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리스인 이야기 2 - 소포클레스에서 소크라테스까지
앙드레 보나르 지음, 김희균 옮김, 강대진 감수 / 책과함께 / 2011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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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리스인 이야기 2>에서는 기원전 5세기경의 문인 소포클레스로부터 기원전 399년 감옥에서 독배를 마시고 죽은 소크라테스 시대까지를 다뤘다. 자연에 대한 공포와 신에 대한 의존에서 벗어난 그리스인들은 인간 만의 고유한 문화, 문명을 창조하기 시작한다.
 
아테나이는 기원전 490년 마라톤 전투에서 페르시아에게 승리를 거두었으며, 10년 뒤에는 '테르모필라이 전투'가 발발하여 그리스 연합군은 '살라미스 해전'에서 또 승리를 거두었다. 이를 바탕으로 아테나이가 주도하여 그리스의 도시국가들을 묶은 '델로스 동맹'이 탄생한다. 댈로스 동맹은 100년을 이어가지 못했고, 시켈리아 원정에서 참패한 아테나이는 기원전 404년 '펠로폰네소스 전쟁'에서 패배하여 주도권을 상실한다.
이러한 역사로 이루어진 그리스의 기원전 5세기 약 100년은 과학의 시대, 철학의 시대, 문학의 시대였다. 역사가들은 이 시기를 '그리스 문명의 전성기'라고 부른다. 그 시기에 아테나이 도시국가의 페리클레스는 그리스에 맞는 고유한(하지만 한계가 분명했던) 민주주의 체제를 구축하였고, 소포클레스와 아이스퀼로스, 아라스토파네스와 에우리피데스는 문학의 꽃을 피워냈다. 여러 철학자들 사이에서 소크라테스가 태어나 열변을 토해내던 시대이기도 했다.
소포클레스의 <안티고네>와 그리스 비극의 풍경, 그리스의 조각 예술, 탈레스와 데모크리토스를 통해 본 그리스 과학의 태동, 다시 소포클레스와 <오이디푸스>, 그다지 주목받지 못하지만 매우 중요한 그리스 시인인 핀다로스, 지리학자이자 여행가로서의 헤로도토스, 의학의 아버지 힙포크라테스와 그리스 의학, 아리스토파네스의 그리스 희극이 번성했다.
 
이 책에서는 문학작품, 특히 비극에 대한 저자의 소개와 분석이 뛰어나다. 이 시기의 그리스 문학작품은 당시 그리스인들이 얼마나 치열하게 삶을 사랑하고 그 속에서 신과 자연과 인간에 대해 고민했는지 말해주고 있다. 대표적인 비극 작품인 소포클레스의 <안티고네>는 3천년이 지난 현 시점에서도 현대인들의 가슴에 무언가를 던져 준다. 아니 저자인 앙드레 보나르가 <안티고네>라는 작품 속에서 현대인이 무엇을 생각하고 느껴야 하는지 알려준다고 할 수 있겠다. 그는 소포클레스의 천재성과 예술성을 밝혀낸다. 나는 작품의 작가인 소포클레스보다 작품을 현대적으로 해석한 저자에게 더 큰 공감을 얻게 되었다.
 
