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제 민주주의에 관하여
로버트 달 지음, 배관표 옮김 / 후마니타스 / 2011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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로버트 달은 평생 민주주의 연구에 헌신해 온 미국의 21세기 대표적 정치학자로 알려져 있다. 그는 이 책에서 법인 자본주의로 인한 경제적 불평등이 민주주의의 위기를 불러왔다는 진단에 그치지 않고, 법인 자본주의에 대한 대안을 정교화하려 하고 있다.
사유재산권을 절대 불가침의 자연권으로 정당화하는 법인 자본주의의 이데올로기를 조목조목 비판하는 데서부터 시작해, 법인 자본주의에 대한 대안을 제시해 보겠다고 선언한 저자가 제기하는 질문은 다음과 같다. "국가에서는 인정할 수 없다던 권위주의적 통치 체제를 기업에 대해서 인정하는 이유는 무엇인가? 왜 기업은 민주화할 수 없는가?" 무엇이 미국 정치학계의 주류에 우뚝 선 노학자에게, 퇴직 이후 발간한 첫 책에서, 이토록 대담한 주장을 하도록 만든 것일까? 
이 책과 함께 읽은 김상봉 교수의 <누가 기업의 주인인가>에서는 철학적 분석을 통해 '노동자 경영권'의 근거와 정당성을 논증했다면, 이 책에서는 정치적 평등과 민주주의라는 관점에서 '노동자 경영권'의 정당성과 필요성을 역설한다. 두 사람은 논증의 출발점과 구조는 다르지만 결론은 동일하다. 다만, 김상봉 교수가 '노동자 경영권'이라는 개념을 사용한 반면 로버트 달은 '자치 기업'이라는 개념을 사용한다.

작년(2011년) 7월 28일 공정거래위원회는 자산 기준 5조 원 이상 55개 상호출자 제한기업집단의 주식 소유 현황 등을 분석한 결과를 공개했다. 조사 결과 38개 재벌그룹 총수 일가의 평균 지분율은 4.47%로 나타났다. 특히, 이 가운데 총수가 있는 38개 재벌그룹을 보면, 에스케이그룹(0.79%)과 삼성그룹(0.99%)은 총수 일가가 1% 미만의 지분으로 그룹을 지배하고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 총수 개인으로 보면 구자홍 엘에스(LS)그룹 회장이 0.04%, 신격호 롯데그룹 회장이 0.05%의 지분율로 그룹을 지배하는 것으로 조사됐다. 이건희 삼성그룹 회장의 지분율도 0.54%에 불과하다. 평균 5%도 되지 않는 주식 소유로 수백조 원대의 기업들을 한 가족이 또는 한 개인이 소유하고 있는 것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2010년, 한진 중공업 경영진은 경영 실적 악화를 이유로 170명을 정리해고한 다음날, 176억의 배당금을 나눠 가졌으며, 20억 원을 들여 용역을 투입, 농성 중인 노동자들을 폭력적으로 진압했다. 그리고 최근 6대 재벌기업에 정치인을 할당해 집중 로비를 벌이도록 한 전경련의 문건이 공개되어 새삼 충격을 던져 주었다. 여기에는 정치권을 향한 재계의 공공연한 로비뿐만 아니라 최고 경영자의 국회 청문회 불참까지 공모하는 내용이 포함되어 있었다. 이 두 가지 사건은 21세기 법인 자본주의의 얼굴을 보여 주는 대표적 사례다. 
과연 이와 같은 법인 자본주의에서 재벌 총수와 노동자는 정치적으로 평등하며 똑같이 정치적, 경제적 기본권을 보장받는 민주주의 체제에서 살아간다고 할 수 있을까? 2012년 들어 정치권에서 난무하는 '경제 민주화'가 실제로 가능하기 위한 조건은 무엇일까?

로버트 달이 책의 1장에서 토크빌을 빌어 지적하는 것 역시 바로 위와 같은 현실이다. 1831년 아메리카 대륙의 평등한 조건 속에서 미국의 민주주의를 바라보았던 토크빌은 평등이 자유를 위협할 것이라고 진단했지만, 오늘날 우리는 정반대의 상황에 놓여 있다. 법인 기업의 자유가 경제적 불평등을 심화시키고 이것이 정치적 자원의 불평등에까지 이어지면서 결국 민주주의가 허울에 불과한 것으로 되어 버린 사회가 바로 그것이다. 달의 분석에 따르면, 이런 불평등을 초래한 자유는 경제적 자원을 무제한으로 축적할 자유와 경제활동을 위계적 통치 구조를 지닌 기업으로 조직화할 자유이며, 따라서 오늘날 우리의 운명은 법인 기업의 자유에 맞서 평등을 보호할 대안을 모색하는 데 달려 있다. 

