학교개조론 - 유명 학원 강사 출신 현직 교사의 명쾌한 교육 해법
이기정 지음 / 미래인(미래M&B,미래엠앤비) / 2007년 9월
평점 :
품절


왜 우리나라의 학부모들은 사교육에서 벗어나지 못할까? 여기에 대해서는 많은 이유가 있을 것 같다, 사교육이 정말 아이들에게 큰 도움이 된다고 생각해서, 아니면 아이들을 학원에라도 보내지 않으면 아이들이 뒤쳐질 것이라고 생각해서. 학원에 가지 않으면 아이들이 동네에서 함께 지낼 친구들이 없어서. 학교가 아이들을 잘 가르치지 못해서. 아이들이 집에서 놀고 오락만 하는 모습이 보기 싫어서. 학원에 보내는 것으로 부모로서 아이들에 대한 의무감을 다했다고 생각해서. 부모 모두가 직장에 다니는 관계로 하교 후 아이들을 돌볼 여력이 없어서. 대부분의 아이들이 사교육을 받기 때문애 자신의 아이가 뒤쳐질까봐 무서워서..

학원에 아이들을 보내는 부모들은 여기에 적힌 이유 중에서 적어도 한 두가지 이상에 해당할 것이다. 다른 것은  제쳐두고 아이들이 사교육에(사교육, 공교육을 포함해 절대적인 시간을 고려하더라도) 많은 시간을 투자할수록 공부에 도움이 될 것이라는 생각은 맞지 않다고 생각한다. 그것은 많은 학자들이 연구한 결과 뿐 아니라 상식적으로, 경험적으로 생각해봐도 쉽게 알 수 있을 것이다. 
그런데 아이들을 사교육에 보내는 이유를 연결해보면 그 내면에 도사리고 있는 근본적인 원인을 발견할 수 있다. 그것은 공교육에 대한, 학교에 대한 불신이다. 학교가 아이들을 제대로 가르치지 못한다는 것, 안심하고 아이들을 학교에게, 선생에게 맡길 수 없다는 것, 끊임없이 바뀌는 입시제도에 대한 불신과 불안, 아이들의 권리와 이익보다 교육관료들과 교사들의 권리나 이익에 더 민감하다는 불만, 참교육이 아니라 시험교육에서 벗어나지 못하는 학교에 대한 불신, 아이들을 동등하고 평등하게 대하지 않고 무한경쟁과 불평등한 관리로 인해 아이들이 학교에서 상처받고 있다는 불신 등이 내재되어 있다. 이런 불안과 불신, 불만은 하루아침에 생겨난 것이 아닐 것이다.  부모들 스스로의 경험에 의해, 그리고 주변 지인들의 경험에 의해 생겨나고 증폭되고 굳어지는 것이다.

도대체 학교에서는 무슨 일이 어떻게 진행되길래 이런 정도까지 학부모들에게 불신을 받고 있는지 참으로 답답하다. 보통 학부모들이 학교 내의 현실과 상황을 알기는 불가능하다. 아이들을 통해 간접적으로 듣는 것으로, 그리고 간할적으로 이루어지는 교사들과의 만남이나 행사 또는 연구수업에 참여해서 학교의 본 모습을 알 수는 없는 일이다. 아마도 학부모 운영위원을 맡는다고 하여 자세하게 알 수 없을 것이라 생각한다. 부모들끼리 모여 추측하고 토론한다고 하여 학교실정을 제대로 알 수도 없다. 나 역시 여러번 학교 행사나 모임에 참석했지만 그런건 비교도 할 수 없는 것이고...
그런 면에서 이 책은 학교의 실상, 교사들의 모습, 교육체계와 시스템, 제도와 운영방식 등을 자세하게 알려주고 있다.

내가 무척 좋아하는 친구 하나가 있다. 오래 알고 지내는 친구 중 드물게 그 찬구는 지금 초등학교 교사를 하고 있다. 그 친구는 지금껏 내가 알고 지내던 많은 사람들 중 겸손, 성실, 정직, 헌신, 배려 등 다양한 부분에서 최고점을 줄 수 있는 드문 경우다. 그 친구는 진로에 대해 오랜 고민 끝에 교직을 선택한 친구였다. 내가 정신이 없고 정이 부족하기 때문에 그 친구와 자주 통화를 할 수는 없지만, 가끔 통화할 때마다 자주 듣는 이야기는 "학교의 사무행정 업무를 처리하느라 야근을 하고 있다."였다. 그래서 그친구는 저녁 모임에 참여하기가 쉽지 않다.

