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시 학교를 생각한다 - 페이스북 친구들과 나눈 우리 교육이야기
이수호 지음 / 한길사 / 2012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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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국교직원노동조합(전교조) 전 위원장, 민주노동조합총연맹 전 위원장, 민주노동당 전 비상대책위원장,... 저자 이수호의 직함은 많았다. 그렇지만 그를 만나보면 그가 영낙없이 평범한 선생이라고 느낀다. 그는 자신을 그냥 '교사'로 불려주길 원한다. 아니 자신이 '교사'가 천직이었음을 말하고, 지금도 교단에 돌아가기를 원한다.
우연한 기회에 이 책이 인터넷 서점에 정식으로 등록되기 전에 조촐한 출판기념회에 참석하게 되었다. 내가 가입되어 있는 얼숲(페이스북) 그룹 중에 '철학을 생각하는 사람들(철행사)'라는 모임이 있다. 그 모임에서 매 달 정기적으로 토론회를 개최하는데, 마침 저자의 출판기념회가 열린다고 하여 참석하게 된 것이다. 기념회에서는 김경아씨 사회로 현직 교사인 김태식 선생과 대담도 진행되었고, 뒷풀이도 재미있게 참여했다.
 
저자 이수호는 군대를 제대한 후 1974년 스물 일곱에 울진군 제동중학교에서 국어 교사로 교직에 첫 발을 내딛었다. 그 뒤 1977년 서울 수유리의 신일중고등학교로 옮겨, 1989년(5월 28일) 전교조 결성에 앞장섰다가 해직될 때까지 12년 간 학생들을 가르치고, 다시 전교조 합법화와 함께 10년 만에 실업계 학교인 선린인터넷고등학교에 복직하여 2008년까지 근무했다. 2008년 진보정치의 요청을 받고 민주노동당 혁신재당창위원장으로 활동하기 위해 사표를 쓰기까지 33년을 교사로 살았던 것이다. 중견 교사로 접어들던 1980년대에는 민주화운동의 봇물이 교육운동에도 큰 변화를 일으켰다. 시대의 흐름 속에서 그는 1983년 YMCA 교사회 활동을 시작으로, 86년 5월 교육민주화선언, 88년 전국교사협의회, 89년 전교조 결성으로 이어지는 일련의 교육 민주화 운동의 전면에서 활동하면서 수 차례 정부당국으로부터 구속과 해직을 당했다.
 
저자는 비슷한 연배의 정치인이나 시민단체 활동가와는 달리 매일매일 얼숲을 통해 사람들과 소통한다. 위에서 몇 명이 결정하고 그것을 아래로 내려 보내 따르도록 하는 방식은 이제 통하지 않는다는 것을 깨달았기 때문이다. 일방통행 없이, 쌍방향으로 주고받으며 함께 만들어가는 형식. 즉 그는 이제 바야흐로 SNS의 시대임을 인정하고 적극적으로 동참한다. 물론 얼숲에서 그의 가장 큰 관심사는 교육문제다.
 
저자는 "교육 문제로 오늘도 우리 사회는 아프다"라고 책을 시작한다. 청소년들의 학교폭력과 자살, 성적 줄 세우기의 경쟁교육, 무너지는 공교육, 치솟는 사교육비와 등록금, 수시로 바뀌는 입시전형 등, 초등학교부터 대학교에 이르기까지 아프지 않은 곳이 없다. 탁상공론과 임시방편으로 일관하는 정부의 교육 정책은 끊임 없이 부작용을 낳고, 어떤 정부의 어떤 정책으로도 치유가 쉽지 않아 보인다. '공교육 무용론', '교육 불가능의 시대'라는 진단도 나온다. 교육현장에 몸담고 있는 어떤 교사는 “지금 학교가 존재하는 것은 다른 이유가 없다. 국가는 거둔 세금을 써야 하고, 교사는 월급을 받아야 하며, 학생은 졸업장을 받아야 하고, 부모는 아이를 맡길 때가 없기 때문이다"라고 말한다. 이 말은 '평생 교사'인 저자의 가슴을 마구 내리친다. 어디선가 꼬여 있는 매듭을 풀어야 하는데, 근본적인 해결책이 필요한데, 어디서부터 어떻게 손을 써야 할지 묘안이 떠오르지 않는다. 고대 그리스의 전설인 '고르디우스의 매듭'과도 같다. 어쩌면 마케도니아의 왕 알렉산드로스처럼 매듭을 풀려고 애쓸게 아니라 칼로 잘라버리는 것이 해결책이 될 수도 있을 것이다.
 
"우리 사회와 학교, 그리고 우리 교사들의 잘못이, 너희들의 등을 떠밀어 아파트에서 떨어지게 하고, 책임까지 물어 이 뜨거운 날 너희들을 광화문 돌바닥 위에 세웠구나"(p.25 광화문 광장에서 '입시경쟁 교육 OUT'이라는 일인 시위를 하는 여학생을 보고 나서...)
 
