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배지에서 보낸 편지 유배지에서 보낸 편지
정약용 지음, 박석무 엮음 / 창비 / 2009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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품절


1801년(순조 1년) 2월, 다산 정약용은 전라남도 강진으로 가는 귀양길에 올랐다. 자신의 셋째 형 정약종(丁若鍾)은 신앙을 지키려다 매질을 감당하지 못하여 세상을 떠났고, 둘째 형 정약전(丁若銓)은 신지도로 귀양을 떠나면서 헤어졌다. 천주교에 관대했던 정조(正祖 1782~1800)가 세상을 떠나자, 신유박해(辛酉迫害)가 일어나 천주교를 탄합하기 시작했던 것이다. 당시 개혁 추진 세력인 시파(時派)를 종교를 빌미로 몰아내려 한 벽파(僻派)의 정치 공작이었다. 한 때 천주교에 입교한 적이 있고, 정조의 신임을 받으며 벼슬살이를 했던 다산 역시 이 음모의 표적이 되었다. 왕의 신임을 받으며 이름을 빛내던 시절은 가고, 집안은 풍지박살 난 채 쓰라린 유배의 길을 떠난 것이다.
강진에 도착한 다산은 초당을 짓고 가족들과 떨어져 홀로 유배생활을 시작했다. 유배를 떠날 때, 첫아들 학연(學淵)이 열여덟 살, 둘째 아들 학유(學游)가 열다섯 살이었으니, 아비로서 자식이 어떻게 지내는지 궁금하고 걱정되는 마음은 충분히 공감할 수 있다. 그래서 다산은 자신의 마음을 담아 두 아들에게 편지를 보낸다. 두 아들 뿐안 아니라 서로 만날 수 없던 둘째 형, 그리고 제자들과 서신을 교환했다. 이 책은 그렇게 보낸 다산의 편지글을 엮은 모음집이다.
 
다산은 편지에서 두 아들에게 세상을 어떻게 살아가야 하는지에 대해 알려 주고 있다. 직접 곁에 두고 가르칠 수 없어 노심초사하는 모습이 편지글 속에 그대로 드러난다. "내가 밤낮으로 애태우며 돌아가고 싶어하는 것은 너희들 뼈가 점점 굳어지고 기운이 거칠어져 한두해 더 지나버리면 완전히 내 뜻을 저버리고 보잘것없는 생활로 빠져버리고 말 것만 같은 초조감 때문이다. 작년에는 그런 걱정에 병까지 얻었다."
그는 친구를 사귀는 법, 책을 읽고 쓰는 법, 밭을 가꾸고 생계를 유지하는 방법 등을 세세하게 적고, 효를 다하고 검소하게 살아가라고 아들들에게 말한다. "폐족(廢族)이 글을 읽지 않고 몸을 바르게 행하지 않는다면 어찌 사람 구실을 하겠느냐. 폐족이라 벼슬은 못하지만 성인이야 되지 못하겠느냐, 문장가가 못되겠느냐. 이른 새벽부터 밤늦게까지 책을 읽어 이 아비의 간절한 소망을 저버리지 말아다오."
그는 모든 일이 '효(孝)'에서 시작된다고 생각했다. 혼자 계신 어머니를 잘 살펴 드리고 큰아버지를 아버지 모시듯 하라고 신신당부하며, 어떻게 효를 실행할 것인지를 편지 속에 상세하게 적어 놓았다. "너희 형제는 새벽이나 늦은 밤에 방이 찬가 따뜻한가 항상 점검하고, 요 밑에 손을 넣어 보고 차면 항상 따뜻하게 직접 불을 때 드리되 이런 일은 종들을 시키지 않도록 해라. 그 수고로움도 잠깐 연기 쏘이는 일에 지나지 않지만, 네 어머니는 무엇보다 더 기분이 좋을 것인데, 이런 일을 왜 즐거이 하지 않느냐?" 복종으로서가 아닌 나아주고 길러주신 부모에 대한 효(孝)는 이 시대에도 분명 사회문화적 의미가 있을 것이다. 다산의 편지글이 불효자인 나를 초라하게 한다...
 
다산이 두 아들에게 강조한 것은 독서였다. 그는 정월에 독서 계획을 세운 후 그대로 실천하는 열성적인 독서가였다. 집안이 몰락하면서 아들이 벼슬을 할 수 없게 되자, 그는 책을 읽고 학문을 하기에 더 없이 좋은 기회라며 부지런히 독서하라고 권한다. 학문으로 영달을 꾀하겠다는 사리사욕이 없을 때, 비로소 글의 의미를 있는 그대로 받아들일 수 있다고 강조한다. 그는 독서를 하기 위해서는 먼저 학문에 뜻을 두어야 하며, 독서를 할 때는 세상을 이롭게 하는 글을 즐겨 읽어야 한다고 말한다. 그리고 자식들이 자신의 글을 깊이 이해하고 책을 엮어 자신이 무고하고 훌륭한 지식인이었음을 후손들에게 전해주기를 바랐다. 다산은 200년이 지난 지금 나에게도 독서를 왜 하는지, 어떤 마음자세로 해야 하는지 다시금 깨우쳐준다.
그는 스스로가 검소하고 부지런한 삶을 살았고, 아들들에게 재물은 다른 사람에게 나누어 주는 것이 더 오래 가는 것이라고 강조했다. 또한 '시골에 살면서 과수원이나 남새밭을 가꾸지 않는다면 세상에 버림받는 일'이라며 두 아들에게 채소를 가꾸어 보라고 권했다.
 