저자는 토크빌이 <미국의 민주주의>에서 제시한 시대적 조건과 문제의식을 기초로 토크빌이 고민하던 시대에서 270년이 지난 현대사회의 자유와 평등에 대해 문제제기한다. 
그 때 당시 토크빌은 미국 시민들의 '평등한' 정치적, 경제적 수준이 오히려 '다수에 의한 소수의 자유에 대한 침해'를 가져올 위험을 우려했다. 하지만 토크빌의 우려와 달리 미국의 상황, 그리고 자본주의의 상황은 꺼꾸로 진행되었다. 특히 '사적 자유'를 근거로 무한하게 확대된 '기업의 자유'는 경제 영역에서 민주주의를 후퇴시키고 자본과 경영자의 독재를 정당화시켜 버린 것이다. 그리고 기업의 '무한 자유'는 왜곡된 경제적 자유를 통해 '시민들의 정치적 삶에 영향을 미치는 경제적 불평등과 자원의 불평등을 심화,확대시켰다'고 주장한다.
따라서 그는 기업의 소유와 통제로 인해 나타나는 불평등을 줄임으로써 정치적 평등과 민주주의를 강화하는데 도움을 줄 수 있는 대안적 경제구조의 가능성을 모색하였고, 결론으로 '자치 기업'을 제시한다.

로버트 달은 민주주의와 정치적 평등, 그리고 경제적 자유에 대한 논증과 민주적인 경제 질서, 그리고 기업 내 민주주의에 대한 권리의 측면에서 자신의 논증을 펼친다.
저자는 '사적 자유'로부터 출발한 '사유재산권'이 기본권이라는 기존의 주장이 논증의 근거가 부족하거나 권리의 범위를 제대로 정의하지 못해 부적절함을 논리적으로 비판한다. 사유재산권은 최소한의 자원, 특히 생활에 필수적인 자원 채집, 자유와 행복 추구, 민주적 절차 그리고 기본권 실현에 필요한 자원들에 대한 권리를 보장할 뿐이라는 것이다. 따라서 시민의 대표들은 "민주적 절차를 통해 민주주의, 공정성, 효율성 등의 가치를 추구하고, 바람직한 인간성을 함양하며, 인간다운 생활을 영위하는 데 필수적인 최소한의 개인적 자원을 확보할 수 있도록 기업을 어떻게 소유하고 통제할 것인지 결정할 수 있는 권리가 있다"고 주장한다.
그리고 가능한 대안으로써 '기업에서 일하는 모든 사람들이 집단적으로 소유하고 민주적으로 통치하는 기업 체계', 즉 '자치 기업'을 제안한다. 그는 자치 기업이 "정의와 민주주의라는 가치를 신장시키는 데 공헌하고 시민들 간의 이익, 목표, 관점, 이데올로기 등의 대립을 일소해 주지는 못하지만, 이익 갈등을 줄여주고 모든 시민들이 국가 통치에서 정치적 평등과 민주적 제도들을 유지하는 데 대한 동등한 이해관계를 갖도록 해줄 것이고, 공정성의 기준에 대한 좀 더 확고한 합의에 이를 수 있도록 해줄 것이다"라고 말한다.
기업 내 민주주의에 대한 권리라는 측면의 논거는 단순한 논리로 출발한다. 그것은 "만약 국가 통치에서 민주주의의 정당성을 인정한다면 기업 통치에서도 역시 그 정당성을 인정해야 하며, 기업 통치에서 민주주의의 정당성을 인정할 수 없다면 국가 통치에서도 그 정당성을 인정할 수 없다.(p.120)"이다. 