저자 이수호는 이런 교육 현실을 일선 교사들이 누구보다 안타깝게 바라보고 있을 것이라고 믿는다. 소명의식과 책임감을 통감하기에 그들은 오늘도 흔들리는 교육의 자리를 힘겹게 지키고 있다. 교사들마저도 의미도 감동도 얻지 못하는 교육현장. 정말 우리 사회의 교육에는 희망이 없는 것일까? 
하지만 저자는 "그래도 교육이 희망"이라고 말한다. 그는 오랫 동안 참교육을 위해 헌신해왔다. 전교조 위원장과 민주노총 위원장을 지내고, 우리 사회 갈등의 현장에는 어김없이 참여해 발언해온 시민운동가이자 시인이기도 한 그다. 그의 희망은 오랜 경험에서 오는 믿음 때문일수도 있고, 교사에 대한 남다른 자부심 때문일수도 있다. 그는 "꼬일 때로 꼬인 교육 문제를 바로잡는 첫째가 교사"이며, "교사의 교육적 헌신은 문제해결의 처음이요 근본"이라고 강조한다. "힘들지만 안타깝게도 다른 길이 없기 때문에 교사가 더 책임 있게 나서야 하고 그것이 순서"라고 말한다.

이 책은 이처럼 교사로서 이수호의 삶과 생각, 신념과 철학을 알게 해준다. 책 속에는 과거 교사 시절 제자들과의 사연과 일화들이 수필체의 정갈한 문장 속에 진실하게 회상되고 있다. 아무리 시대가 바뀌어도 스승과 제자, 아니 교육 전체의 근본 가치가 사랑과 신뢰, 존중이라는 그 분명한 진리를 온몸으로 보여준다. 일화 곳곳에는 사소한 실천 하나에도 학생들을 배려하는 그만의 선생다움이 묻어난다. 그는 수업시간에 교실에 들어갈 때 항상 노크를 하고, 인사 태도가 불량하다고 몇 번이고 되풀이시켜 인사를 마치 벌의 수단으로 삼지 않았으며, 생일이면 적절한 책을 골라 선물하고, 가정방문 가서 어려운 형편을 보고는 앉은뱅이 책상을 선뜻 선물하기도 했다. 잘못한 제자를 진심으로 사랑하기에 그 부모 앞에서 매를 들고, 때로는 야학활동을 하다가 학생들의 부추김에 공장을 차린 어리숙한 어른이기도 했다.
그런 마음결을 제자들은 잘 알았다. 그래서 곤경에 처한 스승을 위해 기꺼이 나서기도 했다. 1985년 '교육민주화 선언'으로 해직의 위기나 경찰에 쫓길 때는 고3 학생들이 학교 운동장에서 연좌시위를 하여 저자의 해직을 막아섰다. 어떤 제자는 법정에서 저자의 징계 철회를 바라며 용감하게 증언도 했다. 세월이 흘러 사회 속에서 그런 제자들과의 만남은 또 다른 관계로 확장되었다. 때로는 판사가 된 제자가 자신이 관련된 사건을 맡으면서, 교정계 공무원이 된 제자가 있는 구치소에 수감되면서, 배움터에서 서로 같은 학생이 되어서... 그렇게 제자들과 만남은 이어졌다.
그는 "이 어려운 시대를 같이 살면서 새로운 만남과 관계로 연결되고, 이제는 오히려 나의 교사가 되어 나를 가르치는 그런 얼굴들이 되어 있었다"고 말한다. 제자들은 사회 곳곳에서 사회인으로서 의젓하게 활동하고 있다. 저자 역시 교직을 떠나 시위현장에 서거나 사회운동과 정치를 할 때도 "그 모두가 이 시대 교사의 사명과 역할"이라고 생각했다. 그는 학교도 학교지만, 그 이후 각자가 어떤 삶을 사느냐가 더 중요함을 몸소 보여주고 있는 것이다. 그는 자신의 꿈, "평교사로 지내며 아이들 박수와 노래 속에서 정년 퇴임식을 맞으려 했던, 소박하지만 가장 컸던 그 꿈"을 이루지는 못했지만, 가장 행복하고 보람된 교사다.

교육은 우리 사회의 종속 변수이기에 다른 사회현상과 직결되어 있다. 사교육시장, 학벌사회, 학력에 따른 임금 격차 등이다. 저자는 이런 것들과 함께 변화하려는 노력 없이는, 교육만 가지고 아무리 발버둥 쳐도 어려울 수밖에 없다고 말한다. 하지만 동시에 그렇다 하더라도 이런 것들을 핑계 삼으며 교육(학교)에서 노력을 게을리해서는 안 된다고 강조한다. 아무리 힘들더라도 교육부터 활로를 찾으려는 노력을 먼저 해야 한다. 그 노력에는 가장 앞에 교사들이 있어야 하고, 그 옆에 학부모와 뜻있는 시민들이 함께해야 한다. 같이 토론하고 애기하면서 교육을 변화시켜야 하는 것이다. 그가 더욱 절실하게 교육을 붙잡으려는 이유이고, 그러는 한 그는 언제나 교사다.
 
 
[ 2012년 9월 10일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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