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리스인 이야기 세트 - 전3권
앙드레 보나르 지음, 김희균.양영란 옮김, 강대진 감수 / 책과함께 / 2011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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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양인들은 자신들의 문명의 뿌리를 고대 그리스라고 말한다. 그래서인지 몰라도 유럽과 북아메리카 대륙에는 고대 그리스에서 유래된 지명이나 인명이 많다. 그리스의 신화와 전설도 21세기인 지금까지 이어지고 있고, 그것을 바탕으로 학문과 문화가 재해석된다. 우리나라에서도 화제가 되었던 영화 <300>과 <알렉산더>, 그리고 <트로이>가 대표적인 예라 할 수 있다. 그만큼 서구인들과 서구문화, 그리고 서구에서 출발한 학문들은 고대 그리스를 잘 알지 않고는 제대로 이해하기가 어렵다.
하지만 오히려 그리스의 실제 역사는 우리에게 낯설다. 우리나라에는 그리스 ‘신화’ 이외에 고대 그리스의 ‘역사’를 다루고 있는 책은 많지 않다. 서구사회에서도 마찬가지인 것 같다. 고대 그리스에 대해 알려면 신들의 이야기가 아닌 그리스 신화를 창조해낸 그리스 사람들의 실제 이야기가 필요하다. 그런 면에서 이 책은 적절하다. 저자 앙드레 보나르는 역사의 눈으로 그리스를 바라본 전문가이다. 우리가 모르고 있었던 새로운 그리스인의 모습과 생활상, 그 사상까지 엿볼 수 있는 좋은 기회가 되었다. 그리스는 신화가 아니라 인간이 살아간 역사이고 문화인 것이다.

 

<그리스인 이야기 3부작>은 고대 그리스의 역사를 다루면서도 논문이나 연구서가 아니기 때문에 인용이나 복합한 고증 내용은 포함시키지 않는다. 그리고 보통 우리가 딱딱하게 여기는 지배자나 왕 중심의 '통사'도 아니다. 저자는 고대 그리스에서 실제 있었던 사실을 바탕으로 이야기를 풀어나가면서도 인문과 사건, 그리고 문화와 작품을 중심으로 그리스 역사를 풀어간다. 자연을 이겨내고 문명을 이루어가는 그리스인의 발자취를 찾고 설명해준다. 그래서 이 책에는 그리스 문명 그 자체가 아니라 사람, 즉 그리스 문명을 기획한 고대 그리스인들을 주인공으로 내세운다.
이 책은 투튀디데스의 <펠로폰네소스 전쟁사>나 에드워드 기번의 <로마제국 흥망사> 같은 통사가 아니다. 그래서 이 책에는 시오노 나나미의 <로마인 이야기>와 다른 재미가 있다. 호메로스의 <일리아드>와 <오뒷세이아> 등 고대 그리스 문인들의 작품을 문명으로 나아가는 그리스 시인의 역작으로 평가하는 등 고대의 작품에 대한 저자의 안목이 탁월하게 느껴져 절로 감탄이 나올 때가 한 두번이 아니었다. 

 

