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름다운 삶, 사랑 그리고 마무리
헬렌 니어링 지음, 이석태 옮김 / 보리 / 1997년 10월
평점 :
구판절판


[서평] 헬렌 니어링(Helen Nearing) 저, 이석태 역 < 아름다운 삶, 사랑 그리고 마무리 : 자유로운 영혼 헬렌 니어링, 그 감동의 기록 Loving and Leaving thr Good Life >를 읽고 / 1997. 10., 248쪽, 보리

 

이 책도 법정스님이 <내가 사랑한 책들>에서 소개해주신 것이다. 법정스님은 그 책에 사회 일반의 통념과 관행 속에서 살아가는 사람들에게 다른 삶의 세계를 보여주기 위하여 많은 책을 소개했다. 헨리 데이비드 소울의 <월든>, <농부 철학자 피에르 라비>, 라다크 마을 <오래된 미래>, 호주의 원주민 <무탄트 메시지>, <나무를 심은 사람>, 인도의 사티쉬 쿠마르 <끝없는 여정>, 일본의 쓰지 신이치 <슬로 라이프>, <핀드혼 농장 이야기>, 야마오 산세이의 <여기에 사는 즐거움>, 윤구병의 <가난하지만 행복하게>, 후쿠오카 마사노부의 <짚 한 오라기의 혁명>, 아베 피에르의 <단순한 기쁨>, 존 프란시스의 <아름다운 지구인, 플래닛 워커> 등. 

그들은 특별하거나 유별난 사람들이 아니었다. 독실한 종교인도 아니고 뛰어난 철학자도 아니었다. 아주 평범한 사람들이면서도 세상을 바라보는 관점을 조금씩 바꾸기 시작했을 뿐이다. 이 책의 주인공인 헬렌 니어링과 스코트 니어링도 그런 사람들이라 할 수 있다.


"부자는 부와 여가, 헤아릴 수 없이 많은 기회를 누립니다. 가난한 사람들은 불행, 과로, 지저분한 환경에 짓눌려 삽니다. 부자는 기회의 천국에서 살고있는 반면 가난한 사람들은 불행의 지옥에 빠져있으며, 부자의 천국은 가난한 사람들의 지옥을 딛고 있습니다."(스코트 니어링) : 20대였던 1905년 어느 공개 강좌에서....

"속된 삶 - 악마에게 영혼을 팔아 성공하고 유명해진다. 양심을 지키는 삶 - 소명에 따라 행동하고 두려움이 없으며 정의롭게 된다. 성공은 부러움의 대상이 되고 유명함은 사람들의 기억 속에 남는 반면, 정의로움은 영원한 진리의 반석이 된다"<저마다의 것> : 스코트 니어링의 1908년 쪽지 메모 중에서...

 

헬렌과 스코트는 서로 존경하는 동반자로 만나 55년 동안 이 세상에 보탬이 되는 조화로운 삶을 살았다. 20세기 초 미국의 주류 문명에서 벗어나 자신들이 존중하는 가치를 추구하다가 점점 문명을 거부하게 되었다. 자신들의 삶을 행복하고 자유롭게 살다가 준비해 온 죽음을 맞아들이는 모습이 귀한 깨달음을 준다. 헬렌은 인류사회에서 '진정한 남녀간의 동반자'가 어떤 것인지를 스코트와 자신이 함께한 삶에서 보여주었다. 그리고 지속가능성이 불분명한 현대의 물질문명의 위기 속에서 두 사람의 삶이 하나의 올바른 대안을 제시했다는 것은 중요한 사실이다.

헨리 데이비드 소울이나 사티쉬 쿠마르 등에 관해 쓰여진 책을 읽다보면, 많은 경우 자연스러운 삶, 문명을 거부하는 삶을 살았던 이들은 독신이거나 홀로 섰을 때 가능한 것처럼 보이기도 한다. 그런 면에서 이 책은 자유롭고 자연스러운 삶이 남녀의 조화로운 삶과 함께 이루어질 수 있음을, 또는 진정한 동반자 관계를 통해 조화로운 삶이 가능함을 보여준다고 할 수 있다. 진정한 동반자 관계는 나이를 초월했다.(솔직히 말하면 나이 차이가 컸기 때문에 가능하지 않았을까 하는 생각도 들었다.) 그들의 '아름다운 삶'은 누구나 보편적으로 받아들여질 수 있는 삶의 지침을 담고 있다. 그리고 그러한 아름다운 삶의 중심에는 깊은 사랑이 존재하고 있었다.


"대다수 사람들은 창조와 개혁에 대해 언제나 조심스럽고 망설이며, 현상을 유지하고 싶어한다. 따라서 개혁자, 이미 알려진 길을 벗어나 가는 사람은 언제나 소수일 수 밖에 없고 끊임없는 반대와 비난, 질시의 대상이 된다. 그것은 창조적 사고와 행위에 따르는 희열에 대해 그거 치러야하는 대가의 일부이다"(스코트 니어링)

"희망을 가지고 여행하는 것이 목적지에 도착하는 것보다 나으며, 가장 위대한 성공은 일하는 것이다"(스코트 니어링)


1904년 미국에서 태어난 헬렌은 세계적인 바이올린 연주자의 꿈을 안고 열여섯 살에 유럽으로 건너간다. 그 곳의 신지학회에서 만난 크리슈나무르티와 헬렌은 서로 사랑하는 사이가 되는데, 유럽과 인도, 호주를 오가면서 6년 동안 이어진 그 사랑은 크리슈나의 동생이 죽은 뒤 서서히 빛을 잃는다. 크리슈나무르티는 '세계의 교사'로서 본격적인 활동을 시작하고 다시 미국으로 돌아온 헬렌은 스물네 살에 스코트 니어링을 만나 삶의 길을 바꾸게 된다.

