법, 셰익스피어를 입다 셰익스피어 에세이 3부작
안경환 지음 / 서울대학교출판문화원 / 2012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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법과 문학. 나에게는 둘 다 어려운 대상이다. 물론 보통사람들에게 가장 거리가 먼 대상이기도 하고 반대로 우리 곁에 아주 가까이 있기도 한 것이다. 우리 사회에서 보통사람들에게 법'은 아무래도 어렵고 권위주의와 권력의 냄새를 본능적으로 느낄 것이고 소설을 제외한 시, 연극 등 대부분 문학 역시 일반인들에게는 멀 것이다.(그 거리는 비교할 수 없이 크지만...) 하지만 우리가 세금을 내고 운전면허를 따고 병역의무를 지고 다른 사람과 계약을 체결하는 것은 법률행위를 하는 것이고 소설을 읽고 영화를 보는 것은 문학을 가까이 접한다는 의미이기도 하다.
법과 문학 모두 사회적이고 역사적인 성격을 지니고 있음은 분명하다. 50년 전에는 여성과 장애인을 차별하거나 경찰이 길가는 젊은이를 붙잡아 두들겨 패도 아무런 문제가 없었지만 지금은 그런 사람들은 법에 의해 처벌받는다. 문학 역시 시대적 상황에 맞는 구성과 주제와 표현방식을 달리한다. 법은 인간의 정의를 주레로 하여 현실적 문제를 주로 다루고 있고 문학은 인생을 주제로 하여 인간의 보편적 문제를 다루는 것이라는 생각이 든다.

문학에 비해 법은 딱딱하고 비인간적인 냄새가 난다. 법과 문학 모두 단어와 문장이라는 수단을 사용하여 자신의 목적을 달성하고자 하지만 그 단어와 문장을 사람들이 받아들이는 것은 정반대다. 법과 모두 인간이 만들어낸 수단이지만 대체로 법은 사람들에게 공감을 얻지 못하고 문학은 공감을 얻는다. 특히 한국에서는...
현재 우리 사회에서 법과 법률가들(변호사, 판사, 검사)은 대중들에게 가장 큰 불신과 비난을 받는 직종에 속한다. 왜 대중들에게 공감과 지지를 얻지 못하는지는 자신들 스스로가 더 잘 알 것이다. 아마도 가장 중요한 이유는 법률가들 스스로가 법을 지키지 않기 때문일 것이다. 법의 적용과 판단이 대상자의 지위고하에 따라, 빈부에 따라 '공평'하지 않기 때문이다. 
어쩌다가 법률가들이 불신과 부정의 대상이 되는 지경에 이르렀을까? 여러가지 역사적, 태생적인 이유도 있고 제도적, 구조적, 정치적 이유도 있을 것이다. 그런 상황에서도 일부 법률가들은 법의 본래 취지에 맞는 활동과 역할을 펼치고 있다. 그들이야말로 대중들에게 공감을 얻고 정의와 평등을 위해, 헌법의 정신에 따라 올바른 법률적 행위와 판단을 위해 노력하는 '진정한 법조인'인 것이다. 우리 나라의 경우 '민주화를 위한 변호사 모임(민변)' 소속 상당수 변호사들이 그 대표적인 경우다.

어떻게 민변의 적지 않은 변호사들은 일반적인 법률가, 변호사들과 다른 자세와 태도를 보일까? 아미 작고하신 조영래 변호사나 지금 서울시장인 박원순 변호사를 통해 왜 그런지를 알 수 있는 방법도 있지만 다른 방법도 있다. 기본적으로 그들은 '노력'하는 법률가들이다. 그들이 노력하는 내용은 스스로 공평무사한 자세와 태도를 갖추기 위래 애쓰고 법에 대해 더 연구하고 공부하는 것도 있도 대중들에 대해 알려고 노력하고 공감하는 것도 있을 것이다.
이 책은 그런 노력을 하는 민변 변호사의 모습을 보여주고 있다.

저자는 이 책을 통해 법과 문학의 간극을 줄이고자 시도한다.  그는 서구사회에서 법이 대중화된 이유 중 하나를 셰익스피어를 통해 찾는다. 그는 "법과 문학의 본질과 효용에 대한 의문과 호기심으로 시작했다"고 한다. "작품의 총체적 이해와 사회의 통합적 지성의 발전에 결정적으로 기여한다는 믿음" 때문이라고.. 아니 본인 스스로가 자신의 전공인 법학 뿐 아니라 자신의 인생 전반에 걸쳐 셰익스피어의 작품에서 많은 것을 얻었기 때문이기도 할 것이다. 그는 "지난 수 십 년, 셰익스피어는 나의 친절한 스승이자 친구였고, 작품의 수많은 인물은 내 꿈을 휘젖는 연인이었다"고 말한다.

