입시 공화국의 종말 - 인재와 시험에 대한 생각을 바꿔야 대한민국이 산다
김덕영 지음 / 인물과사상사 / 2007년 6월
평점 :
절판


한국에서 외국사회를 바라보면 이해하기 어려운 모습들이 많듯이, 한국 밖에서 한국을 바라보면 마찬가지일 것이다. 그 모습이 전통에서 이어져온 문화적인 것이라면 '다름'으로 이해하고 넘어갈 수 있지만, '상식'적으로도 이상하면 이해하기가 어려울 것이고. 저자는 외국에서 볼 때 한국사회가 이해하기 어려운 것 중에 교육문제가 특별하다고 말한다.
그 중 하나는 중,고등학교까지는 OECD 상위권에 위치하는 학생들이 대학에 들어가면 순위 밖으로 밀려나는 것이고, 다른 하나는 대학에 서열을 매기는 '학벌'이고, 또 다른 하나는 일등부터 꼴찌까지 순위를 매기는 '객관식' 시험이다. 객관식 시험의 경우 초중고, 대학 뿐 아니라 각종 고시와 공무원 시험, 자격시험 등 한국사회의 거의 모든 시험은 객관식으로 구성되어 있다. 저자는 그 핵심 이유와 뿌리를 '입시공화국'에서 찾는다. '입시감옥'이라는 단어가 더 알맞을 수도 있다.


"온 나라가 병영이던 군사독재 시절에도 아이들에게만은 자유가 있었다. 모든 아이들은 마음껏 뛰어놀며 자기들만의 시간을 보냈다. 우리는 그 느린 시간, 어른이 보기엔 별 실용적 의미가 없어 보이는 시간이야말로 우리의 정서와 인간적 면모에 가장 큰 영향을 주었다는 걸 안다.
그런데 지금 아이들은 어떤가? 그들의 삶은 감옥에서 지내는 수인과 다를 바 없다. 과거 방식으로 아이들을 구속하는 일, 즉 폭력이나 권위주의적 방법을 통해 아이들을 구속하는 일은 이제 적어졌고 누구나 비판적이다. 이를테면 아이들을 심한 매로 다스리는 교사는 더 이상 발붙이기가 어렵게 되었다.
그러나 지금 '아이의 미래'라는 명분 아래 이루어지고 있는 구속은 전 사회적 합의에 의해 이루어지고 있다. 심지어 우리는 그 가공할 인권 탄압을 '교육 문제'라고 부른다."(p.16)


지금의 40~50대가 다니던 초,중,고등학교와 지금 초,중,고등학교의 차이가 무엇인가를 애기하는 대목이다. 그런데 아이들을 구속하는 감옥은 학교 뿐이 아니다. 가정과 학원, 그리고 사회 전체가 감옥이 되었다. 학부모와 교사, 학원강사, 언론, 어른들은 아이들에게 모두 감옥의 간수 역할을 자청하고 있다.
무엇을 위한 감옥인가? 그것은 '수능시험'을 위한 것이다. 어린 시절부터 모든 것을 포기하고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고 오직 입시만을 위해 준비한 것이 단판 승부로 결정되는 날, 한국에서는 기괴한 현상이 벌어진다. 1등 대학부터 꼴등 대학까지, 인기 학과에서 비인기 학과까지 서열이 매겨진 한국 사회에서 수험생들은 더 상위의 대학과 학과를 가기 위해 1등부터 꼴등까지 일렬로 줄을 세우는 시험을 치러야 한다. 수험생과 학부모, 학교는 물론 온 나라가 몸살을 앓는 가히 전쟁이라고 할 수 있는 입시. 과연 이 입시는 존재할 가치가 있는가?
우리나라가 유례를 찾기 힘든 급속한 경제발전을 이룰 수 있었던 것은 높은 교육열 때문이라고 한다. 그렇다면 입시에 목숨 거는 과열된 교육열은 앞으로도 지속적인 경제성장과 사회 발전을 이룰 수 있을까? 21세기는 고부가가치를 창출할 지식정보와 문화의 시대라고 한다. 그런데 과연 지금의 입시와 교육 철학이 그러한 시대에 대비할 수 있을까?


