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리스인 이야기 3 - 에우리피데스에서 알렉산드로스까지
앙드레 보나르 지음, 김희균 옮김, 강대진 감수 / 책과함께 / 2011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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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책은 <그리스인 이야기> 3부작 중 마지막 편이다. 시기적으로는 기원전 4세기 초 비극작품 작가인 에우리피데스에서 그리스의 도시국가가 사라져버린 기원전 3세기의 마케도니아의 왕 알렉산드로스의 인도 원정까지를 다룬 것이다. 이 시기는 장구하게 이어졌던 그리스 문명의 황혼기였다. 저자는 그리스 3대 비극의 마지막 주자 에우리피데스, 헤로도토스와 함께 그리스 역사의 쌍벽을 이루는 투퀴디데스, 소크라테스를 이어 그리스 철학을 집대성한 플라톤, 세상 모든 것을 집대성한 아리스토텔레스, 알렉산드로스의 정복 활동과 그가 만든 알렉산드리아를 중심으로 퍼져나간 그리스 문명의 양상들, 에라토스테네스와 아르키메데스 등 근대 학문에 영향을 끼친 과학자들, 끝으로 인간의 구원을 설파한 에피쿠로스에 관해 이야기한다. 저자는 이 시기가 "아마도 과학만이 발전을 계속한 유일한 인간 활동으로 기억될 것이다"고 말한다.
 
저자는 그리스 문명의 쇠락이 단순한 쇠락이 아님을 주장한다. 아니 문명의 역사 자체가 탄생과 소멸, 그리고 소멸하는 과정 속에서 새로운 탄생이 이어짐을 말한다. "문명이나 신앙은 죽지 않기 위해서 새로운 사고방식을 탐구하고, 새로운 시와 지혜의 세계를 창조하며, 늙어갈수록 희망과 확신을 가져야 할 새로운 이유를 스스로 부여한다. 그러므로 문명의 쇠퇴기는 동시에 새로운 발견의 시기이기도 하다. 문명은 변화를 거듭할 뿐 죽지 않는다. 문명의 삶이란 말하자면 항구적인 태어남이라고도 할 수 있다."
따라서 저자의 해석으로는 알렉산드로스 대왕에 의한 그리스 도시국가의 멸망은 '현대식 '국가'라 할 수 있는 왕조를 탄생시키면서 다시 태어났고, 그리스 문학의 비극과 희극으로 신과 인간의 경계가 무너지고 사회와 사상의 격변을 통해 플라톤에 의해 기독교의 토대를 마련한 것이다.
 
에우리피데스는 작품 <메데이아>는 자연과 신에서 벗어나 자유를 찾아가던 인간이, 원칙과 제도, 그리고 자유 사이에서 갈등하던 인간이 스스로의 정념에 사로잡히는 모습을 보여준다. 저자는 그 '악마적 힘'을 통해 "분명하게 제시하는 것은 우리의 마음이 얼마나 복잡한지, 즉 우리도 알지 못하는 우리 마음의 복잡다단함이다. 또한 우리 안에 깃들어 있는 이 힘은, 우리 자신이 그 힘에 대항할 수 없고, 그 힘은 우리를 파괴할 수 있다는 점에서 비극적"임을 말한다. 저자는 또 에우리피데스의 <아울리스의 이피게네이아>에서 세계의 무질서, 무정부주의적인 감정, 의지의 불안정성에서 비롯되는 비극성을 읽어낸다. 그리고 <박카이>에서는 "전지전능함을 통해 발현되는 신의 위대함을 포착"한다. 그럼에도 여전히 에우리피데스의 작품 전체는 인간에 대한 순수한 사랑으로 불타오르게 한다. "신들은 아무리 진노했다고 해도 우리 인간들처럼 행동해서는 안된다."라고...
 
저자는 플라톤이 "역사를 배제하려 했다"고 평가한다. 플라톤은 아주 광범위한 영역에 걸쳐 노력을 기울였다. 그는 세속의 도시, 시민들에 의해서 이루어지는 타락한 민주주의 대신에 모든 영혼이 사후의 내세에서 만나게 되는 곳, 즉 천상의 도시, 천상의 왕국인 신성한 세계를 내세웠다. 그는 신과 밀접했던 그리스의 문화와 종교 대신에 신과 인간이 완벽하게 분리되는 내세와 유일신의 토대를 닦은 셈이었다. 플라톤이 그러한 종교의 기초를 닦지 않았다면 기독교는 탄생하지 못했을 것이다.
 
역사가 투퀴디데스는 기원전 5세기 후반 3분기부터 어떻게 해서 그리스의 내전이, 필립포스나 알렉산드로스 대왕보다 훨씬 더 확실하게 도시국가들을 파괴해 나갔는지를 뛰어난 혜안으로 기술한다.
 
저자는 알렉산드로스 대왕이 '천재적이었다'고 평가한다. 알렉산드로스는 자신의 아버지인 필립포스 왕이 다져놓은 초석을 기반으로 그리스의 정치적 공동체에 결정적인 치명타를 가했다. 그의 치명타는 도시국가를 파괴하는 것으로 그치지 않았다. 그는 새로운 형태의 국가, 말하자면 현대적 국가의 형태를 창조했다. 그의 놀라운 대모험 이후 동방 세계에서는 군주들이 지배하는 거대한 왕국들이 왕조를 거듭하며 명맥을 이어나갔다. 이집트의 프롤레마이오스 왕조나 서아시아의 셀레우코스 왕조 등이 대표적이다. 아마 로마의 초대 황제인 율리우스 카이사르 역시 영향을 받았을 것이다. 알렉산드로스의 정복은 곧 그리스식 지혜와 힌두식 지혜의 만남이었다.
 