<안티고네>는 오이디푸스의 후계자인 두 형제가 서로를 죽인 다음 이야기로 진행된다. 두 형제의 외삼촌인 크레온이 왕위를 이어받아 원칙적인 정치를 펼친다. 애국자인 에테오클레스의 장례식은 성대하게 치르게 하되, 반역자로 지목된 폴뤼네이케스의 장례를 불허하고 짐승의 밥이 되도록 방치한다. 하지만 두 형제의 동생인 안티고네는 그럴 수가 없었다. 안티고네는 밤중에 몰래 폴뤼네이케스의 장례를 치르고 체포된다. 크레온은 안티고네에게 사형선고를 내리고 안티고네를 사랑했던 크레온의 아들 하이몬은 안티고네의 사면을 요청한다. 결국 안티고네는 목을 내 자살하고 하이몬은 크레온에게 반항하다가 칼에 찔려 죽고 크레온의 아내는 아들의 죽음에 절망하여 스스로 목숨을 끊는다. 크레온은 고통을 외치며 자신의 죄를 고한다.
<안티고네>는 안티고네와 크레온, 두 사람의 대결로 압축된다. 저자는 "두 사람이 다르면서 동시에 닮은, 동일한 성격을 지닌 정반대의 영혼, 타협할 줄 모르는 결연한 의지, 원하는 것을 얻으려는 투지에 불타는 사람이라면 반드시 필요한 가차 없음으로 무장한 의지를 지녔다"고 평가한다. 한 사람은 자기 아들에게, 또 한사람은 자기 동생에게 '전부를 주지 않을 거면 아무것도 주지 말 것'을 강요한다. 자신이 택한 절대적인 선택을 남에게도 요구한다. 다시 말해 저자는 두 사람이 "똑 같은 광신주의"에 사로잡혀 있다고 분석한다. 다른 모든 소중한 것들은 얼마든지 희생할 각오가 되어 있다. 그리고 비극이 끝나갈 무렵, 두 사람에게는 고독이라는 위협이 찾아온다. 다만 저자는 안티고네의 고독과 크레온의 고독이 다르다고 지적한다. 안티고네에게는 사랑으로 고양된 영혼이 느껴지는 반면, 크레온에게는 사랑이 닫힌 이기심만을 느낀다.
그렇지만 저자는 그러한 크레온마저도, 우리와 너무도 닮았기 때문에 미워할 수가 없다고 말한다. 그는 "그는 물론 가볍지 않은 죄를 저지른 죄인다. 하지만 그렇고 그런 추상적인 원칙에 의거해서 그를 손가락질하기엔 그가 저지른 실수가 우리가 늘 저지르는 실수와 너무나 닮은 꼴"이라 말한다. "크레온은 우리가 늘 경험하는 비극적인 일상의 일부다. 그는 자신의 방식대로, 아니 자신의 위치에서 옳았으며, 마땅히 해야 할 일을 했다. 그렇기 때문에 소포클레스는 그 과실, 즉 분열되어 있는 우리의 인간성과 그 인간성과 더불어 살아가야하는 세계에 대한 뼈저린 인식을 안겨준다." 따라서 저자는 "우리는 안티고네이면서 동시에 크레온"이며, 두 사람이 겪는 갈등이라고 말한다.
 
그리고 저자는 그리스의 비극 작품에 대한 가치를 애기한다. 비극 작품은 '가치의 제안', 아니 '가치 있는 삶의 방식의 제안'이며, 모색으로서 우리 안에서 아슬아슬하게 균형을 잡아준다는 것이다. 안티고네와 크레온, "이 두 인물은 서로 대립하면서 의지하며 결국 포개지는 인간 삶의 양면 같은 존재들이다."
크레온은 우리에게 '국가'와 '운명', '질서'를 의미한다. 그 질서의 극한은 우리도 잘 아는 '파시즘'이다. 안티고네는 '양심'이자 '자유'다. 법이나 질서는 양심에 우선할 수 없다. 저자는 "안티고네가 자유라면, 크레온은 운명이다"라고 결론을 내린다.
 
우리에게 고대의 자연철학자로 알려진 탈레스는 단순한 자연현상들로부터 물에 대한 개념, 즉 물이 모든 원소의 근본이라는 개념을 정립했다. 저자가 탈레스에게서 중요하게 평가하는 것은 "그가 자연이나 인간이 발명해낸 기술들을 유심히 관찰했으며, 이 과정에서 어떠한 초자연적인 설명도 배제했다"는 점이다.
데모크리토스는 서구 자연과학사에서 '원자론'을 처음 제기했다. 그는 신성을 개입시키지 않고 가장 객관적인 방식으로 이 세계를 설명하기 위해 노력한 것이다. 하지만 저자는 이러한 데모크리토스의 원자론 역시 "이오니아 지방의 오래된 유물론을 계승한 것으로, 고대 그리스에서 진정으로 무신론적인 최초의 학설"이라고 말한다.
저자는 '의학의 아버지'로 불리는 힙포크라테스를 '철저한 사실주의자'로 평가한다. 힙포크라테스는 자신이 정립해가고 있는 학문의 한계도 잘 알고 있었다. 그는 '인간의 치유는 자연의 도움과 인간 신체기관의 도움이 어우러져 이루어진다'고 생각했다. 그리고 결정적으로 그는 고대 그리스 노예제, 여성차별 사회에서 '노예와 여자를 차별하지 않는 의학'을 펼쳤다. 그야 말로 그리스에서 가장 순수하고 완벽한 인본주의를 보여주었다. 고대 그리스의 '힙포크라테스 선서'를 읽어보면, 근현대의 의사와 의학자들이 얼마나 변질되었고 기득권에 매달리는지 알 수 있다.
 
