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리스인 이야기 1 - 호메로스에서 페리클레스까지
앙드레 보나르 지음, 김희균 옮김, 강대진 감수 / 책과함께 / 2011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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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양인들은 자신들의 문명의 뿌리를 고대 그리스라고 말한다. 그래서인지 몰라도 유럽과 북아메리카 대륙에는 고대 그리스에서 유래된 지명이나 인명이 많다. 신화와 전설도 21세기인 지금까지 이어지고 있고, 그것을 바탕으로 학문과 문화가 재해석된다. 우리나라에서도 화제가 되었던 영화 <300>과 <알렉산더>, 그리고 <트로이>가 대표적인 예라 할 수 있다. 그만큼 서구인들과 서구문화, 그리고 서구에서 출발한 학문들은 고대 그리스를 잘 알지 않고는 제대로 이해하기가 어렵다.
하지만 우리나라에는 그리스 ‘신화’ 이외에 고대 그리스의 ‘역사’를 다루고 있는 책은 많지 않다. 서구사회에서도 마찬가지인 것 같다. 고대 그리스에 대해 알려면 신들의 이야기가 아닌 그리스 신화를 창조해낸 그리스 사람들의 실제 이야기가 필요하다. 그런 면에서 이 책은 적절하다. 저자 앙드레 보나르는 역사의 눈으로 그리스를 바라본 전문가이다. 우리가 모르고 있었던 새로운 그리스인의 모습과 생활상, 그 사상까지 엿볼 수 있는 좋은 기회가 되었다.


<그리스인 이야기 3부작>은 고대 그리스의 역사를 다루면서도 논문이나 연구서가 아니기 때문에 인용이나 복합한 고증 내용은 포함시키지 않는다. 그리고 보통 우리가 딱딱하게 여기는 지배자나 왕 중심의 '통사'도 아니다. 저자는 고대 그리스에서 실제 있었던 사실을 바탕으로 이야기를 풀어나가면서도 인문과 사건, 그리고 문화와 작품을 중심으로 그리스 역사를 풀어간다. 자연을 이겨내고 문명을 이루어가는 그리스인의 발자취를 찾고 설명해준다.
그래서 이 책에는 시오노 나나미의 <로마인 이야기>와 다른 재미가 있다. 호메로스의 <일리아드>와 <오뒷세이아> 등 고대 그리스 문인들의 작품을 문명으로 나아가는 그리스 시인의 역작으로 평가하는 등 고대의 작품에 대한 저자의 안목이 탁월하게 느껴져 절로 감탄이 나올 때가 한 두번이 아니었다.
이 책은 3부작 중 첫 번째로 '그리스 문명의 탄생'에서부터 그리스 중에서 가장 처음 민주주의 체제를 만들었던 아테나이의 페리클레스 시대까지 다룬다. 그리스 문명 탄생의 역사적 배경, 그리스 문명 초창기의 사건들, 그리스 민족의 전쟁사인 호메로스의 <일리아스>에 녹아 있는 인본주의, <오뒷세이아>를 통해 본 그리스 민족의 바다 정복기, 그리스 최고의 서정시인 아르킬로코스와 자유주의 시민의 탄생, 미지의 뮤즈 삽포와 사랑의 아름다움, 아테네의 발전과 민주주의의 기원 그리고 상업의 발달과 솔론의 사회개혁, 노예와 여성의 사회적 지위를 통해 본 그리스 민주주의의 한계, 인간 중심의 철학인 그리스의 종교, 그리스 비극의 정점인 <오레스테이아> 3부작, 아테네 민주주의의 완성자 페리클레스 등을 다룬다.
1부는 신과 인간에 대하여, 비극과 희망에 대하여, 운명과 정의에 대하여 그리스인들이 문명을 만들어 가는 과정을 재미있게 말해준다.

