보수를 팝니다 - 대한민국 보수 몰락 시나리오
김용민 지음 / 퍼플카우콘텐츠그룹 / 2011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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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책은 한국 보수 정치세력의 특성을 설명한 책이다. 정치적 문제를 다루고 있지만 딱딱한 이론서가 아니라 읽기 쉬운 에세이 같은 느낌을 준다. 
'나는 꼼수다' PD이자 시사평론가인 저자는, 기독교 집안에서 태어나고 자라면서 청년 보수로서 사회활동을 시작했지만 보수의 부도덕한 실체를 경험한 후 이를 비판하고 맞서는 과정에서 해직의 아픔을 겪으며 진보성향의 평론가로 거듭났다. 보수와 진보 모두를 겪어본 저자는 우리나라 보수가 왜 득세해 왔는지, 하지만 왜 결국 몰락할 수밖에 없는지를 논리적이면서도 재미있게 풀어냈다. 보수라는 대상을 분석하면서 향후 대한민국 정치 흐름을 예측한다.
김용민은 보수를 이기고, 보수를 극복하기 위해서는 보수가 왜 그렇게 말하고 행동하는지, 겉으로 봐서는 이해가 안 가는 보수의 모습 뒤에 어떤 속셈이 깔려있는지를 간파해야 한다고 말한다. 그래야만 계략에 속아 넘어가지 않고 오히려 카운터펀치를 먹일 수 있다고.
이 책을 읽으면서 나꼼수의 '시사 돼지'로만 알고 있던 김용민이 단순한 방송 프로그램 PD가 아니라 시사평론가로 부르는 이유를 알 수 있었다. 그가 학문적으로 이념과 정치를 분석한 것은 아니지만 자신의 경험과 고민을 통해서 '보수정치'와 '보수정치인'에 대해 설명한 것은 제법 설득력이 있다.

저자는 보수를 모태 보수(선천적 보수), 기회주의 보수(후천적 보수), 무지몽매 보수(묻지마 보수) 등으로 구분하는 센스를 발휘하며, 그들이 가진 강점, 약점, 한계점, 미래 등을 친절하게 분석해낸다. 저자에 따르면 보수는 원칙이나 철학보다는 자신들의 기득권을 지키는 데 역량을 총동원해 왔으며, 그 집단의 핵심은 돈에 대한 열망과 비즈니스 마인드, 조급증과 오버액션 등으로 압축된다고 한다. 
사람들은 보수정치인이 하는 말을 들으면서, 보수라 자칭하는 사람들이 하는 행동을 보면서, 많은 사람들은 고개를 갸우뚱한다. "도대체 왜 저러지?" 우리나라 최고의 학벌을 자랑하는 보수 정치인들이 초등학생 수준에도 못 미치는 무식한 말들을 아무렇지도 않게 내뱉는다. 듣기만 해도 섬뜩한 이름을 가진 이른바 보수 단체들은 마치 최면에 걸린 듯 '빨갱이 척결'이라는 주문을 외면서 마구잡이 폭력을 휘두른다. 그들은 왜 그렇게 말하고, 그들은 왜 그렇게 행동할까? 그리고 왜 많은 사람들이 저렇게 이해 안 가는 사람들을 지지하고, 선거 때만 되면 마치 기계처럼 저들에게 표를 던져왔던 걸까?
저자 김용민도 역시도 그런 사람들 가운데 하나였다. 보수의 가치를 믿었고, 보수라는 것은 예로부터 내려오는 좋은 전통을 지켜주는 것이라고 생각했고, 그래서 보수가 이 나라를 바로 잡아 줄 것이라고 믿었다. 그러다 저자는 개인적으로 쓰라린 경험을 몇 차례 겪고 나서야, 생각하고 믿었던 보수가 대한민국에서는 환상에 불과했다는 사실을 깨달았다. 그때 미련 없이 보수에서 떠났다고 한다. 그 당시에 겪었던 경험과 상처와 고민들이, 시사평론가로 활동하면서 "보수는 왜 그럴까?"와 같은 의문에 대해 나름대로의 분석과 해답을 내는 데 필요한 자양분이 되었다고 말한다. 

