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
교육부의 대국민 사기극 - 노무현 정부의 교육정책 전면 비판과 대안
정진상 외 지음 / 책갈피 / 2005년 11월
평점 :
절판
1987년 6월 항쟁 이후 새로운 가치와 방식으로 한국사회를 변화시키고자 했던 흐름이 꺽이기 시작하고 지금까지 어려워졌던 이유이자 앞으로 한국사회가 나아지기 위해 꼭 해결해야 할 과제 중의 하나로서, 나는 교육문제를 꼽는다. 유치원생 어린이부터 대학 재학 중인 청춘들까지 입시지옥, 자격증 지옥, 무한경쟁에 내몰아 버린 한국의 교육 현실이야말로 사회적 불평등과 양극화의 심화, 부동산 거품과 경제구조의 비효율성, 연고주의와 승자독식주의를 악순환시키는 주요한 고리라고 생각한다.
그리고 그런 식으로 교육이 작동하게끔 발동을 건 첫 계기는 역설적이게도 6월 항쟁 이후 최초로 들어선 김영삼 문민정부의 '5.31 교육개혁안'이라 생각한다. 김영삼 정부의 대통령 자문 교육개혁위원회 명의로 개혁안이 만들어졌으며 이를 주도한 인물은 박세일 당시 대통령비서실 사회복지수석비서관(교육개혁위원 엮임), 김신일 당시 교육부장관, 이주호 KDI 연구원, 강봉균 국무총리 행정조정실장이었다. 1995년 5월 31일 교육개혁위원회는 “신교육체제는 1) 교육 공급자 중심에서 학습자 중심 교육으로 2) 획일적인 교육에서 다양하고 특성화된 교육으로 3) 규제와 통제 중심 교육 운영에서 자율과 책무성에 바탕을 둔 교육 운영으로 4) 획일적 균일주의 교육에서 자유와 평등이 조화된 교육으로 5) 흑판과 분필 중심의 전통적 교육에서 교육의 정보화를 통한 21세기형 열린 교육으로 그리고 6) 질 낮은 교육에서 평가를 통한 질 높은 교육으로 전환할 것을 제시하고 있다.”라는 취지로 '5.31 교육개혁안'을 발표하였다.
'5.31 교육개혁안'으로 시작된 '교육개혁'은 자립형 사립고등학교(자사고) 도입, 그리고 김영삼 문민정부를 뒤이어 김대중 국민의정부와 노무현 참여정부는 원칙적으로 '5.31 교육개혁안'을 토대로 교육정책을 펼쳤고, 현 이명박 정부 역시 마찬가지라 할 수 있다. 그 결과는 어떠했나?
자사고는 '평준화 보완을 빙자한 귀족학교 만들기'로 전락하였다. 자사고를 신청한 학교들은 자사고 도입 취지를 무색하게 만들면서 귀족학교와 고급입시전문 고등학교를 향해 나아가고 있다. '학습자 중심의 교육'은 '우열반' 편성으로 변질되었고, '다양하고 특성화된 교육'을 이유로 확대된 과학고와 외국어고는 '대학입시 전문학원' 수준으로 전락해 버렸다. '자율과 책무성에 바탕을 둔 교육 운영'은 소리 소문 없이 사라졌고, '획일적 균일주의 교육에서 자유와 평등이 조화된 교육'은 오늘도 '대학입시 무한경쟁' 속에 파묻혔다. '교육의 정보화'는 각급 학교 교실에 컴퓨터와 빔프로젝트, 영상과 음향시스템을 구축하는 하드웨어 제작회사들만 배부르게 해주었고, '질 높은 교육'은 공허한 메아리가 되버린 지 이미 오래다. '대학 자율화'를 외치면서 수능시험을 통해 '일렬로 줄세우기'는 폐기하지 않았고 본고사 도입이나 고교 등급제를 시도했다가 전사회적인 반대에 부딪혀 포기했다. 대학 설립을 무분별하게 허용하여 교육 시스템과 인력을 갖추지 못한 2년제, 4년제 대학이 급속하게 늘었고, 오히려 '대학 서열'은 강화되었다. 사립대학은 '교육'이 아니라 '돈벌이'로 전락한 지 오래되었고...
나는 전교조와 참교육학부모회 등 교육관련 시민단체들이 '신자유주의 교육의 심화'라고 비판하고 비난하는 것은 오히려 가벼운 질책이라 생각한다. 지난 4개의 정부가 진행한 '교육 개혁'은 그나마 부분적으로나마 진행되어 오던 '제도교육을 통한 학생들의 자유와 도약할 수 있는 기회의 제공, 학생들 간의 창의성과 협동성의 배양, 사회적 평등의 추구'에 결정적인 타격을 주었다. 지난 17년 동안 학생들의 공부시간은 늘어났지만 학생들의 창의성은 떨어졌고, 대학입시는 '과열'에서 '입시지옥'으로 변했다. 성적과 시험 스트레스로 인한 아이들의 자살과 학교 폭력은 늘어났고, 사교육 산업은 날로 번창하여 이제 유치원부터 대학 재학생까지 '평생 학원 학습 체제'가 구축되었다. 그들은 교육개혁을 통해 '교육'이 아이들을 전인적인 인간으로 자라도록 돕는 것이 아니라 '부모의 자산과 소득에 따라 사회적 계층을 나누는 과정'으로 만들어 버렸다. 아이들과 청년들을 '입시지옥과 자격증 지옥'으로 내몰았고 그 '지옥'에 빠져있는 기간도 3년에서 16~20년으로 늘렸다. 우리의 아이들을 죽이고 있는 시스템을 구축한 것이다. 이것은 비판이나 비난을 받을 일이 아니라 단두대로 보내거나 광장에 꿇어 앉힌 다음 돌팔매질을 당해야 할 일이다.
