식물의 정신세계
피터 톰킨스 외 / 정신세계사 / 1993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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식물도 생각한다. 식물도 감정이 있다. 식물도 인간에게 반응한다...
이런 주장은 나와 비슷한 세대의 사람들에게 해방 이후 근대식 제도교육을 받은 대다수 사람들을 어리둥절하게 만드는 이야기일 수 있다. 보통사람들은 학교에서 '이동성'을 큰 기준으로 동물과 식물을 구분하고, '감정과 생각'을 기준으로 동물과 사람을 구분한다고 배웠기 때문이다. 단순히 배웠기 때문이기 보다 상식적으로 우리가 살아가는 과정에서 그것이 '맞는' 말이라고 인정했기 때문이다.
하지만 실제 드러난 사실은 우리의 상식과 많이 다르다. 저자들은 식물도 동물처럼 움직이기도 하고, 인간처럼 생각하고 감정을 느낀다는 것을 알 수 있다.


우리가 얼핏 아는 상식과는 다르게, 과거 학자들 중에서 식물이 움직이고 영혼도 있다고 주장한 이들이 존재했다. 아리스토텔레스는 식물에게도 영혼이 있다고 말했고, 18세기 진화론을 제창한 찰스 다윈은 모든 덩굴손들은 독자적인 운동 능력을 갖고 있다고 증명한 바 있다. 철학자 괴테와 슈타이너는 식물이 서로 반대인 두 방향으로 성장한다는 것을 발견했다. 뿌리는 중력에 끌리듯 땅속으로 파고들고, 가지는 반중력에 떠밀리듯 허공으로 뻗어나갔던 것이다.
그리고 1960년대 들어서부터 식물이 단순히 살아 숨을 쉴 뿐만 아니라, 상호 교감도 나눌 수 있는 존재, 즉 혼과 개성을 부여받은 창조물이라는 철학자들의 직관을 받쳐 줄 증거들이 속속 제시되기 시작했다. 많은 탐구자들과 과학자들이 새로운 자연학과 초자연학을 발견한 것이다. 이 책은 그런 증거와 실험들에 대해 말해준다.

1966년 백스터(Cleve Backster)는 거짓말 탐지기의 사용법을 연구하던 대학 연구실에서 탐지기의 전극 하나를 열대 관목인 드러시너 앞사귀에 연결했다. 그리고 그 드러시너에게 물을 부었을 때 잎사귀가 영향을 받는지 궁금했기 때문이다. 그는 나무가 물을 흠뻑 빨아들이면 전도율이 낮아질 것으로 예상했으나 검류계의 저항치는 낮아지지 않았다. 대신 그래프에는 톱니 모양의 전기 흐름이 그려졌다. 나무가 마치 감정에 자극을 받은 사람이 나타내는 것과 유사한 반응을 보인 것이다. 인간의 반응을 검류계에서 확실하게 나타날 수 있게 하는 방법은, 그 사람을 위협하는 것이다. 나무에 대한 그와 같은 실험 시도는 놀라운 결과를 보여주었다. 이른바 '백스터 효과'였다.
"백스터는 잎사귀를 불에 태워 봐야겠다고 마음 먹었다. 그가 불을 떠올리면서 성냥을 가져오려고 움직이기도 전에 검류계의 바늘이 급작스럽게 움직이면서 그래프의 도표가 위로 쭈욱 올라갔다. 그가 그 방을 나와 성냥 몇 개를 가지고 다시 돌아봐 보니, 도표에는 또 다른 급격한 감정의 변화로 보이는 기록이 남겨져 있었다. 그가 짐짓 거짓으로 잎사귀를 태우려는 시늉을 해보이자, 이번에는 전혀 아무런 반응이 나타나지 않았다. 식물이 인간의 의도가 정말인지 거짓인지를 확실히 구별할 줄 아는 것처럼 말이다. ..... 그 이후 상추, 양파, 오렌지, 바나나 등을 비롯하여 25가지도 넘는 식물과 과일들을 실험했지만 관찰한 결과는 모두 비슷했다."(p.20)