<그리스인 이야기 1>은 호메로스에서 페리클레스까 통치 시기까지를 이야기한다. 그리스 문명의 탄생에서 민주주의의 완성 단계까지를 다룬다. 그리스 문명 탄생의 역사적 배경, 그리스 문명 초창기의 사건들, 그리스 민족의 전쟁사인 호메로스의 <일리아스>에 녹아 있는 인본주의, <오뒷세이아>를 통해 본 그리스 민족의 바다 정복기, 그리스 최고의 서정시인 아르킬로코스와 자유주의 시민의 탄생, 미지의 뮤즈 삽포와 사랑의 아름다움, 아테네의 발전과 민주주의의 기원 그리고 상업의 발달과 솔론의 사회개혁, 노예와 여성의 사회적 지위를 통해 본 그리스 민주주의의 한계, 인간 중심의 철학인 그리스의 종교, 그리스 비극의 정점인 <오레스테이아> 3부작, 아테네 민주주의의 완성자 페리클레스 등을 다룬다.
<그리스인 이야기 2는 소포클레스에서 소크라테스의 죽음까지를 이야기한다. 과학의 시대, 철학의 시대, 문학의 시대였던 그리스 문명의 전성기를 다룬다. 소포클레스의 <안티고네>와 그리스 비극의 풍경, 그리스의 조각 예술, 탈레스와 데모크리토스를 통해 본 그리스 과학의 태동, 다시 소포클레스와 <오이디푸스>, 그다지 주목받지 못하지만 매우 중요한 그리스 시인인 핀다로스, 지리학자이자 여행가로서의 헤로도토스, 의학의 아버지 힙포크라테스와 그리스 의학, 아리스토파네스의 그리스 희극, 그리스 문명의 쇠락 혹은 방향 전환, 그리고 마지막으로 철학자 소크라테스에 관해 이야기한다.
<그리스인 이야기 3>는 에우리피데스에서 알렉산드로스 대왕 사후까지를 이야기한다. 즉 그리스 문명의 황혼기를 다룬다. 그리스 3대 비극의 마지막 주자 에우리피데스, 헤로도토스와 함께 그리스 역사의 쌍벽을 이루는 투퀴디데스, 소크라테스를 이어 그리스 철학을 집대성한 플라톤, 세상 모든 것을 집대성한 아리스토텔레스, 알렉산드로스의 정복 활동과 그가 만든 알렉산드리아를 중심으로 퍼져나간 그리스 문명의 양상들, 에라토스테네스와 아르키메데스 등 근대 학문에 영향을 끼친 과학자들, 끝으로 인간의 구원을 설파한 에피쿠로스에 관해 이야기한다.

 

저자는 서문에서 고대 그리스의 본 모습을 알기 위해서는 먼저 우리의 선입견 속에 깊이 새겨진 '신화'를 깨뜨릴 것을 요구한다. 다른 지역, 다른 민족과 마찬가지로 그리스, 그리고 그리스인도 처음에는 "원시적인 종족"이었다는 것이다. 그는 '그리스 중의 그리스'라 할 수 있는 "고대의 아테나이에서도 미신 같은 것이 존재했고, 원시인에게서나 볼 수 있는 '엽기적인 풍속'도 그대로였다"라고 말한다.

예를 들어 기원전 5세기에 벌어진 '살라미스 해전'에서 그리스 총사령관 "데미스토클레스는 승리를 위하여 디오뉘소스 신에게 아테나이 최고집정관의 친조카들을 제물로 바쳤다. 그는 군사들이 보는 앞에서 세 사람의 목을 졸라 죽였다". 오늘날 유물론의 창시자로 알려져있는 데모크리토스는 "월경 중인 여자 아이들은 수확을 앞둔 밭 주위를 하루에 세번 뛰어다녀야 한다고 생각했다. 월경 때 흘리는 피가 해충을 박멸하는 항생제 역할을 한다고 믿었기 때문"이다.

저자는 그렇게 미개한 원시 종족 수준이었던 그리스인들이 자연의 법칙을 깨달아 알고 자연에 대해 반격을 가하는 과정이 바로 '문명'임을 말한다. 발칸반도에서 여러 번 남하한 그리스인들은 원래 유목민이었다. 그러다가 헬라스라는 땅에 나려와 자리를 잡고 척박한 땅을 일구기 시작했다. 그들이 상업을 하게 된 것은 단순히 모자란 것들을 채우기 위해서였다. 올리브나무애서 나온 기름과 포도에서 짜낸 포도주를 이웃 아시아 땅에서 만든 옷감과 교환하기 시작한 것이다. 그들이 배를 타기 시작한 것은 늘어나는 인구를 먹이기 위해 밀과 보리를 흑해 북쪽에서 얻어오려면 바다르루건너는 것 외에 다른 방법이 없었기 때문이다. 유목민이었다가 농민이 되었기에 그리스인들은 바다를 알지 못했다. 바닷가에 살던 원주민에게서 새롭게 배운 것이다. 그래서 그리스어에는 '바다'라는 단어가 없었고 원주민들이 썼던 단어 '탈랏사(thalassa)'를 베껴 쓸 수 밖에 없었다.
밭에서 힘든 노동을 하고 사나운 배를 타면서 생사를 넘나드는 과정에서 그리스인들은 다른 원시인과 마찬가지로 '노동요'를 부르기 시작했다. 저자는 아득한 옛날부터 전해져 내려오는 노동요의 리듬을 개발해서 새로운 장르에 도전한 것이 시, 즉 서사실고 설명한다. 오래된 영웅들의 삶을 풍부하고도 절제된 리듬에 담아낸 것이다. 노래를 부르다 보면 사람들의 가슴 속에는 희망과 용기가 솟아났다. 그 중에서 지금까지 전해져 내려오는 것이 <일리아드>와 <오뒷세이아>다.
이렇게 고대 그리스의 서사시와 서정시, 극시들은 언어로 빚어낸 그리스의 과거와 현재가 담겨 있다. 그 속에는 그리스인들의 고통과 희망이 들어 있다. 상상의 세계 속에서 마주치는 꿈과 환상이 있다.

