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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본주의, 그 이후 - 승자독식 논리에서 상생의 인본주의로
박세길 지음 / 돌베개 / 2012년 2월
평점 :
결론부터 말하자면 이 책은 별로 추천하고 싶지 않은 책이다. 추천은 커녕 중고책으로도 팔지 않고 벽장 깊숙한 곳에 숨겨두고 싶은 책이다. 그만큼 별 볼일 없을 뿐더러 거의 500쪽에 달하는 책을 읽는 시간도 아까운 책이다.
저자를 개인적으로 아는 바 없지만 책 속애서 느껴지는 저자의 인식은 '멘탈 붕괴'거나 굳이 좋게 표현하더라도 뉴라이트에 버금가는 '신주사파'라고 명명하고 싶다. 개인적으로 '00주의'나 '00파'라는 낙인찍기를 극도로 싫어하기 때문에 공개적으로 거론하고 싶지는 않은 표현이지만...ㅠ
저자의 견해에 동의하는 부분도 있다. 한 시대가 격변하고 있다는 점, 패러다임의 전환이 일어나고 있다는 점, 좌우대립의 이분법만으로는 21세기의 문제를 해결하기 어렵다는 점, 지식과 창조성이 중요하다는 점, 기업에게도 나름 장점이 있다는 점, 대결이 아니라 상생이 필요하다는 점, 인본주의가 요구된다는 점 등이다. 하지만 저자의 주요 개념이나 논리 전개, 방향에 대해서는 수긍하기는 커녕 공감하기도 어려운 것이 사실이다. 저자는 엄청 '헤매고' 있는 것 같다.
내 생각에 저자가 헤매는 이유는 먼저 저자가 적용하는 개념이나 단어가 좌충우돌하기 때문으로 보인다. 저자는 지식이나 창조력을 생산요소로서의 자본, 노동과 동일한 기준이나 반열에서 비교, 적용하고 있다. 산업사회 내에도 지식이 당연히 포함되지만 저자는 산업사회와 지식사회를 별개로 다룬다. 탈산업사회와 탈자본주의를 구분하지 못한다. 좌와 우, 자본과 노동, 국가와 시장 등의 대립개념의 이분법적이고 대결적인 성격을 강조하면서 두 가지가 동전의 양면으로 서로가 서로에게 필요하다는 것을 인식하지 못한다. 지식과 창조력이 자본과 노동, 국가와 시장의 내부에서 차지하는 비중과 중요성이 늘어나는 것을 마치 대체할 수 있는 것이라고 오해한다.
마르크스나 레닌이 제국주의를 자본주의의 최후 형태라고 생각했지만 자본주의가 제국주의 이후에도 여러가지 형태로 살아남았듯이 신자유주의가 약화되거나 사라진다는 것과 자본주의가 최후를 맞이하는 것은 다를 수 있음을 생각하지 못한다. 정치적, 경제적, 문화적 동물인 사람에게서 지식이나 상상력, 감성, 그리고 창조성을 따로 떼어낼 수 있다고 자신한다. 창조력마저 돈으로 지배하는 자본의 위력을 무시하고 이윤을 최고의 생명으로 삼는 기업의 속성을 간과하고 있다.
'사람이 모든 것의 근본'이고 '사상과 문화, 기술을 체화한 새로운 인간형'이라는 표현 속에서 '만물의 영장으로서 인간'이라는 근대적 인간형이 재등장하는 모습과 변질된 주체사상의 변종을 발견할 수 있다. 2008년 한국에 별종 뉴라이트가 탄생한 후 신종 주사파가 등장하게 되는건지 우려된다. 저자는 색안경을 쓰면서 인간과 자연과 우주가 한 몸이고 다른 양태임을 꿰뚫어 보는 눈을 잃은 것 같다.
공부모임 참석자들 역시 겉으로는 나처럼 심하게 표현하지는 않았지만 내심에는 나보다 더 큰 실망감이나 상처를 입었을 것이라 추측한다. 한 참석자는 "박세길이 피터 드러커에게 말렸다고 생각한다. 저자는 왜 파터 드러커 이상의 애기를 하지 못하는가?"라고 반문했고 다른 참석자는 "창조력 역시 일반인들 중 극히 일부분에게서 강하게 드러나는 요소이기에 승자독식 구조에서는 마찬가지다."라고 비판했다. "기업이 이윤을 지상과제로 삼는 한 어떤 표현을 하더라도 노동자는 이윤을 위한 수단일 뿐이고 그것이 한국에서 노사갈등의 핵심이지 않은가?"라는 반문도 있었고 "지식기반사회가 되어도 농업과 제조 등 산업사회는 오랜동안 계속될 것이다."라는 반론도 있었다.
