불가능한 것의 가능성 - 슬라보예 지젝 인터뷰 궁리 공동선 총서 1
인디고 연구소 기획 / 궁리 / 2012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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슬라보예 지젝이라는 슬로베니아 철학자의 이름은 친구에게서 몇 번 들은 적은 있지만 구체적으로 관심은 없었다. 언젠가 친구가 페이스북에 올린 지젝의 글을 읽으면서 든 느낌은 '무지 어렵고 현학적이네..'였다. 그랬던 지젝이 나와 어떤 인연인지 세미나 교재로 다시 등장했다. 다행하게도(!) 지젝의 저서를 번역한 책이 아니라 국내 '인디고 연구소'측이 지젝과 인터뷰한 내용을 정리하여 발간한 책이다.


지젝이 가장 중요하게 생각하는 것은 '배제된 자'와 '포함된 자' 사이에 존재하는 장벽이다. 그가 '새로운 아파르트헤이트'라 부르는 이 장벽은 전근대적인 차별정책에 비해 보다 치밀하고 노회한 성질을 띠고 있다. 예컨대, 자본가의 착취 방식이 공정 영역을 사유화함으로써 그 지대를 물리는 방식으로 변화하고 있다는 것, 자본가들의 이윤을 남기는 방식이 지적 재산권을 경유함으로써 보다 세련되고 뻔뻔한 형식을 취하고 있다는 사실을 폭로한다. '배제된 자'와 '포함된 자' 라는 개념은 현대사회에 적용하기 어려운 마르크스 정치학의 자본가계급과 노동자계급이라는 개념을 현실의 조건에 맞도록 확대, 발전시킨 개념으로 볼 수 있다. '공정 영역의 사유화' 역시 현대 들어와서 자본가들이 이윤을 취하는 교묘한 방식을 구체화하는 것으로 우리나라에서도 이미 IMF 체제 이후 '효율성'이라는 이름으로 국내외 자본에게 사회간접시설의 개발권을 제공하면서 시작되었기에 실감할 수 있다. 현대통령인 이명박이 서울시장 때부터 지금까지 국가시설 전반을 통채로 넘겨주고 있는 실정이다.

그리하여 지젝은 오늘날 자본가들의 지배 체제야말로 민주주의를 거스르고 있으며 오히려 여론 독점과 이윤 독식이라는 경제적 독재와 다르지 않다는 사실을 드러낸다. 특히 프롤레타리아의 자본주의적 삶을 북한 인민의 삶에서 가져오는 정치철학절 재치는 한반도에서 같은 민족과 문화라는 공통성을 지닌 우리들에게 씁슬한 유머로 다가온다.

오늘날 가장 가난한 사람들은 누구인가? 그들은 일을 하는 계층이 아니라 실업자나 빈곤층 등 배제된 자다. 그는 전 지구적 자본주의의 모든 영역에서 발생하는 배제된 자들까지 '프롤레타리아적 입장'으로 포괄함으로써 프롤레타리아 개념을 재정의한다. 프롤레타리아적 입장은 분노 자본이 자유롭게 운집하고 폭발하는 저항의 거점이 됨으로써 혁명의 새로운 주체들이 탄생하는 열린공간아 된다는 것이다. 안정된 고용을 누리는 노동자 계급이 이익집단화되고 정치경제적 이익을 공유하는 메카니즘에 속해버린 현대 자본주의 구조에서 지젝의 이런 지적은 크게 공감이 된다. 지난 2010년부터 시작된 세계적인 오큐파이 투쟁, 99% 투쟁이나 튀니지, 이집트 혁명도 그런 관점에서 해석이 가능할 것이다.