그리스인들은 무섭고 사나운 자연의 현상을 이해하기 위해 세상의 창조주로서 '신'을 상정하게 되고, 그 신들에게 의지했다. 신들의 형상은 가장 이상적인 인물의 형상으로 삼았다. 그와 동시에 그리스인들은 자연을 극복하고 인간을 좀 더 자유롭게 하기 위하여 수학을 만들고, 천문학을 개발했다. 물리학과 의학의 기본 지식을 차근차근 쌓아나갔다. 그리스 지역의 지리적 현황과 경제구조는 그리스가 자연스럽게 도시국가로 발전되도록 이끌었다. 도시는 문명의 힘으로 사회가 되고, 도시 안에 사는 사람들은 평등하게 문명을 향유할 권리를 가졌다. 그래서 불완전하게나마 그리스인들은 민주주의를 고안한 최초의 민족이 되었다.

이 책에서는 문학작품, 특히 비극에 대한 저자의 소개와 분석이 뛰어나다. 이 시기의 그리스 문학작품은 당시 그리스인들이 얼마나 치열하게 삶을 사랑하고 그 속에서 신과 자연과 인간에 대해 고민했는지 말해주고 있다. 대표적인 비극 작품인 소포클레스의 <안티고네>는 3천년이 지난 현 시점에서도 현대인들의 가슴에 무언가를 던져 준다. 아니 저자인 앙드레 보나르가 <안티고네>라는 작품 속에서 현대인이 무엇을 생각하고 느껴야 하는지 알려준다고 할 수 있겠다. 그는 소포클레스의 천재성과 예술성을 밝혀낸다. 나는 작품의 작가인 소포클레스보다 작품을 현대적으로 해석한 저자에게 더 큰 공감을 얻게 되었다.

 

에우리피데스는 작품 <메데이아>는 자연과 신에서 벗어나 자유를 찾아가던 인간이, 원칙과 제도, 그리고 자유 사이에서 갈등하던 인간이 스스로의 정념에 사로잡히는 모습을 보여준다. 저자는 그 '악마적 힘'을 통해 "분명하게 제시하는 것은 우리의 마음이 얼마나 복잡한지, 즉 우리도 알지 못하는 우리 마음의 복잡다단함이다. 또한 우리 안에 깃들어 있는 이 힘은, 우리 자신이 그 힘에 대항할 수 없고, 그 힘은 우리를 파괴할 수 있다는 점에서 비극적"임을 말한다. 저자는 또 에우리피데스의 <아울리스의 이피게네이아>에서 세계의 무질서, 무정부주의적인 감정, 의지의 불안정성에서 비롯되는 비극성을 읽어낸다. 그리고 <박카이>에서는 "전지전능함을 통해 발현되는 신의 위대함을 포착"한다. 그럼에도 여전히 에우리피데스의 작품 전체는 인간에 대한 순수한 사랑으로 불타오르게 한다. "신들은 아무리 진노했다고 해도 우리 인간들처럼 행동해서는 안된다."라고...

아테나이 법정에 제출된 소크라테스에 대한 기소장에는 두 가지 죄목, 즉 '신을 믿지 않는 죄'와 '젊은이들을 타락시킨 죄'가 적혀 있었다. 그는 신성이라는 확고한 실체에 대해 "나는 아무 것도 모른다는 사실만을 유일하게 말고 있다"고 공공연하게 선언했기 때문이다. 재판관들은 죄의 유무에 대한 판결에서 유죄 281표, 무죄 220표로 그에게 유죄를 선고했다. 죄인에게 어떤 형벌을 내려야 할지를 두 번째 재판에서 결정했다. 하지만 그는 자신의 죄에 대한 선처를 바라는 대신 "나에게 보상을 달라. 아니면 차라리 죽음을 달라"고 외쳤다. 두 번째 재판은 거의 만장일치로 그에게 사형을 선고했다. 그는 자신에게 사형을 선고한 판관들에게 말했다. "명심하십시오! 사람들을 죽인다고 해서 진실이 사라지지는 않습니다. 오히려 그 반대죠. 진실은 한층 더 강력하게 공격해 올 것입니다. 진실을 위해 종사하는 자들의 소리는 선한 사람이 됨으로써만 멈추게 할 수 있습니다."

