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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럼비의 노래를 들어라 - 제주 강정마을을 지키는 평화유배자들
이주빈 글, 노순택 사진 / 오마이북 / 2011년 10월
평점 :
지난 6일(금) 한국경찰의 대표적인 문제점이 노출된 상반된 두 가지 사건이 일어났다. 하나는 제주 강정마을에서 경찰의 과잉진압으로 신부님 한 분이 추락사고를 당한 것이고 또 하나는 수원에서 경기도 경찰청이 112 신고가 접수되어 6분 넘게 강간,살인 피해자가 살려달라고 했는데도 늑장 대응하여 결국 살해된 사건이다. 살인사건이 일어난 지역은 파출소에서 얼마 되지 않은 거리였고 심지어 경찰은 자신들의 태만과 실수를 고의로 감추려하다가 적발되기도 했다.
강정마을에서의 경찰 과잉진압은 어제 오늘의 일이 아니었다. 경찰이 본연의 업무인 치안과 민생 보호에는 뒷전이고 정권과 재벌들의 이익에만 혈안이 되어 있다는 것을 반증하는 사례인 것이다.
강정마을 사건의 경우, 6일 오후 문정현 신부가 강정마을 방파제에서 성 수난 주간을 맞아 천주교의 '십자가의 길' 예식을 펼치며 이동하는 중 경찰에 떠밀려 7m 아래로 떨어져 심한 부상을 당했다. '국책사업'이라는 이름으로 정부가 국민에게 사업의 취지와 정보를 공개하고 국민과 대화하면서 협조를 구하려 하지 않고 국민의 의사와 정상적인 절차를 무시하고 힘으로 정책을 밀어붙이는 몹쓸 태도와 무식한 방식이 여전히 기승을 부리고 있는 것이다. 특히 현 이명박 정권은 집권 초기부터 끝까지 용산참사와 매년 예산안 날치기, 4대강 죽이기, 한미FTA 날치기, 외환은행 불법 매각, 언론사 장악, 국민들의 알권리 침해 등 여론을 무시한 수 많은 '강행'으로 점철되었다.
강정마을의 경우, 헌법을 수호하고 국민주권을 지켜야 할 정부가 민주주의와 법치주의를 스스로 망가뜨리고 제주도 서귀포 지역에 해군기지 건설을 강행하면서 1948년 4월 이후 64년 만에 또 다시 제주도민들에게 악몽을 되살리고 있는 것이다.
이 책은 크게 두 가지 내용을 담고 있다. 하나는 제주 강정마을이 해군기지로 결정,강행되는 과정에서 정부가 얼마나 민주주의와 법치주의를 어겼고 거짓말을 일삼았는지에 대한 것이고 또 하나는 강정마을 주민들이 얼마나 자신들의 삶과 구럼비바위 등 아름다운 자연을 지키고자 애쓰는지에 대한 것이다.(이 책은 지난 주 공부모임 교재였다.)
구럼비는 제주 강정마을 해안가에 넓게 펼쳐진, 길이가 1.2킬로미터나 되는 너럭바위의 이름이다. 연산호 군락과 붉은발말똥게를 포함해 여러 천연기념물과 멸종위기종이 서식하며, 제주 올레 7코스에 속하는 아름다운 곳이다.
사람들은 이 너른 바위에 기대어 책을 읽거나 바다를 감상하고 피곤할 땐 누워 잠을 잤다. 아름다운 강정바다의 물결처럼 잔잔하고 평화로운 일상이었다. 그러나 2011년 9월, 해군과 공사 시행업체(삼성과 대림)는 구럼비바위로 가는 길목에 높이 3미터짜리 철제 펜스를 치고, 다음날부터 굴착기로 구럼비바위를 부수기 시작했다. 강정마을 주민들과 평화운동가들이 4년 넘게 반대하고 있는 제주해군기지 건설을 끝내 강압적인 방법으로 밀어붙이고 있는 것이다.
평화롭던 제주 강정마을이 격랑에 휩싸이기 시작한 것은 2007년 4월, 당시 마을회장이 불과 주민 87명의 동의를 얻어 해군기지 유치를 결의하면서부터다. 분노한 주민들은 2007년 8월 해군기지 유치 찬반을 묻는 주민투표를 실시했고, 전체 주민 1.970명 중 725명이 참여해 94%가 반대 의사를 나타냈다.
강정마을은 애당초 해군기지 후보에조차 없던 마을이었다. 해군은 2002년 해군기지의 최적지로 '화순항'을 선정했다. 그런데 워낙 주민들이 강하게 반대하니까 슬그머니 후보지를 바꾸어 2005년 9월 느닷없이 남원읍 위미리를 사업 대상지역으로 정했다. 물론 또다시 위미리 주민들의 강한 반대로 난항을 겪었다. 그러다가 갑자기 해군기지 선정을 위한 여론조사를 불과 사흘 앞두고 강정마을이 후보지로 선정된 것이다. 계속 주민들의 강한 반대에 부딪히자 해군과 정부는 기지의 필요성을 설득하고 후보지 지역주민과 참을성 있게 협의하는 방식이 아니라 음모가들처럼 몰래 마을회장을 구워 삶고 일부 주민들을 회유하여 부당하고 부적절한 날치기 주민투표를 졸속처리한 것이다.
