닥터 노먼 베쑨 역사 인물 찾기 1
테드 알렌 지음, 천희상 옮김 / 실천문학사 / 2001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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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제 저녁 거의 10년 만에 고등학교 동창친구 두 명과 만나 저녁을 먹었다. 누구나 그러하듯이 사는 일상을 돌아보면 친구들, 지인들을 충분히 연락하고 만날 수 있었음에도 나의 하루하루가 무엇이 그렇게 절실하고 중요했는지 허탈한 느낌이 들어 일부러 친구를 찾아보았고 어렵지 않게 연락처를 구했다. 친구 하나는 중견 걸설회사에서 현장 소장으로 근무하는 직장인이고 또 한 친구는 의류산업을 창업한지 4년 정도 되어 한창 열심히 사업을 해나가고 있었다. 나름대로 자신의 적성을 찾아 꾸준하게 사는 모습을 보니 반갑고 고마웠다.
다른 동창생들의 이야기를 듣다 보니 의사들이 더러 있다. 치과나 신경외과 같은 전문분야든, 개업이나 월급쟁이냐의 의료인의 처지에 관계없이 의사로 살아가는 친구들은 적지않은 돈을 벌고 있는 대신 개인의 삶에서는 의미를 발견하지 못하고 산다는 느낌이 든다. 물론 가족의 생활비 때문에 일반 직장인으로 살아가면서 개인적인 시간을 만들지 못하고 언제 해고될지 모르는 사무직,생산직,서비스직, 또는 소상공인보다는 소득 면에서 안정적이겠지만...

'의사'라는 고귀하고 명예로운 역할이 말 그대로 '안정적인 수입을 보장하는' 직업으로 전락하는 것은 순식간인 것 같다. 아니 황금만능과 약육강식이 판치는 우리 시대에는 그런 '고귀한 존재'라는 표현이 무의미한지도 모르겠다. 그래도 현재 의사로서 자신의 삶에 고민하는 이들과 장차 의사가 되고자 하거나 '가치 있는 삶'을 고민하는 아이들, 학생들을 위해 노먼 베쑨의 전기는 읽어볼 필요가 있다고 생각한다.
아니 아이들과 학생들이 아니라 우리 세대들도 꼭 한번은 읽어볼 것을 추천한다. 그 이유는 노먼 베쑨의 인생역정이 우리 세대에게도 큰 울림이 있기 때문이다.

닥터 노먼 베쑨의 20대와 30대는 아주 자유분망하고 한 편으로는 방탕한 생활 그 자체였다. 그리고 그는 36세에 당시(1926년) 불치병이라고 알려진 결핵에 걸려 삶을 포기하고 요양원에 입원하게 된다. 모든 것을 포기하고 죽음을 받아들이던 어느 날 그는 결핵을 치유할 수술방법(인공기흉술)을 스스로에게 시술하여 기적적으로 회복했다. 극적으로 죽음에서 다시 태어난 그는 새로운 시각으로 세상을 보기 시작하고 44세에 결핵의 외과적 처치에 큰 업적을 남김과 동시에 보건의료운동에 뛰어들었다.
노먼 베쑨은 46세에 스페인으로 날아갔다. 1936년 당시 스페인은 만주적인 선거로 집권한 공화국 정부를 군부 파시스트 프랑코 일당이 독일의 히틀러과 이탈리아의 무솔로니를 등에 업고 쿠테타를 일으켜 내전이 격화되어 수 많은 사람들이 죽어가고 있었기 때문이다. 역사가 말해주듯이 히틀러와 무솔로니의 군사파시즘 야욕이 유럽 전역을 공포와 암흑으로 덮고 있음에도 서구국가들, 미국과 캐나다, 영국과 프랑스 등은 스페인을 철저하게 외면했다. 그는 스페인에서 '이동식 혈액은행'을 설립, 운영하여 전시 의료분야를 개척하고 수 많은 중상자를 살려냈다. 그는 스페인 내전 상황에서 2년간 활동하면서 전시 의료체계를 수립한 후 스페인보다 더 열악한 조건에서 일제 파시스트 침략자들에게 맞서 싸우는 중국 의료봉사대에 자원하였다. 그리고 18개월 후 중국 땅에서 수술 중 손가락 감염에 의한 패혈증으로 사망했다.

체 게바라와 살바도르 아예데와 같이 세계인들에게 큰 영향을 끼친 위인들 중 의학분야 출신, 또는 의사 출신이 여러 명 있다. 이 책의 주인공인 노먼 베쑨은 외과의사이면서도 발명가이고 의료정책가이면서도 휴머니스트이고 교사이면서도 혁명가였다.
그는 결핵의 수술적 치료법 개발 등으로 의학발전에 기여한 탁월한 흉부외과 의사이자 캐나다의 공중보건제도 확립에 앞장섰던 보건의료 운동가이며, 스페인의 반파쇼 투쟁, 중국의 신민주주의 혁명과 항일투쟁의 최전선에서 종군의사로서 몸바쳐 싸웠던 혁명가이기도 했다. 흔들리지 않는 확고한 신념이 있다는 것, 그리고 그것을 행동으로 실천했다는 것, 그것만으로 그는 충분히 찬사 받을만 하다. 이 책은 비단 그의 전기뿐 아니라, 그가 생전에 남긴 회고담, 일기, 편지 등을 적절히 인용함으로써, 자신의 신념을 좇아 치열하게 살다 간 한 인간으로써의 노먼베쑨의 사실적인 모습을 접해볼 수 있는 흔치 않은 기회를 제공한다.

