렇게 생각하게 된 원인은 '생산'에서 인간이 직접 만드는 것이 아닌 자연을 무가치한 것으로 다루었고 중세 이후 자연에 대한 인간의 태도가 변했기(자연을 지배하고 정복하는 대상으로 생각) 때문이었다. 그 점에서는 아담 스미스나 칼 마르크스도 마찬가지였다. 경제학자들은 생각하는 '자본'의 대부분은 자연으로부터 부여받은 것이지 인간이 만들어낸 것이 아니라는 점을 깨닫지 못했다.
이러한 생산의 문제는 재생가능하지 않은 '화석연료'의 고갈과 거대한 생산에 따른 자연의 허용 한도, 그리고 인간성의 위기를 불러온다는 것이고 결국 인류는 파국으로 치닫고 있다고 진단한다.
이러한 인류의 파국의 위기에 대해 저자는 '영속성'이라는 목표를 세우고 새로운 생산 방법과 소비 생활에 의한 새로운 생활 양식을 만들어야 함을 역설한다. "환경을 오염시키거나 사회 구조와 인간 자체의 질을 떨어뜨리는 과학적 내지 기술적인 '해결'은, 그것이 아무리 능란해 보이고 매력적으로 보일지라도 쓸모 없다"는 것이다. 여기서 저자가 도출하는 과제가 바로 "값이 싸서 거의 누구나 손에 넣을 수 있고, 작은 규모로 응용할 수 있으며, 인간의 창조력을 발휘하게 할 수 있는 과학, 기술의 방법이나 도구"이다. 그것이 바로 그 유명한 "중간기술"이다.
저자는 또한 '규모'의 문제를 중요하게 제기한다. 그는 "거대주의와 기계화의 경제학은 19세기의 환경이나 사고의 '유물'로서, 오늘의 문제는 무엇 하나 해결할 힘을 갖고 있지 않다. 전혀 새로운 사고의 체계가 필요해지고 있다. 물질이 아니라 인간에게 주의를 돌리는 사고 체계가 요구되고 있는 것이다. 물질은 자연히 뒤따라 온다."고 말하면서 "대량 생산이 아니라 대중에 의한 생산"을 제시한다.
저자에게 '대중에 의한 생산'은 조직의 문제를 해결하는 대안이기도 하다. 대규모 산업사회는 대규모 조직을 만들어내고 대규모 조직은 관료주의와 비능률, 생산성 저하 등을 가져올 수 밖에 없기 때문이다. 저자는 자신이 영국의 석탄공사에서 근무한 경험을 토대로 기존의 대규모 조직의 문제를 해결하기 위한 여러가지 대책을 제시하기도 한다.
이 이외에 저자는 책 속에서 불교경제학의 관점에서 문제를 분석하고 해결 방향을 제시하기도 한다. 그리고 에너지 위기를 다루면서 원자력의 이용이 인류에게 저주가 될 수 있음을 경고한다. 선진국의 개발도상국에 대한 '원조'의 문제점을 지적하며 '효과적이고 실질적인 원조'가 될 수 있는 방법을 제시하기도 한다. 자본주의와 사회주의의 쟁점인 '사적 소유'와 '생산수단의 소유' 등 '소유권'에 대한 통찰력 있는 비판을 가하면서 새로운 소유의 형태를 제시한다.
1970년대 전반과 후반의 두 차례 석유위기는 한국의 경제뿐만 아니라 전세계의 경제에 커다란 충격을 준 바 있다. 이 위기를 10여 년 전에 예견해 경고했던 인물이 슈마허였고 그러한 경고의 사상적 바탕을 잘 드러내고 있는 것이 바로 이 책이다. 그는 이 책에서 현대 공업문명을 그 근저에서부터 비판하고 있다. 슈마허가 제기한 산업사회의 문제점은 21세기에도 여전히 잔존하고 있고 신자유주의라는 흐름에 의해 더욱 심화되고 있다. 정치,경제,사회,문화 분야가 한쪽에서는 더욱 거대해지고 있고 다른 쪽에서는 더욱 파편화되고 있다.
유한한 자원을 무작정 써버리는 일, 인간의 노동력을 제대로 활용하지 않는 일, 대규모 조직을 무조건 선호하는 일 등이 비판의 대상이다. '성장' 만을 최고의 가치로 삼고 달려온 우리의 경제 개발도 그 비판의 표적에서 벗어나지 못하며, 따라서 그가 주장하는 '중간기술'과 '새로운 조직'의 문제를 숙고해 보아야 할 것이다. 부제가 보여 주고 있듯, 그의 주장은 경제 체계에 속박되어 버린 인간을 다시 주인공의 위치로 끌어올리자는 것이며, 그것만이 인간을 파멸의 길로부터 구해내는 방법인 것이다.
슈마허의 문제의식은 이반 일리히의 그것과 비슷한 점이 많다. 이반 일리히 역시 1970년대에 산업생산사회와 제도화, 그리고 거대 전문관료체계의 폐해를 지적했다. 일리히는 경제 뿐 아니라 교육, 의료, 운송, 노동 등 전반적인 산업사회의 문제점을 분석하여 "성장을 멈춰라!"라고 선언했다. 슈마허가 '중간기술'과 '인간 중심의 경제'를 제창했다면, 일리히는 '자율적 공생사회'를 제창했다. '작은 것이 아름답다'는 슈마허의 명제는 일리히의 대안과 연결된다. 나는 일리히의 방향에 좀 더 공감이 된다.
[ 2012년 12월 23일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