저자는 서문에서 고대 그리스의 본 모습을 알기 위해서는 먼저 우리의 선입견 속에 깊이 새겨진 '신화'를 깨뜨릴 것을 요구한다. 다른 지역, 다른 민족과 마찬가지로 그리스, 그리고 그리스인도 처음에는 "원시적인 종족"이었다는 것이다. 그는 '그리스 중의 그리스'라 할 수 있는 "고대의 아테나이에서도 미신 같은 것이 존재했고, 원시인에게서나 볼 수 있는 '엽기적인 풍속'도 그대로였다"라고 말한다.
예를 들어 기원전 5세기에 벌어진 '살라미스 해전'에서 그리스 총사령관 "데미스토클레스는 승리를 위하여 디오뉘소스 신에게 아테나이 최고집정관의 친조카들을 제물로 바쳤다. 그는 군사들이 보는 앞에서 세 사람의 목을 졸라 죽였다". 오늘날 유물론의 창시자로 알려져있는 데모크리토스는 "월경 중인 여자 아이들은 수확을 앞둔 밭 주위를 하루에 세번 뛰어다녀야 한다고 생각했다. 월경 때 흘리는 피가 해충을 박멸하는 항생제 역할을 한다고 믿었기 때문"이다.

저자는 그렇게 미개한 원시 종족 수준이었던 그리스인들이 자연의 법칙을 깨달아 알고 자연에 대해 반격을 가하는 과정이 바로 '문명'임을 말한다. 발칸반도에서 여러 번 남하한 그리스인들은 원래 유목민이었다. 그러다가 헬라스라는 땅에 나려와 자리를 잡고 척박한 땅을 일구기 시작했다. 그들이 상업을 하게 된 것은 단순히 모자란 것들을 채우기 위해서였다. 올리브나무애서 나온 기름과 포도에서 짜낸 포도주를 이웃 아시아 땅에서 만든 옷감과 교환하기 시작한 것이다. 그들이 배를 타기 시작한 것은 늘어나는 인구를 먹이기 위해 밀과 보리를 흑해 북쪽에서 얻어오려면 바다르루건너는 것 외에 다른 방법이 없었기 때문이다. 유목민이었다가 농민이 되었기에 그리스인들은 바다를 알지 못했다. 바닷가에 살던 원주민에게서 새롭게 배운 것이다. 그래서 그리스어에는 '바다'라는 단어가 없었고 원주민들이 썼던 단어 '탈랏사(thalassa)'를 베껴 쓸 수 밖에 없었다.

밭에서 힘든 노동을 하고 사나운 배를 타면서 생사를 넘나드는 과정에서 그리스인들은 다른 원시인과 마찬가지로 '노동요'를 부르기 시작했다. 저자는 아득한 옛날부터 전해져 내려오는 노동요의 리듬을 개발해서 새로운 장르에 도전한 것이 시, 즉 서사실고 설명한다. 오래된 영웅들의 삶을 풍부하고도 절제된 리듬에 담아낸 것이다. 노래를 부르다 보면 사람들의 가슴 속에는 희망과 용기가 솟아났다. 그 중에서 지금까지 전해져 내려오는 것이 <일리아드>와 <오뒷세이아>다.
이렇게 고대 그리스의 서사시와 서정시, 극시들은 언어로 빚어낸 그리스의 과거와 현재가 담겨 있다. 그 속에는 그리스인들의 고통과 희망이 들어 있다. 상상의 세계 속에서 마주치는 꿈과 환상이 있다.

그리스 인들은 무섭고 사나운 자연의 현상을 이해하기 위해 세상의 창조주로서 '신'을 상정하게 되고, 그 신들에게 의지했다. 신들의 형상은 가장 이상적인 인물의 형상으로 삼았다. 그와 동시에 그리스인들은 자연을 극복하고 인간을 좀 더 자유롭게 하기 위하여 수학을 만들고, 천문학을 개발했다. 물리학과 의학의 기본 지식을 차근차근 쌓아나갔다. 그리스 지역의 지리적 현황과 경제구조는 그리스가 자연스럽게 도시국가로 발전되도록 이끌었다. 도시는 문명의 힘으로 사회가 되고, 도시 안에 사는 사람들은 평등하게 문명을 향유할 권리를 가졌다. 그래서 불완전하게나마 그리스인들은 민주주의를 고안한 최초의 민족이 되었다.

