학벌사회 - 사회적 주체성에 대한 철학적 탐구
김상봉 지음 / 한길사 / 2004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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품절


암기력을 바탕으로 한 20세 전후의 한 번의 시험으로 20세 이후 개인의 능력이 규정되어 버리는 사회. 이것이 바로 '학벌사회'의 한 단면이다. '학벌'이 독점적 지위와 구조로 자리잡고 대학서열체제의 기반으로 사회 전체를 규정함으로써 입시지옥과 사교육 광품의 근원을 형성하고 있다. 도대체 '학벌'이란 무엇이고 '학벌사회'란 무엇인가? 그 학문적, 철학적 기반은 무엇인가?
 
내가 지금껏 강준만, 김동훈, 김경근, 정진상 등이 출간한 학벌사회와 서울대 독점, 대학서열체제 등에 대한 책을 읽어보았지만 아직 학문적으로 그 근원을 헤집고 들어간 교수나 학자는 없었다. 김경근 교수가 <대학 서열 깨기>(개마고원, 1999)에서 '학벌'이 '재벌'과 비슷하게 한국 고유의 존재양식임을 주장했고, 김동훈 교수가 <대학이 망해야 나라가 산다>에서 '학벌'을 조선 후기 '문벌'에서 뿌리가 이어져 온 것이며 따라서 '학벌'이 한국사회를 '신분사회'로 기능토록 한다고 주장했지만 자신들의 주장을 학문적으로 접근하지는 않았다. 하지만 이 책은 학벌과 학벌의식, 학벌사회에 대한 철학적 탐구 결과라 할 수 있다. '학벌'을 단순히 한국 고유의 사회적 특징이나 특수현상으로 인정하지 않고 그 문제의 철학적, 학문적 뿌리까지 궁금한 사람들은 이 책에서 자신의 문제의식에 대해 도움을 받을 수 있을 것이다.
 
저자는 '학벌'이 사회적 실체로서 존재함을 철학적으로 분석하여 개념을 규명한다. "학벌이 이렇게 공유된 학벌의식에 의해 결속된 사람들의 공동체로서 어떤 지속성을 갖는 집단적 주체가 될 때, 이 주체는 사회 속에서 일정한 질량과 외연을 가지고 작용하는 사회적 실체가 된다." 그만큼 저자는 문제를 문제로서 인식하기 위해 '실체'로서 볼 필요가 있음을 역설하고 있다. 그리고 '학벌'이 통상 진보학계에서 근대 산업사회(자본주의사회)의 사회적 구조를 분석하는 틀인 '계급'이나 봉건적 사회구조인 '신분'과 일면 비슷하지만 전혀 다른 한국사회의 구조적 실체라 주장한다.
 
"학벌은 정확하게 말하자면 계급도 아니고 신분도 아니다. 학벌이 사회적 불평등의 기제인 한에서 우리는 그것을 계급이라 부를 수 있다. 하지만 그것은 한번 정해지면 다시 새로운 학벌을 얻지 않는 한, 변치 않는 것이기 때문에 엄밀한 의미에서 말하자면 계급과는 다르다. .... 이처럼 계급과 개인의 귀속관계는 본질적으로 우연적이며 유동적이다. 그러나 학벌은 다르다. 특정 학벌에 대한 귀속관계는 한번 정해지면 다른 학벌을 얻기 전까지는 결코 변하지 않는 영구적 관계이다. 학벌이 좋든 나쁘든 그것이 이처럼 개인의 변치않는 규정인 한에서 그것은 같은 사회적 차별의 기제라 하더라도 계급보다는 신분에 더 가깝다고 할 수 있다. 이런 의미에서 학벌차별은 계급적 차별보다 훨씬 더 나쁘다. 계급과 달리 학벌은 한번 정해지면 변치 않는다. 한번 지배학벌에 속한 사람은 영원히 그 지배학벌에 속하며 한번 낙오한 사람은 영원히 피지배계급에 머무른다. 이처럼 학벌경쟁에는 이른바 패자부활전이 없다. 스무 살 전후 한 번의 경쟁에서 뒤처지면 영원한 노예의 낙인이 찍히는 사회가 한국이다. 이런 학벌의 고정성 때문에 학벌경쟁은 다른 나라에서는 상상할 수 없을 정도로 격렬한 무한경쟁으로 발생할 수 밖에 없고, 이것이 온갖 사회적 문제를 야기하는 것이다.
이처럼 학벌이 근대적 계급이라기 보다는 차라리 봉건적 신분에 더 가까운 개인의 고정된 지체이기는 하지만, 그렇다고 해서 학벌은 개인이 타고나는 것이 아니기 때문에 엄밀하게 말하자면 신분이라 할 수도 없다. 그러므로 굳이 학벌을 신분이라 말한다면 우리는 그것을 후천적 신분이라 할 수 있을 것이다. 이처럼 학벌이 계급과 똑같지도 않고 신분과도 똑같이 않다는 것은 학벌문제가 한국사회 고유한 불평등 기제라는 것을 말하는 것이기도 하다. 학벌차별은 어떤 시대 어떤 사회에서도 유사한 것을 찾아보기 어려운 한국사회 특유의 차별기제인 것이다."(p.123)
 
