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본주의 새판짜기 - 세계화 역설과 민주적 대안
대니 로드릭 지음, 고빛샘.구세희 옮김 / 21세기북스 / 2011년 6월
평점 :
품절


미국이라면 '죽으라면 죽는 시늉도 하는' 한국의 관료들과 정치인들, 언론인, 종교인들, 학자들, 그리고 깨어나지 못한 백성들... 
여기 이들에게 세계화에 대해 소개할 책이 한 권 있다. 이 책의 저자 대니 로드릭은 '마국 광신도'들이 꿈에서라도 자식들을 보내고 싶은 하버드 대학을 '우등'으로 졸업했고 프린스턴 대학교에서 경제학 박사학위를 받았으며, 현재 하버드대학교 케네디스쿨의 국제정치경제학 교수로 재직 중이다.
이만하면 '뼛 속부터 친미'인 가카와 우익 정치인, 관료, 언론인, 학자, 종교인들이 귀를 쫑긋 세울 만 한가?

하지만 저자 로드릭은 그들의 선입견이나 바램과는 달리 '세계화 주창자'가 아니라 '비세계화' 경제학자다. 그는 열렬한 자본주의 추종자이자 충실한 민주주의 신봉자다. 동시에 그는 자본주의 시장경제에서 '시장의 실패'와 '시장의 무능'에 대해 정확하게 꿰뚫고 있고 '시장'이 정상적으로 작동되기 위해 국가와 제도, 그리고 민주주의가 반드시 필요함을 인식하고 있다. "한마디로 시장에는 '스스로 만들고, 규율을 세우고, 안정되게 하고, 적법화하는 능력'이 없다."

이 책을 꼼꼼하게 읽어보면 지금 한국의 주류 정치인, 학자, 언론인, 기업인들이 한국이라는 국가와 한국경제에 얼마나 위험한 짓을 하고 있는지 알 수 있다. 4월 총선을 앞두고 요즘 정치권과 언론에 한미FTA에 대한 폐기 논의가 다시 불붙었다. 야당과 상당수 사람들은 한미FTA 협정이 불공정하고 편파적이고 한국의 사법제도와 공공성을 제한할 것이라는 이유로 반대하고 재협상해야 한다고 말한다. 그들은 '세계화' 자체에 대해서는 크게 문제제기를 하지 않는다. 
그렇지만 저자는 '세계화' 자체가 근본적으로 한계가 있을 뿐더러 금융 세계화의 경우 현재의 국제 금융체제로서는 명백하게 부적절함을 지적한다. 특히 자국 내의 경제구조와 제도, 민주주의가 제대로 작동하지 않을 경우 세계화 자채가 해당 국가를 절망의 구렁텅이로 떨어지게 만들 수 있음을 경고한다. 이런 관점에서 평가해 보면, 한국의 경우 FTA(자유무역협정)는 고사하고 세계화 자체에 대해서도 심각하게 재검토해야 하는 것이다. 한국 내부의 경재구조와 제도, 민주화 정도를 고려하면 WTO 체제도 전체 한국경제에 도움아 되지 않을 수 있다, 차라리 기본적인 국제무역체제는 GATT(브레턴우즈) 체제가 한국에 유리할 수 있다고 생각한다.

