짚 한 오라기의 혁명 - 자연농법 철학
후쿠오카 마사노부 지음, 최성현 옮김 / 녹색평론사 / 2011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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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2월 결국 한미FTA가 발효되었다. 그리고 현 이명박 정권은 3월에 중국과의 FTA도 의욕적으로 추진하겠다고 발표한 바 있다.  한-칠레 FTA나 한-EU FTA 체결 이후 간혹 중소기업 수출이 늘었다거나 칠레의 와인수입이 늘었다는 정부발표가 있었다. 하지만 FTA의 본질은 자본과 금융의 세계적인 거래를 자유화하는 것이고 그것도 거래 상대방 국가와의 '국력' 차이에 의해 불공평하게 체결되는 것이 현실이다. 한미 FTA가 얼마나 불공정, 불공평한지 새삼스럽게 애기할 필요도 없다. FTA가 어떤 것인지 구체적으로 알지 못하면 일반 시민들은 정부의 홍보논리에 세뇌되어 그냥 넘어갈 뿐이다. 어쩔 것인가... 한국에서 혜택받는 측은 수출하는 재벌기업이고 외국인 투자자일 뿐이다. 노동자, 농민, 서민, 중산층은 여기에서 철저하게 배제되어 있을 뿐...

중국산 농산물이 이미 한국인의 식당과 상점을 잠식해있는 상태다. 여기에서 더 빗장을 풀어버리면 그마나 어렵게 생존해 있는 농촌과 농업, 농민은 더이상 갈 곳이 없다. 시간이 지나면 대부분의 '먹거리'마저 외국에 의존할 가능성이 크다. 소위 '선진국'을 비롯한 대부분의 '개념있는' 국가가 자국의 '먹거리' 산업과 산업 종사자들을 지키고 보호하기 위해 불철주야 노력하는 데 비해 역대 한국정부는 무심하다 못해 적대적이기까지 하다. 정치인, 관료들의 의식 상태가 무척이나 의심스럽다.
 
농업 경쟁력, 농민의 생산성이라는 단어로 포장되어 미래의 후손들에게 불안감과 위기를 가져올 가능성이 큰 정부의 정책들...  그럼에도 엇그제 411 국회의원 총선거에서 FTA를 무자비하게 밀어붙이고 재벌과 기득권의 이익에 충실한 정당이 국회의 과반수를 차지했다. 54.3%의 낮은 투표율이었지만, 정책이나 공약은 후보 선택의 기준이 되지 못했다. 현 정부의 정책, 여당의 정책, FTA 등에 의해 가장 피해가 크게 발생하는 계층은 농촌과 중산층, 서민일 수 밖에 없다. 지금까지 그래왔듯이... 그럼에도 정책이나 공약과 상관없이 농민, 중산층, 서민이 가장 많은 강원도, 충북, 경북, 경남은 여당을 선택했다. 선택의 대가는 지금까지 그래왔듯이 앞으로도 몇 년간 참혹할 것이다. 다만, 그 유권자들이 제대로 알지 못해서 선택한다는 현실이 암울할 뿐이다. 그래서 유권자를 탓하지 못한다. 잘못된 사실을 전달하지 않는 언론 종사자들이 나쁜 놈들인 것이고 주어진 조건에서 최선을 다해 효과적으로 진실과 정책을 유권자에게 알리지 못한 야권과 '깨어있는 시민'들이 부족하고 모자랐을 뿐인걸...
 
 
이 책은 '자연농법'이란 이름으로 세계적으로 널리 알려져 있는 후쿠오카 마사노부씨의 2004년 저작이다. 단순히 어떤 특이한 농법에 관한 숱하게 많은 주장이나 학설들 중의 또 하나가 아니다. 이 책은 자연농, 자연식, 자연인이라는 철학을 역설하고 있는 사상서라 할 수 있다. 자연농법은 자연의 의지와 하나가 되어 이 삼자를 추구함으로써 궁극적으로 '하늘나라'를 꿈꾸는 혁명이기 때문이다.
법정스님이 사랑한 책, 그분이 추천한 책 목록 21번째다.
 
후쿠오카 마사노부는 흔히 '현대의 노자'라고도 일컬어지는데, 그것은 평생을 외곬으로 무심(無心)과 무위(無爲)를 지향하는 삶을 실천했기 때문이다. 농학자로서 요코하마세관 식물검사과에서 근무하던 젊은 시절의 후쿠오카는, 어느 날 인간의 지식, 과학문명이 모두 허상임을 깨달았다. 그는 "인위의 일체는 무용하다"는 자신의 깨달음을, '아무것도 하지 않는' 농사법을 통해 검증코자 했다. 그리고 쌀·보리농사에서 지극히 당연한 것으로 되어있는 땅갈기, 퇴비, 제초제와 농약을 일절 사용하지 않고 훌륭한 수확을 내어 실증함으로써 세상에 자신의 사상을 증명해 보였다.