이와 비슷한 실험은 구소련의 과학자들 사이에서도 상당히 연구 수준으로 진척되었다.
"뿌리를 뜨거운 물 속에 담그자, 보리 싹이 내 눈 앞에서 문자 그대로 비명을 질렀다. 이 식물의 '소리'는 대단히 민감한 특수 전자장치에 의해 나타나는 것이었는데, 넓적한 종이 밴드 위에는 이 불쌍한 식물이 지르는 '끝없는 눈물의 골짜기'가 그대로 기록되어 나타났다. 단말마를 발하는 보리 싹의 고통을 말해 주듯, 기록계의 펜은 흰 종이 위에다 심한 기복을 그려 댔다. 그저 식물 자체만을 보아서는 무슨 일이 일어나고 있는지 알 수 없다. 잎사귀는 여전히 푸르고 줄기도 곧게 서 있건만, 식물의 '조직체'는 이미 죽어 가고 있는 중이었다. 그 내부의 어떤 '두뇌' 세포가 우리에게 무슨 일이 일어나고 있는가를 말해 주고 있었던 것이다."

영국의 식민지였던 19세기 인도의 과학자 자가디스 찬드라 보스(Jagadis Chandra Bose)는 식물 연구를 통해 물리학, 생리학, 심리학을 통합해 식물생리학을 탄생시켰다. 당시 그는 식물의 생장모습과 움직임을 무려 1억배나 확대해 볼 수 있는 장치를 개발하였다. 그는 자연의 다양헝 속에서 보여지는 기본적인 통일성이 있음을 밝혀냈고, "어디에서부터 물리적 현상이 끝나는 것이고, 어디서부터 생리적 현상이 시작되는지를 구분하기란 매우 어렵다"고 결론지었다. 그리고 식물도 금속이나 동물의 근육 조직 처럼 여러 가지 자극에 반응을 보였다. 동물처럼 식물에게도 신경 조직이 있는 것이다.

비비안 윌리, 피에르 폴소뱅, 도로시 리털랙 등은 여러가지 실험 결과를 통해 식물들이 음악에 반응하고 감정을 느끼며 인간들과 교감한다는 것을 증명해냈다.
"비비안 윌리는 자신의 집 정원에서 범의귀 잎사귀 두 개를 뜯어다 하나는 침대에, 하나는 거실에 놓아 두었다. 그녀는 한달 동안, 아침마다 일어나 침대의 잎사귀에를 바라보고 계속 살아있으라고 말하고, 거실의 잎사귀는 거들떠 보지도 않았다. 한달 후 그녀가 아무런 관심도 보이지 않았던 거실의 잎사귀는 갈색으로 변한 후 썩어 가고 있었는데, 매일 관심을 기울여 주던 침대의 잎사귀는 여전히 싱싱함을 유지하고 있었다."(p.38)
"전자 전문가인 피에르 폴소뱅은 백스터의 '정신 감응 장치'를 자신의 방에 설치하고 검류계와 한 그루의 필로덴드론을 연결했다. 그가 전기에 감전되는 실험을 하여 충격을 받자, 검류계의 바늘이 갑자기 뛰었다. 그 뒤에 그가 직접 전기 충격을 받지 않고 단지 그 때의 느낌을 되살리는 것만으로도 식물에게 똑같은 반응이 일어났다. 특이했던 현상은 그가 집 안이 아니라 멀리 떨어진 사무실이나 타지로 출장을 떠나서 고통이나 충격, 기쁨을 느꼈던 동일한 시간에 필로덴드론이 반응했다는 것이다."
"제라늄은 자신에게 물을 주고 흙을 다듬어 주고 상처를 치료해 준 사람과 자신을 비틀고 ?고 자르고 불태웠던 사람을 기억했다. 후자의 사람이 나타나자 식물의 반응 측정기의 기록계의 바늘이 아주 거칠게 움직였다. 자신을 괴롭히던 사람이 자리를 뜨고 마음씨 좋은 사람이 다가오자 제라늄은 그제서야 안정을 되찾았는지, 기록계에는 아주 평온하고 부드러운 파장이 나타났다."
"오르간 연주자이자 메조소프라노 가수인 도로시 리털랙은 호박, 옥수수, 백일초, 금잔화 등을 대상으로 2주일 동안 동일한 생장 조건 속에서 음악이 식물의 성장에 미치는 영향을 실험했다. 한 쪽은 고전 음악을 틀어주고, 다른 쪽은 시끄러운 록 음악을 틀어주었다. 록 음악을 들려준 쪽의 식물들은 처음 이상하게 키만 자라더니 나중에는 형편 없이 작은 잎을 내거나 발육이 아예 중단되어 버렸다. 금잔화는 2주일도 버티지 못하고 죽어버렸다. 고전 음악을 들은 식물들은 음악 쪽으로 줄기를 뻗어 나갔고, 훨씬 상태가 좋았으며 금잔화는 꽃을 피우기까지 했다."(p.193)