세상은 전과 달리 매우 복잡다단해졌다. 이제 국가의 문제는 그 국가 속의, 또는 그 국가 주변의 문제로 국한되지 않으며 세계적인 문제성을 지니게 되었다. 심지어 한 사람의 질병에서부터 한 민족의 사상에 이르기까지 세계적 그물망으로부터 벗어날 수 있는 것은 없다. 따라서 우리가 우리 자신의 미래를 제대로 개척하기 위해서는 전 지구적인 대의에 참여하여 그것에 기여하지 않으면 안 된다. 닥터 노먼 베쑨은 바로 이러한 사상을 온 몸으로 실천한 인물인 것이다.

그는 특히 3개국에서 생활하고 투쟁했다. 첫째는 그이 조국 캐나다였으며, 둘째는 만국의 양심적인 인사들이 암흑의 나치즘과 파시즘에 대항하기 위해 군집한 스페이었고, 셋째는 일본 군사 파시스트들이 득실거리는 중국 땅이었다. 하지만 그의 무기는 달랐다. 베쑨은 그가 가장 잘 아는 무기, 즉 의사라는 자신의 직업을 무기로 투쟁에 참여했다. 뛰어난 흉부외과 의사였던 그는 의술을 단지 사람들의 질병만을 돌보는 것이 아닌, 몸의 질병과 사회의 질병을 통합적으로 파악하여 새로운 사회체제를 건걸하는 것으로까지 그 의미를 확장시켰다. 그는 몸의 질병과 사회의 질병이 함께 고쳐질 때에야 바로소 제대로 된 인술을 펼칠 수 있다고 믿었다.
베쑨은 전장의 와중에도 학생들에게 의술을 가르치고 최초로 혈액은행을 운영하여 수많은 사람들의 목숨을 구했다. "부상별들이 찾아오기를 기다리지 말고 그대들이 먼저 그들을 찾아가시오."라는 그의 가르침은 세계의 민중들에게 짐 지운 투쟁에 의사들 또한 일부로서 참여하는 것임을 의미했다.

내가 우리 세대들이 이 책을 꼭 읽기를 권하는 이유는 베쑨의 삶이 헌신적이고 영웅적인 것 때문만이 아니다. 물론 그의 의사로서의 능력, 보건의료인으로서의 자질, 반파시스트로서의 열정, 목숨을 건 혁명가로서의 그의 삶은 본받을 만 하다. 그의 삶과 열정은 너무나 감동적이고 위대했다. 미래의 아이들에게 귀감으로 삼을만 하다고 제시할 만한 그런 위인이라 할 수 있다.

하지만 내가 베쑨의 삶에서 주목하는 부분은 그가 자유분망하고 부유한 의사로서의 삶에서 사회의 질병을 치유하기 위해 나서기 시작한 나이가 44였다는 것이다. 즉 이미 청춘도 지나고 열정도 사라지고 가족들을 위한 밥벌이에서 벗어나지 멋한 '한물간 세대'라고 자조하고 있는 우리 세대의 40대라는 나이는 우리가 생각하는 것과 달리 누군가를 위해, 개인과 가족만을 위한 삶을 넘어서, 사회의 질병을 치유하기 위해 무언가를 시작할 수 있는 충분한 나이라는 것이다. 자신이 잘할 수 있는 것을 바탕으로,아니면 무언가를 새롭게 배우고 익히면서 살아갈 날이 아직도 창창하다는 것이다.

- 책 속의 문장 :

다시는 결코 메스를 들면서 그 어떤 생명체일지라도 단순한 기계적인 유기체로 취급하지 않으리라. 사람이란 꿈을 가진 존재다. 이제부터 나의 칼은 육체와 동시에 그 꿈을 구하리라.(베쑨의 '일기' 中)

나는 살인과 부패가 판을 치는 이 세상에서 그 모순을 묵과하기를 거부하오. 나는 우리가 소극적인 탓에 또는 태만한 탓에 탐욕스런 인간들이 전쟁을 일으켜 다른 사람들을 살육하는 것을 도저히 묵과할 수 없소... 
스페인이나 중국이나 모두 다 같은 투쟁의 일부인 것이오. 내가 중국으로 가려는 이유는 그곳이 가장 절실하게 도움을 필요로 하는 곳이기 때문이오. 또한 나의 능력이 가장 가치 있게 쓰일 수 있는 곳이 바로 그곳이기 때문이오. -베쑨의 편지 中(p.341-342)


[ 2012년 5월 01일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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