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 학교문화와 입시드라마
김철훈 지음 / 문음사 / 2001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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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변 지인들에게 우리 사회의 초,중,고교 학생들의 '입시지옥'에 대해 이야기하면 대개의 경우 공감하고 안타까워한다. 하지만 딱 거기까지다. 우리 세대가 어려운 가정에서 자라나 초등학교에서부터 고등학교까지 다닌 것은 지금으로부터 약 30~40년 전이다. 학창시절에 경험했던 대부분의 것들은 이미 기억 속에서 사라지고 단편적으로 강한 기억만 남았을 뿐이기 때문일 것이다. 그리고 개인적인 기억과 경험이지만, 우리 세대가 다니던 학교, 특히 중,고등학교보다 현재 중,고등학교가 대학입시에 훨씬 몰입하고 있다는 생각이 든다. 내 기억으로는 초등학교는 물론 중학교, 고등학교에서도 대학입시에 대해서 학교 전체가 요즘처럼 강하게 압박하지 않았다. 그런 압박은 사회나 언론, 부모나 친지, 사회문화적 분위기 역시 마찬가지였다. 1970년대는 사회도 가정도 최소한의 생존과 먹거리가 가장 큰 문제였기 때문이었을 것이다.
하지만, 1990년대 이후의 학교와 교육에 대해 들여다보면 볼수록 내가 경험한 학교제도나 사회문화적 분위기와 완전히 딴판이란 것을 자주 느낀다.
 
저자는 그런 내 문제의식과 고민에 대해 좀 다른 방향을 통해 비슷한 결론이 도출되는 분석 결과를 보여준다. 그는 한국 사회의 학교문화 특히, 인문계 고등학교의 입시 문화에 대한 교육사회학적 접근으로 '비판문화기술지'를 시도한다. 역대 정부가 교육 개혁을 위해 다향하게 시도하고 처방을 내렸지만 결코 학교 교육과 문화는 변하지 않았다. 저자는 이에 대해 '다양한 이해 관계 속에서 상호작용하는 교육행위자들의 복합적 관계망' 즉, 학교의 사회 문화적 맥락에서 그 해답을 찾고자 시도한 것이다.(문화기술지 文化記述誌 ethnography란 인간 사회와 문화의 다양한 현상을 정성적, 정량적 조사기법을 사용한 현장 조사를 통해 기술하여 연구하는 학문의 분야이다. 문화기술지는 어떤 시스템이 가지고 있는 각 부분을 정확히 이해하는 것을 통해 전체 시스템의 총체적 연구 성과를 거둘 수 있다는 생각에 기반을 두고 있다. 학문적 용어는 어려워서 여기서 생략...ㅋㅋ)
저자는 1990년대 후반 1년 동안 'T' 광역시 내 인문계 고등학교에 직접 관찰자 및 행위자로 참여하면서 학교현장, 학교운영, 교직문화, 학생문화 등을 기록하였다. 그 경험과 기록을 토대로 다른 학자들의 중등교육 연구내용과 일반적인 교육, 학교에 대한 연구결과를 비교하면서 해석학적 그리고 문화지판기술지 방식으로 학교문화와 사회적 맥락을 분석하였다. 저자의 학교 현장에 대한 기록과 분석은 우리 사회가 총체적으로 교사와 학생을 망가뜨리고 또한 방치하고 있다는 것을 여실하게 보여주고 있다.
 
"학교생활 속에서 우리가 간관해 버리는 작은 일상들을 통하여 교사들과 학생들의 삶을 간략하게 그려 본 밑그림은 입시 중심 교육을 표방하는 인문계 고등학교 생활의 문화적 주제인 '진학과 질서유지'이다. 이것은 교사와 학생들에개 끊임없이 강조되는 대학 진학을 위한 학습과 성취 수준을 높이기 위한 욕구 유보의 강조로서 교칙 준수라고 할 수 있다. 인문계 고등학생들이 학교에서 가장 먼저 만나게 되고 내면화해야 하는 것은 진학을 위해 학교에 들어왔다는 사실이다. 교사와 학생들은 궁극적 목표인 진학을 위해서 모든 정열을 바쳐야 한다. 인문계 고등학교는 학생들의 성공적인 진학을 위해서 교칙 준수를 강조하게 되고 학생들의 모든 행위에 대하여 통제하게 된다."