저자들의 실험과 연구 이야기를 읽다 보면, 20세기 이후 현대과학이 비약적인 발전을 거듭했지만 여전히 갈 길이 멀다는 것을 알 수 있다. 과학계는 실험 결과로 입증되는 식물 사이의 교감이나 식물과 인간의 교감에 대해 아직 어떤 과학적 이론을 정립하지 못하고 있다. 모든 물질과 생명체에서 발하는 '오라(aura)', 식물의 '에너지장', 생물 파동과 방사성, 생물학적 플라즈마체, 토양의 자기정화, 생물학적 화학원소 중가 등에 대해 여전히 명확한 해답을 제시하지 못하고 있다.
어떻게 생각해보면 인간이 과학적 발견과 성과를 거듭하면 할수록 인간이 알아야할 대상과 목록이 늘어날지도 모른다는 느낌도 든다. 인간이 아는 것보다 모르는 것이 많은 현실에서, 인간이 모르는 분야에서 인간이 모르는 지속적인 진화와 변화가 지속된다면, 어떻게 인간의 과학이 그것을 ?아갈 수 있을까... 인류는 지구와 우주와 생명체에 대해 겸손해야 한다는 말이다.

인간의 겸손함이 필요함체 이어 식물의 정신세계와 생물계의 오묘함은 우리가 지구의 토양과 먹거리에 대해 어떤 태도를 지녀야 하는지 경고해 준다.
"오늘날 대부분의 스테이크는 유독한 살충제를 뿌려서 기른, 품질 낮은 단백질이 함유된 잡종 사료를 180일간 강제로 먹여 키운 소의 고기로 만들어진다. 그 농약은 곧장 쇠고기의 지방질에 투입되어, 그것을 먹는 인간에게 심장병을 일으키게 한다. 또 가축업자들은 가축의 무게를 20% 이상 불려서 수백만 달러의 초과 이윤을 얻기 위해, 가축들에게 디에틸스틸베스트(DES)를 먹이는데, 이것은 인간에게 암을 유발시킨다."(p.308)

우리의 고정 관념과 '상식'은 식물과 동물, 동물과 인간, 인간과 자연을 전혀 다른 차원에서 다루면서 서로를 분리하지만, 실제 적지 않은 실험과 사례는 그러한 우리의 '상식'이 맞지 않다는 것을 보여준다. 우리는 우주와 자연과 생명체에 대해 아는 것이 극히 미약하다.  이 책은 식물의 모습을 통해 그것을 알려준다.
식물은 무기물에서 유기물을 창조하는, 경이로운 생명 현상을 영위함으로써 무생물과 생물 사이의 중개자 역할을 하고 있다. 따라서 식물은 생명의 비밀을 풀 수 있는 열쇠이기도 하다. 그러므로 인간은 식물을 언구함으로써 식물 뿐만 아니라 무생물과 생물, 나아가 인간까지도 이해할 수 있게 된다. 그러한 유기적인 긴밀성에 대한 인식은 결국 인간의 오만을 질타한다. 사실 인류가 그렇게 자랑하는 문명의 건설은, 식물의 창조적인 생명 활동에 비하면 단지 하나의 부산물에 지나지 않는다.

인간의 오만함과 자연에 대한 파괴행위 더 이상 지구와 생명체를 망가뜨리지 않도록 모두가 성찰해야 할 것이다.

[ 2012년 9월 24일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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