폭력이 대판 지젝의 통찰력도 우리에게 필요해 보인다. 우리가 더 중요하게 생각해야 할 문제는 "폭력은 늘 여기에 있다"는 사실 자체라는 것이다. 진보적 좌파의 폭력에 대해서만 여론의 초점이 맞추어지로 있지만, 좌파의 방어적 폭력을 초래하는 진짜 폭력이 노회한 방식으로 이 세계에 늘 상존하고 있다는 것이다. 물론 상존하는 폭력에 노출된 대상은 배제된 자들이다. 그는 '이론과 철학의 부재'가 포함된 자는 물론이고 배제된 자들조차 이 세계에 상존하는 폭력의 현실에 대해 인지할 수 있는 가능성을 박탈한다고 주장한다. 직접적 폭력이 아닌 자본과 공권력에 의한 경제적, 제도적, 문화적 폭력이 현실 구조에서 작동하고 있다는 것을 굳이 이론과 철학으로 규정해야 인지할 수 있다는 말이 좀 거창하기는 하다. 우리나라의 경우 일상적으로 경찰과 검찰의 폭력이 난무하고 있지 않은가?

인디고 연구소는 폭력이 포함된 자와 배제된 자를 가르는 장벽의 원인이자 결과라면, 그것이 필연적으로 '공동선'의 문제로 귀결되는 것으로 유도한다. 지젝은 공동선을 '공동'과 '선'으로 분리해서 접근한다. '공동'은 보편성의 문제를 함축하는데, 보편성이야말로 배제된 자와 포함된 자를 가르는 장벽을 허물 수 있는 진정한 해방의 조건이 되기 때문이다. 그러나 그는 선과 악을 초월한 관념적이고 추상적인 보편성의 세계가 아니라, '선'의 규준을 투쟁으로써 쟁취하는 '구체적 보편성'의 세계야말로 좌파에게 주어진 또 다른 실천적 과제라고 주장한다. 그리하여 그에게는 인간윤리의 범주가 될 '선'이란 선험적으로 주어진 것이 아니다. '선'은 점유, 혹은 투쟁과 쟁취의 대상이다. "공동선은 단순히 전제할 수 있는 것이 아니라, 오직 우리가 결정을 내려야 하는 성질의 문제"인 것이다. 그렇다면 지젝에게 오늘날의 궁극적 '선'이란 무엇인가? 그것은 배제된 자들의 정치사회적 침입과 복원이다.

전셰계적인 정치경제 그리고 철학적 분위기는 어떠한 형태로든 자본주의가 영속한다고 생각하거나 자본주의 이후의 새로운 세계에 대한 정치철학절 비전을 제시하지 못하고 있다. 오히려 독점된 여론이나 지식계층에서 자본주의 이후의 세계가 '불가능'하다고 선전하는 것일 수도 있다. 지젝은 자본주의 이후의 공동의 세계를 '불가능한 것'으로 간주하는 상징계적 억압의 사실을 끊기 위해 지금 당장 우리가 해야 할 일은 '가능한 것'과 '불가능한 것'의 경계를 흐릿하게 하로 재사유하는 것이라고 말한다. 이러한 경계 흐리기는 '가능한 것'의 영역을 확장시킨다. 이를 위해 지젝은 보다 복잡한 오늘날의 세계적 자본주의 상황을 정확하게 진단하고 예각적 질문을 던질 수 있는 이론의 정치화()가 시급하다고 진단한다. 이는 곧 정치적 주체의 형성과 밀접한 관련이 있다.

마르크스와 레닌, 사회주의와 공산주의, 노동자계급과 프롤레타리아라는 테제에서 벗어나지 못하는 이들에게 지젝의 발상과 사유를 한 번쯤 접하기를 권하고 싶다.

연구소의 소개에 따르면 지젝은 라캉과 마르크스, 헤겔을 접목한 독보적인 철학으로 '동유럽의 기적'으로 불리는 세계적인 석학이라 한다. 독특한 영화해석과 문화비평을 내놓는 철학자로 유명하며 미학, 정치이론 등 다양한 지식을 철학에 자유자재로 접목하는 독특한 사유를 통해 대중문화로 철학을 더럽히는 'MTV 철학자'라 불리기도 한다. 남동유럽의 소국 슬로베니아 출신으로 파리에서 박사학위를 받았다. 전체주의와 인종주의에 반대하는 운동가로 활동하기도 했으며 현실정치에도 적극 가담하기도 했다.

[ 2012년 6월 02일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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