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통령의 자격 - 국가 명운을 결정짓는 2012년 대선의 필독서
윤여준 지음 / 메디치미디어 / 2011년 12월
평점 :
절판


저자는 2002년 대한민국 대통령 선거 당시 이회창 한나라당 대통령 후보의 선거 전략가 역할을 했다. 이후로 '범보수의 제갈량', '한나라당의 전략통', '대한민국의 장자방'이라는 별칭을 얻고 있다. 2002년 대선에서는 패배했지만 그 이후의 선거에서는 연전연승을 거두었다. 그의 주요 경력을 살펴보면, 종합경제일간지 재경일보(www.jknews.co.kr)회장직을 역임하고 현재 지방자치를 연구하는 한국지방발전연구원 이사장(www.kldi.re.kr),
2004년 한나라당 선거대책위원회 상임부본부장, 2003년 한나라당 여의도연구소 소장, 2002년 한나라당 중앙선거대책위원회 미디어대책위원회 위원, 2000년-2004년 제16대 국회의원 1998년 한나라당 총재 정무특보 등을 엮임했다.

 

그런 저자가 지난 9월 올해 대통령 선거에서 유력한 야권 후보인 민주통합당 문재인씨의 선거캠프로 영입되었다. "왜?"라는 질문을 하지 않을 수 없다. 막연하게 '국민통합'이라는 명분은 어불성설이다. 한국사회는 '국민이 분열'된 것이 아니라 '정치권'과 '언론'이 분열되어 있는 것이고, 5%의 기득권과 정치권이 95%의 대다수 국민과 민중을 분열시키고 있을 뿐이기 때문이다.
그렇다면 한나라당의 전략통이 변절하거나 변심하여 야당의 캠프로 들어온 것인가? 이에 대한 설명은 신문기사 몇 쪼가리로 알 수 없기 때문에 그가 최근 발간한 책을 읽지 않을 수 없었다.

 

 

먼저, 윤여준씨는 서문에서부터 자신의 논리 전개에 적용한 객관성과 공정성의 한계를 보이고 있다. '합법적 폭력의 행위 주체'로서의 '국가'를 강조함으로써 의사결정 과정과 국가의 주인인 유권자의 중요성에 대해 소홀하고 있고, '인민주권'을 거론하지만 국가운영의 원리로 내세우지 못하여 국가주의와 관료중심의 '통치'를 방조할 가능성이 크다고 할 수 있다.

그는 "해방 이후 자유민주주의가 합의되었고, 독재 치하에서도 전체적으로 자유민주주의를 지향하였다"고 말하지만, 실제 한국의 현대사에서 자유민주주의에 대한 합의는 1987년 6월 항쟁 이후 개헌으로 이루어졌다고 할 수 있다. 즉, 그 이전에는 한국사회에서 통용된 이념은 반공주의와 숭미사대주의, '잘살아보세'에 불과하다. 특히 박정희 군사정권 체제와 유신체제는 독일의 히틀러식 군사파시즘과 왕조체제를 추구했다고 할 수 있다. 윤여준씨의 말은 자칫하면 박근혜 후보의 "내 아버지의 꿈은 복지국가였다"라는 궤변이 성립가능하게 만들 수 있다.
또한 저자는 '정치권의 극한 대결'이 어떤 이유로 어떤 구체적인 모습으로 이루어져 있는가에 대한 사실관계 없이 정치 혐오만 강조한다. 지금까지 권위적이고 일방통행식 정치로 상대 정당과 유권자의 거센 반발을 일으킨 것이 누구인가? 국회에서 사전 협의나 공론화 과정 없이 국회 본회의 날치기를 한 측이 어디인가? 이 문제를 자세히 살펴 보면 답이 나온다. 한국 현대정치사 중 18대 국회에서 한나라당의 날치기가 107건이나 되는 등 보수정당이 극한대결을 주도해 왔음을 알 수 있다. 즉, 저자는 '양비론'을 통해 한나라당과 새누리당을 편들고 있는 셈이다.

