달려라 정봉주 - 나는꼼수다 2라운드 쌩토크: 더 가벼운 정치로 공중부양
정봉주 지음 / 왕의서재 / 2011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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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꼼수다' 열풍을 등에 엎고 '폭풍 집필'을 통해 탄생한 책. 나꼼수팬들이 나꼼수에 대한 고마움과 미안함을 달래기 위해 주저 없이 사들이면서 한동안 서점가에서 판매량 1위를 달리던 책. 나 역시 올해 초 그 대열에 동참했다.

4.11 총선의 여파로 시들해진 나꼼수. 그들을 다시 기억하고 그들이 탄생한 의미와 활약을 스스로 상기시켜 보기 위하여 책을 읽었다. 나꼼수 방송에서 그냥 '깔때기'로만생각하던 정봉주 전의원. 군사독재 이후 가장 광기에 찬 이명박 정권의 행정부-입법부-사법부 체제에서도 두려움 없이 '국민의 알 권리'를 외치며 "쫄지 마, 씨바"를 시원하게 내뱉던 정치인. 자신이 몸 담고 있던 야당에서도 무기력하게 끌려다니던 때 정치색 짙은 대법원의 최종 판결로 교도소에 수감된 양심수. 감옥에 갖히는 것보다 유권자로부터 잊혀지는 것을 더 두려워하는 정치인.
2011년 12월 26일 나꼼수 4인방이 마지막으로 함께 했던 서초동 검찰청사 앞에서 붉은 목도리를 두른 정봉주 전의원이 수 백명의 환송 인파 앞에서 환하게 웃을 때 나는 웃을 수 없었다. 우리나라 유권자들과 시민들의 '정치망각증'을 잘 알고 있기 때문에. 민주통합당이 제대로 역할을 하지 못한다고 생각했기에. 4월 총선에 대한 전망이 밝지 않았기에. 결국 4월 총선에서 야권은 참패했고 그 결과 정봉주 전의원이 석방될 첫 번째 기회이자 마지막 기회(내 생각에...)는 그렇게 조용히 사라졌다.

 

나꼼수는 언론 매체라 할 수 있다. 다만 기존의 매체와 내용과 방식에서 다를 뿐이다.
우리 사회에서도 언론 매체, 즉 종이 신문이나 인터넷 신문, 지상파 TV와 케이블, IPTV에 이르기까지 정보와 주장을 접할 수 있는 언론 매체는 하루가 다르게 늘어난다. 하지만 한국 근현대사가 보여주는 특성인 기득권 체제의 유지와 이데올로기 편향성은 언론 매체에서도 그대로 나타나고 있다. 1960년대부터 20여 년간 이어져오던 군부집권 시절에는 모든 사회체제와 마찬가지로 언론 매체도 군대식이었고 군인의 입맛에 맞게 가공, 편집되었다. 김영삼 정부 시절에 정치군인들의 기득권이 해체된 후부터 언론 매체는 잠시 정치권력에 기생하더니 김대중 정부 때부터는 스스로 '권력'임을 자임하기 시작했다. 김대중-노무현 정부 시절 보수우익 세력과 기득권 세력의 이익과 이데올로기의 '마지막 보루'를 자임하던 조중동은 이제 '보수의 리더'로 자리잡으로 한다. 소위 '공중파'라 하는 지상파 TV와 YTN은 정치권력에 좌우되는 제도적 시스템의 한계를 극복하지 못하고 사실을 공정하게 시청자에게 전달하기는 커녕 오히려 '정권의 나팔수' 역할을 톡톡히 하고 있다.
개인적으로 소위 '진보 언론'이라고 하는 한겨레, 경향, 오마이뉴스, 프레시안 등도 '공정 언론'과 '여론 형성'에 그다지 쓸모있는 역할을 하고 있다고 느껴지지는 않는다. 조중동의 편파 방송에 맞대응하는 식의 역편파 방송에 주력하면서도 재벌과 기득권 체제에 편승하여 '진보 담론'을 자양분 삼아 기생하는 일종의 '진보 상업주의 언론'이 주류라고 생각된다. 그런 언론 환경이기 때문에 나꼼수가 폭발적인 인기를 끌었을 것이라 생각한다.(이 생각은 유창선 시사평론가의 <정치의 재발견>에서 영향을 받았다...^^)

 
 
나꼼수는 팟캐스트 방송이다. 팟캐스트는 기존 언론처럼 시청자, 구독자에게 일방적으로 전달하는 방식이 아니라 청취자, 소비자가 자신의 취향에 따라 선택하여 보고 듣는 방송이다. 완전히 21세기 방식이고 소비자 주권 시대의 반영이다. 나꼼수의 소비 방식은 팟캐스트를 애청하는 청취자가 주변 사람에게 또는 인터넷과 SNS를 통해 다른 사람에게 소개하는 방식이다. 나꼼수를 언론의 하나라고 인정한다면 언론의 전달구조가, 전달주체가 역전된 셈이다. 물론 SNS가 지금처럼 대중화되지 않았다면 나꼼수의 열풍이 쉽게 불지 않았을 것이다.