 

저자는 소크라테스가 자신을 고발한 자들보다 훨씬 더 자신의 죽음을 원했다고 추측한다. 그리고 소크라테스는 "악법도 법이다"라고 말한 적이 없다. 다만 그는 그냥 사는 것보다 재대로 사는 것을 원했기 때문에 시민법정의 판결을 받아들였을 뿐이다. 자신의 죽음을 통해 아테나이 시민들이게, 후손들에게, 그리고 21세기의 우리에게까지도 원칙을 말하고자 했을 뿐이다. 부당하게 살아남지 말라고...
저자는 플라톤이 "역사를 배제하려 했다"고 평가한다. 플라톤은 아주 광범위한 영역에 걸쳐 노력을 기울였다. 그는 세속의 도시, 시민들에 의해서 이루어지는 타락한 민주주의 대신에 모든 영혼이 사후의 내세에서 만나게 되는 곳, 즉 천상의 도시, 천상의 왕국인 신성한 세계를 내세웠다. 그는 신과 밀접했던 그리스의 문화와 종교 대신에 신과 인간이 완벽하게 분리되는 내세와 유일신의 토대를 닦은 셈이었다. 플라톤이 그러한 종교의 기초를 닦지 않았다면 기독교는 탄생하지 못했을 것이다.

 

저자는 그리스 문명의 쇠락이 단순한 쇠락이 아님을 주장한다. 아니 문명의 역사 자체가 탄생과 소멸, 그리고 소멸하는 과정 속에서 새로운 탄생이 이어짐을 말한다. "문명이나 신앙은 죽지 않기 위해서 새로운 사고방식을 탐구하고, 새로운 시와 지혜의 세계를 창조하며, 늙어갈수록 희망과 확신을 가져야 할 새로운 이유를 스스로 부여한다. 그러므로 문명의 쇠퇴기는 동시에 새로운 발견의 시기이기도 하다. 문명은 변화를 거듭할 뿐 죽지 않는다. 문명의 삶이란 말하자면 항구적인 태어남이라고도 할 수 있다."
따라서 저자의 해석으로는 알렉산드로스 대왕에 의한 그리스 도시국가의 멸망은 '현대식 '국가'라 할 수 있는 왕조를 탄생시키면서 다시 태어났고, 그리스 문학의 비극과 희극으로 신과 인간의 경계가 무너지고 사회와 사상의 격변을 통해 플라톤에 의해 기독교의 토대를 마련한 것이다.

* 인상 깊은 문장 :
- "아킬레우스와 헥토르, 그들은 기질이 전혀 다른 두 종류의 인간이면서, 인류의 두 시대를 상징적으로 보여주고 있다.위대한 아킬레우스는 통재로 불타고 있는 한 시대에서 마지막 빛을 발한다. 약탈과 전쟁으로 얼룩진 아카이아인들의 시대는 이제 아킬레우스와 함께 사라져가고 있다. 훗날 우리 속에서 언제든 다시 부활할 수 있겠지만 말이다.그리고 그 자리에서 헥토르는 새로운 시대를 선언한다. 가족과 땅과 공동체를 지키고자 하는 시민들의 시대가 왔음을 선언하고 있는 것이다. 그는 단지 잘 싸우기만 하는 사람이 아니다. 타협할 줄도 안다. 협정을 맺을 줄도 안다. 가족에 대한 사랑으로 충만한 사람이다. 그리고 그 사랑은 다음 세대에서 더 넓은 인류에 대한 사랑으로 발전할 것이다.
<일리아드>가 위대한 것은 그 때문이다. 이 위대한 시편은 아킬레우스와 헥토르라는 상반된 인간형을 통해서 인간의 고결함과 정의로움에 대해서 말하고 있다. 아킬레우스와 헥토르가 있었고, 그들이 인류의 역사를 번갈아 가며 이끌어왔으며, 지금 우리의 마음 속에서도 계속 싸우고 있는 건지도 모른다."(p.94)