그리고나서 절대보전지역 지정이 해제된 때가 2009년 9월이었으니 만 2년 동안 해군은 불법 공사를 진행했다. 이런 야만스러운 정부가 어떻게 존재할 수가 있는 것인지...ㅠ
강정마을 주민들과 민주당·민주노동당 등 정치권에서는 세계자연유산 3관왕(세계자연유산, 세계지질공원, 생물권보존지역) 지역인 강정마을 일대에 해군기지를 건설하려는 것 자체가 모순이라고 지적한다. 반면 한국 정부는 남방해상무역 보호 등의 이유로 해군기지 건설을 추진하겠다는 입장이다. 군사전문가들은 제주해군기지가 중국을 압박하는 미군의 기항지로 활용되면서 ‘관광의 섬 제주’가 ‘동북아의 화약고’로 바뀔 수 있음을 경고하고 있다. 미군은 한·미안보동맹과 한·미행정협정 등에 근거해 언제든지 한국의 기지를 사용할 수 있기 때문이다. 이제 강정마을은 매향리와 대추리에 이어 반전과 평화의 상징이 되고 있다.
매향리, 대추리, 용산에서 주민들과 함께 싸웠던 ‘길 위의 신부’ 문정현 신부는 2011년 7월부터 강정마을로 삶의 터전을 옮겼다. 강정 바다의 아름다움에 반한 김민수 씨는 아예 ‘강정 김씨’로 본을 바꾸고, 3년째 해군기지 반대 싸움을 벌이고 있다. 프랑스에서 온 ‘마음치료사’ 뱅자맹 모네는 평화를 위해 작은 힘을 보태는 강정의 생활에서 자신의 존재 이유를 느끼고 있다. 대만에서 온 평화운동가 왕에밀리는 강정마을에서 ‘양심의 소리로 말하고 행동하는’ 사람들의 이야기를 제발 들어달라고 호소한다. 즉 이 책은 제주 강정마을의 평화를 지키기 위해 자발적으로 ‘유배’를 택한 사람들의 이야기를 담고 있다.
제주 강정마을의 해군기지 반대투쟁을 지속적으로 취재해온 <오마이뉴스> 이주빈 기자는 강정마을 ‘평화유배자들’을 인터뷰해 그들이 생각하는 평화와 자유가 무엇인지를 들려준다. ‘한국전쟁’과 ‘분단권력’을 주요한 테마로 삼아 사진 작업을 해온 노순택 작가는 강정 사람, 강정 바다, 구럼비바위의 소박하지만 강인한 모습을 포착해냈다
"사람들은 너른 내 몸에 기대 책을 읽거나 피곤할 땐 누워 잠을 잤죠. 그 흔한 일상의 풍경이었던 모습들이 이젠 먼 과거의 이야기가 되고 있군요. 내게로 오는 길을 다 막아버렸기 때문이에요. 해군과 시공업자들은 육지경찰의 호위를 받으며 내게로 올 수 있는 모든 길목에 높이 3미터짜리 철제 펜스를 쳤어요. 그리고 다음날부터 굴착기에 정을 꽂아 내 몸을 부수기 시작했어요. 하얀 살이 터져 포말처럼 강정바다에 흩뿌려졌어요. 너무 아팠지만 비명을 지를 수가 없었어요. 너무 슬펐지만 울 수가 없었어요. 그리웠기 때문이에요. 내 등을 주방 삼아 요리하던 종환 삼촌, 감옥에 갇혀 있는 문주란 꽃처럼 순한 사람 동원 씨, 그리고 우리들의 공주님이었던 일곱 살 태나……. 그리움이 깊으면 다시 만날 것이란 믿음에 그들에게 고통을 핑계로 구걸하고 싶지 않았어요. 내 온몸이 바스러지는 한이 있어도 그들에겐 신음소리 한 점 내주지 않을 거예요. 우리는 끝내 저 3미터 펜스를 넘어 다시 만날 테니까요.
아이들 웃는 소리가 들려요. 다시 아이들을 안고 싶어요. 내 너른 등에 무등을 태우고, 강정바다 수평선 너머를 함께 꿈꾸고 싶어요. 나를 가두고, 나를 죽이는 건 참을 수 있어요. 그러나 섬마을 아이들의 꿈을 죽이는 건 참을 수 없어요. 섬마을 아이들의 웃음소리를 지우는 건 참을 수 없어요."(p.238)
헌법 제1조는 학생들 시험문제 때문에 존재하는 것이 아니다. '국민주권'은 민주국가의 가장 중요한 원리임을 모두가 알아야 한다. 개인적으로 향후 인류에게는 인간들의 자유의사 보다 수 백만, 수 억년 동안 먼저 지구상에 존재해온 자연이 더 소중하다고 생각한다. 더군다나 국민의 자유의사 보다 '국가'를 빙자한 정권의 의사는 2순위일 수 밖에 없다.
지금이라도 정부와 해군은 기지공사를 중단하고 원점에서부터 새로 출발해야 한다. 정부가 솔직하게 국민들에게 정보를 공개하고 설명하고 다수의 후보예정지를 대상으로 공정하게 협의해야 한다. 노무현 정부 당시 방사성물질폐기처리장 유치 과정이 절반 정도의 타당성을 갖고 있다고는 하지만, 지역주민들의 삶의 터전에 관계된 국가정책에 대한 기본적인 처리 방식은 방폐장건을 토대로 수정하여 진행하는 것이 필요하다.
아무리 훌륭하고 필요한 국가정책이라도 국회와 국민들을 무시하고 힘으로 밀어붙여서 진행하는 것은 하지 않는 것만 못할 뿐이다. 한반도의 평화를 위한 정책이라고? 그렇다면 우리사회 내부에서부터 평화적인 방식으로, 부드러운 대화와 협의를 통해 진행해야 한다.
며칠 남지 않은 4월 11일 총선에서 야권이 과반수 의석을 차지하는 것만이 해군기지 건설공사 강행을 막는 방법인 것 같다.
[ 2012년 4월 07일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