철학적 분석으로 들어가면 자못 심각해진다. 주체와 주체성, 홀로주체성과 서로주체성, 서로주체성과 사회적 주체성, 시민적 주체성, 공동주체성 등... 이런 철학적 개념으로 들어가면 조금 머리 아프긴 하다.ㅋ "이처럼 보편적 사유가 아니라 자기중심적 욕망을 매개로 형성된 '우리'의 집단의식 속에 진정한 주체성이 설 자리가 없다. 욕망이 그 자체로서 나쁜 것은 아니다. 그러나 사유하지 않는 욕망은 굴레이다. 그때 욕망은 확장되면 확장될수록 인간을 구속한다. 그런데 학벌은 처음부터 자기이익의 극대화 이외에는 아무런 보편적 이상도 담지할 수 엇는 왜곡된 공동주체이므로 참된 의미의 사유와 양립할 수 없다. 그리하여 우리가 학벌과 자기를 긴밀하게 동일시하면 할수록 우리는 더 탐욕스러워지고 더 멍청해지며, 마지막에는 더 노예적이 될 수 밖에 없는 것이다. 그렇게 노예적 정신들을 하나의 집단으로 묶어주는 학벌의식은 더 이상 깨어있는 사유가 아니다. 그것은 다만 야수적 욕망과 모호한 감정일 뿐이다."(p.205)
 
저자는 '학벌'의 철학적 개념규정에 근거하여 '학벌의식'과 '학벌사회'를 설명하고, 학벌이기주의의 구체적인 실태와 학벌사회 및 학벌독점 문제가 결국 서울대의 문제라는 것을 밝힌다. 한국의 경우 '학벌'이 권력과 자본의 '공속'으로 진화하고 있고, 학벌이데올로기와 학벌독점의 사회문화가 어떻게 학벌을 통해 사회적 불평등을 유지, 강화하는지 그 연관성을 명확하게 제시한다.
구체적으로 학벌사회가 공교육을 어떻게 파탄시키는지도 과목별로 예를 들어 설명한다. 전인교육도, 전문교육도 아닌 입시교육의 폐해는 학생들에게 '생각의 힘'을 말살시키고 '도덕'을 파탄시키며 공동체에 대한 '무관심'을 조장한다. 문학, 음악, 미술 등 예술교육의 존재가치를 없애버려 아이들이 예술을 멀리하도록 만들고 인간성으로 이어지는 '아름다움'에 대해 무능한 존재로 양육한다.
 
제목이 말해주듯 저자는 오랫동안 고착화되어온, 최고의 학벌을 얻기 위해 인류대학 진학만을 목표로 삼는 만연된 사회풍조를 가리켜 '학벌사회'라 규정한다. 그리고 심각한 교육문제의 근본 해결점을 철옹성 같기만 한 '학벌서열'의 타파에서 찾고 있다. 나아가 문제의 거점으로 자타가 공인하는 최고의 학벌이자 명문 서울대에 문제의 방점을 찍는다. 이 책은 학벌문제에 대한 그 동안의 선행연구를 정리함은 물론, 구체적 통계자료들을 들어가며 사회 각 분야에서 일부 학벌에 의해 권력이 독점되고 지배되는 현상을 실증적으로 보여준다. 따라서 학벌문제로 상징되는 우리 교육문제의 실상을 폭넓게 연구한 본격적인 책이라 할 수 있다. 또한 교육의 이념을 새롭게 되새겨볼 뿐만 아니라 '대학과 전문대학의 혼성모방', '반수와 편입시험 몰두', '학문의 식민성' 등 학벌이 야기하는 대학교육의 위기를 구체적으로 지적한다. 마지막으로 '서울대 학부폐지', '대학평준화 정책', '지역별 공직할당제' 등으로 대변되는 학벌타파의 구체적 대안들을 꼼꼼히 제시하고 있다. 

