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대의 나라
강준만 / 개마고원 / 1996년 6월
평점 :
절판


부모가 어떤 직업을 가졌던, 사회적 지위가 어떠하든 자식들이 고등학교에 들어간 이후로는 대학입시 때문에 모든 신경이 곤두서게 된다. 자신의 아이가 어려서부터 공부실력이 부족한 것으로 드러나면 아이들이 중고등학교에 들어가 상처받는 것을 피하기 위해 대안학교나 특수학교를 찾는다. 어떤 경우든 공교육, 사교육비는 엄청나게 들어가고 부모들은 초긴장이 된다. 부모의 성격이나 가치관에 따라서는 부부싸움이 다반사로 벌어지기도 하고 선후배, 지인들과 대화하는 자리에서 아이들 이야기만 나오면 성적과 학벌에 은근히 신경쓰게 된다.
 
대학입시는 의식하든 의식하지 않든 전쟁이다. 이 전쟁에는 아이들, 부모들 뿐 아니라 전국의 이해관계자들이 다 동원되고 관심을 쏟는다. 보습학원, 입시학원 뿐 아니라 학교, 교육청, 대학, 언론, 기업까지 끼어든다. 사교육은 이제 거대한 산업으로 성장(?)했다. 역대 정부의 교육정책 실패와 언론과 학원의 돈벌이 유착, 학부모들의 '출세만능주의'가 더해진 결과라 할 수 있을 것이다.
 
4월 내내 공교육이 무엇이 문제인지, 어떻게 해결해야 하는지에 대해 여러가지 책을 읽다가 결국 대학입시가 그 근원적 뿌리임을 알게 되었고 강준만 교수의 <입시전쟁잔혹사>(인물과사상사, 2009)를 읽었다. 사회 주요 분야의 SKY 독과점이 대학입시전쟁의 원흉이고 학연주의와 학벌주의가 그 기둥이라는 주장이다. 나 역시 숱하게 주변에서 겪은 바이기 때문에 공감하고 동의하지 않을 수 없다.
 
그 중에서 '서울대 독점'은 그 폐해가 너무나 크다. 우리나라에서 사회적 파장을 일으키는 정치경제 범죄를 일으키는 인물들 중 적지 않은 비율이 서울대 출신이다. 그 무도덕성, 비도덕성이나 파렴치함에 혀를 내두를 지경이다. 판검사들의 부정과 비리, 언론사의 치졸함과 부정부패, 정치권 인사들의 말로 표현하기 어려운 부정부패, 교수들의 무능과 부정... 서울대를 포함한 SKY이 정계, 재계, 관계, 언론계, 학계, 문화계 등을 장악한 비율만큼, 아니 그보다 더 큰 비율로 그들의 부정과 비리가 드러나곤 한다.
내 주변도 마찬가지다. 주변의 서울대 졸업자들의 상당수는 개인의 능력이나 자질, 도덕성이나 성실성과 상관없이 최고의 대우를 받는다. 그 이유는 서울대 출신들이 사회 곳곳에서 주요 요직을 점유하고 있기 때문이다. 다른 것은 보지 않는다. 오로지 출신 대학 뿐이다. 그리고 그들은 "서울대 출신은 뭔가 다르다"라는 희한한 우월의식과 편견을 가지고 있다. 이런 편견에는 학생운동이나 시민운동의 경험에도 영향을 미치지 않는다. 내 경우에 서울대 출신의 운동권이 더 심하다고 생각하기도 한다.
 
'서울대'가 무엇이 문제인가?
 
1995년(?) '서울대특별법'이 사회적 의제로 등장되면서 서울대 망국론, 폐교론, 옹호론 등이 교차했다. 그 논쟁의 한 당사자이기도 한 저자는, 이 책에서 "우리 사회에서 '서울대'가 의미하는 것은 무엇인가?"란 물음에 대한 답을 시도하고 있다.
이 책은 단순한 서울대 비판서가 아니다. '입시전쟁'으로 상징되는 우리 교육의 왜곡과 굴절과 파행을 서울대란 렌즈를 통해 들여다본 것이다. '간판제일주의'와 '학연만능주의'를 뿌리로 하여 서울대가 우리 교육 현실에서 갖는 구조적 폐해를 제대로 꿰뚫어보지 못하면, 사실상 어떠한 교육개혁도 불가능하다는 점을 많은 자료를 토대로 입증해내고 있다. 따라서 서울대 문제는 서울대학교 당국의 문제거나 서울대 출신들만의 문제가 결코 아닌 것이다.
저자는 단과대학별, 학과별로 수많은 '서울대'를 키워내자는 대학별 특성화와 서울대 정원을 축소시켜 '소수정예'를 만들자를 대안으로 제시하며, 이는 결코 '기계적 평등주의'가 아니라 서울대의 주장 논리를 그대로 받아들인 진정한 의미의 '경쟁' 부활이라고 말한다.
그는 '간판' 하나로 모든 분야를 독식하려는 서울대 패권주의가 나라를 망치고 있다고 진단한다. 서울대가 진정으로 나라를 생각하면서 학문의 국제경쟁력을 염려했다면, '서울대특별법'이 아니라 '대학 경쟁력 강화 특별법'을 제안했어야 옳았다고 주장한다.