이 책은 바로 입시를 중심으로 벌어지는 한국의 교육과 인재관에 던지는 본질적인 회의이자 도전장이다. 결론부터 말하자면 지은이는 지금의 입시로는 “NO”라고 한다. 인재와 입시 패러다임을 바꾸지 않으면 한국의 미래는 없다는 것이다. 학교와 학원 그리고 가정이라는 거대한 감옥에 갇힌 채 감시와 처벌 속에서 길러지는 우리의 아이들은 주체적이고 자율적으로 사유하고 행위할 수 있는 기회를 말살당한 채 인재가 아니라 그저 ‘쉼 없이 뛰는 조그만 선수들’로 양산되고 있을 뿐이다.
한국의 교육은, 좀더 정확히 말해 오직 입시만을 위해 존재하는 교육은 인적 자원밖에 가진 것이 없는 나라에서 인재를 죽이고 나라를 망치는 ‘원흉’이다. 교육이 인재를 기르고 국제 경쟁력을 제고한다는 주장은 한갓 이데올로기에 지나지 않는다. 모든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고 서열화된 대학의 꼭대기에 오르기 위해 무한 경쟁을 펼치고 있다. 이러한 무한 경쟁에서 승리한 엘리트들은 허약할 수밖에 없다. 허약한 엘리트들이 지배하는 사회는 자연히 허약할 수밖에 없다. 이런 엘리트들에게 ‘노블레스 오블리주’는 커녕 남을 위한 일말의 배려도 찾아볼 수 없다.
저자는 상식 수준에서 생각해봐도 지극히 비정상적인 한국의 입시 교육을 비판하고 있다. 아이들이 힘들어 한다는 것을 모르는 사람은 없다. 그러나 어쩔 수 없다고 생각한다. 치열한 국제 경쟁에서 살아남으려면 그 정도의 어려움은 참아야 한다고 생각한다. 과연 지금의 무한 ‘입시’ 경쟁이 유일한 방법인지. 누가 ‘인재 이데올로기’를 만들고 아이들을 무자비한 입시 경쟁으로 내몰고 있는지를 파헤치고 있다.


서울대는 전 세계 대학에서 그 전례가 없는 독특한 풍광을 보여준다. 즉 세계 최상위권의 인재들을 싹쓸이하고 있다. 서울대는 한마디로 우수한 인재들의 집합장이라고 할 수 있다. 인재들이 차고 넘친다. 그런데 왜 대한민국의 최고 대학일 뿐 국제적인 위상은 그다지 높지 않은 것일까? 세계적인 대학자는 없고, 희대의 논문 조작이 있을 뿐이다.
지은이는 입시만을 위한 교육에서 그 문제점을 찾는다. 수능 시험이 끝나면 고등학교 수업은 시간 때우기일 뿐이다. 더 큰 문제는 대학 교육이 시작하기도 전에 끝나버린다는 것이다.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는 치열한 무한 경쟁을 뚫고 대학에 입학하는 것으로 경쟁은 끝난다. 가능한 높은 서열의 대학에 들어가는 것 자체가 목표이고 가치이기 때문이다. 그래서 정작 공부를 시작하고 제대로 경쟁해야 할 대학에서는 더 이상 '공부'하지 않는다. 오로지 고시 시험과 스펙 쌓기 뿐이다.


공교육이 많은 비판을 받고 있다. 공교육이 부실해서 사교육으로 몰리고 있다는 비난을 면치 못하고 있는 것이다. 공교육의 무엇이 부실한 것인가? 지은이는 “공교육이 부실하다고 말하는 것은 대학 입시에서 찾아야 한다”고 주장한다. 다른 경쟁 학생보다 1점이라도 더 좋은 점수를 받아서 한 단계라도 더 좋은 대학, 더 좋은 학과에 입학시키는 것이 교육의 목표인 상황에서 공교육은 부실할 수밖에 없다. 모든 학생들에게 똑같이 제공되는 학교 수업은 남보다 앞서는 것이 교육 목표인 상황에서 내용이 견실해도 불충분하고 불만족스러울 수밖에 없다. 줄 세우기에 방해가 되는 학교 교육은 내용과 방식을 아무리 개선해도 부실하다는 비난을 피할 수 없는 것이다. 지금과 같은 대학 서열화가 계속 유지된다면 공교육이 부실하다는 비난은 더 거세지고 많은 학생들은 사교육으로 몰리게 될 것이다.


