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의자놀이 - 공지영의 첫 르포르타주, 쌍용자동차 이야기
공지영 지음 / 휴머니스트 / 2012년 8월
평점 :
지난 9월 공부모임이 끝나자 참석자 한 분이 <의자놀이>를 읽었냐고 물었다. "아직요..." 그러자 그 분이 <의자놀이>를 선물하겠다고 말씀하셨다. 자신은 쌍용차 문제를 적극 알리기 위해 <의자놀이>를 선물하고 있다고. 나에게는 책을 읽은 후에 공감이 되면 다른 사람에게 선물해주기를 부탁했다. 그러겠다고 대답하고 며칠 후 집으로 배달되어온 <의자놀이>를 읽기 시작했다.
사실 나에게는 쌍용차 문제가 '용산 참사'와 더불어 깊게 생각하고 싶지 않은 기억 중 하나다. 2009년 8월 경찰이 쌍용차 건물 옥상에서 무자비하게 진압하는 장면을 인터넷에서 잠깐 보았을 때, 나는 그 해 1월 '용산 참사'의 참혹한 영상이 기억났다. 그리고 1986년 11월 초 건국대 교양과학관 옥상에서 벌어진 아비규환이 무의식에서 떠올랐기 때문이다. 1986년 가을 옥상에서도 헬리콥터의 굉음과 프로펠러의 강풍, 끝없이 쏟아지는 차가운 물줄기, 숨쉬기도 불가능한 최루탄 냄새, 백골단의 군화발과 몽둥이가 춤을 추웠다. "여기서 죽겠구나"라고 생각했을 정도였다.
하지만, 이 책을 읽은 후 1986년 건국대 사건은 2009년 쌍용차 사태는 차원이 다르다는 것을 알았다. 1986년 사건은 그냥 3박4일의 농성과 무자비한 진압, 대규모 구속과 실형, 학생운동에 대한 색깔 씌우기로 끝나고 말았다. 2009년 쌍용차 사태는 8월은 하루동안의 무자비한 폭력 뿐 아니라 진압일 전후 오랜기간 동안 '인간의 바닥을 무너뜨리는' 교활하고 천인공노할 수준의 폭력이었다. '폭력'이라는 단어로 밖에 표현할 수 없는 나의 표현력이 짜증날 정도로...
국가와 자본과 언론과 사법부와 회계전문가와 정치권은 한 몸이 되어 쌍용차 노동조합과 해고자들에 대한 오랫동안 야만적인 테러를 자행한 것이다. 한국전쟁을 전후하여 벌어진 제주도와 거창의 양민학살사건의 21세기 버전일 것이다. 자본과 경영자들은 회계법인과 짜고 처음부터 끝까지 노동자들에게 거짓말로 일관하며 사법부와 정부와 언론에 거짓 정보와 자료를 제공하고 노동자 사이를 끊임없이 이간질 시켰고, 노동부와 경찰과 검찰은 노동자들에게 부당하고 불법적인 협박과 폭력을 자행했고, 사법부와 정부와 언론은 자본가들의 주장을 의심 없이 그대로 인정했다. 쌍용차의 자본가, 경영자는 국내인도 아닌 중국, 인도인들이었다.
"어느 날 자다가 꿈을 꿨는데 꿈에서 제가 자살을 하는 거예요. 그게 꿈인데 제가 우는 거예요, 자면서."
"파업 때, 남편 아는 사람이 자신을 향해 새총을 겨누고 있었대요. 그 생각만 하면, 그 얘기만 하면 자꾸자꾸 눈물이 난다고 하더라고요. 아, 얼마나 무섭고, 얼마나 기가 막혔을까."
"우리 애들한테 제가 폭력을 행사합니다. 감정이 앞서면서 가끔씩 그런 게 나타나거든요. 그게 제일 두렵습니다. 이래선 안 되겠다는 생각을 하면서도 순간순간 통제가 잘 안 됩니다."
