체 게바라 파울루 프레이리 혁명의 교육학
피터 맥라렌 지음, 강주헌 옮김 / 아침이슬 / 2008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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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류가 수 세기에 걸쳐 '진보'해 왔다고 하지만 구체적인 현실을 돌아보면 전혀 그런 것 같지가 않다. '만민평등'이라는 개념이 각국의 헌법과 교과서에 담겨 있음에도 실제 정치적, 경제적, 사회문화적, 인종적, 성적인 불평등과 양극화는 심해지고 있다. 자본주의 시장경제 자체가 그러한 불평등과 양극화를 가져오는 시스템이지만 최근 몇 십년 동안 전세계에 위세를 떨친 신자유주의는 그러한 경향을 훨씬 강화시키고 있다.
국가 내의 양극화, 국가 간 양극화, 대륙 간 양극화, 인종별 성별 양극화가 지나친 상황이다. 결국 제도와 시스템 뿐 아니라 각 개인의 의식과 집단적 사회문화까지 고려하지 않는 현실, 무한경쟁으로 인하여 그러한 '더불어 삶'과 공동체 문화를 파괴하고 해체시키는 작용이 훨씬 강하게 반영된 결과일 것이다.
 
그래서 요즘 정치경제나 사회문화와 별도로 배움과 학습, 교육과 학교에 대해 관심을 갖고 책을 읽고 있다.  
 
 
이 책은 20세기 남미의 두 인물, 체 게바라와 파울루 프레이리의 삶과 철학을 되돌아보며 그들이 지향한 ‘새로운 인간’과 ‘새로운 사회’란 무엇이며 이를 위한 교육의 역할은 무엇인가를 모색한 책이다.
 
저자가 이 책을 쓴 동기는 “프레이리와 게바라에게서 느껴지는 공통점”이었다고 말한다. 일찍이 <페다고지>로 널리 알려진 프레이리는 비폭력 저항과 투쟁을 주장했지만, 브라질에서는 그의 반(反) 패권적 사상 때문에 위험한 반체제주의자로 찍혀 투옥되었고 오랜 정치적 망명생활을 했으며, 게바라는 폭력을 사용해서라도 제국주의자들에게 토지반환을 요구하는 것은 정당방위이며, 폭력적 저항은 파시즘과 양키 제국주의를 물리치고 신처럼 군림하는 식민주의를 꺾을 수 있다는 것을 대중에게 보여줄 수 있는 유일한 방법이라고 주장한 게릴라였다.
이런 차이에도 불구하고 두 사람은 가슴을 나눈 형제였다. “그들은 감옥, 전쟁터, 교육 투쟁의 현장 등 어디에서도 얼굴을 맞댄 적이 없었지만, 머리와 가슴으로 비슷한 세계관을 지녔으며, 지적 정치적 동료로써 인간 정신에서 기대할 수 있는 최상의 모습을 보여주었다.”(p.09)
무엇보다도 두 사람은, 인간은 끊임없는 자기성찰과 공부를 통해 ‘새로운 인간’으로 거듭날 수 있다고 생각한 점에서 공통점을 지녔다. 이 책은 바로 이러한 점에 주목해 순교자처럼 거칠고 엄격한 게바라, 부드러우면서도 대담한 파울루에게서 그들이 공유한 세계관을 풀어내고 그들의 삶이 갖는 현대적 의미를 분석하고 있다.

책은 1967년 10월 9일 체 게바라의 처형 당시의 모습부터 시작하여 게바라의 일생과 그의 철학이 라틴아메리카의 현실과 글로벌 자본주의의 횡포, 사파티스타 민족해방전선 등의 혁명투쟁과 교차되어 서술된다. 처형 직전에도 현지의 교사와 교육에 관해 토론하는 모습과 전투 현장에서도 게릴라들에게 글을 가르치고 일기에 대한 비평을 해주는 등 끊임없이 교사 역할을 수행했던 게바라의 모습이 잘 드러난다.
피터 맥라렌은 두 사람의 가르침을 진지하게 받아들여야 할 이유는 “전 세계를 지배하려는 자본주의의 파우스트적 욕망이 세계를 생태적 위기에 몰아넣고, 북아메리카인이 향유하는 경제적 안락이 남아메리카의 형제자매의 빈곤과 직접적 관계가 있기 때문”이며 게바라와 프레이리가 “지역적, 범세계적으로 권력의 비대칭적 관계를 청산할 수 있는 교육부문에서의 행동방향을 남겨주었기 때문”(p.279)이라고 말한다.
피터 맥라렌의 정의에 따르면, 혁명적 교육학은 비판적 교육학에서 한 걸음 더 전진해서, 권력과 지식의 관계를 내적인 모순에 따른 충돌상태에 놓는 교육학이다. 혁명적 교육학의 핵심은 ‘지식’과 ‘존재’ 및 그 둘의 관계에 대한 우리 사고방식을 인식론과 존재론 모두에서 혁명적 변화를 모색하는 데 있다. 프레이리와 게바라의 교육학은 이 특징을 고스란히 담아내서 비판적 문해능력을 강조하며 정치 프로젝트를 분명하게 제시하고 있는데, 게바라는 보다 직관적이고 프레이리는 보다 체계적이나 상호배려를 말한다는 점에서 공통점을 갖는다.
두 사람의 견해에 따르면 민중을 억압의 굴레에서 해방시키는 것이 성공이 아니라 민중이 스스로 해방의 길을 모색할 수 있는 수준까지 키워내야 진정한 성공이다. 그것은 미완적 존재로서 ‘다양성 안에서의 통일성’을 바탕으로 자신과 사회를 끊임없이 변증법적으로 변화시켜가는 ‘새로운 인간’들로 구성된 ‘새로운 사회’를 만들어나가는 혁명의 과정이다.

