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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골의사 박경철의 자기혁명 - 시대의 지성, 청춘의 멘토 박경철의 독설충고
박경철 지음 / 리더스북 / 2011년 9월
평점 :
안철수 교수에 대해 관심을 갖기 전에는 '시골의사'로 유명한 박경철 원장에 대해 관심이 없었다. 언론이나 인터넷에서 묘사되는 박경철씨는 '시골의사' 출신으로 '주식투자 등 실물경제에서 경제적으로 성공한 사람'이었다. 그가 발간한 책들도 <시골의사의 부자경제학>이나 <시골의사의 주식투자란 무엇인가>와 같은 실물경제 성공전략이었다. 실물경제에 뛰어들어 어려움과 고통스러움을 뼈저리게 맛본 나로서는 책 한두 권으로 실물경제를 '코치'하겠다는 발상을 반기지 않는다. 그냥 자신의 '성공담'을 미끼로 책을 팔아보겠다는 '수작'으로 여기기 때문이다.(박경철씨가 그런 수작으로 책을 썼다는 애기가 아니라...ㅋ)
이번에 박경철 원장의 책을 읽어야겠다고 마음먹은 것은 안철수 후보와 강준만 교수 때문이었다. 이번 대통령 선거에 후보로 나선 안철수 후보를 알아보기 위한 내 나름대로의 접근방법 중 하나가 안철수 후보가 가까운 이들의 책을 읽는 것이다. 안철수 후보가 자신의 '경제멘토' 중 한 명으로 소개한 사람이자, 오랜기간 안철수 원장과 청춘콘서트를 진행했던 사람이기 때문이다. 즉 청춘세대의 멘토로서의 박경철과 대통령 후보 안철수의 경제멘토로서의 박경철을 어떻게 봐야하는지 알아야했다. 그리고 강준만 교수가 <멘토의 시대>에서 박경철 원장을 '멀티, 관리자형 멘토'로 평가했고, 멘토로서의 박경철씨의 특징과 속성을 나도 책에서 읽어낼 수 있을지 궁금했다. 박경철 워장의 책 중에서 굳이 이 책을 선택한 이유는 가장 최신작이기도 하고, 청년학생들의 멘토로서 자신을 의식하면서 발간한 책이기 때문이다.
책을 모두 읽고 난 느낌은 반반이다. '반반'이라는 의미는 강준만 교수가 설명한 '멀티, 관리자형 멘토'로서의 느낌은 공감되지만, 멘토로서 청년들에게 제시하는 자신의 깊이가 별로라는 의미다. 본인 스스로가 '문.사.철(문학, 역사, 철학)'이 필요하고 중요하다고 주장하지만, 마찬가지로 책 속에서 '문.사.철'을 많이 접한 사람치고는 아직 제대로 자기 중심에서 그것들을 소화를 하지 못했다는 느낌이 든다. 저자가 내심 대상 독자로 삼은 청춘세대들에게 이 책이 실제 도움이 될지 궁금하다. 물론, 나와 같은 비판을 미리 의식했다는 듯(겸손한 마음가짐이겠지만...) 박경철 원장은 책의 서문에 "필자 자신도, 책에서 다룬 이야기들을 그대로 내 삶에 반영하지 못하고 있다는 점이다. 따라서 필자에게 이 책은 내 삶의 후회를 담은 시행착오의 기록이기도 하다."라고 밝혀놓았다.
안철수 후보의 '경제멘토'로서 어떨까라는 애초 궁금증을 이 책으로 해소하지는 못했다. 경제관련 내용이 별로 없기 때문이다. 다만 저자는 경제 상황에 대한 일부 글에서 비정규직 문제, 시장만능주의, 신자유주의, 재벌의 폐해, 제도의 문제에 대한 분명한 입장을 가지고 있다는 것은 확인했다.
저자의 글은 보통의 청춘세대들에게 도움이 되는 게 많다. 한국판 '탈무드'나 '논어'로까지 칭송하지는 않겠지만, 그에 버금갈 수 있는 명언과 혜안으로 가득차 있다. 그런 단락은 무수히 많다. "방황은 살아있다는 증거다" "낯선 것을 통해 본질을 통찰하라" "침묵은 가장 능동적인 대화다" "배움의 즐거움" "진정한 행복은 과정의 몰입에서 온다" "발산하지 말고 응축하라" "언어는 그 사람을 말해주는 지표다" "진실을 보고 행하는 참지식인이 되자" "환경은 새로운 패러다임이며 기회다" "자기 삶의 혁명가가 돼라" "경계를 넘어서야 진보가 온다" "철학을 통해 사유의 경계를 넓혀라" "냉정과 열정 사이에서 균형잡기" "자신을 감동시켜야 진정한 노력이다" "지금 이 순간에 집중하라" "인간의 가치는 밀도가 결정한다" '인문학적 상상력으로 통섭하라" "패러다임의 변화를 읽어내는 주인공이 돼라" "공공의식을 가진 공감형 리더쉽이 요구된다" 등등... 그리고 책 읽기와 글 쓰기에 대한 저자의 조언은 나에게도 도움이 되었다.