내가 분통이 터지는 것은 이렇게 '아이들을 죽이는 교육'을 본격적으로 시작하고 심화시킨 주체들이 군사독재자나 보수우익 세력이 아니라 6월 항쟁의 주역들이었다는 사실이다. 김영삼 대통령의 문민정부, 김대중 대통령의 국민의정부, 노무현 대통령의 참여정부가 그들이다. 대통령과 이명박 정부는 과거 민주 정부의 각종 정책을 부정한다고 선언했음에도 교육정책만큼은 기존 방향과 방식을 더욱 심하게 몰아부쳤다.
하지만 국민의정부와 참여정부의 핵심 주역들은 그러한 사실에 대한 사과는 커녕 사실 자체를 인정하지 않고 있다. 김중권, 한광옥, 박지원(현 민주통합당 원내대표), 문희상, 김우식이 국민의 정부와 참여정부의 대통령 비서실장이었다. 이홍구, 이수성, 고건이 문민정부의 국무총리를, 장상과 장대환이 국민의정부 국무총리를, 고건, 이해찬, 한명숙, 한덕수가 참여정부의 국무총리를 역임했다. 이해찬 현 민주통합당 대표, 송자, 한완상, 윤덕홍, 안병영, 김진표 현 국회의원 등이 3개 정부의 주요 교육부 장관이었다. 이기호, 김진표, 한덕수, 이영탁, 조영택 등이 국무조정실장, 행정조정실장이었다. 민주통합당의 대통령 후보인 문재인 의원은 청와대 수석비서관, 김두권 전 경남지사는 행정안전부 장관, 정세균 전대표는 열린우리당 정책위의장과 원내대표, 손학규 전대표는 통합민주당 대표였다.
이 책은 문민정부-국민의정부-참여정부의 교육정책 중 참여정부의 교육정책에 국한하여 전면적인 비판을 가한 책이다. 노무현 대통령의 참여정부는 집권 초기에 여소야대 국회로 인하여 정책을 제대로 추진하지 못했지만, 2004년 탄핵정국을 통해 국회 과반수 의석을 점유했다. 그렇지만 여당이 된 후 교육개혁의 전면적인 수정과 재개혁을 요구하는 교육관련 단체와 개혁적인 정당, 국회의원들의 요구에도 불구하고 참여정부의 교육정책은 '5.31 교육개혁안'을 밀어붙이는 형태로 진행되었다. 이에 저자를 비롯한 교육시민단체와 학계가 중심이 되어 참여정부의 교육정책 난맥상을 구체적으로 분석하고 비판한 후 적절한 대안을 제시하는 책을 2005년 발간한 것이다. 이 책을 읽어보면 참여정부가 교육정책에서 무엇을 잘못했는지 잘 알 수 있다.
내 개인적인 평가는, 참여정부의 교육정책이 '신자유주의적'이 것도 문제지만 더욱 큰 문제는 '참여'정부임에도 정부의 정책에 참여정부의 비판적 지지세력인 시민단체와 개혁적인 전문가들 그리고 학부모와 학생들을 배제한 것이다. 참여정부는 '참여'도 없고 '소통'도 없었다. 그러한 참여정부 핵심세력의 모습은 지금에까지 이르고 있는 것이다. 왜 그럴까? 내 생각에는 '자신들이 그때 당시 무엇을 잘못했는지 알지 못하기' 때문이다...
저자와 시민단체들은 이 책에서 참여정부의 교육정책을 '교육부의 대국민사기극'으로 규정한다. 2005년 발표된 대학입시제도는 '가장 오래된 대국민사기극'으로, 자립형 사립고 정책은 '평준화 보완을 빙자한 귀족학교 만들기'로, EBS 수능강의 시행은 '사교육비는 줄어들지 않는 또 하나의 학생 부담'이 된 사기극으로, 교원평가제는 '학부모를 볼모로 한 사기극'으로 비판한다. 대학구조개혁은 '책임 회피를 위한 교육부의 안간힘'으로 평가하고, 국립대 독립법인화는 '공교육 포기로 가는 길'이라 비판한다. BK21과 NURI사업은 '고등교육정책의 반민중성'을 지닌 것으로서 대학서열을 심화시켜 버렸음을 지적한다. 교육개방은 '대국민 사기극의 백화점'으로 비판하며 사립학교법 개정은 '사립학교 운영의 민주화를 위하여' 절대적으로 필요함에도 부분적으로 도입되었음을 비판한다. 결론은 "참여정부 교육정책은 신자유주의의 절정판"이라는 것이다. 그렇기 때문에 이명박 정부가 참여정부의 교육정책을 그대로 계승한 것이 아닐까 생각해 본다. 오히려 이명박 정부는 집권 초기 거대여당을 동원하여 시민단체와 학부모, 학생들의 격렬한 반대에도 불구하고 사립학교법 등 참여정부가 조금이라도 개혁적인 모양새를 낸 제도마저 철저하게 유린하였다.
1995년부터 올해까지 무려 17년간 계속 추진된 '5.31 교육개혁안'은 기로에 서 있다고 할 수 있다. 올해 대통령 선거에서 교육문제에 대한 공약은 비정규직, 양질의 일자리, 사회적 안전망(보편적 복지), 사회적 정의와 더불어 주요 이슈로 제기되어야 한다고 생각한다. 선거 정책 논의 과정에서 교육문제가 크게 부각되고 논의 과정에서 '무한경쟁, 입시지옥, 대학서열, 학벌사회'의 문제점이 전국민적으로 교감이 이루어지게되면, 차기 대통령이 취임 직후 사회적 합의를 도출하여 획기적으로 교육문제의 주요 골격을 변화시킬 수 있을 것이라 생각한다.
[ 2012년 8월 15일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