교직 문화는 반복적인 생활과 입시 중심의 현실에 적응하고 부합하는 모습인 '무력감과 형식성'으로 나타난다. 학교는 교장을 중심으로 '투입-산출모형'의 맹신으로 학생들에게 수많은 학습을 강요하며 '결과 제일주의'를 지향한다. 교사들은 학생들이 입시에서 더 많은 점수를 받을 수 있도록 '포괄적 문제풀이 수업'을 선호한다. 입시와 관련 없는 교과는 본래의 수업 모습을 잃어버리고 국영수 등 주요 과목의 들러리 역할만 하게 된다. 이 과정에서 교사들은 무력감을 경험한다. 또한 업무 과중과 입시에 초점을 둔 학사행정으로 교사들은 거의 모든 일에 형식적 절차를 강조한다. 특히 학생생활기록부 작성은 일정한 틀에 맞추어 획일적으로 작성된다. 교사들은 학생들을 통제하는 방법으로 긍정적 보상보다 부정적 강화물로서 체벌을 즐겨 사용한다. 담임 교사들은 과밀학급을 운영하기 위해 반장 중심의 '집단주의 학급 운영'을 해 나가는 과정에서 학생들을 분류하여 그에 맞는 역할을 부여하고 학부형들의 지원체제에 대응한다. 학교 제도와 시스템이 교직문화를 지배하는 것이다.
직무에 대한 교사의 동기부여 체계는 포상, 담임 배정, 격려, 보상 등이 있다. 입시 압력과 단조로운 학교생활을 견디기 위해 교사들은 적극적인 역할 수행, 전략적 순응, 시간 때우기, 각종 취미생활이나 오락에 심취하는 것 등을 생존전략으로 채택한다. 그러나 제도적 압력에 대하여 교사들은 최소한의 경계 안에서 부분적으로나마 저항하기도 한다.

학생들은 억압적인 생활을 강요하는 입시 및 진학 중심의 학교에 대하여 부정적인 이미지를 가진다. 이것은 특히 성적에 의한 차별과 체벌이 그 전형을 이룬다. 학교는 이러한 부정적인 이미지를 희석시키고 학생들을 학습으로 유인하기 위해 의식조회, 체육대회, 종합전과 가요제 등 여러 가지 의례적 행사를 적극적으로 도입한다. 입시에 적극적인 학생이나 소극적인 학생이나 긍정적인 생활에서 소외되기는 마찬가지다.
학생들은 학교생활에 적응하기 위해 교사에 대한 대응, 축소, 지향의 놀이문화, 대중매체와 관련된 각종 취미생활, 비행과 일탈, 낙서를 통한 자기 표현 등 여러 전략들을 사용한다. 특히 학생들은 다양한 놀이문화를 통해 자신의 환경을 변화시키며, 동시대의 인기 있는 여러 취미생활을 공유하고 있다. 그들은 체벌과 좋은 수업에 기준을 두고 교사들을 분류하며, 교사의 심리나 행동 늑성을 최대한 이용하여 자신들의 승리를 연출해낸다. 학생들의 가장 두드러진 저항은 다양한 일탈과 비행을 통한 교칙 위반이라고 할 수 있다. 하지만 이것은 진학만 강조하는 학교 분위기와 학생들의 진학을 향한 열망으로 크게 부각되지 않는다. 인문계 고등학교에서 대부분의 저항은 순응으로 귀결되는 경향이 강하다.

이러한 인문계 고등학교 문화 형성에 영향을 미치는 내부 요인은 학교 의사결정구조, 전통과 의례적 행사, 물리적 환경, 개인적 문화습성, 문화적 연결고리로서 생존전략을 들 수 있다. 그 외부 요인은 대학입시제도, 상급 교육행정기관, 대중매체문화, 학부모와 동창회, 사설입시 관련 기관, 학교 주변 업소의 상업성이라 할 수 있다. 특하 하양식 의사결정구조와 입시제도는 교사의 자율성을 저해하는 주요 요인으로 교직문화를 수동적으로 만들어 버린다. 학생문화는 입시문화의 압력과 욕구 충족을 위한 대중매체문화의 자발적 수용이라는 이중저구 구조 내에서 무비판적, 현실순응적인 모습을 나타낸다. 사설 입시 관련 기관의 상술은 학교와 가정 사이의 약간의 시간적 공백도 놓치지 않고 학생들의 삶에 파고든다. 학생들의 놀이문화를 생성시키는 지역사회의 업종들은 오락실, 당구장, 노래방 등이 있다. 학교 주변 업소의 상업성은 학생문화를 성인문화처럼 만들어 버린다."
 
 
[ 2012년 7월 20일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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