* 인상 깊은 문장 :

- "에우리피데스는 선택을 하지 않을 수 없다. 작가로서의 경력을 쌓아가는 동안 이처럼 갈림길에서 망설이는 그의 모습을 우리는 자주 보아왔다. 신이란 곧 전지전능함이며, 전지전능함이 신을 정당화하는 요건이라면, 디오뉘소스는 분명 정당화될 수 있다. 그가 어떤 행동을 하건 말이다. 소포클레스도 말했듯이, “신들이 무슨 짓을 하건 그건 악이 아니기” 때문이다. ... 신은 우리에게 죽음을 부여할 뿐 아니라, 우리를 우리와 더불어 이 세계를 춤추게 하고 노래하게 하는 본질적인 힘이다. 신은 사는 기쁨, 쾌락이며 동시에 고통이다. 신은 우리를 두려움에 떨게 만드는 눈부신 신비다. 그러니 에우리피데스는 질서정연하고 이성적이고 명쾌한 정의로 이루어진 세계를 버리고 광기의 신과 총체적인 흐름 속에 자신을 맡기는 동물적인 기쁨만이 중요시되는 박코스 행렬에 합류하는 길을 택할 것이다."(p.86~87)
 
- "플라톤이 구상한 국가는 기원전 4세기에 이미 사람들에게 완벽하게 균형 잡힌 국가, 그 어떤 힘도 예정되어 있는 확고한 질서를 흔들 수 없는 국가라고 하는 거짓 이미지를 선사했다. 그런데 내가 보기엔 바로 이 점이 플라톤이 우리에게 제안하는 국가의 가장 이상한 면이다. 절대로 아무것도 바뀌지 않을 것이라니. 그가 제안하는 국가에서는 진보가 철저하게 배제된다. 이 국가는 영원히 완벽한 존재로 제시된다. ... 요컨대 플라톤은 역사를 배제하려는 것으로 보인다.
하지만 ... 역사는 배제하려 한다고 해서 사라지지 않는다. 인간은 역사를 만들고 역사는 인간을 만든다. ... 플라톤이 [국가]를 쓰면서 민주주의의 사망신고서를 작성하고 있다고 믿었던 그 세기로부터 여러 세기가 지난 후, 민주주의를 향한 행보는 안정된 중세 기독교 사회에서 이탈리아와 프랑스를 중심으로 일어난 코뮌과 더불어 보란 듯이 재개된다. 이러한 움직임은 1789년 ... 1848년에도 ... 계속되었다. 그리고 마침내 “세계를 뒤흔든 열흘 ...”로 이어진다. 인류의 역사는 이제 시작되었을 뿐이다."(p.168~169)
 
- "젊은 왕은 또한 칼뤼아나(그리스식으로는 칼라노스라고 하며, 브라만을 뜻한다)라는 이름을 가진 고행자에게 커다란 애착을 보였다. 죽을 날이 가까워오는 것을 느낀 그의 요청에 따라 알렉산드로스는 장작더미를 쌓게 했다. 이윽고 장작더미에 올라간 칼뤼아나는 놀란 군대가 지켜보는 가운데 한마디 탄식도 업이 불꽃 속에서 타죽었다. 친구의 자발적인 죽음을 차마 지켜볼 수 없었던 알렉산드로스는 그 자리에 참석하지 않았다. 그로부터 상당한 세월이 흐른 후 기독교의 제사장에서 견유 철학자로 변신한 수수께끼 같은 인물인 페레그리노스가 올륌피아에서 이와 똑같은 방식으로 죽음을 택한다. 이렇듯 알렉산드로스가 인도를 지날 무렵에는 그리스식 지혜와 힌두식 지혜가 마주치고 있었다."(p.298)

- "칼리마코스는 영리한 사람이었다. 그는 동시대인에게 이제는 고전이 된 과거의 위대한 시인들의 모방을 장려하지 않았다. ... 그는 구닥다리 시 장르는 죽은 지 오래되었음을 잘 알고 있었다. 호메로스가 부활하는 일도, 비극 작품들이 다시 소생하는 일도 없을 것이었다. 그는 서사시가 명맥을 이어가기 위해 헛되이 매달리고 있는 연작시의 상투성을 맹렬하게 비난했다. 그는 자신의 격언시에서 “나는 연작시를 증오한다. 누구나 지나가는 상투적인 그 길.... 나는 공동 우물의 물은 마시지 않을 것이다. 대중적인 것들은 나에게 혐오감을 불러일으킨다”고 토해냈다."(p.441)

- "크고 작은 혁명들이 우리가 사는 우주를 전복시킨다... 혁명은 역사의 흐름을 바꾸어놓으며, 때로는 이 흐름을 가속화한다. 새로운 계급, 새로운 민족, 계급 없는 민족들이 이 세계를 관통한다. 에피쿠로스가 남긴 유산은 그들의 것이다. 그는 그들을 기다리고 있다. 몽테뉴는 에피쿠로스에게서 잊고 있던 조상을 발견했으며, 그래서 그와 한 가족이 되었고, 그의 생각을 이어받았다... 헬베티우스는 ‘행복’에 대해서 장문의 시를 썼고, [쾌락 예찬]이라는 글도 남겼다. 아나톨 프랑스, 앙드레 지드 등도 그에게 동조한다... 카를 마르크스는 에피쿠로스를 인간 해방자들 중의 한 명으로 예우한다.
인류는 죽음의 공포를 극복했는가? 인류는 신들이 존재했다는 사실을 완전히 망각했는가? 아직은 그렇지 못하다. 투쟁은 여전히 진행 중이다. 에피쿠로스가 다시 부상한다. 언제나의 모습 그대로, 하늘의 은하수가 변하지 않는 것처럼 늘 같은 모습으로 나타난다."(p.594~595)
 
[ 2012년 9월 15일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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