교육과 교직에 대한 친구의 헌신과 노력을 뒷받침하지 못하는 교육당국과 학교의 현실은 교사 개인의 문제를 넘어서서 아이들과 학부모, 그리고 이 땅의 미래에 크게 영향을 끼칠 것이라는 생각이 들면 답답하고 안타깝기 그지 없다. 이명박 정부의 교육인적자원부가 더 이상 교육현장과 아이들을 망치지 않았으면 하는 마음은 전달되지 않을테지만...

저자는 현재 우리나라 교육현장의 문제점을 '학교의 무능'이라는 한마디로 정의한다. 책의 마지막 단락에는 학교가 무능함을 넘어 정말이지 쓸데없는 일에 시간과 노력을 낭비하고 있음을 속속들이 애기해준다. 나를 비롯한 대다수 학부모들이 겉치레와 형식이 지배하는 학교에서 벌어지는 보충수업, 머리카락 길이 단속, 수업지도안, 봉사활동, 수업진도표, 부장회의, 시범학교, 연구수업 등에 얼마나 알고 있을까?
저자는 이 책에서 학교의 무능함을 강도 높게 비판하며 그 이유를 다음과 같이 분석한다. 첫째, 교사들이 수업을 아무리 잘해도 보상이 없다. 둘째, 수업을 아무리 못해도 불이익이 없다. 셋째, 학교 제도가 극도로 비효율적이다. 이들 문제는 교육제도와 행정시스템에서 구조적으로 발생할 수 밖에 없다는 것이 저자의 결론이다. 우리나라의 교육 제도와 시스템은 학교 현장에서 '교육'이 아닌 사무행정이 중심으로 되어있기 때문이다. 가르치는 능력과 의지를 평가하지 않는 시스템, 사무행정으로 교사와 학교의 자질을 평가하는 시스템이 제도화되어 있는 이상 개인적인 의지나 한신성과 관계없이 교사들이 학교에서 교육을 등한시할 수 밖에 없는 것이다.

저자는 무능한 학교를 개혁(개조)하기 위한 처방으로 교원평가제, 교육과 사무행정의 분리, 그리고 교장선출제를 제시한다. ‘교원평가제’는 수업을 중심으로, 학생이 교사를 직접 평가하는 것을 말한다. 이는 사무 행정 능력으로 교사들을 평가하는 기존의 교원 평가 시스템을 완전히 바꾸자는 의미다. 교사는 수업 및 교육에 집중할 수 있도록, 교육과 거리가 먼 사무 행정은 전담 인력을 따로 배치해야 한다는 것이 ‘교육과 사무 행정의 분리’다. ‘교장선출제’는 선거나 교황 선출 방식, 추첨제 등을 활용하여 교사들이 능력 있고 훌륭한 사람을 교장으로 뽑는 방식이다. 

 

저자의 교육 개혁 방안 중 가장 철저하게 요구되는 것이 교원평가제다. 기존의 근무평정 방식과 달리 저자가 주장하는 교원평가제의 대상은 철저하게 수업 또는 직접적인 교육 활동이며, 평가의 중심 주체는 학생이다. 저자는 교원평가를 바탕으로 학생을 성추행하거나 폭력을 행사하는 교사, 수업 능력이 현저히 떨어지는 교사는 교사 자격을 박탈해야 한다고 주장한다. 교원 평가가 구조 조정을 초래한다는 전교조의 주장에 대해, 저자는 쓸데없는 걱정이라며 일축한다. 