'박세길'이라는 이름은 <다시 쓰는 한국현대사>라는 책을 통해 알고 있었다. 대학시절 <해방전후사의 인식>을 읽은 이후 다른 여러 책들 속에서 한국현대사에 대해 읽었기 때문에 여러 지안들에게 '잘썼다'고 추천받았음애도 <다시 쓰는 한국현대사>를 읽지는 못했다. 그래서 조금 미안한 마음을 가지고 있다. 딸 아이가 무럭무럭 자라고 있으니 늦기 전에 읽고 아이에게 추천하고 싶은 책 중 하나다.
공부모임에서 박세길씨의 최신작인 이 책을 세미나 교재로 삼자는 제안이 나왔을 때 주저없이 동의하였다. 최근들어 자본주의가 세계경제와 각국 경제에, 전세계인들의 삶애 온갖 몹쓸 나쁜 결과를 가져오고 있고 많은 학자들이 자본주의 이후의 세계경제체제에 대한 담론들을 제기하고 있다. 국내 학자, 그것도 역사를 전공하는 학자가 자본주의 이후의 세계를 어떻게 생각하고 예상하는지 궁금하지 않을 수 없기 때문이었다. 처음 책을 접한 후, 제목 아래에 달린 부제가 '승자독식 논리에서 상생의 인본주의'라고 달려 있어 나에게 흥미도 유발시키기도 했다.
책의 서문을 읽어보나 저자가 현실 자본주의로 인한 많은 이들의 고통에 가슴아파하고 '자본주의 이후의 새로운 세상'에 대해 오랫동안 많은 열망과 연구를 거듭했음을 알 수 있었다. 저자는 1990년대 10년 동안 새로운 사회를 탐색하면서 원고지 1만 매를 넘는 글을 썼다. 2000년대 초반에는 직접 다양한 실천적 접근을 통해 새로운 사회의 단초를 찾으려고 연구단체를 설립하였고 사회단체 상근자로 활동하기도 했다. 하지만 그 과정에서 그는 자신의 이론적 기반이 취약함을 느끼면서 스스로의 한계를 절감하고 '성찰과 탐구'를 위해 2007년 가을 홀로 치악산 기슭으로 들어갔다.
저자는 치악산에 들어가면서 두 가지 결심을 했고 모두 이루어냈다고 한다. 하나는 '10만 쪽'의 책을 읽는 것이고 다른 하나는 두 가지 종류의 역사책을 쓴 것이다. 10만 쪽이면 300쪽의 책 300권을 읽은 셈이다. 그는 2008년 6월 <혁명의 추억, 미래의 혁명>을, 2010년 4월 <미래를 여는 한국인사(상,하)>를 출간했다. 그리고 그 이후 저자는 어느날 문득 좌우 구도의 낡은 안경이 자신의 사고를 규정했다는 것을 깨닫고 좌우 구도의 낡은 안경을 벗어 내려놓은 후 '편견 없는 어린아이의 눈으로 세상을 보고 실마리를 찾으려고 노력'하다가 드디어 영감이 샘솟기 시작해 이 책을 집필하게 된 것이다.
저자는 계속하여 서문에서 두 권의 신간을 집필하면서 얻은 결론을 소개했다. 10개나 되지만 이 책을 이해하기 위해서는 모두 소개하는 것이 필요하다. "첫째, 전지구적 관점에서 접근하지 않으면 자본주의 이후 새로운 사회를 찾을 수 없다. 둘째, 자유와 평등은 분리되는 순간 둘 모두 불구화된다. 둘은 조화롭게 통일되어야 한다. 셋째, 사회주의를 지배했던 국가만능주의와 자본주의를 지배했던 시장만능주의 둘 모두 답이 아님이 분명해졌다. 국가와 시장의 위상과 상호관계에 대해 근본적인 전환을 모색해야 한다. 넷째, 신자유주의는 자본주의의 정점이며 필연적으로 몰락할 수 밖에 없다. 따라서 자본주의는 신자유주의의 몰락과 함께 역사의 무대에서 퇴장하기 시작할 것이다. 다섯째, 생산 활동을 주도하는 요소가 자본에서 지적이고 창조적인 능력을 지닌 사람에게로 이동하고 있다. 이는 지배권력의 원천이 자본에서 창조적 능력을 지난 사람에게로 이동할 수 있음을 예고하는 것이다. 여섯째, 대중이 주역으로 떠오름에 따라 수직적 위계질서가 무너지고 수평적 소통과 협력이 모든 영역을 지배할 것이다. 일곱째, 한반도 분단의 역사는 진보와 보수가 '공존'을 바탕으로 경쟁해야 한다는 교훈을 남겼다. 여덟째, 새로운 패러다임을 바탕으로 사고하고 행동하는 신세대는 새로운 사회를 창조할 풍부한 잠재력을 지니고 있다. 아홉째, 국가의 절대우위가 사라진 조건에서 국가권력 장악을 바탕으로 한 위로부터의 변화에 의존해서는 세상을 제대로 바꿀 수 없다. 말하자면 아래로부터의 변화가 기본이 되어야 하는 것이다. 열째, 기업 경영은 매우 창의적이고 역동적인 영역으로서 그로부터 새로운 사회로 이행하는 고리가 형성될 가능성이 크다."