여기까지가 <그리스인 이야기 3부작>의 첫 번째에 해당하는 이야기이다.
 
* 인상 깊은 문장 :
"아킬레우스와 헥토르, 그들은 기질이 전혀 다른 두 종류의 인간이면서, 인류의 두 시대를 상징적으로 보여주고 있다.
위대한 아킬레우스는 통재로 불타고 있는 한 시대에서 마지막 빛을 발한다. 약탈과 전쟁으로 얼룩진 아카이아인들의 시대는 이제 아킬레우스와 함께 사라져가고 있다. 훗날 우리 속에서 언제든 다시 부활할 수 있겠지만 말이다.
그리고 그 자리에서 헥토르는 새로운 시대를 선언한다. 가족과 땅과 공동체를 지키고자 하는 시민들의 시대가 왔음을 선언하고 있는 것이다. 그는 단지 잘 싸우기만 하는 사람이 아니다. 타협할 줄도 안다. 협정을 맺을 줄도 안다. 가족에 대한 사랑으로 충만한 사람이다. 그리고 그 사랑은 다음 세대에서 더 넓은 인류에 대한 사랑으로 발전할 것이다.
<일리아드>가 위대한 것은 그 때문이다. 이 위대한 시편은 아킬레우스와 헥토르라는 상반된 인간형을 통해서 인간의 고결함과 정의로움에 대해서 말하고 있다. 아킬레우스와 헥토르가 있었고, 그들이 인류의 역사를 번갈아 가며 이끌어왔으며, 지금 우리의 마음 속에서도 계속 싸우고 있는 건지도 모른다."(p.94)
 
"오뒷세우스는 지혜로운 인간의 상징이다. 인간의 지혜는 실질적이고 창조적이다. 세상에 대한 의미 없는 지식을 쌓아놓는 것이 아니다. 어려운 상황이 닥칠 때마다 적절한 대안을 제시할 줄 아는 그런 지혜다. 신과 적들은 인간이 가는 길목마다 방해꾼을 심어놓고 인간을 끊임없이 불행의 나락으로 인도한다. 그런 상황에서는 지혜만이 인간을 구할 수 있다. '재주꾼' 오뒷세우스가 이기는 이유다."(p.121)
 
"혹시라도 그리스가 민주주의를 발명했다고 한다면, 그 발명품이란 어린아이의 입안에 난 이와 같다. 반드시 죽고 다시 태어나야 할 민주주의였다. 곧이어 그리스는 죽고 새로운 민주주의가 다시 태어날 것이다."(p.235)
 
"신을 끊임없이 의인화해서 그리스 종교가 노리는 바는 무엇일까? 그것은 다름 아니라 인간이 도달해야 할 목표를 설정해서 보여주는 일이다. 인간이 다다라야 할 최후 지점이 올림포스의 산이다. 그 간격을 그리스 사람들은 끊임없이 좁혀가고 있다. 그리고 어느 시점에 이르면, 다시 말해 고전주의 시대에 이르면, 신은 인간의 세계로 내려와 도시와 공동체의 우두머리가 될 것이다."(p.260)
 
 
"<사슬에 묶인 프로메테우스> 등 아이스퀼로스의 비극이 보여주는 드라마는 그냥 드라마가 아니라 현실의 투영이다. 그래서 진보적이다. 아픈 부분을 자극하고 혁명을 독려한다. 얼핏 보기에는 화해를 말하는 것 같다. 하지만 현실에서 화해하기 위해서는 투쟁해야 한다는 점을 강조한다. 불의에 맞서 싸우라고 부추긴다. 그래야 공동체에 화해가 있고 발전이 있다고 한다. 그런 의미에서 보면 비극은 진보를 넘어 혁명적 자세에 가깝다."(p.279)

[ 2012년 9월 11일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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