저자는 1997년 초 <세계화는 너무 진행되었는가? Has Globalization Gone Too Far?>라는 책을 냈고 그로부터 몇 개월 후 우리나를 비롯한 동아시아와 동남아시아에 경제위기가 닥쳤다. 아시아 경제의 위기를 예견했다는 자부심도 있었지만, 저자는 자신의 당시 예견이 국제 상품경제에만 국한되어 금융시장의 위기를 진단하지 못했다고 스스로 평가한다.(내가 보기에는 겸손한 말이지만...)
아시아 경제위기 후 저자는 몇 년간 금융 새계화 문제에 집중하여 연구했다. 2007년 국제통화기금(IMF)에서 논문을 요청하자 그는 <금융 세계화가 약속을 지키지 못하는 이유>라는 논문을 작성했다. 
"금융 세계화는 몇 가지 약속을 했다. 기엄가들이 자금을 모으는 데 도움을 주고, 위기를 더 잘 버텨낼 수 있는 경험 많은 투자자들이 위험을 분산시킬 수 있게 해준다는 것이었다. 현금이 부족하고 여러 쇼크에 노출될 위험성이 높으며 다각화 능력이 부족한 개발도상국들이 가장 큰 혜택을 입을 것이라고... 하지만 실상은 그렇지 않았다. 중국처럼 정작 잘 나가는 국가는 자본을 받아들인 나라들이아니라 잘사는 나라에 자본을 빌려준 나라들이었다. 국제 금융에 의존한 국가들의 실적은 형편 없었다." 저자는 왜 국제 재정지원이 개발도상국들이게 이익을 가져다 주지 못했는지 조명하려 했다.
그 논문을 출판사에 보내자마자 서브프라임 모기지 사태가 미국을 집어 삼켰다. 처음에는 미국에서, 그 다음에는 다른 선진국들애서, 엄청난 금액의 구제금융을 실시하고 금융회사를 매입했다. 금융세계화가 바로 이 위기의 중심에 있었다. 아시아와 산유국들의 지나친 절약은 주택 경기 거품과 그로써 탄생한 파생상품이라는 거대하고도 위태로운 구조물을 한층 부풀렸다. 

그 위기가 월스트리트에서 세계 금융 중심 도시들로 그토록 쉽게 퍼져나간 이유는 금융 세계화로 모든 대차대조표가 한데 뒤섞였기 때문으로 드러났다. 저자는 자신이 또 다시 수면 바로 아래 있던 더 큰 사건을 놓치고 말았다고 스스로를 평가했다.
물론, 2007~2008년 세계 금융위기를 예측하지 못한 것은 저자 뿐 아니라 거의 대다수의 전문가들도 마찬가지였다. 차이가 있던 것은 대다수의 전문가들이 세계롸, 특히 금융 새계화가 전 세계에 부를 가져다 줄 것이라고 예측했고 저자를 비롯한 소수의 전문가들만이 그렇지 않다고 주장했던 것이다.

미국과 유럽을 비롯한 정치가와 금융가, 학자들은 그런 위기가 발생하는 원인이 "예측이 불가능하기 때문"이라고 주장한다. 하지만 저자는 예측이 불가능해서가 아니라 단순히 "예측을 못했기 때문"이라고 주장한다. 그럴 능력이 부족하다는 것이다. 저자는 경제학자들과 그들에게 귀를 기울이는 사람들이 늘 당시 유행하는 담론을 지나치게 믿는 경향이 있음을 지적한다. 담론이란 시장이효율적이라는 등, 금융 혁신으로 리스크가 그것을 잘 견뎌낼 수 있다는 등, 자가 규제가 최고라는 등, 정부의 개입은 비효과적이고 해롭다는 등 하는 것들이다. "오만은 사람의 눈을 가리는 법이다."
저자는 새계 무역체제가 금융체제와 다른 이유로, 무역 관계가 무너진다고 해서 금융처럼 연쇄 파산이 발생하진 않는다는 점을 지적한다. 법규가 지나치게 구속적이고 적절하지 않다고 생각하는 국가는 그것을 따르지 않는다. 그 효과는 포착하기 어려우며 다자간 상호 자유무역 원칙과 비차별 원칙에 따라 점진적으로 조정되는 경향이 있기 때문이라는 것이다.