책의 상당부분은 저자 자신의 경험과 학습과 깨달음에 바탕을 둔 것으로 보인다. 그만큼 저자의 삶은 아주 치열하고 적극적이었음을 알 수 있다. 보통사람들 중에서 자기혁명을 위해 어느 순간 술과 골프를 끊을 수 있는 이는 많지 않다. 그만큼 저자는 남다르다고 할 수 있다.
그런 장점과 긍정성에도 불구하고 저자의 '자기혁명'은 살갑게 다가오지 않는다. 스스로 청춘세대에게 애기하고픈 것을 정리했다고 밝혔음에도, 그의 주장과 이야기는 청춘세대의 현실에 기초했다고 보기 어렵다. 저자의 말대로 스스로 노력하여 '자기혁명'을 일으킬 수 있는 청춘들도 많을 수 있다. 하지만 솔직히 말하면 실제 그렇게 할 수 있는 청춘세대는 극히 드물다. 저자의 조언은 절대 쉽지 않은 것들이다. 저자의 삶 자체가 동 시대인들 중에서 평범하지도 일반적이지도 않았음을 생각해보면 더욱 그렇다. '자기혁명'의 동기부여와 전략을 제시했음에도 오히려 청춘세대들이 이 책을 읽고 또 다른 좌절감을 느끼거나 포기하지 않을까 우려스럽다.
그리고 저자의 '자기혁명'은 단독 또는 개별적인 개인에 대한 충고라는 것이 또 다른 한계로 보인다. 개인이 자신의 불안함이나 부족함을 뛰어넘어 '자기혁명'을 이루기는 극히 어렵다. 인간 자체가 사회적인 동물인 이유가 개인의 '자기혁명'이나 '자기변화'를 사회 속에서 타인과 영향을 주고 받을 때 가능함을 의미할 것이다. 저자는 자신의 성공담이라는 경험에 기초했기 때문에 강조했지만, 청춘세대의 다수의 노력을 이끌어내기에는 역부족이지 않을까 싶다.(이런 평가는 내 자신의 추론이다. 청춘세대가 이 책을 어떻게 느끼고 받아들이는지 나는 모른다.)
좀 더 현실적인 부분에 대해 직설적으로 말해보겠다. 저자는 청춘들이 자신의 재능을 찾고 노력하면서 독서하고 사색하는 가운데 자기 혁명을 통해 누구나 '성공'할 수 있음을 역설한다. 하지만 공부와 시험성적으로 줄을 세우는 학교제도, 학습경쟁은 없이 스펙쌓기와 고시만이 가득한 대학, 경제적 격차로 인한 교육기회의 불평등, 새로운 기회나 도전이 불가능한 중산층과 서민의 가계구조, 공부와 생존을 위해 하루종일 알바와 비정규직에 시달리는 대학생, 창업과 재기가 불가능한 사회경제구조에 놓여져 있는 청춘들에게 '자기혁명'만을 주문하는 것이 과연 멘토의 역할인지에 대해서는 선뜻 수긍이 가지 않는다. 우리 사회에 대부분의 청춘들에게 독서하고 사색하고 봉사하고 여행할 여유와 기회가 주어져 있는지 오히려 묻고 싶다.
전체적으로 잠언집과 같은 명언을 제공함에도, 나는 저자의 멘토링 중에서 중간중간에 이의를 제기하고 싶은 부분이 많았다. 예를 들어 보면, 저자는 "지금 이 순간 우리가 고민하며 방황하고 노력하는 것은 바른 길을 찾기 위한 여정이어야 한다"(p.19)라고 말했는데, 이 말은 너무 당위적이면서도 한쪽 측면만 부각한 것이다. 사람이란 고민하고 방황하여 스스로를 부정하고 나서 깨달음을 얻을 수도 있지 않을까? 즉 처절하게 깨지고 자신을 부정한 후 일어서는 경우도 있고 사람에 따라 그런 방식도 필요하지 않을까 싶다.
"현상을 버리고 본질을 관통하려면, 다양한 체험적 지식을 통해 얻은 새로운 생각과 기존의 것을 비교하고 개선하는 긍정적 태도를 꾸준히 유지하는 것이 무엇보다 중요하다"(p.30) 철학적으로 생각해보면, 경험을 통해서 본질을 발견할 수도 있지만 선입관을 버리고 현상을 면밀하게 세세하게 고찰하고 그 이면까지 분석하여 본질을 꿰뚫을 수도 있을 것이다. 본질에 대한 깨달음은 직관도 있을 수 있고 합리적 추론도 있을 수 있다.
"위로를 주는 대상은 내부에 있고 스트레스를 주는 대상은 외부에 있다" 이 표현은 전형적인 근대적 또는 서구식 사고방식이 아닐까? 위로야 말로 자연 속에서 찾을 수 있고 음악이나 옆 사람에서 받을 수도 있다. 그리고 반대로 생각할 수도 있다. 스트레스야 말로 외부의 대상에 대해 내가 어떤 선입견이나 감정을 가지고 스트레스로 받아들이는 것이거나 서로 상호작용에서 나타나는 것일 수도 있다.