헬렌보다 스물한 살이 위였던 스코트 니어링은 부유한 광산업자의 아들로 태어났지만 타고난 '비판적인 지식인'으로서 미국의 자본주의 체제와 그 문화의 야만성에 줄기차게 도전하다 대학 강단에서 두 번씩이나 쫓겨났다. 사회에서 고립된 스코트는 헬렌을 만나 새로운 삶을 시작한다. 두 사람은 가난한 뉴욕 생활을 청산한 뒤 바로 버몬트 숲에 터를 잡고 사탕단풍 농장을 일군다. 헬렌과 스코트가 그렇게 반 세기 동안 서로의 빈 곳을 채우며 함께 한 '땅에 뿌리박은 삶'은 수많은 이들에게 참으로 충만한 삶이 어떤 것인지를 보여 주었다. 스코트가 100세 생일을 맞던 날 이웃 사람들이 깃발을 들고서 왔는데 그 깃발 하나에 이렇게 쓰여 있었다고 한다. "스코트 니어링이 백 년 동안 살아서 세상은 더 좋은 곳이 되었다."


"당신이 일을 시작할 때 다음 한 가지를 분명히 해야 할 것이다. 곧 사람은 경제적인 상품이 아니라 사회적으로 중요한 존재라는 것이다. 그러면 현실 문제는 이 사실을 어떻게 증명하느냐이다"(스코트 니어링 1911) 

"나는 사회주의자, 평화주의자, 채식주의자가 되겠다. 나는 사교춤과 야회복을 포기하며 이것들로 대표되는 생활을 멀리하겠다. 나는 대중의 인기를 얻으려 애쓰는 강연자 노릇을 포기하겠다. 나는 사회복지, 공동의 가치, 공동 선을 높이는 일에 헌신하겠다"(스코트 니어링 1917)

"(제1,2차 세계대전에 대해)전쟁이란, 문명 국가들이 조직적으로 저지르는 파괴와 대량 학살이자, 제국주의 국가들끼리 벌이는 힘겨루기다. 생명과 사회의 부를 끔찍하게 손상시키며, 사회 변화를 가져오는 방안 가운데 가장 값비싼 대가를 치르는 것이다."(스코트 니어링)


헬렌은 이 책을 87세에 썼다. 헬렌 자신보다는 스코트 니어링의 삶과 반 세기에 걸친 두 사람의 사랑에 초점을 맞추고 있다. 탁월한 경제학자이자 사회주의자이며, 교육자이자 생태주의자인 스코트는 스스로 말한 것을 자신의 삶에서 그대로 실천한 보기 드문 사람이었다. 이 책 속에서 헬렌은 스코트와 함께 보낸 충만한 삶과 100세 생일을 앞두고 스스로 음식을 끊음으로서 평화롭고도 위엄을 간직한 채 맞이한 스코트의 죽음을 통해 사랑과 삶, 죽음이 하나임을 보여 준다. 헬렌은 조화로운 삶, 참으로 이 세상에 보탬이 되는 삶이 어떤 삶인지 온몸으로 보여 준 두 사람의 사랑은 "지금도 끝나지 않았다."고 말한다. 


"이상적인 삶은 어떤 대가를 치르기 마련이다. ... 그 이상이 관례에서 멀어질수록, 더 비싼 대가를 치른다. ... 당신의 이상이 정신적으로 활발하게 움직이며, 정직하고 진리에 따라 살고자 하면, 그 이상을 이루기위해 의식주마저 희생할 수 있다"(스코트 니어링) : 빈부격차와 제1차 세계대전을 반대하여 대학에서 축출당한 후(1922년)에...


이 책을 통해서 배운 것은 "아는 것만으로 끝나는, 실천이 없는 삶은 무기력하고 헛된 망상에 불과하다"(법정스님 소개글)는 것이다. 헬렌과 스코트는 자신들이 살 집을 직접 돌을 이용해 만들었으며, 농사를 지어서 먹을 것을 마련했고, 많은 물건이 없어도 풍요로운 삶을 누렸다. 한낮에 쏟아지는 햇빛만으로도 그들의 영혼은 충분히 무르익었다. 그들은 그것으로 충분했으며, 다른 사람들의 말에 귀 기울이되 거기 휩쓸리지 않았다. 스코트가 100세, 헬렌이 92세까지 장수(ㅋ)를 누린 것은 아마도 그들의 '아름다운 삶' 때문에 가능했을 것이다. 

"적극성, 밝은 쪽으로 생각하기, 깨끗한 양심, 바깥일과 깊은 호흡, 금연, 커피와 술과 마약을 멀리함, 간소한 식사, 채식주의, 설탕과 소금을 멀리함, 저칼로리와 저지방, 되도록 가공하지 않은 음식물,..."


아쉬운 것은 내가 스코트 니어링의 삶을 잘 모르기 때문에, 스코트의 입장에서 헬렌과의 삶을 어떻게 바라보았는지 알지 못하기 때문에 책을 읽은 후에도 헬렌의 이야기가 100% 다가오지 않았다는 것이다. 그리고 헬렌이 자신의 삶이나 철학보다 스코트의 그것을 위주로 책의 내용을 채우는 관계로 헬렌의 개별적인 삶이 잘 드러나지 않은 점이다. 이것을 어떻게 해석해야 할 지 잘 모르겠다. 다음에 시간을 내서 스코트 니어링의 이야기를 들어본 후 다시 한 번 읽어보리라...


[ 2012년 11월 11일 ]


댓글(0) 먼댓글(0) 좋아요(1)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