해방 후 70년 동안 한국사회를 지배한 상류층 기득권자들은 미국이라는 나라를 맹목적으로 선호하는 경향이 있다. 그들이 추종해 마지 않는 미국 민주주의의 내용과 역사를 알기 위해 참고할 만한 책은 알렉시스 토크빌의 <미국의 민주주의>다. 그래서 로버트 달이 <미국의 민주주의>를 자신의 논증을 위한 자료로 선택했다는 것은 한국의 주류 기득권층이나 주류학자들에게 의미가 있다.
토크빌은 정치적 평등과 민주주의, 자유가 미국이라는 공화국의 가장 중요한 가치로 보았다. 그리고 그 가치를 위해 네 가지가 요인을 강조했다. 네 가지는 "1. 경제적 풍요나 물질적 번영의 확대, 2. 권력과 사회적 기능들이 상대적으로 독립된 다수의 결사체, 조직, 그리고 집단으로 분산되는 것, 3. 헌법에 의한 권력 집중의 제한, 4. 사람들의 관습 및 문화(p.55~58)"다.
한국의 민주주의가 취약한 이유는 아마도 네 가지 모두 부족하기 때문일 것이다. 특히 토크빌이 제기한 두 번째, 즉 '독립된 다수의 결사체'는 한국사회의 민주주의에서 반드시 환기시켜야 할 문제라 할 수 있다. 한국은 종교적인 부분이나 동창회, 향후회 같은 학연, 지연을 제외하고는 정치, 직업, 경제, 사회, 문화 부분에서 '독립'된 '다수'의 '결사체'가 턱 없이 부족하기 때문이다. 이런 점에서 보면, 한국의 민주주의를 실질적으로 강화시키려면 자발적인 독립 결사체로써 정당, 후원회, 노동조합, 농민회, 직업조직, 직능조직, 계급조직, 계층조직, 시민단체, 문화단체 등에 대한 국가적, 제도적 지원이 훨씬 강화되어야 함을 알 수 있다.
18대 대통령 선거가 한창인 요즘, '빅3'로 불러지는 박근혜, 문재인, 안철수 후보의 정책과 공약을 살펴보면 토크빌이 이야기하는 '민주주의의 조건'에 한참 밑도는 수준이라 할 수 있다. 

또한 토크빌은 서로 밀접하게 연관되어 있는 두 가지 종류의 평등을 강조했다. 그것은 '정치적 자원의 평등'과 '권력의 평등'이다, 토크빌이 말하는 정치적 자원의 평등은 "정부에 대한 시민으로서 법적 권한 뿐만 아니라 지식과 부, 소득, 사회적 지위에 있어서도 어느 정도 평등한 상태에 도달해야 한다고 지적했다. 그는 이런 정치적 자원들이 어느 정도 평등하게 분배된다면 권력 배분, 즉 정부를 통제하는 권력의 배분에 있어서도 대체로 평등해질 것"(p.18)이라고 생각했다. 다시 말해 사회경제적 평등의 달성 정도가 정치적 평등의 달성 정도에 밀접하게 연관되어 있음을 말한 것이다.
요즘 한국 정치계에서는 투표시간 연장에 대한 논란이 뜨겁다. 억압적인 기업문화와 열악한 노동조건, 자영업자 등을 고려할 때 투표시간 연장은 충분히 필요하고 의미있는 조치라 할 수 있다. 하지만 '유권자가 누구를, 어떤 정당을 자신의 어떤 판단과 기준으로 선택할 것인가'라는 문제에 부딪히면 투표시간 연장은 필요조건일 뿐이지 충분조건까지는 아니라고 말할 수 있다. 하루하루 먹고 사는 문제에서 벗어나지 못하는 유권자들, 고용과 소득이 불안정한 비정규직들, 정보와 언론에서 소외되는 저소득층은 투표시간을 몇 시간 추가로 보장해 준다고 하여 자신의 이익과 이해관계를 기준으로 정치적 입장이나 의견을 가지기 어렵다는 것은 분명한 사실이다.
투표권만 주어지면 정치적으로 평등하다는 한국사회의 일반적인 인식이 얼마나 부족하고 본질을 꿰뚫지 못하는 것인지 알 수 있다. 이 문제는 정치적 민주주의의, 경제적 민주주의의 본질적인 내용과 관련이 있다.

아무튼, 김상봉 교수의 '노동자 경영권'이나 저자의 '자치 기업'이 당장 한국 경제영역에서 거론되기 어렵지만 앞으로 꾸준하게 문제제기하면서 일반적인 '상식'과 '인식'을 고쳐가야 할 것이다.