"인간의 이성이 추구하는 행복의 개념은 단지 '요청되는 것'일 뿐이다. 행복의 대상은 '함께한으로써 더욱 빛나고 가치가 변하지 않으며 새로운 가치를 끊임없이 창조해 내는 것들이다." '행복론'은 시대별로, 사람마다 천차만별이다. 그야말로 사회적이고 상대적이고 변화무쌍한 것이 '행복론'일 것이다. 사람에 따라 깨우침을 얻는 것도, 내가 누구인지 아는 것도, 단지 함께할 누군가가 있는 것도, 사랑을 나누는 것도 행복일 수 있다.
"철학의 역사는 '존재란 무엇인가'라는 문제와의 씨름으로 점철되어 있다" 이 또한 서양철학사에만 관통하는 것이지 않을까?
"결국 가장 중요한 것운 바람직하고 건강한 가치관을 정립하고 삶의 모든 선택을 그것에 의거해 해나가는 것이다"(p.83) 일찍 가치관을 정립하는 것도 좋지만, 가치관을 조금씩 세워나가고 경험하고 공부하며 부단히 수정하는 게 좀 더 평범하고 일반적인 모습이 아닐까? 평생을 학습해도 제대로 알기 힘든 세상에 그리고 하루가 다르게 변해가는 세상에 사는 것이 인간이라면, 항상 주관이 있으면서도 외부에 열려있는 가치관이 되어야 독선이나 아집에서 벗어나지 않을까 싶다.
"우리의 삶에서 20대는 준비, 30대는 질주, 40대는 수확의 시기다. ... 그래서 청년의 시기에는 무조건 발산하지 말고 스스로를 다스리며 인내심을 길러야 한다"(p.91) 사람은 개인마다 다르다. 이렇게 사람의 인생을 무우 자르듯 가르는 건 너무 획일적이다. 무조건 발산하지 말자'는 타당하지만 '무조건 인내' 역시 타당하지 않다고 생각한다. 더군다나 요즘과 같은 복잡한 세상에서... 지금의 20대는 고민하되 저항하고 실험하고 경험하며 스스로를 단련시켜야 하지 않을까 싶다. 또한 굳이 세대로 분류한다면, 준비는 원래 10대부터 하는 것이리라...
"새로운 시대는 사람이 부가가치 창출의 핵심 수단이다" 산업화 시대야말로 사람이 부가가치와 이윤의 핵심 수단이었다. 새로운 시대는 사람이 수단이 이니라 목적인 시대라고 생각한다. 그리고 '부가가치'를 창출해야 만이 존재의 의미를 두는 시대야말로 변해야 한다. 또 '가치'에 대한 근대적 경제 중심적 시각을 재검토해야 한다. 인간의 가치란 따로 없다. 인간 그 자체가 유의미하고 가치있는 존재이기 때문이다.
성공과 실패... 저자는 책의 처음부터 끝까지 책의 상당분량이 인생에서의 성공을 위한 전략과 태도를 어떻게 갖출 것인지에 대해 다룬다. 심지어 사람이 99번 성공해도 100번째 실패하면 '실패한 인생'이라고 규정한다. 패러다임의 변화를 인식하는 것도 공공의식을 가지는 것도, 공감하는 것도 모두가 '성공'을 위해 필요하다고 말한다. 인간의 인생에게 성공과 실패라는 두 개 밖에 없는 것인지. 그리고 인간에게 있어서 도대채 무엇이 성공인 것인지 저자에게 묻고 싶다.
저자의 글에 많이 공감이 되면서도 진정성이 깊숙히 느껴지지 않았다. 아마도 80년대 학창시절에 대한 소회가 없기 때문인 것 같다. 저자가 대학에 입학하고 졸업하고 의사가 되기까지 한국사회에서는 무수히 많은 사건사고들이 있었다. 박정희 유신체제와 광주민중항쟁, 전두환 군사정권, 87년 6월 항쟁과 대통령 선거, 노태우 정권에 이르기까지. 저자는 그 과정에 대해 아무런 말도 남기지 않았다. 21세기 한국이라는 사회가 존재하는 것은 과거에 지나온 역사가 있었기 때문이다. 그는 자신의 절은 시절에 대해 솔직한 심경을 밝혀야 했다. 청춘세대들은 크게 관심이 없겠지만, 나와 동시대에 사는 사람들은 궁금해할 수 있다.
'추신' : 저자가 '말의 세 가지 교훈'이라면서 "첫째, 말을 조심하자. 둘째, 별 생각 없이 상투적으로 한 남의 말에 상처받지 말자. 셋째, 말의 때를 알자"라는 문장을 소개했다. 장경동 목사가 한 말을 책에 인용한 것이다. 저자가 인용한 장경동 목사가 "스님들은 예수를 믿어야 한다"라고 발언한 당사자라면 크게 실수한 것 같다. 언행이 일치하지 않는 사람의 말은 '허언(虛言)'일 뿐이며 그 말을 인용하는 것은 그다지 적절해 보이지 않기 때문이다.
[ 2012년 10월 14일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