탈학교의 상상력
이한 지음 / 삼인 / 2000년 9월
평점 :
절판


1999년 20대 초반의 나이에 <학교를 넘어서>(2010. 민들레)를 발간하며 "오늘날 학교가 자신의 존재 가치를 외치는 것은 마치 쌀을 매점매석한 뒤 모래를 섞어 팔아먹는 고약한 상인이 자기가 없으면 모두 굶어죽을 것이라고 외치는 것과 같다!"고 선언하면서 '탈학교 사회'를 꿈꾸기 시작했고, 그 뒤 대안학교 등 여러가지 노력을 실제 경주했다. 이 책은 저자가 <학교를 넘어서> 초판 발간 이후 진행된 논쟁을 거쳐거 자신의 '탈학교의 꿈'을 교육 공공성, 청소년 의식과 진보운동, 교사직의 성격, 탈학교 운동 등에 대해 좀 더 논리적으로 구성한 것이다.

<학교를 넘어서>에서 저자는 "학교의 진짜 역할이 다름 아닌 '사회통제' 작업과 '사회계층화' 작업"이고, 학교는 "폭력의 피해자가 아니라, 그 두 가지 본분을 다하기 위해 폭력을 생산해 내는 가해자"라고 주장하였다. 학교교육은 무늬만 '공교육'일 뿐 그 실상은 블평등하고 억압적인 교육이라고. 저자는 이 책에서 다시 한 번 교육의 근본적인 문제점, 문제의 근원을 지적한 후 그 근원을 해결하기 위한 궁극적인 대안이 '학력의 폐지'와 '직무 능력 평가 제도의 사회화'임을 밝힌다. 그는 이 책에서 학력이 노동 시장에서 능력의 지표로 사용되고 있는 상황이 교육에 어떤 영향을 미치는지, 그리고 이러한 관행과 제도가 과연 합리적이고 정당한지를 살펴본다.

나는 저자가 제기하는 '탈학교 사회'는 이반 일리히의 'Deschooling Society'와 어느 정도 비슷한 개념이자 문제의식이라 생각한다. 그것은 근대 산업사회가 필연적으로 가져오는 '가치의 제도화'라 할 수 있다. 학습을 학교제도로, 건강을 의료제도로, 이동을 교통제도로, 정의를 사법제도로, 행복을 상품소비로 만들어 내는 가공할 산업사회의 장악력이다. 하지만 이반 일리히의 '가치의 제도화'와 저자의 '탈학교 사회'는 다른 면도 제법 보인다. 그라고 한국사회의 교육에서 나타나는 문제점들의 근원적인 원인이 '학력사회'라는 저자의 진단은 약간 빗나간 것 같다. 물론 학교를 사회계층화와 사회통제의 도구로만 생각하면 저자의 지적이 타당할 수도 있지만, 무한입시경쟁과 교육의 붕괴에 의한 사회적 불평등의 구조화라는 측면에서 한국 교육의 문제점을 분석하면 저자의 진단은 어긋난다. 그 부분에 대한 근원적인 원인은 학벌사회와 대학서열체제이기 때문이다.
 
저자는 학력 사회의 문제점을 주로 제기한다. 그는 실제 학교가 직무 훈련을 제공해 주는 효과적인 장소가 아님을 지적하며 학교 교육기간을 수료하였다는 증표인 졸업장은 직무 활동에 필요한 지식, 기술의 소지를 판별하는 직접적이고 유용한 증명서가 될 수 없음을 지적한다. 지능이나 학교 성적은 학교 내 상황에서의 성공이나 실패를 예측할 뿐 실제로 직무 수행 능력을 예측해 주지 않는다는 것이다. 학력 사회는, 대학 졸업자가 늘어나면 졸업증만으로 고용하는 측이 고용을 질에 대한 판별을 할 수 없기 때문에 그리고 취업희망자들이 자신의 경쟁력이 남들보다 나아지지 않기 때문에 더 높은 학력이나 추가 증명서를 준비하여 학력 인플레이션의 악순환이 발생하고 확대된다. 
또한 서열화된 대학체제 속에서 지대 딱지가 생겨나고 교육의 왜곡이 발생하게 된다는 것이다. 따라서 그는 '학력폐지법' 제정과 추진을 주장한다.
그리고 학력 폐지에 대한 대안으로 '대안적인 교육 조직과 서비스'의 생산, 분배를 제시한다. 그는 교육애 있어 가장 중요한 것이 '네트워크'임을 말하면서 그 속에서 교육을 생산하고 습득하고 분배하는 시스템이 기능해야 함을 말한다. 그와 더불어 공교육 예산을 수요자들에게 교육 보조금으로 그리고 누진적으로 사용할 것을 제안한다.

그는 교육 공공성은 평등과 자율이 가장 중요한 것이고 현재의 학교는 그와 반대로 독점과 불평등, 억압과 수동성에 기초한다고 비판한다. 또한 그는 현시개의 청소년들이 깔끔한 근대적 주체로 성장하지 못하고 균열을 보이고 있고 다른 한편으로 기존의 가치 질서에서 탈각된 부분들은 상품 소비의 질서에 채워짐으로써 '저항적 주체'가 되지 못하고 있음을 지적하면서 당시 사회 일각에서 제기했던 '교실 붕괴에 대한 저항'이라는 해석을 거부한다.
 
[ 2012년 8월 02일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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