교장선출제와 관련하여 교장이 되기 위해서는 두 번의 타락을 거쳐야 한다고 저자는 말한다. 수업과 교육에서 멀어지는 것으로 한 번, 비열한 경쟁 과정에서 또 한 번. 교장이 되는 데 필요한 승진 점수 중 가장 비중이 큰 근무평정 점수는 교사의 교육 능력보다 사무 행정 능력이나 교감·교장의 평가에 따라 매겨지기 때문에, 교장이 되려는 사람은 일찌감치 수업이나 교육과는 담을 쌓고 근무평정 점수 올리기에만 골몰한다는 것이다. 
이에 저자는 교사들이 교장을 직접 뽑는 선거, 교황을 선출하는 식으로 후보자 없이 교사들이 덕망 있고 능력 있는 교사에게 표를 던지는 방식, 선거+추첨, 교황 선출 방식+추천 등을 제안한다. 이 방법들은 로비와 청탁이 동원되는 기존의 교장 임용 방식을 극복하기 위한 대안이다. 

전교조에 대한 저자의 비판은 약간 충격적이었다. 교육문제의 심각함에 비해 전교조의 활동 성과가 부진한 것에 내심 걱정하는 상태였다. 개인적으로 나 역시 전교조에 대한 존경과 신뢰를 아직도 간직하고 있지만 전교조에 대한 저자의 분석과 평가에 대부분 동의할 수 밖에 없다. 저자는 그동안의 전교조 투쟁을 풍차와 싸우는 돈키호테에 비유한다. 7차 교육과정 반대, 중등교사자격증 소지자의 초등학교 교사 임용 반대, NEIS 반대, 교원평가제 반대 등이 바로 그런 모습이다. 특히 신자유주의의 구조 조정이 교사들의 목을 자를 것이라는 헛된 위기감에서 나온 ‘7차 교육과정 반대 투쟁’의 내용을 조목조목 비판한다. 전교조의 지난 투쟁은 학생보다 교사의 입장을 고려한 측면이 더 많지 않냐는 것이 저자의 생각이다. 
전교조에 대한 비판은 역설적으로 전교조에 거는 저자의 기대 수준을 말해주기도 한다. 학교 개혁을 추진할 수 있는 주체는 정부도, 교육부도, 교총도 아닌 전교조라는 생각이 여기에 깔려 있다. 



저자가 제시하는 교원평가제, 사무행정업무의 분리, 교장선출제를 중심으로 개혁하면 학교가 정말 개조될 수 있는지 내가 장담할 수는 없다. 내가 교육과 학교 문제에 대한 정보와 인식이 부족하기 때문이기도 하고 주변에 교사로 재직 중인 지인과 이 문제에 대해 한 번도 깊은 이야기를 해보지 못했기 때문이기도 하다. 현직 교사로서 저자가 제기한 문제점과 해결방안을 그대로 인정한다면 가능할 수 있을 것이다 


저자가 제시하는 세 가지 개혁방법이 핵심에 가까운 정답이라 할지라도 또 다른 중요한 문제가 있을 수 있다. 그것은 '누가, 어떻게'라 할 수 있다. 세 가지 방법은 모두 법과 제도에 대한 것이기 때문에 정권과 교육당국, 그리고 국회가 모두 동의하고 나서야 할 것이다. 우리나라 내에 기존 교육제도와 시스템에서 이득을 얻는 기득권 집단이 상당히 존재하고 수구언론과 정치집단이 '문제해결'의 관점이 아니라 '진영논리'의 관점에서 대응하는 이상 쉽지 않은 문제라 할 수 있다.
그렇다면 저자가 제기하는 문제점의 결국 직접적인 이해당사자인 학생(학부모)와 교사가 중심이 되어야 한다는 결론이 나올 수 밖에 없다.
 
현재 우리의 아이들을 얽매고 있는 교육현실을 개혁하기 위해서는 누구의 잘잘못만을 따지며 논쟁하는 것은 무의미하다. 어른들의 역심과 무책임, 무관심 속에서 하루하루 아이들은 고통받고 있다. 우리 아이들의 문제는 교사 뿐 만 아니라 정치권, 정부, 언론, 시민단체, 그리고 직접 당사자인 학보무들까지 나서서 해결해야 한다. 
우리는 아이들의 아픔과 고통에 대해, 학부모들의 불안감과 불신, 교사들의 어려움과 한계에 대해 공감할 수 있어야 한다. 공감에서 시작하여 관심, 대화, 소통이 이루어지고 사회 각 분야에서 연대와 지원, 합의가 이루어지면서 시민단체와 정치권으로 의견이 모아져야 할 것이다.

[ 2012년 4월 23일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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