단순한 기쁨
아베 피에르 지음, 백선희 옮김 / 마음산책 / 2001년 5월
평점 :
품절


나는 어려서부터 '종교'에 대해서는 그렇게 좋거나 긍정적인 기억이 없다. 초중고에 다니면서 배운 아주 상식적인 수준으로 종교의 역할이나 기원 등에 대해 알 뿐이다. 개인적으로 개신교에 대한 기억은 크리스마스 때 과자를 준다고 찬구가 꼬드겨서 한 두번 교회를 갔던 기억과 고교시절 KSCM(Korean Student Christian Movement)라는 무슨 비공개 모임에 한 두번 가고 수련회까지 참석한 후 재미 없어서 그만둔 기억이 있다. 대학에 올라와서는 1학년 겨울방학 때 개신교 교회를 기반으로 하는 세미나 모임에 몇 차례 참석했을 뿐이다. 고모와 누나가 독실한 개신교인이고 성품이 착해서 교회 다니면서 봉사활동하는 모습에 "그렇게라도 사회활동하면 좋은거지"라고 생각한 정도였다.
불교의 경우에는 사찰을 몇 번 구경갔을 뿐 별로 접촉할 기회가 없었고 카톨릭 또한 마찬가지다.

사회생활을 시작한 후로는 종교에 대해 서로 상반되는 기억과 느낌이 존재한다. 개신교의 경우 국내의 상당수 교회나 목회자들이 '몸집 불리기'에 매진하는 모습, 지하철과 광장 등에서 만나는 "예수 천국, 불신 지옥"이라는 광신도, 대학시절 학교 광장에서 미친듯이 울고 기도하던 CCC 회원들, 언론에 간간히 터자는 목회자들의 비리와 부패와 범죄행위가 나에게 '종교의 부정적인 상징'이 되었다. 대신 빈민들이나 농민들, 노동자들과 같은 사회적 약자를 위해 다가가고 그들을 위해 처벌과 고통을 감내하는 개신교 목회자들의 모습은 개신교에 대한 긍정성과 가능성을 보여주었다. 그런 느낌은 불교와 카톨릭, 천도교 등도 비슷한 수준이었다.
다만, 천주교의 경우 비리나 부정이 많이 기사화되지 않았고 1987년 '박종철 고문차사 은폐조작'을 폭로하는 등 자유와 정의와 평등을 위해 사회적 활동을 많이 하는 것을 보아왔기 때문에 주변 사람들에게 입버릇처럼 "내가 늙어서 만약 종교를 가진다면 카톨릭이 될 것"이라고 말하곤 했다.

몇 년 전까지 종교에 대해 관심을 두지 않았다. 종교란 이데올로기의 일종이고 인류 문화의 하나 정도로 생각했고 '인류의 많은 문화유산 중 하나'로 치부하고 살았다. 종교 이외에도 내가 궁금하고 관심을 가지고 알고 싶은 것은 무진장했으며 주변에 종교를 가지고 있는 사람이 많지도 않을 뿐더러 종교를 가진 이들 조차도 '종교를 가지는 것을 회의'하게 하는 모습을 자주 보여주었기 때문이다.
그런데 책을 본격적으로 읽기 시작한 몇 년 전부터 종교에 대해 조금씩 관심을 가지게 되었다. 이제는 "언젠가 성경, 불경, 코란 등 주요 종교서적을 한 번 읽어봐야지"라는 생각을 하기 시작한 것이다. 그 이유는 몇몇 종교인들의 삶과 저서를 읽으면서 내 나름대로 '종교의 가치'에 대해 긍정적으로 생각되었기 때문이다. 특히 법정스님이 돌아가신 후 읽게된 스님의 저서를 통해 불교 뿐 아니라 종교 전반에 대해 갚게 다사 생각하개 되었다. 그 뒤 법정스님이 추천해주신 책들 중 <끝없는 여정>, <비노바 베베>, <가난하지만 행복하게>, <그리스인 조르바>, <승려와 철학자>, <나락 한 알 속의 우주> 등을 연이어 읽으면서 종교에 대해 점점 더 알고 깨닫는 바가 늘어난다.(인간으로서 나 자신의 궁극적 한계를 느끼기 시작했다고 해야 하나...? 아무튼...)

법정스님이 불교에 대해 흐릿하게나마 '눈을 뜨게' 해주었다면 아베 피에르 신부의 이 책은 나에게 기독교(개신교와 카톨릭)에 대해 눈을 뜨게 해주었다. 