- "오뒷세우스는 지혜로운 인간의 상징이다. 인간의 지혜는 실질적이고 창조적이다. 세상에 대한 의미 없는 지식을 쌓아놓는 것이 아니다. 어려운 상황이 닥칠 때마다 적절한 대안을 제시할 줄 아는 그런 지혜다. 신과 적들은 인간이 가는 길목마다 방해꾼을 심어놓고 인간을 끊임없이 불행의 나락으로 인도한다. 그런 상황에서는 지혜만이 인간을 구할 수 있다. '재주꾼' 오뒷세우스가 이기는 이유다."(p.121)

- "혹시라도 그리스가 민주주의를 발명했다고 한다면, 그 발명품이란 어린아이의 입안에 난 이와 같다. 반드시 죽고 다시 태어나야 할 민주주의였다. 곧이어 그리스는 죽고 새로운 민주주의가 다시 태어날 것이다."(p.235)

- "신을 끊임없이 의인화해서 그리스 종교가 노리는 바는 무엇일까? 그것은 다름 아니라 인간이 도달해야 할 목표를 설정해서 보여주는 일이다. 인간이 다다라야 할 최후 지점이 올림포스의 산이다. 그 간격을 그리스 사람들은 끊임없이 좁혀가고 있다. 그리고 어느 시점에 이르면, 다시 말해 고전주의 시대에 이르면, 신은 인간의 세계로 내려와 도시와 공동체의 우두머리가 될 것이다."(p.260)

- "<사슬에 묶인 프로메테우스> 등 아이스퀼로스의 비극이 보여주는 드라마는 그냥 드라마가 아니라 현실의 투영이다. 그래서 진보적이다. 아픈 부분을 자극하고 혁명을 독려한다. 얼핏 보기에는 화해를 말하는 것 같다. 하지만 현실에서 화해하기 위해서는 투쟁해야 한다는 점을 강조한다. 불의에 맞서 싸우라고 부추긴다. 그래야 공동체에 화해가 있고 발전이 있다고 한다. 그런 의미에서 보면 비극은 진보를 넘어 혁명적 자세에 가깝다."(p.279)

- "하지만 무엇보다 중요한 건 판관들과의 대화였다. 이 대화야말로 아테나이 민중들과 나누는 결정적인 대화였기 때문이다. 마지막으로 소크라테스는 자신의 진의를 알리고자 시도했으며, 자신의 임무를 설명했다. …… 다시 말해서 자신의 목숨을 몇 년 더 연장해주는 차원을 떠나 사회의 병폐 중에서도 최악의 병폐인 불의로부터 시민들의 영혼을 구제하고자 했다. 피고 소크라테스가 주도한 논쟁의 최종 목표는 아테나이의 구원이었던 것이다. “당신들이 나에게 사형을 선고한다면, 그 결정은 내가 아닌 당신들에게 부당하게 해를 입히는 결과를 낳을 것입니다……. 나는 지금 나 자신을 변호하는 것이 아닙니다. 오히려 그 반대입니다. 나는 지금 당신들을 변호하고 있습니다.”"(p.478~479)

- "에우리피데스는 선택을 하지 않을 수 없다. 작가로서의 경력을 쌓아가는 동안 이처럼 갈림길에서 망설이는 그의 모습을 우리는 자주 보아왔다. 신이란 곧 전지전능함이며, 전지전능함이 신을 정당화하는 요건이라면, 디오뉘소스는 분명 정당화될 수 있다. 그가 어떤 행동을 하건 말이다. 소포클레스도 말했듯이, “신들이 무슨 짓을 하건 그건 악이 아니기” 때문이다. ... 신은 우리에게 죽음을 부여할 뿐 아니라, 우리를 우리와 더불어 이 세계를 춤추게 하고 노래하게 하는 본질적인 힘이다. 신은 사는 기쁨, 쾌락이며 동시에 고통이다. 신은 우리를 두려움에 떨게 만드는 눈부신 신비다. 그러니 에우리피데스는 질서정연하고 이성적이고 명쾌한 정의로 이루어진 세계를 버리고 광기의 신과 총체적인 흐름 속에 자신을 맡기는 동물적인 기쁨만이 중요시되는 박코스 행렬에 합류하는 길을 택할 것이다."(p.86~87)