자연에 순응한다는 것은 아무것도 하지 않는 것이다. 아무것도 하지 않는다는 것은 인간의 보잘것없는 지식(지혜)에 기대 인위적인 일을 하지 않는 것이다. 그런데 여기서 중요한 것은 '자연'이 무엇인가 하는 것이다. 후쿠오카는 '방임'과 '자연'을 구별한다. 가령 한번 가지치기를 한 나무는 다음해에도 계속해서 가지치기를 하지 않으면 말라 죽어버린다. 이것은 방임이다. 이미 나무(자연)에 교란이 일어났기 때문이다. 그러니까 인간의 지혜로 뭔가 잘못된 일을 해놓고서, 그 결과로 문제가 발생하면 그것을 열심히 고치는 것, 이것이 현대의 과학농법인 것이다. 게다가 더 나쁜 것은, 과학농법은 문제를 총체적으로 보지 못하기 때문에 궁리해낸 기술도 부분적·한시적일 수밖에 없고, 결과적으로 도리어 더 많은 문제를 배태하는 것이다.
저자는 인간의 자기파괴적 행위의 결과가 극한에 치닫고 있으므로 자연이란 무엇인가를, 그리고 자연의 일부인 인간이 해야 할 일과 해서는 안되는 일이 무엇인가를 명확하게 하지 않으면, 돌이킬 수 없는 파국을 맞게 될 것이라고 경고했다. 이 책이 쓰여진 지 한세대가 지난 지금, 인류가 선택할 수 있었던 '다른 길'을 방기한 데 대한 우리의 유감은 이루 말할 수 없이 크다.

자연농법은 진실로 엄격한 농법이다. 농부는 자연의 힘을 완전하게 믿고, 그 흐름에 귀를 기울여야 한다. 자연은 시시각각 변화하며 서로 다른 조건(환경)을 조성함으로써 서로서로 미묘하게 영향을 미치면서 균형을 유지하고 있다. 어제 저곳에서 최상의 조건이었던 것이 오늘 여기서는 최악의 조건일 수 있다.
따라서 농부의 일이란 자연을 섬기기만 하면 그것으로 족하지만, 그러나 충실하게 섬기지 않으면 안되는 것이다. 후쿠오카 마사노부는 농업은 신(神)의 시종으로서 신에 봉사하는 역이기 때문에 성스러운 직업이라고 말한다. 그리고 그 본질을 망각한 사람들이 근대농업이라든가 기업농업이라면서 신의 측근으로서 해야 할 일들을 잊어버리고 이익을 앞세우는 현실을 슬퍼한다. 농부의 기쁨은 다만 오늘 하루의 일에 전념해서 씨를 뿌리고, 자연의 활동에 따라서 작물을 애호하면서 작물과 함께 생활해가는 그 자리에 있다. 그것을 음미하는 것이 농부의 생활방식이고, 그것이 진정한 농부의 모습이다.
실은 이것은 보편적 인간 삶에 대한 지침이다. 자연을 전적으로 신뢰하며 신의 뜻, 자연의 의지에 따라 하루하루를 감사하며 복종하는 삶이야말로 인간완성, 자연인으로 가는 유일한 길이다. 자연은 인간의 지혜로 온전히 밝힐 수도, 만들어낼 수도 없다. 그에게 있어 자연농법은 영원한 미완성의 길, 구도(求道)의 길이다.
 
내가 직접 한 번도 농사를 지어본 경험이 없기 때문에 저자의 '자연농법'에 대해 거의 판단할 수 없다. 그럼에도 그가 책에 기록한 것처럼 '자연농법'의 성과를 거두었다면 가히 혁명적인 일이라 할 수 있지 않을까? 중요한 것은 역시 "왜 그리고 무엇을 위해 농사를 짓는가?"라 할 수 있는 것 같다. 현재의 자본주의 경제체제처럼 이윤의 극대화를 위해, 무한 성장을 위해, 무한 소유를 위하게 되면 그것이 농업이든, 제조업이든, 금융업이든, 무역업이든, 서비스업이든 비슷한 경제구조와 비슷한 사회문화구조, 그리고 자연과 환경의 파괴, 인간성과 공동체의 파괴를 야기할 수 밖에 없지 않을까 싶다.
 
[ 2012년 4월 14일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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