입시병
김종주 / 하나의학사 / 1990년 3월
평점 :
절판


인터넷 포탈 '다음'에서 '입시병'이라는 단어를 입력하면 상당히 많은 카페글, 웹문서, 블로그, 뉴스, 지식 등이 펼쳐진다. '입시병'도 병이기 때문에 몇몇 신경정신과 명의로 관련 정보를 인터넷 카페에 직간접적으로 올려져 있다. 뉴스나 신문에서는 교육문제나 대학입시 등과 관련하여 기사 내용 중에서 '입시병이 한국의 학생들에게 존재하는 것'을 기정사실로 다루기만 할 뿐, '입시병'을 제목으로 하는 심층적인 기사를 거의 제작, 보도하지 않은 것 같다.
인터넷에 올러와 있는 몇 개의 신경정신과 의사들의 경우 입시병의 원인을 당사자와 가족에게서 찾는다. "가장 큰 원인은 아이의 성격에서 기인한다(양창순)"라거나 "가족의 과잉기대나 본인이 일류집착증에 빠진 경우, 사전 준비 없이 고3에 진입한 경우, 입시 실패 경험이 있는 재수생, 내향적 소심형에 많다(소예정신과의원)"라고 진단한다. 기독교상담실의 경우 우리가 과거에 교과서에서 읽었던 "이유 없는 반항기"라는 상투적인 설명을 기본으로 하면서 "과거 성적이 부진하고 자신의 능력에 한계를 느끼는 경우, 내향적이거나 소심하고 강박적인 성격을 가진 경우, 진로 선택에 갈등이 많은 경우, 부모나 자신의 보상심리로 인하여 일류 집착증에 빠진 경우, 부모-자식간의 대화가 단절되고 불화가 있는 경우, 각성제나 수면제를 남용하는 경우, 기존에 정신적 질환이나 만성 신체질환이 있는 경우를 들 수 있겠다."라고 분석한다.
이런 식으로 신경정신과 의사들이 신문이나 방송, 교육관계자들에게 '입시병'의 원인을 분석, 진단하고 있으니 대책이라고 해봐야 학생 개인이 호연지기를 키우고 병원에서 치료를 받아야 하는 식이거나 가족들에게 책임을 전가하여 "부모들이 아이들을 압박하지 말아야 한다"는 것 밖에 나올 수 없는 것이다.

정신과 전문의인 저자 김종주 역시 기본적인 진단 역시 앞에서 이야기하는 다른 의사들과 비슷하다. 차이가 있는 것은 저자의 경우에는 학생 뿐만 아니라 학부모들에게서 상당수 발견되는 입시병을 지적하고 대신 학생들에게서 병의 원인을 찾지 않고 있다. 저자는 아동들의 발달 과정에서 아동들이 가정이나 부모에게 어떻게 영향을 받는 지를 주로 분석하면서 학부모들의 과잉 기대와 시험과 성적에 대한 무언의 압박, 그리고 사회 전체적으로 대학입시를 전쟁처럼 생각하고 덤벼드는 사회문화적 현상이 학생들과 학부모 스스로의 '입시병'을 초래하는 것을 원인으로 지목한다.
 
저자가 직접 병원에서 상담하고 진찰한 학부모나 학생들의 '입시병' 증상과 사례는 매우 심각한 편이다. 신체에는 아무런 의학적 이상이 없음에도 학생들과 학부모들은 의사에게 찾아와 불면증, 두통, 속쓰림, 울렁증을 호소한다. 다행스럽게도 입시병의 기간이 짧은 보통의 경우에는 대학입시가 끝나고 학생이 대학에 입학하게 되면 입시병 증상은 자연스럽게 사라진다고 한다. 하지만 증상이 오래 전에 나타났거나 증상으로 인해 가정에서 문제가 심각하게 발생한 경우, 또는 학생이 입시에 실패하여 재수, 삼수를 하는 경우에는 학생 뿐 아니라 학부모들까지 입시병이 만성질환으로 전개되는 양상을 보일 수 있다는 것이 저자의 설명이다. 그렇게 되면 입시병의 증상은 당사자의 신체적인 질병으로까지 발전하여 오랜 시간 고통스럽게 지낼 수 밖에 없는 것이다.
(어떤 통계인지는 모르겠지만) 저자에 따르면 "입시병은 치유되는 확률이 겨우 25%에 불과하다. 해마다 75%는 죽든가 죽지 않는다고 하더라도 죽음에 가까운 심한 후유증을 남기기 때문에 입시병이 무서운 병이다"라고 주장한다.
 
저자는 학부모들, 즉 부모 세대가 스스로 입시병을 앓게 되고 학생들의 입시병을 발병시키는 이유를 한국사회의 역사적, 사회문화적 요인에서 찾는다. 학부모의 부모세대에게서 제대로 대우받지 못하고 자란 성장배경과 더불어 압축성장에 따르는 가장들의 산업전선 몰입으로 가정에서 부부간에 애정이 제대로 구현되지 않는 현실을 기본적인 사회적 배경으로 지적한다. 이 경우 어머니들은 아이들을 '내 인생의 전부'라는 목표로 설정하고 자신이 이루지 못한 것에 대한 또는 만족하지 못한 것에 대한 '보상심리'를 갖게 된다는 것이다. 아이들은 '가문의 대표 선수'가 되기도 하고 부모들의 '악세사리'가 되기도 한다.
아이들이 자신의 적성이나 재능을 찾고 발휘하는 데서도 교사들 뿐 아니라 학부모들 역시 방해세력으로 등장한다.
 
한창 자유롭고 자율적으로 성장하고 스스로를 알아 나가면서 인격을 형성하고 재능과 적성을 찾아서 열중해야 할 아이들을 12년간 학교와 학원, 시험과 숙제와 공부로 묶어 두고서 어찌 아이들에게서 정상적인 사고와 행동을 바라는 것일까...
 
정치권과 정부, 사회 각계각층이 난마처럼 얽혀있는 법적, 제도적 문제들을 해결해나가는 것도 당면한 주요 과제이지만, 학부모들이 사태의 심각성을 깨닫고 아이들을 위해 스스로 각성하고 목소리를 내고 행동하는 것도 동시에 절실하다는 것이 저자의 요점이다. 법과 제도와 문화를 바꾸는 것은 상당한 시간이 소요되는 것이지만, 우리의 아이들은 오늘도 내일도 압박과 스트레스로 정신적, 육체적으로 상처받고 좌절하기 때문이다.

[ 2012년 7월 10일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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