 

 

본론에 들어가도 윤여준씨의 한계와 오류는 다수 발견된다. 저자는 특이하게도 사회민주주의 등 진보진영의 이념과 정책의 존재를 인정한다. 이 부분은 말 뿐이기는 하지만 긍정적이 볼 수 있다. 물론 사회민주주의 등 진보적 이념의 실현 가능성에 회의적이라 분석한다. 하지만 지금까지 보수진영의 이념과 정책이 실천을 통해 실패로 평가되었으므로 진보진영도 실천해본 후 평가받아야 한다고 생각하기에 부적절해 보인다.

저자는 국민의정부와 참여정부가 '진보 정부'라고 평가하고 싶겠지만, 두 정부는 사회민주주의 등 진보적 이념에 근거하지도 않았고 실제 정책 추진도 신자유주의와 형식적 민주주의가 주류를 이루었기 때문에 '진보 정부'라고 평가하는 것은 적절하지 않다. 김대중, 노무현 정부는 '민주정부' 정도가 적당한 표현이라고 생각한다.(아주 보수적이거나 우편향일 경우 그 왼쪽에 존재하는 이념을 모두 싸잡아 진보라 인식할 수는 있다. 이는 최근 일부 수구우익 진영이 박원순 시장과 안철수 후보에 대해 '종북좌파'라고 주장하는 것과 맥락이 같다.)

 

 

저자는 '리더쉽'이라는 정치적 용어를 사용하는 대신 '스테이트크래프트(통치 리더쉽)'이라는 개념을 제시한다. 그런데 그의 '스테이트크래프트'는 인민주권에 기초하지 않고 구성원들을 통치, 관리, 육성하는 개념으로 설정하고 있다. 따라서 인민주권이 아니라 통치-피통치로 대통령과 인민을 관계시켜 민주주의의 확장성과 가능성을 애초에 제한시킨다. 전근대적인 사고와 현대적인 시대정신 사이에서 방황하고 있는 셈이다.

그리고 그는 정치체제, 정치적 상황, 국가운영을 이야기하면서 실제로 정치권과 유권자 사이에서 커다란 영향을 미치는 언론, 관료, 지식인, 경제인, 학자들을 무시하여 정치와 리더쉽의 실체에 접근하는 데 실패한다. 특히 공정언론 상실에 대한 지적이 없기 때문에 현대 정치의 작동구조에 대한 체계적인 인식이 부재함을 드러내고 있다.

저자가 안철수 후보의 캠프에 합류한 이헌재씨나 몇몇 학자들과 다른 점은, 그가 '87년 체제'를 설정하는 감각을 가지고 있다는 것이다. 그러면서 '87년 체제'가 정치권에 '흑백논리'를 가져왔다고 주장한다. 그러나 그는 1987년 전후 흑백논리를 이끌어 온 집단은 항상 민정당-새한국당-한나라당-새누리당과 보수언론이었다는 사실을 부정하거나 무시하고 있다. 실제 지금도 대구 등지에서는 일반 유권자가 '김대중은 빨갱이. 문재인과 안철수도 빨갱이'라고 애기할 정도다.

 

 

이 책은 '대통령 자격론(자질론)'이 주요 발간 목적이다. 저자는 대통령의 자질로 몇 가지를 제시한다. 그 중에서도 보수진영이나 우파진영에서 우월해야 할 대북관, 안보관의 기준이 크게 부실하다. 대북관의 경우, 최대 현안을 평화와 공존이 아닌 북핵과 견제로 둠으로써 북핵 문제 및 남북관계 처리과정에서 약속을 지키지 못한 측이 미국과 남한이라는 사실을 왜곡한다. 그리고 안보관을 말하지만, 지난 15년을 돌이켜보면 민주정부 10년의 안보가 김영삼 정부와 이명박 정부 10년보다 평화롭고 안정적이고 튼튼했음을 인정하지 않는다.