이 책에서 우리는 '영국의 대문호'로만 알고 있던 셰익스피어와 그의 작품의 다른 모습을 많이 발견할 수 있다. 예를 들어, 셰액스피어는 '소송만능주의자' 수준으로 일생동안 숱한 송사에 휘말려 살았다고 한다. 저자는 많은 자료조사를 통해 셰익스피어가 실존 당시의 보통 사람보다 자신의 재산적 이해관계에 민감했으며 재산을 얻고 지키려고 기꺼이 법절차에 의존했다고 말한다. 정확하지 못한 기억으로 증언을 한 적도 있고, 담합성이 강한 소송에 동참하기도 했다. 기록에 나타나지 않은 다른 소송이 있었을 가능서도 높다고...^^ 그렇기 때문인지는 몰라도 셰익스피어의 대다수 작품 속에는 소송이나 재판와 관련된 내용이 상당히 많다고. 그것은 그가 활동하던 엘리자베스 시대는 소송 폭주 시대였기 때문이기도 하다.(한 해 평균 1백만 건 이상이였다고...ㅋ)
물론 소송과 관련한 사건들이 셰익스피어의 작품 소재나 줄거리에 반영되기는 했지만 그의 작품은 인간의 보편적인 삶과 생애, 갈등과 반목, 애정과 애증 등 인류의 보편적인 주제를 다루고 있다.

"초임 판사의 생애 첫 재판이다. 배당된 사건은 원로 판사에게도 어려운 사건이다. 그런데도 신출내기 판사는 만인을 경탄시킨 명판결을 내린다. 원고는 절대로 잘 수 없는 사건이라고 확신했다. 부자 상인에게 돈을 빌려주고 차용증서를 받았다. 빌려준 돈을 제날짜에 못 받았다. 그래서 증거를 들고 법원에 갔다. 누구라도 그랬을 것이다.
두 사람이 합의하여 서명한 계약서의 내용이 약간 특이하다. 만약 채무자가 빌린 돈을 갚기로 한 날짜에 갚지 못하면 자신의 심장 가까이 살 일 파운드를 채권자에게 준다는 내용이다. 법대로 따르겠다는 약속을 이미 했다. 거짓말도, 유혹도, 사기도 없었다. 그야말로 완전한 자유의사로, 내용을 너무나 잘 알고 맺은 계약이다.
피고도 각오하고 있었다. 절대로 이길 수 없는 사건임을 너무나 잘 알고 있었다. 자신이 바랄 수 있는 것이라고는 빚쟁이의 자비, 법원의 관용 뿐이다. 엎드려 비노니 그저 목숨이라도 부지하게 해달라는 애원 뿐이다. 젊은 판사의 입에 한 사람의 목숨이 걸려 있다.
그러나 경천동지의 일이 벌어졌다. 재판을 시작할 때만 해도 판사는 모든 사람의 예상대로 원고의 법적 주장에 동조하면서 피고에게 자비를 베풀 것을 권고했을 뿐이었다. 판사로서의 자신의 권한은 그뿐이라는 것을 암시하면서. 그러나 완강한 채권자는 요지부동이다. 심지어 채무자가 원금의 3배에 해당하는 대금을 위약금으로 변상하겠다는 청약마저 일축하고 오로지 계약서에 적힌 대로 '살'로 '특정이행'할 것을 요구한다. 이때 판사의 태도가 돌변한다. 느닷없이 계약서에 적힌 내용의 기슬적인 흠을 문제람아 피고의 책임을 면제해준다. 계약서에 적힌 내용은 불법이고 따라서 무효하는 것이다. 납득할 수 있는 판결이다. 그러나 판결은 여기에 그치지 않는다. 태도를 표변한 판사는 이제 폭군으로 변한다. 돈을 빌려준 채권자를 살인미스로 몰아 그의 전 재산을 내놓으라고 명령한다.
'법아 그러나 어쩔 수 없다'며 소극적으로 채권자의 자비를 호소하던 판사는 일순간 고도의 사법적극주의자가 되어 경각에 몰린 생명을 구하고, 마침내 위태롭던 정의를 세운다. 신참판사의 명판결(?)은 신화가 되어 대에 길이길이 전승된다. 영국의 대문호, 윌리엄 셰익스피어의 창작은 '해가 지지 않는 나라' 대영제국의 위광을 업고 지구를 정복한다. 셰익스피어가 내놓은 문제의 판결은 그리스도교 문화권의 최고 명판결로 후세인의 칭송을 받는다."