피에르 신부는 성경이나 기독교인들이 말하는 하느님, 믿음에 대한 나의 고정관념을 깨트려 주었다. 나는 지금껏 기독교인들이 '하느님이 전지전능'하기 때문에, '내세에서 천당'에 가기 위해, '그분의 아들인 예수님'을 믿는 것이라고 알고 있었다. 물론 그들이 그렇게 주장하고 다니기 때문이다. 하지만 피에르 신부는 그런 믿음을 비판한다. 
그는 "하느님이 있다고 믿는 것이 아니라 하느님을" 믿는다. "그분은 존재 자체가 사랑이며, 그것이 그분의 본질을 이룬다." 따라서 그에게는 "신자라고 불리는 사람들과 우리가 또는 그들 스스로 비신자로 부르는 사람들 간에 근본적인 구분이 없다"고 확신한다. "'자신을 숭배하는 자'와 '타인과 공감하는 자' 사이의 구분이 있을 뿐"이다. 그에게는 "타인의 고통 앞에서 고개를 돌리는 사람들과 타인들을 고통으로부터 구하기 위해 싸우는 사라뜰 사이의 구분이 있을 뿐이며, 사랑하는 사람과 사랑하길 거부하는 사람들 간의 구분이 있을 뿐이다."
그는 성경 귀절 "마음이 가난한 자는 행복하다. 하늘나라가 그들의 것이다."가 자신이 가진 모든 재산을 나누어준다는 의미가 아니라 '나의 능력과 특권과 재능과 학식을 가지고 약자들과 가난한 자들을 위해 무엇을 했는가?'라고 자문했는지를 묻는 것이라고 말한다.
피에르 신부는 하느님이 바로 사랑이기 때문에 사람들이 알지 못하는 곳 저 멀리 우주 어딘가에 하느님이 존재하는 것이 아니라 이 지상에서 사랑하는 사람 하나하나의 존재 속에, 풀뿌리와 작은 벌레 속에도 하느님이 존재한다고 말한다.

또한 피에르 신부는 올바른 선교와 신앙생활이 무엇인지 자신의 삶으로 보여주었다. 통상 국내 기독교인들과 교회들은 가도와 찬송, 무슨무슨 성경공부모임, 노숙자들에개 점심 제공, 정기적으로 사회적 약자 도우미 활동 및 성금 모금, 가정이나 개인을 ?아다니며 선교활동하는 것을 자신들의 주된 신앙생활로 삼고 있다. 
하지만 피에르 신부는 '엠마우스 공동체 운동'을 통해 사회적 약자들에게 단순히 '먹고 입을 것'을 제공하는 것이 아니라 '살아야 할 이유'를 알려주었고 그들이 스스로 일어나도록 도와주었다. 그는 2차 대전 당시 단지 '인종적인 이유로 학살당하는' 유대인의 탈출을 도와 나치에게 체포되기도 했다. 

이 책에서 피에르 신부는 솔직하고 담담한 목소리로 자신의 지나온 인생을 얘기함과 동시에, '더불어 사는 기쁨', '나눔의 철학', '실천하는 사랑' 등, 이 시대에 절실하게 요구되는 핵심적인 메시지들을 그 이야기들 속에서 자연스럽게 녹여내고 있다. 그의 이야기를 따라가다 보면 삶의 '기쁨'은 결코 멀리 있거나 거창한 것이 아님을, 목이 마를 때 물 한모금 속에서도 무한한 기쁨을 맛보게 되듯이, 이웃과 더불어 베풀고 나누고 작은 것에 만족하는 데서 오는 것이며, 타인이 바로 내 삶의 '기쁨'이라는 단순한 진리와 깨달음을 얻기에 이른다.

출판사의 책 소개가 재미있다. "프랑스에서는 해마다 '가장 좋아하는 인물'을 선정한다. 그리고 이 설문조사에서 8년 동안 무려 일곱 차례나 1위에 오른 인물이 있다. 올해로 아흔 살을 맞는 노사제 피에르 신부. 연예인도 아니고, 정치가도 아니고, 그렇다고 추기경이나 교황도 아닌 그냥 보통의 성직자에 불과한 그에게 사람들은 왜 그토록 사랑과 존경을 표하는 걸까? 바로 이 책에 그 답이 담겨 있다. 이 책은 현재 전세계 44개국 350여 곳에서 활동하고 있는 빈민구호 공동체 '엠마우스(Emmaus)'의 창시자인 피에르 신부의 자전적 기록이자, '노사제가 우리들에게 털어놓는 고백성사'이다."

 

한국 내 기독교 목회자들과 신도들, 특히 개신교 목회자와 신학자들에게 이 책을 꼭 읽어보라고 권한다. 피에르 신부의 이야기에 따르면 한국 내 개신교 목회자의 90% 이상이 '종교적 광신자'이고 종교를 신앙이나 영성이나 사랑이 아닌 권력과 부의 수단으로 삼고 있는 것이니... 


* 인상 깊은 문장 :

- 오늘날 기독교, 유대교, 힌두교, 회교 등에서 나타나는 종교적 광신은 근본적으로 영적인 것과 세속적인 것을 혼동한 데서, 종교에 대한 개인적 추구가 정치적 권위에 대한 욕망으로 전환된 데서 비롯된 것이라고 나는 확신한다. 절대자에 대한 개인적 탐구는 성스러움으로 인도할 수 있다. 그러나 집단의 정치적 탐욕으로 변질되어버란 절대자는 온갖 형태의 광신을 향해 열린 문과 같다.(p.133)

- 예수께서는 이웃에 대한 사랑 이외의 그 무엇도 가르치지 않았다. 그리스도의 메시지를 실천에 옮기고자 애쓰다 보니 나는 일평생 사랑하려고 노력하게 되었다.(p.180)
 
[ 2012년 7월 05일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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