소크라테스가 본격적으로 활동하던 당시의 그리스와 아테나이는 도시 간의 전쟁, 파당으로 인한 전쟁, 민주주의 붕괴 등으로 그리스 문명이 쇠퇴하기 시작한 때였다. 아테나이의 경제는 자립하지 못하고 동맹국들의 조공과 노예들의 노동만이 존재했다. 100년 만에 시민의 수는 절반으로 줄어들었고 노예의 수는 20만 명에서 40만 명으로 두 배 가까이 늘어났다. 아테나이에는 프로타고라스, 고르기아스, 프로디코스 등 소피스트들이 많았다. 그들은 수업료를 받았고, 소크라테스는 "지혜의 거래는 아름다움의 거래와 마찬가지로 매춘이라 불러야 마땅하다"면서 돈을 매개로 지식을 하고파는 일을 대단한 수치로 여겼다.
아테나이 법정에 제출된 소크라테스에 대한 기소장에는 두 가지 죄목, 즉 '신을 믿지 않는 죄'와 '젊은이들을 타락시킨 죄'가 적혀 있었다. 그는 신성이라는 확고한 실체에 대해 "나는 아무 것도 모른다는 사실만을 유일하게 말고 있다"고 공공연하게 선언했기 때문이다. 재판관들은 죄의 유무에 대한 판결에서 유죄 281표, 무죄 220표로 그에게 유죄를 선고했다. 죄인에게 어떤 형벌을 내려야 할지를 두 번째 재판에서 결정했다. 하지만 그는 자신의 죄에 대한 선처를 바라는 대신 "나에게 보상을 달라. 아니면 차라리 죽음을 달라"고 외쳤다. 두 번째 재판은 거의 만장일치로 그에게 사형을 선고했다. 그는 자신에게 사형을 선고한 판관들에게 말했다. "명심하십시오! 사람들을 죽인다고 해서 진실이 사라지지는 않습니다. 오히려 그 반대죠. 진실은 한층 더 강력하게 공격해 올 것입니다. 진실을 위해 종사하는 자들의 소리는 선한 사람이 됨으로써만 멈추게 할 수 있습니다."
 
저자는 소크라테스가 자신을 고발한 자들보다 훨씬 더 자신의 죽음을 원했다고 추측한다. 그리고 소크라테스는 "악법도 법이다"라고 말한 적이 없다. 다만 그는 그냥 사는 것보다 재대로 사는 것을 원했기 때문에 시민법정의 판결을 받아들였을 뿐이다. 자신의 죽음을 통해 아테나이 시민들이게, 후손들에게, 그리고 21세기의 우리에게까지도 원칙을 말하고자 했을 뿐이다. 부당하게 살아남지 말라고...
 
* 인상깊은 문장 :
 
- "하지만 무엇보다 중요한 건 판관들과의 대화였다. 이 대화야말로 아테나이 민중들과 나누는 결정적인 대화였기 때문이다. 마지막으로 소크라테스는 자신의 진의를 알리고자 시도했으며, 자신의 임무를 설명했다. …… 다시 말해서 자신의 목숨을 몇 년 더 연장해주는 차원을 떠나 사회의 병폐 중에서도 최악의 병폐인 불의로부터 시민들의 영혼을 구제하고자 했다. 피고 소크라테스가 주도한 논쟁의 최종 목표는 아테나이의 구원이었던 것이다. “당신들이 나에게 사형을 선고한다면, 그 결정은 내가 아닌 당신들에게 부당하게 해를 입히는 결과를 낳을 것입니다……. 나는 지금 나 자신을 변호하는 것이 아닙니다. 오히려 그 반대입니다. 나는 지금 당신들을 변호하고 있습니다.”"(p.478~479)
 
[ 2012년 9월 13일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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