'왜 지금 게바라와 프레이리를 다시 되살려야 하는가?' 이 문제 제기는 이 책의 목적이기도 하다. 맥라렌은 이러한 의문을 제기하며 두 선각자가 남긴 세계관을 추적하며, 21세기를 맞아 사회정의를 구현하는 데에 필요한 교육과 정치에서 핵심적 역할을 그들로부터 발견했다. 그것은 곧 프레이리와 게바라가 제시하는 새로운 인간의 가능성이었고 그것은 사회경제적 측면이나 정치와 분리하여 생각할 수 없었다.
맥라렌은 세계화된 세계를 부의 불평등을 심화시키는 용납할 수 없는 세계로 정의한다. “‘족쇄가 풀린’ 자본주의와 끝없는 자본축적에서 비롯된 ‘자유시장혁명’은 모두에게 혜택을 주지 않았다. 실제로 그 ‘혁명’은 미국사회의 하부구조를 만신창이로 만들었으며, 방위산업과 금융산업의 이익을 도모하는 정책을 추진하면서 남아메리카를 비롯한 세계 곳곳에서 고혈을 짜냈다.”(p.60)
“사기극에 능한 깡패 정치인들은 공익, 공공서비스, 공적 권리, 그리고 최근에는 캘리포니아 법안 187호, 209호, 227호에서 보듯이 시민권까지 무시하면서 민간산업을 위한 충견노릇을 하며 인간의 존엄성과 사회정의보다 기업의 이익을 우선시한다. 게다가 케인스식 복지국가를 미친 듯이 와해시켜, 착취라는 개념은 고통 받으며 살아가는 개인과는 동떨어진 공허하고 추상적인 개념이 되어 버렸다. 자본은 선의의 진보적인 교육자들에게도 뿌리치기 힘든 유혹의 손길을 뻗치고 있다.”(p.69~70)
그는 두 사람을 통해 족쇄 풀린 자본주의, 자유시장주의, 자본과 노동의 세계화가 안고 있는 사회경제적 병폐를 척결할 수 있는 새로운 방법을 모색할 수 있음을 발견했다. 그것은 ‘혁명의 교육학’이었으며 ‘저항의 교육’, ‘사랑의 교육’이었다.

체 게바라는 티셔츠, 핀, 포스터, 열쇠고리, 스티커 등의 형태로 상업화되고 소비문화에 코드화되어 자유분방한 혁명가로 전락되어 버렸다. 미국의 교사들과 교수들에게 체는 오늘날 세계에서 일어나는 역사적 사건들을 올바로 이해하는 데 필요한 삶을 살고 메시지를 남긴 사람이 아니라, 먼 과거에 이상적인 꿈을 꾸었던 낭만적 아이콘이고 제3세계의 상징적 인물일 뿐이다. 심지어 교회까지 체의 상징적 이미지를 이용해 왔다. 혁명가 체의 이미지를 이용해서, 영국의 ‘교회홍보네트워크’는 체에게 가시 면류관을 씌우고 남성적인 매력을 과시하는 포스터를 제작해 5만여 개 교회에 그것을 구입하라는 전국적인 포스터 캠페인을 벌이며 이상스런 논쟁을 불러일으키기도 했다. 교회신도들이 부활절에 교회를 찾도록 체의 포스터를 미끼로 쓰라는 것이었다.
체 게바라에 대한 많은 책이 출판되었지만, 맥라렌은 이 책에서 체 게바라가 팽배한 자본주의 상품사회와 교육, 정치 등에서 교육자, 정치인, 포스트모던 좌파들에 의해 어떻게 상품화되고 왜곡되고 있는지를 날카롭게 드러내 보여준다.
또한 짜맞추기 교육, 은행예금식 주입교육을 비판하며 억업 받는 사람들이 다른 사람들의 꿈과 욕망을 채워주는 부속물로 살아가는 가혹한 현실을 극복하는 철학과 방법을 제시하고자 한 파울루 프레이리로부터 비판적, 혁명적 교육을 이끌어내고 있다.

‘새로운 인간사회’를 모색하는 젊은이에게 프레이리와 게바라는 용기를 얻고 본받아야 할 표본을 남겨주었다. 일확천금이나 무소불위한 권력을 꿈꾸거나 자극적인 환상, 무자비한 폭력, 무절제한 섹스로 공허한 정체성을 채우는 반면에 게바라와 프레이리의 사상과 실천에 담긴 혁명적 자아는 정치와 교육에서 새로운 표본을 제시해줄 것이다. 맥라렌은 탈정치화된 프레이리나 게바라를 거부했다.
“우리 시대는 꿈의 시대이다. 그 길을 개척하는 것은 우리의 몫이다. 우리 앞에 놓인 도전은 혁명가의 교육학적 프락시스를 되살려내고, 자본의 착취에 신음하던 사람들의 세계사적 행동을 재연해내는 것이다. 오늘날 교육의 권위자들이 유행병에라도 걸린 듯이 변절을 밥 먹듯 하지만, 이런 흐름에 혁명의 교육학까지 제물이 되어서는 안 된다.”(p.311)

이제 체 게바라를 전체적으로 알아야 할 때가 된 것 같다... 
 
[ 2012년 4월 04일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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