이 책 속에는 파편으로 흩어진 22개의 죽음과 해고자 2,646명의 전염병처럼 번진 씻을 수 없는 상처와 고통들이 담겨 있다. 2009년 쌍용차 노동자들, 유령처럼 스며든 정리해고 명단, 거기에 속한 이들은 발버둥 칠 수밖에 없었다. 기준도 상식도 없는 일방적인 해고에 삶의 터전을 잃은 노동자가 절실하게 물으며 몸부림치는 것을 이기적이라고 몰아세울 수 있을까. 77일간의 파업은 이들에게 인간에 대한 환멸과 소통할 곳 없는 고립감을 가슴 깊이 느끼게 했다. 그리고 죽음의 행렬은 시작되었다. 그중에는 해고 노동자도 있었고, 해고당하지 않은 노동자도 있었고, 해고 노동자의 가족도 있었다. 해고의 영향은 불행히도 당사자에게만 머물지 않고 전염병처럼 퍼져나갔다.
아직도 많은 사람은 외상 후 스트레스 증후군에 시달리고 있다. 심리치유센터 ‘와락’의 정혜신 박사는 "쌍용차 노동자의 경우, 정신과 의사를 하며 접한 최악의 사례이며, 이는 베트남전에서 돌아온 후 이상 증세를 보이는 사람과 비슷하며 그냥 놓아둘 수 없는 아주 심각한 상태"라고 말한다. 이제 더는 이들이 죽음의 기운에 전염되지 않도록 사회가 나서야 한다. 국가가 나서야 한다. 국회와 법원이 나서야 한다. 그리고 가해를 한 주체인 국가와 자본가, 경찰 뿐 아니라 지켜만 보았던 우리 모두에게도 책임이 있다.
작년(2011년) 2월 26일, 쌍용자동차 13번째 희생자가 나왔다. 그간 많은 사람들이 몰랐거나, 알았어도 그냥 지나쳤을 쌍용차 노동자의 죽음이 이번엔 작은 파장을 일으키며 알려졌다. 10개월 사이 부부가 모두 죽고 졸지에 고아가 된 남매의 이야기는 형언할 수 없는 충격을 주었다.
파업과 해고는 뉴스 한 자락에 늘 있어 왔는데, 왜 쌍용자동차 노동자들은 단시간에 이렇게 많은 사람들이 죽어가는 것일까? 작가 공지영은 이 죽음을 접하고, 그 후 이어진 죽음의 행렬을 보면서 이제 지켜보기만 해서는 안 된다고 생각했다. 쌍용자동차 사태를 "또 다른 도가니"라고 규정하며, 자신이 가장 잘할 수 있는 일을 통해서 이 사건을 알리는 것이 작가로서 할 일이라고 생각했다. "더 이상의 죽음을 막아야 한다."
이 책은 그녀가 쌍용자동차 77일간의 뜨거운 파업의 순간부터 22번째 죽음까지를 작가적 양심으로 써내려간 첫 르포르타주다. 잔혹한 게임은 끝났으나, 실체를 알 수 없는 유령 같은 자들과의 싸움은 지금도 계속되고 있다. 작가는 이 책을 통해 동시대를 살아가는 사람들에게 결코 남의 일일 수 없는 이 싸움에 시민적 양심으로 함께할 것을 요청한다. 용기 내서 같이 걸어가자고 뜨거운 손을 내민다.
작가 공지영이 쌍용자동차 사건을 '의자놀이'로 규정한 것은 그 사건의 핵심이 '1%를 위해 99%끼리 싸움을 붙이는' 자본가의 모략이기 때문이다. 정리해고는 노동자들끼리 생존을 걸고 싸우는 잔혹한 의자놀이와 같다. 동료를 밀쳐 엉덩이를 먼저 의자에 붙이지 못하면 자신이 나락으로 떨어져야 하니까. 작가는 쌍용자동차 노동자들의 죽음을 따라가는 내내 곳곳에서 의자놀이가 벌어지는 현장을 마주한다. 자본은 무척이나 악랄하게 그들의 이익을 위해 생명을 건 의자놀이를 수시로 벌인 셈이다.
쌍용자동차는 참여정부의 결정으로 2005년 중국 상하이차에 이미 투입된 국가 세금의 절반 값으로 서둘러 매각되었고(1조2천억 국고 투입 - 5,900억에 매각 - 실제 투입현금은 1,200억) 기술 유출이 본격화됨과 동시에 정리해고가 단행되었다. 그 과정에서 77일간의 옥쇄파업과 인간사냥과도 같은 경찰의 진압이 있었고, 죽음이 잇달았다. 그 후 2011년 쌍용자동차는 인도 마힌드라사에 다시 매각되었고, 복직 약속은 온데간데없이 사라졌다. 삶의 터전을 잃은 노동자들은 실체를 알 수 없는 유령 같은 자들과의 싸움을 지속해야 하는 암담한 상황이다.