한국의 학교 교육은 토론식이나 논술식이 아닌 주입식 교육과 ‘찍기’의 객관식 시험이 중심을 이룬다. 학교나 교사 모두 논술식 교육을 진행할 준비와 능력도 부족하지만, 채점에 대한 시비 때문에 정답이 명백하게 있는 단답형 시험을 벗어날 수 없다. 논술을 위한 사교육시장은 급팽창하고 있다. 공교육이 채워줄 수 없는 것을 사교육이 채워주고 있는 것이다. 학교 교사는 논술에 있어서 ‘아마추어’이고 학원 강사는 ‘프로’이다. 팽창하는 사교육은 학부모들의 사교육비 부담으로 이어지고 있다. 부모의 경제적 능력에 따라 성적, 순위가 매겨지고 있다.
이런 현실에서 논술, 통합 교과형 논술 시험이 진정으로 추구하는 것은 무엇인가? 결론부터 이야기하자면, 그것은 서울대와 주요 사립대들이 학생들을 일렬로 줄 세워 기존의 대학 서열을 공고히 하기 위한, 그래서 기득권을 유지하기 위한 방편 그 이상도 그 이하도 아니다. 대학의 자율성이니, 우수한 학생을 선발해 유능한 인재를 양성하느니, 아니면 국제 경쟁력 제고를 위한 엘리트 교육이 필요하다느니, 그리고 이는 국제적 경향이니 하는 것은 그저 변명이요 허위의식이요 이데올로기에 지나지 않는다. 언제나 그랬던 것처럼 한국의 대학들은 자신들의 이해관계가 국가, 국민, 사회 등 거창한 이름으로 감추고 있다.
객관식 시험에서는 “정답이 1개인 특성을 감안해 어느 모로 보나 정답인 답항을 골라야” 한다. 복수 정답을 인정하라는 소송의 법원 판결이다. 정답이 반드시 존재하고 그 정답을 찾아야 한다는 것이다. 이러한 교육을 받는 우리 학생들이 창조적인 인식과 자율적인 사고가 가능할까? 프랑스 바칼로레아에선 “진실에 저항할 수 있는가?”라는 식의 문제가 출제된다. 이런 문제에 정답이 있을 수 없다. 자신의 견해를 논증하는 과정 자체 즉, 논증 방식과 절차 그리고 사유의 참신성과 독창성 등이 답일 것이다.


진짜 경쟁은 중,고등학교가 아닌 대학에서 이루어져야 한다. 진정한 경쟁을 해야 할 대학에서는 경쟁하지 않는 엘리트들이 한국사회를 지배하고 있다. 허약한 엘리트들은 학교에서 그렇게 배웠던 것처럼 정답 찾기에 여념이 없다. 정답을 찾으면 나머지는 모두 오답이다. ‘조국 근대화’, ‘세계화’, ‘BK21’, ‘천재론’, ‘지식정보 사회’, ‘FTA’ 이것들은 허약한 엘리트들이 찾은 정답들이다. 한때 정답이었다가 다른 정답이 제시되면 오답이 되고 만다. '성장'과 ‘세계화’가 정답이던 시절 모든 것을 성장과 세계화에서 찾았다. 무엇을 해야 하는 이유도 ‘성장'과 '세계화’였고, 무엇을 하지 말아야 하는 이유도 그랬다. 그러나 그 정답의 결과는 외환 위기였다. 이후 새롭게 찾은 정답은 ‘지식정보 사회’이다. 구호만 난무하고 수단에 불과한 컴퓨터 보급과 인터넷을 까는 것이 전부였다. 정답을 찾아 헤매는 허약한 엘리트들은 사회 전체를 뒤흔들어 놓는다. 허약한 엘리트가 지배하는 허약한 사회의 스산한 자화상이다. 허약한 엘리트의 이데올로기에 허약한 민중들이 끌려다닌다.
엘리트는 새로운 시대에 걸맞지 않다는 것은 이미 입증되었다. 그리고 이제는 엘리트가 다수를 대신하여 이끄는 시대도 지났다. 정보를 공개하고 공유하여 다수가 참여하는 토론의 장을 만들고, 지혜와 대안을 수렴하여 사회적으로 합의하도록 해야 한다. 인터넷과 정보통신기술은 이미 그것이 가능하도록 기반을 조성해 놓았다. 구조적으로 참여가 어려운 이들이 배제되지 않도록 조금 더 고민하고 배려하면 된다.


대통령 선거가 70일 앞으로 다가왔다. 학생들을 체념과 절망과 포기로 밀어넣고 있는 입시공화국, 입시지옥을 바꾸어야 한다는 사회적 합의를 이루고 정책을 제시하여 동의할 수 있는 좋은 기회다. 정답이 될 만한 대안들은 이미 몇 해 전부터 제시되어 있다. 무상교육, 중고교와 대학의 분리, 대학평준화, 수능시험 폐지와 자격고사, 국공립대 통합네트워크, 전문대학원 체제, 교육민주화, 교사 충원 및 획일적 교육방식 개선, 각종 객관식 시험제도 개선 등... 토론하여 선택하고 합의를 도출하여 내년부터 새정부가 강력하게 추진하면 된다.
독일 대학에서 저자가 보내는 한국교육애 대한 이 메시지를 대선 후보들, 특히 안철수 후보와 문재인 후보에게 들려주고 싶다. 제대로 된 교육도 복지국가의 중요한 요소다. 안철수 후보의 <안철수의 생각>이나 문재인 후보의 <문재인의 힘>에서는 한국 교육문제에 대한 심각성이 전혀 느껴지지 않기 때문이다. 두 후보 뿐만 아니라 구조적으로 엘리트 지위에 위치한 사람들부터 '엘리트 의식'에서 벗어나야 한다.


[ 2012년 10월 09일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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