* 인상 깊은 문장 :
- 토크빌과 그 이전 사람들이 미래에 나타날 새로운 경제 질서가 어떤 모습일지 제대로 예상했더라면, 평등과 자유의 문제를 아마도 다르게 보았을 것이다. 과거의 시각에서는 시민들 사이에서의 평등이 자유를 위협했다면, 새로운 현실에서는 법인 기업의 자유가 오히려 시민들의 정치적 삶에 영향을 미치는 자원의 불평등을 조장했기 때문이다.(p.11) 

- 미국인들은 법인 자본주의가 아닌 다른 대안이 과거 민주주의에 헌신했던 자신들의 삶에 더 부합하지 않을까 끈기 있게 자문해 본 적이 결코 없었다.(p.85) 

- 기업도 국가와 마찬가지로 통치자와 피통치자 사이에 권력관계가 존재하는 정치 체계다. 그렇다면 국가와 마찬가지로 기업 내의 통치자와 피통치자 간의 관계도 민주적 절차의 기준을 따라야 한다고 주장하는 게 맞지 않을까?(p.124)

- 기업이 쇠퇴할 때 노동자들이 감수해야 할 고통이 투자자들이 겪는 고통보다 훨씬 더 크다는 점을 부정할 수 없다. 왜냐하면 돈 많은 투자자들이 시황에 따라 주식시장을 드나드는 것보다 노동자가 한 직장을 그만두고 구직 시장에서 새로운 직장을 구하는 것이 훨씬 어렵고, 손해도 크기 때문이다. 따라서 앞을 내다보는 눈이 웬만큼 있는 노동자라면 합리적인 투자자나 경영자만큼, 아니 그 이상으로 장기적인 효율성에 관심을 가질 것이다.(p.132)

- 어떤 소유 형태가 좋을지 판단하기 전에 그것이 자본주의적인지 사회주의적인지부터 따지는 사람들이 있다. 그런데 그 질문이 본질적으로 중요한 질문일까? 정말 중요한 질문은 소유 형태에 어떤 꼬리표가 붙어 있는지가 아니라 그 소유 형태가 사람들이 자신의 기본 가치를 실현하는 데 얼마나 도움이 되는가이다. 자본주의에 집착하는 사람들은 자치 기업 체계가 자본주의로 분류되지 않으면 자치 기업 체계를 인정하지 않을 것이다. 사회주의에 집착하는 사람들도 마찬가지다. 굳이 그렇게 단순하고 융통성 없는 이데올로기적 관점으로 따지자면, 협동조합 소유는 이쪽에 속할 수도 있고, 저쪽에 속할 수도 있다. 그리고 양쪽에 속할 수도 있고, 어느 쪽에도 속하지 않을 수 있다.(p.161)

- 일터에서의 자치 문제는 그 결과를 보고 정당성을 찾을 필요도 없으며 국가 통치에서 자치가 당연한 권리이듯 일터에서도 자치는 당연한 권리이기 때문에 정당하다는 것이 내가 논증하고자 하는 것이다. 국가 통치에서 민주적 절차가 불완전하다고 해서 민주주의를 버리고 수호자주의로 가야 한다는 주장이 어불성설이듯이 기업 통치에서 민주적 절차가 불완전하다고 해서 수호자주의 제도를 도입하는 것이 정당하다고 볼 수는 없다.(p.163) 

- 경제적 자유도 여타 자유들 가운데 하나이다. 일반적으로 미국인들은 경제적 자유가 개인적이고 양도할 수 없는 재산권도 포함한다고 이해해 왔다. 소유권을 기업에 적용해 보면, 이는 국가가 정해 놓은 한계 내에서 기업을 통치할 권리를 수반한다. 과거 농장과 소기업의 운영을 정당화하던 소유권의 논리는 규모가 큰 법인의 통치에까지 확장되어 비민주적 통치를 정당화하고 합법화했으며, 이는 거의 통제할 수 없는 권위의 지배 아래 일하는 모든 이들의 대부분의 삶에 깊숙이 침범해 들어갔다. 그리하여 미국인들은 국가 통치에서는 용납할 수 없다던 통치 체계를 기업 통치에서는 바람직한 것으로 받아들이게 된 것이다.(p.172)

[ 2012년 11월 02일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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