다산은 멀리 떨어져 있는 두 아들 학연과 학유가 실의에 빠지지 않도록 늘 엄격하게 격려했다. 편지를 읽다보면 선비답게 참다운 길을 가도록 준엄하게 꾸짖는 다산의 음성이 귓전에 들려오는 듯하다. 특히 권세가들에게 귀양살이에서 풀려나도록 도와줄 것을 간청하는 편지를 보내라고 권유하는 아들에게 다산은 "사소한 일을 가지고 절조를 잃어버려서야 되겠느냐"며 매섭게 질책한다. 불의와 조금도 타협할 줄 모르는 선비정신을 엿볼 수 있는 대목이다. 21세기에 학문을 한다는 우리사회의 학자들과 지식인들에게 천둥처럼 들려주고 싶은 말이다.
편지 속에는 겉으로는 엄하게 채찍질하지만 그 속에는 자상하고 애끊는 부정(父情)이 넘친다. 어두운 유배생활 속에서도 자신의 고달픔은 전혀 내색하지 않고 오직 아들들이 훌륭한 사람으로 성장하기를 원하는 아버지의 간절한 바람을 담고 있어 더욱 감동적이다. 세상을 어떻게 살아가야 하고 무슨 공부를 어떻게 해야 하는지뿐만 아니라, 가족간 윤리, 친인척과의 인간관계, 양계, 양잠하는 법, 심지어 친구를 사귀고 술을 마시는 법도까지 세세하게 일러주는 편지들을 보면 과연 오늘날에도 이같은 부자(父子)관계가 존재하는지 곰곰이 돌아보게 된다. 또한 유배지에서 막내아들의 죽음을 듣고 슬피 울부짖는 글과 “이달 들어서는 공사간에 슬픔이 크고 밤낮으로 가신 이에 대한 그리움을 견딜 수 없으니 이 어인 신세인가. 더 말하지 말기로 하자”와 같은 절제된 문장에서는 다산처럼 큰 선비도 어쩌지 못할 극한의 슬픔이 묻어난다.
다산은 흑산도로 유배 간 둘째형님 정약전과도 서간을 주고받으며 변함없는 우애를 나누었다. 스스로 평생지기라 일컬었던 둘째형님에게 보낸 편지들은 서로 불우한 처지에 구애받지 않고 학문적 깊이에 탄복하며 인생을 토로한 수준 높은 서간문학이라 할 수 있다. 특히 자신보다 더 외로운 유배생활을 하고 있는 형님의 건강을 염려하여 개를 잡아먹는 법까지 상세히 알려주는 편지글에서는 둘째형님에 대한 지극한 애착을 느낄 수 있다.
제자들에게 보낸 편지에서는 가난한 제자들의 생계까지 염려해주는 자상한 스승의 마음씨가 잘 드러나 있다. 또한 이 편지글들은 다산이 실학자로서 얼마나 튼튼한 현실주의적 사고와 실학사상을 지녔는지 보여준다. 과거제도를 맹렬히 비판하면서도 어쩔 수 없이 그런 제도를 통해서만 벼슬길로 나아갈 수 있는 현실을 감안하여 과거공부에 힘을 기울이라고 주장하거나 애써 힘든 길로 가지 말고 지름길로 가라고 당부하는 현실적인 가르침 등이 그러하다. 지금처럼 사도(師道)가 땅에 떨어지고 교권(敎勸)이 흔들리는 때, 이 글들은 진정한 스승과 제자의 관계를 돌이켜보게 한다.

 

이 책을 소개해주신 법정스님은 이렇게 소감문을 남기셨다. "살 줄 아는 사람은 어떤 상황 아래서도 자신의 인생을 꽃피울 수 있다. 그러나 살 줄 모르면 아무리 좋은 여건 아래서라도 죽을 쑤고 마는 것이 인생의 과정. 그(정약용)는 18년 유배생할에서 260권의 저서를 남겼다. 그의 재능과 출세를 시기하여 무고한 죄를 씌워 유배를 보낸 그때의 지배 계층은 오늘날 그 존재마저 사라져 버렸다. 그러나 귀양살이에도 꿋꿋하게 살았던 다산은 오늘까지 숨을 쉬면서 후손들 앞에 당당히 서 있다. 참과 거짓은 이렇듯 세월이 금을 긋는다."라고... 

 
이 책은 역사책 속에서만 알던 실학자 다산 정약용의 인간 그 자체를 이해할 수 있도록 해주었다. 다산이 유배라는 천신만고의 괴로움 속에서 가족과 제자들에게 보낸 편지들은 너무도 진솔한 한 인간의 내면이 고스란히 녹아 있기에 그 어떤 책보다 큰 지혜, 깊은 감동을 선사해준다. 다산 정신의 정수를 담고 있는 이 책이야말로 그의 삶과 사상을 들여다보는 데 가장 중요한 자료라 한다. 앞으로 다산의 사상과 학문세계, 개혁정책에 대해 더 공부해봐야 하겠다.
 
[ 2012년 7월 13일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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