2007~2008년 세계 금융위기를 경험한 이후 몇 년 사이에 현재의 국제 무역체제가 부유한 국가들에게 반드시 유리하지만은 않다는 사실이 밝혀졌다. 이러한 새로운 경향은 미국을 비롯한 강대국들 안에서 경제 세계화를 지지하는 세력이 급격히 약해졌다는 사실을 보면 알 수 있다. 
금융위기 전까지 줄기차게 세계화를 주장했던 대표적인 전문가들 또한 그러하다. 기존에 세계화를 반대했던 조지프 스티글리츠 뿐 아니라  세계적 경제학자 폴 새무앨슨, 2008년 노벨 경제학 수상자 폴 크루그먼, 연방준비제도이사회 부의장 출신의 앨런 블라인더, 칼러니스트이자 세계화 옹호론자 마틴 울프, 클린턴 행정부의 세계화 추진자 래리 서머스도 회의론자로 돌아섰다.
물론 경제학자들 대다수는 어느 누구도 세계화에 반대하지 않는다.하지만 세계화를 더욱 효과적이고 공정하며 지속가능하도록 유도하기 위한 국가 내, 국가 간 기관을 설립하고 보완 메커니즘을 만들 수 있다.

저자는 1970년대 이후 무차별적인 신자유주의 세계화가 진행되는 가운데 세계경제가 '세 가지 정치적 딜레마(trilemmma)'에 빠져 있음을 밝혀낸다. 그것은 민주주의,국민국가, 세계화라는 세 마리 토끼를 동시에 잡기가 불가능하다는 개념이다. 세계화를 추진하려면 국민국가나 민주주의 중 하나를 포기해야 한다. 민주주의를 확대하기 위해서는 국민국가와 세계화 중 하나를 포기해야 한다. 그리고 국민국가와 민족자결권을 지키려면 깊은 민주주의와 깊은 세계화 중 하나를 선택해야 한다. 불가피하게 아런 선택을 할 수 밖에 없다는 것이 우리가 직면한 문제라는 것이다.
그런 상황에서 저자의 생각은 명쾌하다. "민주주의와 민족자결권이 하이퍼글로벌라이제이션보다 우선해야 한다"는 것이다. "민주주의는 자신의 사회적 합의를 보호할 권리가 있고 이러한 권리가 글로벌 경제의 요구와 충돌할 때 물러서야 할 것은 후자다."

한국의 상황은 어떠한가? 한국은 민주주의도 제대로 작동하지 않고 있고 국민국가로서의 지위도 불안정하다. 이런 상황에서 세계화를 무차별로  강행한다는 것은 민주주의와 국민국가로서의 자결권도 침해받을 수 밖에 없는 것이다. 정녕 한국 내 기득권들자와 지배계층은 한국을 1980년대의 중남미나 아프리카 후진국으로 만들려고 하는 것일까? 정말 현재의 한국 상황에서 세계화를 강행했을 때 자신들의 안위와 자배력이 유지 또는 강화될 것이라고 생각하는 것일까?

저자는 17~18세기 자본주의의 태동 이래 자본주의가 발전할 수 있었던 시스템과 세계화가 진행되었던 시대의 특징과 흐름을 분석한다. 이를 통해 두 가지 시각을 바탕으로 새로운 세계화 담론을 제시한다. 첫째는 각국 정부와 사장아 대체제가 아닌 보완재 개념으로 보아야 한다는 것이다. 더 넓고 바람직한 시장을 원한다면 정부의 개입과 관리가 필요하다. 가장 효율적인 시장은 약한 정부가 아니라 강한 저우가 만든다는 것이다. 둘째는 자본주의 모델은 단 하나가 아니라는 것이다. 노동시장, 금융체제, 기업지배구조, 사회복지 같은 제도적 장치를 다양하게 조합함으로써 경제번영과 안정을 꾀할 수 있다는 것이다. 어떤 국가든 자국의 필요와 가치에 따라 이러한 제도적 장치들을 다양하게 선택할 수 있으며, 이는 한 국가로서 마땅히 누려야 할 권리이기도 하다.
저자가 20세기에 자국의 경제발전과 국제무역체제 속애서 모범적이라고 평가한 국가 중 하나가 바로 한국이다. 한국의 위정자들은 전세계가 부러워하는 경제체제와 방식을 내던져 버리고 한국경제와 국민들을 '세계화의 구렁텅이'로 밀어넣고 있는 셈이다. 참고로 21세기에 적절하다고 지목되는 국가는 중국과 인도다.