저자의 자질론에 근거하여 현재의 대통령 후보들을 평가해 보면, 적어도 새누리당의 박근혜 후보는 '불가'하다고 할 수 있다. 그래서 문재인 후보의 캠프로 들어갔는지 모르겠지만...ㅎ

 

저자가 역대 대통령을 자신의 '자질론'에 근거하여 평가한 것을 보면, 문재인 후보가 왜 저자를 '국민통합추진위원회' 위원장으로 영입했는지 도저히 이해할 수가 없다. 윤여준씨의 역사인식은 박근혜 후보에 비해 특별히 낫다고 말할 수 없다.

저자의 박정희에 대한 평가는 거의 '찬양' 수준이다. "박정희의 강렬한 공적 열망과 치열한 문제의식, 개인적 물적 욕망을 자제한 헌신적인 자세, 그리고 현장을 장악하면서 끊임없이 관계자들을 독려하는 스테이트크래프트는 오늘날에도 충분히 귀감이 된다.", "그 역사 인간적으로 적지않은 약점을 안고 있으며 공인으로서도 많은 시행착오를 겪은 지도자였다.", "그러나 항상 공적인 것을 앞세우면서 진정성이 있고 성실하고 매사에 두려워하는 진지한 자세로 국정에 임한다면 자신과 시대의 한계, 그리고 좁은 이념의 폭을 뛰어넘을 수 있다는 것을 보여주었다.", "아무리 상황이 불가피하였다 하더라도 시대정신을 정면으로 거슬러 또 자신의 육체적,정신적 한계를 뛰어넘어 장기간 스테이트크래프트를 성공적으로 발휘하는 것은 불가능하다는 반면교사의 교훈도 망각해서는 안될 것이다."(p.321)
그리고 김대중 전대통령과 노무현 전대통령에 대한 평가는 거의 '폄하' 수준이다. 노무현 전대통령에 대한 평가를 요약하면, "참여정부는 양김 이후 지역주의적,권위주의적 리더쉽을 극복하고, 새로운 민주적 국가운영의 원리를 제시하고 실천해야할 과제를 부여받았다.", "그 점에서 노 전대통령은 올바른 문제의식을 갖고 있었으며, 특히 사회적 약자 문제를 국가운영의 핵심과제로 부각시켰다는 점에서 큰 의미를 부여받을 수 있다.", "그러나 소수파 출신으로서 정치적으로 외롭고 이념적으로 비타협적이며 계층적으로는 현상타파적인 의식의 한계를 극복하지 못한 결과, 급진적 사회정책과 현실적으로 불가피한 신자유주의적 개혁노선 사이에서 균형을 잡지 못한 채 방황하였다.", "국가와 헌법, 특히 대통령직과 스테이트크래프트에 대한 올바른 이해를 갖지 못한 채 이념과잉의 아마추어리즘에 토대를 둔 코드정치, 편 가르기 정치, '뺄셈의 정치'로 일관한 결과 새로운 국가운영 전략을 제시하지도 새로운 국가운영의 주도세력울 창출하지도 못하였을 뿐 아니라 국정 자체를 혼란과 갈등으로 몰아넣었던 것이다.", "문제는 그의 실패가 한 정권의 실패로 끝나지 않고 향후 국가운영에 엄청난 혼란과 후유증을 안겨주었다는 사실이다."(p.494)로 되어 있다.

 

 

이 책을 나서 저자를 문재인 캠프에 영입한 결정에 대해 내가 내린 결론은 무척 부정적이다. 기본적으로 '범보수'의 전략통으로 평가되는 인사, 전두환 - 노태우 - 김영삼 정부의 청와대에 근무하면서 17년간 한국의 정치경제의 민주화에 역행하는데 일조해온 윤여준씨를 문재인 후보가 받아들이는 것을 인정하기 어렵다. 이 책을 읽어보는 중에도 전체적으로 정치를 '통치'로 인식하고 유권자를 주인이 아니라 '관리대상'으로 생각하는 그가 문재인 후보의 정책이나 국정운영에 도움이 될 지 의문이다. 

 

 

[ 2012년 10월 21일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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