그러한 '새로운 결론'에 기초하여 저자는 책의 본문에서 21세기 세계는 "산업사회에서 지식사회로의 전환"이 이루어지고 있고 "따라서 산업사회를 지탱하던 자본과 노동은 더 이상 주도적 생산요소가 될 수 없게" 되었고 "권력의 원천이 자본에서 지식으로 이동"하면서 지구촌이 "탈자본주의 사회로 이행"하고 있다고 주장한다. 저자에게 지금 세계적인 경제위기는 '역사의 변곡점'인 것이다. 이에 따라 이 세계의 패러다임은 대전환 중이다. 그것은 인간과 기술의 관계에서의 패러다임의 변화(놀라운 가술적 진보를 바탕으로 사람이 주도적 위치를 되찾고 개인의 삶이 복원되고 있다), 새로운 패러다임을 바탕으로 사고하고 행동하는 신세대의 등장, 근대 경제학의 해체에 따른 새로운 패러다임의 설정이다.
저자는 여기에서 한 발 더 나아가 '3부 인본주의 사회로의 진화'에서 '새로운 사회로의 이행을 해명하는 데서 핵심 개념이 주도적 생산요소'이며 역사적으로 토지, 자본과 노동이 최근까지의 주도적 생산요소로 작용했다면 앞으로는 '창조력(지식 + 감성 + 상상력)'이 주도할 것이라고 주장한다. '창조력은 생산요소이면서 동시에 생산수단'이고 따라서 '창조력은 자본에 의존하지 않고서도 독자적으로 가치를 창출할 수 있다'고 결론을 내린다. "이제 지식으로 무장하고 감성을 구현하면서 상상력을 발휘하는 사람이 경제활동의 중심에 서기 시작한 것이다. 역사상 최초로 인간의 내면에 존재하는 생산수단인 창조력이 주도적 생산요소로 떠오르면서 일어난 현상이다. 중요한 것은 창조력은 오직 사람 속에만 존재하며 다른 작업수단에 의해 대체될 수 없다는 사실이다. 이는 곧 사람을 모든 것의 근본으로 삼는 새로운 사회가 열릴 가능성이 매우 크다는 것을 암시한다."(p.214) 저자의 관점에서는 새로운 계급인 '창조자 계급'이 출현하고 기업권력도 구성원 모두가 권력의 중심에 서는 수평적 조직문화로 전환하게 되는 것이다. "이로부터 자본주의 이후 새로운 사회는 사람을 모든 것의 근본으로 삼는 인본주의 사회이며, 인본주의 사회로 나아가는 중심 고리는 기업에서의 '수평적 조직문화의 정착'임이 밝혀진다"(p.253)
그는 '4부 상생의 생태계'에서 세계가 산업시대의 일반적 모습이었던 돈과 기계의 예속으로부터 인간의 본성을 되찾고 이를 중심으로 경제를 운영하고자 노력이 강화되고 있으며 이에 따라 승자독식을 지양하고 동반자 관계의 연쇄사슬인 '상생의 생태계'를 구축해야 함을 이야기한다.
마지막 '5부 새로운 사회의 한복판으로'에서 저자는 "상생의 인본주의 사회로의 이행은 필연적 가능성"이지만 그이행의 경로와 속도를 규정하는 요소는 사상문화적 동향, 정치사회적 환경, 기술적 조건, 경제적 변화 등이 있다고 지적한다. 그리고 그 중 가장 크게 영향을 끼치는 것은 사상문화적 동향임을 주장한다. "새로운 시대는 새로운 사상과 문화, 기술을 체화한 새로운 인간형이 등장하면서부터 열리기 시작한다. 거꾸로 새로운 시대는 새로운 인간형을 창조하기도 한다"(p.445)
책 전체에서 저자는 피터 드러커에게 많은 영향을 받았음을 고백하고 있고 실제 기업과 경영의 가치와 긍정성, 지식과 창조력에 대한 그의 과도한 강조하면서 드러커의 글을 자주 인용한다.
[ 2012년 6월 17일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