아무튼 그런 나꼼수 방송을 김어준 총수와 함께 초기에 세팅한 당사자가 정봉주 전의원이다.(물론 책 속에 담겨 있는 그의 일방적인 주장이다. 김어준 총수가 그 말에 동의했는지 여부는 알 수 없다..ㅋ) 저자는 나꼼수에 대한 자신만의 생각을 털어놓는다. "나꼼수 멤버들이 주도한 토크 콘서트는 단순히 웃고 즐기는 콘서트가 아니라 적어도 현재의 정치적 상황에 문제가 있다고 지적하는 이들에겐 저항의 참여이고 저항으로 뭉친 공동체에 대한 확인이다. 웃으며 즐기고 참여하는 저항 정신이 나꼼수 신드롬으로 표출된 것으로 보는 것이 이런 사회적 현상을 이해하는 좋은 기준이 될 것이다. 나꼼수는 언론이며 동시에 무브먼트이고 '레지스탕스'이다.(p.60)"
특히 그는 'F4'를 나꼼수 열풍의 주체 역량으로 표현한다. 탁월한 기획자 김어준, 탐사보도의 일인자 주진우, 정치평론가이자 편집의 달인 김용민, '치명적인 매력의 정치인' 정봉주의 '4인 4색'...ㅋ

 

책을 읽다 보면 정봉주 전의원이 단순히 나꼼수에서 웃고 떠드는 '좀 덜 떨어진' 정치인이 아니라 제법 실력과 진정성이 있다는 것을 알게 된다. 일단 형사처벌을 받았았음에도 불구하고 'BBK 저격수'라는 별명대로 "BBK의 주인은 이명박이다"에 대한 주장을 굽히지 않는다. 주장을 굽히지 않는 정도가 아니라 자신이 중요하다고 생각하는 진실, 국민들이 마땅히 알아야만 하는 사실을 알리기 위해 열정을 멈추지 않는다.
그리고 그는 한국 정치, 특히 현실적인 정치활동의 어려움에도 불구하고 야당의 고질적인 '계보 정치'에 휘말리지 않으려는 의지를 밝히고, 정경유착과 정치부패를 고발한다. 제1 야당인 민주통합당에 어떤 구조적 문제가 있는지 드러내고 있다. "당 스스로 초래한 일이다. 당의 주인은 당원이락 하면서 정작 이들에게 주인으로서의 역할을 할 기회가 없었다. 이것이 민주당의 위기를 가져온 가장 큰 이유 중 하나이다. 그리고 당원에 근거한 당내 '체육관 동원 선거'는 당원 수를 많이 확보하고 있는 정치인, 대의원 수를 많이 확보하고 있는 정치인이 더 위력을 발휘할 수 밖에 없는 상황을 만들었다." "계보, 계파 정치의 정착인데, 이것이 민주당의 위기를 만들어 낸 또 다른 측면이기도 하다. 계파 정치는 단순히 민주당의 몰락만 가져온 것이 아니라 정치 전반의 퇴행이고 몰락이다.(p.163)"
현재 민주통합당의 대표인 이해찬과 최고위원들, 유력한 대선후보인 문재인, 손학규, 김두관 등은 정봉주 전의원의 주장을 귀기울여야 할 것이다.

 

이 책을 읽으면서 '미권스(정봉주의 미래권력들)'가 문득 떠올랐다. 다음 카페에 가입한 미권스 회원은 나를 포함해서 무려 20만 명이 넘는다. 카페 개설 몇 개월 만에 엄청난 규모다. '김광수경제연구소 포럼'이 10만 명을 조금 넘는데 2배 가까이 된다. 실시간 카페 활동인원도 9천 명이 넘는다. 덩치가 커지다보니 카페 자체가 '권력화'되어가는 경향도 있고 내부에 알력도 있다는 소리도 들린다. 가끔 카페에 들러보면 정봉주 전의원의 팬카페로 출발하였고 정 전의원의 '조기 석방'과 '잊혀지지 않기 운동'으로 시작된 미권스가 이제는 과거 노사모 수준의 정치압력단체로 변하고 있다는 느낌이 든다.
민주통합당의 여러 선거에 개입한다는 기사도 있다. 미권스는 한국 정치의 장단점을 모두 보여주는 것 같다. 장점으로는 정치 냉소주의에 빠져있던 상당수 유권자들이 나꼼수와 정봉주 전의원을 계기로 정치에 관심을 갖고 정치에 참여토록 하는 역할을 하는 것이고, 단점으로는 카페 회원들의 자발적인 생각과 의견이 자유롭게 표출되고 수렴되어 생산적인 정치 참여의 장이 되기 보다는 카페 상층부와 열성 참여자들에 의해 '소수가 전체를 대변'하게 된다는 점이다. 이것은 현재 한국 정치 전반의 문제점 중의 하나인데, 민주통합당이나 진보정당 역시 '말 없는 다수의 당원'의 생각이나 의견보다 '소수의 열저적인 당원'의 생각과 의견이 과잉 표출되어 조직 전체를 좌지우지한다는 점이다. 강준만 교수는 <안철수의 힘>(2012.7 인물사사상사)에서 이것을 '멘토의 머리 꼭대기에 올라와 있는 멘티'라고 표현하면서 유명 정치인들이 경계해야 함을 지적했다.

 

나꼼수 방송 만큼은 아니자만 전체적으로 책을 재미있게 읽었다. 정봉주 전의원은 평범한 정치인이란 걸 알 수 있었다. 그가 민주통합당이나 진보정당의 웬만한 정치인보다 더 장점이 많다고 생각한다. 아직은 그에게서 깊은 철학이나 정책, 리더쉽이나 정치력을 발견할 수는 없지만 시간이 지나면서 조금씩 더 성장할 것을 믿는다. 1년 간의 감옥생활은 어떻게 받아들이고 활용하느냐에 따라 당사자에게 180도 전혀 다른 결과를 가져올 수 있을 것이다.
정봉주 전의원이 몸과 마음 모두 건강하게 감방생활을 한 후에 12월 대통령 선거 후 쾌활하게 다시 유권자 앞에 나타나기를 바란다.

 

[ 2012년 8월 09일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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