위 안용문은 셰익스피어의 작품 <베니스의 상인>의 주요 내용이다. <베니스의 상인>은 복수극이라고 한다. 고리대금엄자인 원고는 자신을 공공연하게 고리대금업자로 비하하고 심지어 '목을 따 죽일 개'라고 부르며 수염에 침을 뱉는 등 오랜 세월에 걸쳐 모욕을 준 피고를 법을 통해 복수하려는 것이었다. 원고는 사적 복수를 공적 복수로, 물리적인 직접 복수에서 제도를 통한 복수로 형식과 절차를 변한 근대화를 상징하는 인물이다. 하지만 반대편인 피고의 복수 역시 잔인하다. 위기에서 벗어나 처지라 바뀐 피고는 원고를 파멸시키기로 작심한다. 판사의 판결에 따라 자신의 몫이 된 원고의 재산의 절반을 자신을 수탁자로 하는 신탁을 창설한다. 그것으로도 부족하여 향후 원고가 취득할 모든 재산을 신탁재산에 납입할 것을 약속하라고 강요한다. 그뿐 아니라 유대교안 원고를 기독교로 개종하라고 정신적인 자산마저 빼앗는다. 그로써 원고의 존재 자체를 지워버리려는 것이다. 이로써 '명판결'이라는 법적인 정의와 별도로 법과 정의가 무엇인지, 복수가 무엇인지, 둘 중 누가 궁극적인 가해자고 피해자인지 독자들과 관객들에게 생각토록 한다.

이 이외에도 저자는 책 속애서 <헨리 6세>를 비롯하여 우리도 들은 기억이 있는 <햄릿>, <오셀로>, <맥베스>, <리어왕>, <로미오와 줄리엣> 등 12편의 작품을 소개한다. 그 작품들 속에는 법률가에 대한 증오, 법에 대한 부정, 정치적 갈등, 세대간 갈등, 오명, 명예, 공평 등을 이야기한다. 

저자는 "법은 시대의 거울"이기에 모든 문학 작품 속에 법이 투영되기 마련이라고 주장한다. "법을 빼고 읽어도 문락이 되지만, 법과 함께 읽으면 더욱 큰 문학과 세상이 보인다"고.. 그는 시인을 높게 평가한다. "시인은 위대하다. 시는 어떤 예술 장르보다 정교하고 차원 높은 언어의 마석이다. 시는 역사보다 더욱 진실하고 철학적이라는 아리스토텔레스의 구절이 있다. 역사는 특정 시기에 치중하지만 시는 보편적 가치를 추구한다는 취지다. 문학이야말로 인간 삶의 주제를 더욱 깇이, 선명하게, 그리고 지속적으로 이해하도록 도와준다. 창의적인 작가라 내면의 진힐에 더욱 용이하게 접근하도록 인도해주는 것이다."
따라서 저자는 시인도 시대의 입법가이자 판관이라고 말하고자 한다.

법락자이면서도 법률전문가들의 독점물로 전락한 법을 문학의 아래에 위치히키는 저자의 입장과 법철학이 의외라는 생각이 들면서도 공감하게 된다. 법 역사 사회적인 합의로 규정되는 '인간의 창작물'에 불과한 것이고 역사적일 수 밖에 없다는 데 동의하기 때문이다. 인간이든, 인간이 만든 법이든 모두 불안전하고 불완전하기 때문에 끝없이 고민하고 연구하고 갈등하는 것이 본질일 수 밖에 없다. 법규의 문장에 구속되는 법률전문가들은 자격이 부족하다고 말할 수 있다. 
이 책은 사법고시에 합격한 사람들, 로스쿨 학생들, 전현직 법률가(판사, 검사, 변호사, 교수 등) 모두에게 선물하고 싶은 책이다. 또한 삶에 대한 지식과 지혜를 구하는 뭇 학생들과 법에 대해, 셰익스피어에 대해 궁금해하는 지인들에게도 권하고 싶다.

[ 2012년 5월 28일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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