우리는 이미 5년 동안 민주주의가 후퇴하고, 헌법으로 보장된 자유와 권리가 심각하게 위축되는 현상을 목격했다. 그 동안 진보 진영의 목을 조르기 위해서 동원된 이런 모든 꼼수들이 이제는 거꾸로 보수의 목을 조르기 시작하고 있다. 저자는 책의 말미에 국회의원 선거, 그리고 대통령 선거로 이어지는 2012년은 자기 덫에 자기가 걸려 버린 보수가 본격적으로 몰락의 길을 걷는 한 해가 될 것으로 전망했다.
하지만 저자의 전망과 달리 지난 4.11 총선은 '야권의 참패'였다. 지난 1990년 이후 최초로 총선에서 야권단일화까지 이루어 보수 기득권을 대변하는 새누리당과 대결했지만 유권자의 마음을 얻지 못한 것이다. 그리고 김용민 자신의 존재는 야권의 패배에 일조했다는 비판을 들어야 했다. 왜 그랬을까?

저자와 '나꼼수' 멤버들은 4.11 총선 결과가 '사실상 승리'라고 주장했다. 나꼼수가 없었다면 그 정도의 의석도 얻지 못했을 것이라고 말했다. 내 생각으로는 나꼼수의 주장이 절반은 맞고 절반은 틀린 것 같다. 
'나꼼수가 없었으면 그 정도 의석을 얻을 수 없었다'라는 말은 맞다. 야권의 형님 격인 민주통합당이 작년부터 올해까지 유권자들에게 아무런 희망을 주지 못했고, 4.11 총선에서 집권당의 능력과 자질을 보여주지도 못했다. 민주통합당은 4년 내내 이명박 정부와 한나라당의 독재적 정국운영에 제대로 된 반항조차 하지 못했지만, 나꼼수는 움추러든 유권자들과 지지자들을 '쫄지마 씨바' 한 마디로 집결시키고 용기를 북돋아 주었다. 나꼼수의 지난 1년이 없었다면 4.11총선은 더 힘들었을 것이다.
하지만 '4.11 총선은 사실상 승리'라는 주장은 틀렸다. 민주통합당은 지난 참여정부의 과오와 실패를 솔직하게 인정하지 못하고 '착한 FTA와 나쁜 FTA'라는 식으로 자신들의 짐을 회피했으며 선거의 의제설정조차 주도하지 못했다. 총선 후보를 공천하는 과정에서 자질과 능력보다 계파와 연줄을 기준으로 삼았다. 제1야당이 총선 준비 과정에서 나꼼수에게 끌려다녔고, '김용민 막말' 파동이 나왔을 때 제대로 대처하지 못했다. 

저자 김용민은 나꼼수의 '시사 돼지'로서는 더할 나위 없는 자질과 능력을 보여주었지만, 정치인 '김용민 후보'로서는 미달이었다. 나꼼수는 정치에서 한 발 떨어져 제 자리에서 충실하게 자신들의 본분을 다했어야 했다. 팟캐스트 시사프로와 정치 개입의 경계를 아슬아슬하게 넘나드는 것까지는 괜찮았지만 완전히 정치로 넘어가는 순간 판이 바뀐다는 것을 몰랐던 것이다. 세상 사는 이치가 다 그렇듯이, 나꼼수 멤버들이 어려운 조건 속에서도 싸워나가기 위해 자존감과 자신감을 유지하는 것은 매우 중요하다. 그렇지만 그들이 골방 속에 갇혀 자족하는 것이 목적이 아니라 세상과 소통하고 변화를 시도하는 이들이라면 자신들의 활동에 대한 차분하고 객관적인 평가를 통해 거듭나야 한다고 본다. '우리는 틀리지 않는다'라는 자만이 불러온 결과는 현직 대통령과 새누리당 대표로만도 우리나라 사람들은 벅차기 때문이다.

총선 이후 나꼼수의 열기는 확실하게 사그라들었다. 그것이 나는 더 안타깝다. 김용민이 당선되지 못한 것보다. 하지만 나꼼수는 쉬지 않을 것임을 안다. 적어도 12월 대선까지는. 나 역시 나꼼수의 활약과 노력을 지지할 것이다. 그들이 자신들의 본분에 충실하는 한.

'나는 꼼수다' 화이팅!!!

[ 2012년 8월 11일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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