- "플라톤이 구상한 국가는 기원전 4세기에 이미 사람들에게 완벽하게 균형 잡힌 국가, 그 어떤 힘도 예정되어 있는 확고한 질서를 흔들 수 없는 국가라고 하는 거짓 이미지를 선사했다. 그런데 내가 보기엔 바로 이 점이 플라톤이 우리에게 제안하는 국가의 가장 이상한 면이다. 절대로 아무것도 바뀌지 않을 것이라니. 그가 제안하는 국가에서는 진보가 철저하게 배제된다. 이 국가는 영원히 완벽한 존재로 제시된다. ... 요컨대 플라톤은 역사를 배제하려는 것으로 보인다.
하지만 ... 역사는 배제하려 한다고 해서 사라지지 않는다. 인간은 역사를 만들고 역사는 인간을 만든다. ... 플라톤이 [국가]를 쓰면서 민주주의의 사망신고서를 작성하고 있다고 믿었던 그 세기로부터 여러 세기가 지난 후, 민주주의를 향한 행보는 안정된 중세 기독교 사회에서 이탈리아와 프랑스를 중심으로 일어난 코뮌과 더불어 보란 듯이 재개된다. 이러한 움직임은 1789년 ... 1848년에도 ... 계속되었다. 그리고 마침내 “세계를 뒤흔든 열흘 ...”로 이어진다. 인류의 역사는 이제 시작되었을 뿐이다."(p.168~169)

- "젊은 왕은 또한 칼뤼아나(그리스식으로는 칼라노스라고 하며, 브라만을 뜻한다)라는 이름을 가진 고행자에게 커다란 애착을 보였다. 죽을 날이 가까워오는 것을 느낀 그의 요청에 따라 알렉산드로스는 장작더미를 쌓게 했다. 이윽고 장작더미에 올라간 칼뤼아나는 놀란 군대가 지켜보는 가운데 한마디 탄식도 업이 불꽃 속에서 타죽었다. 친구의 자발적인 죽음을 차마 지켜볼 수 없었던 알렉산드로스는 그 자리에 참석하지 않았다. 그로부터 상당한 세월이 흐른 후 기독교의 제사장에서 견유 철학자로 변신한 수수께끼 같은 인물인 페레그리노스가 올륌피아에서 이와 똑같은 방식으로 죽음을 택한다. 이렇듯 알렉산드로스가 인도를 지날 무렵에는 그리스식 지혜와 힌두식 지혜가 마주치고 있었다."(p.298)

- "칼리마코스는 영리한 사람이었다. 그는 동시대인에게 이제는 고전이 된 과거의 위대한 시인들의 모방을 장려하지 않았다. ... 그는 구닥다리 시 장르는 죽은 지 오래되었음을 잘 알고 있었다. 호메로스가 부활하는 일도, 비극 작품들이 다시 소생하는 일도 없을 것이었다. 그는 서사시가 명맥을 이어가기 위해 헛되이 매달리고 있는 연작시의 상투성을 맹렬하게 비난했다. 그는 자신의 격언시에서 “나는 연작시를 증오한다. 누구나 지나가는 상투적인 그 길.... 나는 공동 우물의 물은 마시지 않을 것이다. 대중적인 것들은 나에게 혐오감을 불러일으킨다”고 토해냈다."(p.441)

- "크고 작은 혁명들이 우리가 사는 우주를 전복시킨다... 혁명은 역사의 흐름을 바꾸어놓으며, 때로는 이 흐름을 가속화한다. 새로운 계급, 새로운 민족, 계급 없는 민족들이 이 세계를 관통한다. 에피쿠로스가 남긴 유산은 그들의 것이다. 그는 그들을 기다리고 있다. 몽테뉴는 에피쿠로스에게서 잊고 있던 조상을 발견했으며, 그래서 그와 한 가족이 되었고, 그의 생각을 이어받았다... 헬베티우스는 ‘행복’에 대해서 장문의 시를 썼고, [쾌락 예찬]이라는 글도 남겼다. 아나톨 프랑스, 앙드레 지드 등도 그에게 동조한다... 카를 마르크스는 에피쿠로스를 인간 해방자들 중의 한 명으로 예우한다.
인류는 죽음의 공포를 극복했는가? 인류는 신들이 존재했다는 사실을 완전히 망각했는가? 아직은 그렇지 못하다. 투쟁은 여전히 진행 중이다. 에피쿠로스가 다시 부상한다. 언제나의 모습 그대로, 하늘의 은하수가 변하지 않는 것처럼 늘 같은 모습으로 나타난다."(p.594~595)

 

[ 2012년 9월 17일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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