한국사회는 2000년대 들어서 시민의식도 크게 성장했다. 부당한 일에 대해 일인시위도 하고 함께 촛불을 들었다. 억압하는 권력자에게 적극적으로 저항하기도 했다. 하지만 정치권은 무능하고 시민의 힘은 미약했고 더 용기 있게 앞선 사람들은 남다른 고통을 당했다. 용산 참사, 한진중공업 사건, 쌍용차 사건 등. 그렇다면 반복됐던 우리 시대의 문제를 다른 방법으로 접근하여 풀 수는 없을까. 이번 쌍용차 르포르타주 <의자놀이>는 그런 마음들이 모여 한 권의 책을 완성했다는 점에서 더욱 의미가 크다.
쌍용자동차 문제가 단순히 특정 집단의 문제가 아니라는 데 의견을 같이한 작가 공지영, 출판사 휴머니스트, 의학박사 정혜신과 심리치유센터 ‘와락’, 칼럼니스트 하종강, 우희종, 조희연, 시인 송경동, 정호승, 변호사 김태욱, 여러 매체의 기자 등 각계각층의 인사들이 자신의 재능을 내놓는 데 주저하지 않았다. 인세나 수익금의 일부를 기부하는 사례는 있었지만 참여한 모든 이들과 출판사가 전액을 기부하는 사례는 처음이다.
하지만 이 책의 시작은 지금부터다. "우리는 이제 독자 여러분께도 함께하자고 손을 내민다. 이 책의 인세, 판매 수익금은 쌍용자동차 해고 노동자에게 전해진다. 책 한 권을 사면 독자 여러분도 4,000원가량을 이들에게 전하는 셈이 된다. 제2, 3의 의자놀이를 막고 권력을 가진 이가 비상식적인 일을 자행하지 못하도록 시민 권력이 감시의 눈을 빛내야 할 때다. 다시는 그들이 제멋대로 잔혹한 ‘의자놀이’를 기획하지 못하도록."
결국 쌍용차 해고자 문제는 2012년 한국사회를 특징지을 수 있는 '화두'의 하나라 할 수 있다. 과거와 현재와 미래를 모두 말해주고 있는... 쌍용차 사태는 한국 자본주의 비극의 축소판이다. 어느 가업에서든 일어날 수 있다. 아니 지금도 알게 모르게 진행되고 있을 것이다. 대기업 군에 속하는 쌍용차 노동자를 그렇게 학살하는 구조인데 중소기업 노동자나 비정규직 노동자는 말하여 무엇 하겠는가.
또한 쌍용차 문제는 국가의 문제, 국가권력의 문제, 자본의 문제, 노동의 문제, 사법과 법치의 문제, 공동체의 문제, 함께 사는 문제, 사람의 문제다. '국가가 먼저냐 시민이 먼저냐'라고 따져볼 수도 있고, 차여정부의 과오를 다루는 문제이고, 그 이전에 정부와 사법부가 왜 존재하는가에 대한 질문이기도 하고, 사람이 수단이냐 목적이냐의 관점의 문제이고, 서로 모른채 하며 잘 살아보려고 애쓸 것이냐 함께 살기 위해 노력할 것이냐의 문제이고, 외국자본 유치의 근거가 무엇이냐를 물을 수도 있다.
이 문제들에 대한 해답은 먼저 각자 구해야 할 것이다. 그리고 함께 이야기하기를 바라는 마음이다.
이 책을 읽은 후, 내가 쌍용차 문제에 동참할 수 있는 길을 찾아보니 별로 없었다. 독후감이야 내가 늘 쓰는 것일 뿐이고, 쌍용차 해고자를 위한 모금이나 '와락센터' 치료비 기부는 이미 참여했다. 공지영씨처럼 대한문 앞 농성장에 찾아가 위로를 드릴 만큼 적극적이지도 못하다. 그렇다면 내가 할 수 있는 일은 쌍용차 사태의 전모와 본질을 주변에 널리 알리는 것이고, 내가 선물받을 때 약속한대로 주변 사람들에게 <의자놀이>를 사서 읽기를 권하는 것. 그래서 책을 모두 읽은 후에 인터넷 서점에서 3권을 주문했다.
[ 2012년 10월 16일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