서울대는 한국판 '싹쓸이 자본주의'를 상징하는 일종의 문화현상이다. 모든 부문에서 서울대만이 최고이고 최고여야 한다는 그 독선과 오만의 뿌리에는 '간판제일주의'와 '학연만능주의'가 자리하고 있다. 이로 인해 서울대는 '대학입시 전쟁' 격화의 한 주범일 수밖에 없다. 한국사회에서 서울대가 갖는 이러한 의미를 꿰뚫어보지 않고서는 사실상 어떠한 교육개혁도 불가능하다.

'서울대 특별대우가 곧 국제경쟁력 강화'라는 어처구니 없는, 비합리적인 서울대학측의 주장은 공허하다. 엘리트로서의 책임은 지지 않은 채 권리만은 누리면서, 연줄에 기초한 기존의 독점적 지위를 더욱 공고히 하겠다는 '서울대특별법'. 그 발상의 명분이 되고 있는 국제경쟁력은 사실상 허구에 불과하다. 연줄은 내수용이지 결코 수출용이 아니다. 단과대학별로, 학과별로 수많은 명문대학을 키워내는 '대학별 특성화'야말로 진정한 의미의 경쟁 부활을 통한 국제경쟁력 강화 방안인 것이다.

무한 팽창과 마구잡이 독식에 탐닉하는 서울대의 욕망에는 브레이크가 없다.허구에 찬 '실력사회' 논리를 방패삼아 학연*학벌주의에 바탕한 기득권을 국제경쟁력 강화라는 명분으로 호도하는 '서울대특별법'이 그 좋은 예이다. 그러나 이는 오히려 진정한 의미의 '공정 경쟁'을 가로막는 패권주의적 발상에 다름아니다.
 
서울대를 졸업한 한 사람으로써 창피하고 부끄럽지 않을 수 없는 현실이다.
 
* 인상적인 글 :
"서울대는 문화적 현상이다. 그건 논리와 이성으로 격파될 수 없다.
아무리 포항공대의 교육시설과 교수진이 좋아도 서울대라고 하는 괴물 앞에서는 무력할 뿐이다. 연고대가 대학 특성화를 앞세워 아무리 발버둥쳐도 연고대는 영원히 서울대의 '밥'이다.
서울대가 그렇게 대단한 대학이라서가 아니다.
중요한 건, 학벌주의와 학연주의가 판을 치는 이 한국사회에서 서울대가 그 누구도 넘볼 수 없는 독보적인 기득권을 확보하고 있다는 점이다.

그런데도 서울대는 '서울대특별법'을 만들어 서울대의 기존 지위를 더욱 강화하겠댄다.
한국의 정,재,관계를 비롯해 언론계와 교육계까지 서울대 출신이 장악하다시피 하고 있으니 밀어붙이면 그런 법을 얼마든지 만들 수 있겠지만, 기존의 '교육파시즘' 체제를 더욱 강화하면서 서울대만 잘 되면 ...
뭐 하나?
하기야 서울대특별법을 만들겠다는 발상 자체가 교육 파시즘의 가장 확실한 증거에 다름 아니다.

서울대 사람들은 서울대특별법에 반대하는 사람들이 지나친 평등주의에 사로잡혀 있다고 주장한다.(정말??)
그러나 내가 서울대특별법에 반대할 뿐만 아니라 서울대 위상의 변화를 요구하는 이유는 엘리트주의를 신봉하기 때문이다.
엘리트의 가치는 인정되어야 하고 존중받아야 한다.
나는 한 사회의 엘리트는 특권을 누릴 자격이 있다고 믿는 동시에 그 특권에 상응하는 책임을 져야 한다고 믿는다.
따라서 엘리트는 안목이 넓어야 한다. 사회 전체를 생각해야 한다.

우리나라의 극악스러운 대학입시 전쟁은 완화되어야 하며 학벌주의와 학연주의도 극복되어야 한다는 데에 이의를 제기할 사람은 없을 것이다.
우리사회의 진정한 엘리트라면, 그리고 그 엘리트가 교육에 대해 이야기하고자 한다면, 그 문제들을 해결할 수 있는 대안을 놓고 고민해야 한다.

그런대 서울대는 무슨 고민을 했는가?
서울대특별법을 만들겠다고 하면서 그런 문제들에 대한 무슨 말을 했는가?
그러나 놀랍게도, 없다!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서울대 사람들은 단지 국가경쟁력만을 말했을 뿐이다.
이 놀라운 단순성! 이들이 정년 이 나라의 엘리트란 말인가?

누가 우리 대학의 국제경쟁력 강화를 위한 노력에 반대하겠는가?
문제는 서울대가 오직 서울대를 키우는 것만이 나라를 살리는 길이라고 주장한다는 데에 있다.
'이름'만 빼고는 포항공대는 서울공대보다 월등히 낫다. 포항공대를 키우면 나라가 망하나?
지난 10년간 공인회계사를 가장 많이 배출한 대학은 연세대다. 연세대 경영대학을 키우면 나라가 망하나?
농업 관련 분야의 학문은 농대까지 서울로 끌어들이는 서울대보다는 농업지역의 대학에서 꽃을 피우는 게 제 격이다. 어느 지방대학 농대를 키우면 나라가 망하나?
모든 걸 서울대가 도맡아야 나라가 잘된다니, 세상에 그런 오만과 독선이 어디 있는가!

서울대가 진정으로 이 나라를 생각하면서 학문의 국제경쟁력을 염려했다면, 몇 가지 분야만을 선택했어야 옳았다.
요컨대, 대학별 특성화를 전제로 한 '대학 경쟁력 강화 특별법'을 제안했어야 옳았단 말이다."(p.17)
 
[ 2012년 5월 09일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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