세계화 시대 교육경쟁력의 강화는 무엇보다 국가의 부강과 직결되는 문제다. 우수한 인재를 선발해 최선을 다해 그들을 교육하고 사회 적재적소에 진출시킴으로써 우리 사회는 당당히 앞선 경쟁력을 갖출 수 있을 것이다. 그런데 재력과 권력을 얻기 위한 맹목적 인류대 선호 심리와 서열 위주의 치열한 입시경쟁은 사회를 황폐하게 만들 뿐 국가경쟁력과는 역행한다. 사회로서는 개인 능력의 지표가 학벌 밖에 없는 현 상황을 타개해야 하고, 개인으로서는 다양한 삶의 선택을 볼 줄 아는 자기의식과 안목을 키워야 할 것이다. 대학은 자율화와 특성화 교육으로 고유의 경쟁력을 발휘해야만 한다. 교육은 10년의 큰 계획이라 했던가. 정부는 하루아침에 피고지는 꽃처럼 단기성 정책을 남발하지 말고, 나무 한 그루를 심고 키우듯 앞을 내다보는 정책으로 정성을 들여야 할 것이다. 이 모든 일, 특히 학벌타파를 위한 대안을 현실로 만드는 것은 우리 각자가 교육문제에 관심을 갖고 작은 실천이라도 즉시 행할 때 가능한 일이다.
 
 
"애교심과 동문애가 진리에 대한 열정을 지양해버린 이런 나라에서 제대로 된 학문이 있을 수 있겠는가? 그것은 가능한 일이 아니다. 그런 나라에서 발전하는 것은 학벌이요, 죽어가는 것은 학문이다. 그러나 이런 사정이 어디 대학사회뿐이겠는가? 일과 뜻에 따라 모이지 못하고 학벌에 따라 뭉치고 헤어지는 씨족사회에서는 건강한 시민사회도 건강한 나라도 모두 헛된 꿈에 지나지 않는다. 사람들은 어디를 가든 가족적 유대를 갈구한다. 그러나 확장된 현대사회에서 그것을 채워주는 것은 학벌 밖에 없다. 그리하여 학벌의식에 사로잡힌 사람들은 어디를 가든 동문, 선후배를 찾아 결속하고 이를 통해 자기 이익을 도모한다. 그 결과 그들은 어떤 공동체에 들어가든 그것을 공동의 목표와 이념을 추구하는 통일된 공동체가 아니라 이기적인 학벌문중들의 각축장으로 해체해버린다. 그리하여 학교도, 회사도, 정당도, 정부도, 아니 각종 시민단체조차도 경쟁하는 학벌문중들의 불안정한 연립체로 전락한 것이 오늘 우리의 현실인 것이다.
한마디로 말하자면 학벌이란 우리나라 봉건적 가족주의가 현대적 옷을 입고 다시 불활한 것이라 할 수 있다. 흔히 학벌문제를 근대화의 불가피한 산물이라고 말하는 사람들이 있는데, 이는 반만 맞고 반은 틀린 애기다. 문벌이 학벌로 탈바꿈한 것은 분명히 근대화의 산물이다. 그러나 문벌이든 학벌이든 그 형태만 다를 뿐 본질적으로 가족적 공동체라는 점에서는 아무런 차이가 없는 전근대적인 공동체인 것이다. 그러므로 학벌체제를 타파하는 것은 차별과 불평등을 철폐하기 위한 일종의 계급투쟁일 뿐 아니라 동시에 우리의 전근대성을 극복하기 위한 하나의 문화혁명이다."(p.217)
  
[ 2012년 7월 17일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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