그렇다면 저자가 제시하는 세계화의 새로운 담론은 무엇일까? 그것은 '건전한 세계화'를 위해 4가지 방향을 제시한다. 그것은 국제 무역 제도 개혁, 국제 금융 규제, 국제 노동이동 완화, 중국과의 원만한 관계구축이다. 
 
 
- 인상 깊은 문단 :
 
"자본주의는 인간 사회의 경제 에너지를 해방시키는 점에서 독보적인 위치에 있다. 넓은 의미에서 볼 때, 번영을 누리는 모든 국가가 자본주의를 채택한 이유는 이 때문이다. 자본주의 국가는 사유재산을 중심으로 조직되어 있으며, 자원을 분배하고 경제적 보상의 정도를 결정하는 역할을 시장의 손에 맡긴다. 세계화는 자본주의를 범세계적으로 확산하는 것을 의미한다. 자본주의는 세계화와 너무 복잡하게 얽혀 있어서 세계화의 미래를 논하지 않고 자본주의의 미래를 논하는 것은 불가능할 정도다." 

"시장은 까다로운 전제조건을 요구한다. 세계시장은 더더욱 그러하다.
식량이나 다른 일용품 시장은 사람들이 서로 잘 알고 끊임없이 상호작용하는 작은 공동체 안에서도 비교적 잘 돌아갈 수 있다. 작은 무리의 사업가와 금융인들도 공통의 신념체계만 가지고 있다면 무역과 교역을 할 수 있다. 하지만 이것보다 조금이라도 크고 범위가 넓은 시장이 오래 지속되려면 이를 뒷받침할 제도가 필요하다.
소유권을 확립하기 위한 재산권 규범, 계약을 강제 이행하도록 해주는 법정, 구매자와 판매자를 보호해주는 무역 규칙, 사기꾼을 처벌하는 경찰력, 사업주기를 관리하고 부드럽게 이어나가도록 도와줄 거시정책 틀, 금융안정을 유지하기 위한 기준과 감독, 금융위기 예방에 기여하는 최종 책임기관, 공공규범에 규합하는 보건 안전 노동 환경 기준, 약자를 위로하기 위한 보상 체제, 시장 리스크에 대비한 사회보험, 그리고 이 모든 제도를 유지하는데 필요한 지금을 조달할 세금까지 그 규모는 어미어마하다.
한마디로 시장에는 '스스로 만들고, 규율을 세우고, 안정되게 하고, 적법화하는 능력'이 없다."

"세계화를 떠받치는 기둥은 불안하기 짝이 없다. 세계 시장은 매우 취약하다. 국가 차원에서 규제와 법령으로 지배하고 지원하는 국내 시장과는 차원이 다르다. 세계 시장에는 독점 규제 기관도, 조정 기관도, 안전망도, 최종 책임자도, 무엇보다 전 지구적 민주주의도 없다. 바꾸어 말해, 세계 시장의 지배구조는 매우 취약하다. 따라서 불안정하고, 비효율적이며, 대중의 인정을 받기도 힘들다. 이러한 세계 시장의 특성은 각 국가의 시각과 균형을 이루지 못하기 때문에 세계화에는 불안정 요소가 존재할 수밖에 없다. 세밀한 조정을 통해 균형점을 찾을 때에만 세계 경제 체제를 건전하게 유지할 수 있다. 각국 정부에게 지나친 권력을 주었다가는 보호무역주의와 자립 정책을 초래할지 모른다. 반대로 시장에 자유를 지나치게 부여했다가는 세계 경제 불안을 초래해 필요한 사회적 정치적 지원을 받지 못할지도 모른다."

[ 2012년 2월 18일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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