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기본기 - 개정판 사기 (민음사)
사마천 지음, 김원중 옮김 / 민음사 / 2015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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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구사회를 이해하려면 서구 유럽이 겪어온 유럽역사를 알아야 하고 그 중에서 특히 그리스,로마 시대와 기독교 시대를 알아야 한다. 서구 언어와 습성, 문화와 학문, 정치와 경제의 근원적인 뿌리가 그곳에 있기 때문이다. 마찬가지로 동양사회를 이해하기 위해, 특히 중국과 한국(북한 포함)을 이해하기 위해서는 중국의 역사를 아는 것이 필수적이다. 한반도 문화와 정치경제 역시 중국 고대사에 뿌리를 두고 있기 때문이다. 특히 과거 고려시대와 조선시대의 경우 중국의 영향이 절대적이었음을 부정할 수 없다.

한국과 마찬가지로 중국 역시 고대의 문헌이 상당수 전해져 내려온다. 현재 전세계를 정치경제적으로 지배하고 있는 사상과 학문, 문화가 서구이기 때문에 세계적인 학문 분야에서는 서구식 내용이 지배적이다. 하지만, 동양의 각국이 정치경제적으로 성장해 나가면서 동양의 고대 유적과 학문이 전세계에 전파되고 있고 서구 연구진들 사이에서도 전공하는 학자들이 늘어나고 있다.
그 뿐 만 아니라 20세기 후반 이후 서구 중심의 학문과 문화, 정치경제가 많은 문제점을 보이고 한계에 봉착하면서 역으로 동양의 그것들애 대한 탐구가 본격화되는 측면도 크다.

그런 면에서 1945년 해방 이후 지금까지 한번도 흔들림 없이 서구 중심, 특히 미국 중심의 학문과 문화, 정치경제가 한국사회를 지배하고 있는 것은 아이러니라 할 수 있다. 20세기 말부터 사상학문에서의 통섭이 활발해지고 동양적인 가치와 제도가 일정 부분 인정받고 연구되고 있음에도 한국 내 학계와 문화계, 기득권 집단들 사이에서는 미국식 문화와 제도에 대한 과도한 편중, 잡착과 추종 현상이 벌어지고 있다. 한국사회 전체를 위해 실로 심각하게 우려되는 일이 아닐 수 없다.

다시 말해 막연하게 중국을 싫어하거나 거부하는 것이 아니라 한반도 역사의 뿌리 중 하나인 중국에 대해 아는 것도 필요하다는 생각이 이 책을 읽게된 이유다. 이 책 말고도 읽어야할 책은 앞으로도 무수히 많지만...ㅋ

이 책은 중국 24사(史)의 필두이자 전 세계에서도 역사서의 명작으로 손꼽히는 <사기> 130편 중 제왕들의 전기를 담은 <본기> 12편을 역자가 한글세대에 맞춰 현대적으로 옮긴 것이다. <사기 본기>는 황제(黃帝)부터 시작하여 사마천이 <사기>를 집필하던 당시의 왕인 한나라 무제까지 각 시기별로 패권을 장악했던 제왕들의 사적을 기록한 것이다. 각양의 인물들을 호령하고 이끌었던 제왕들의 일대기를 담은 [본기]는 역사의 중심에 ‘인간’을 두고자 한 사마천의 역사관이 그대로 녹아든 <사기>의 근본이 되는 책이라 할 수 있다. 

진시황이 중국 영토를 통일했다면, 사마천은 관념적 ‘통일 중국’을 처음으로 만들어 냈다고 일컬어질 정도로 사마천의 <사기>가 가진 영향력은 오늘날까지도 지대하다고 평가된다. <사기>는 <본기> 12편, <표> 10편, <서> 8편, <세가> 30편, <열전> 70편 등 총 130편으로 이루어져 있으며, 기전체 형식으로 쓰인 첫 역사서이다. 일반인들에게는 <본기>보다 <열전>이 많이 알려져 있다.
시간적으로는 상고(上古) 시대부터 한나라 무제 때까지 아우르며, 공간적으로는 옛 중원을 중심으로 주변 이민족의 역사까지 다루었다.

<사기>의 첫머리를 이루는 <본기>는 중국의 시조로 여겨지는 황제(黃帝)부터 한 무제에 이르는 제왕들의 이야기다.
이전의 편년체 역사서에서 시간순으로 모든 인물과 사건을 한꺼번에 기술했던 것과는 달리, 사마천은 먼저 제왕을 내세워 뼈대를 잡은 다음 제후 등의 인물들을 등장시킴으로써 중심과 주변의 구분을 명확히 했다. 이로써 중국은 하ㆍ은ㆍ주 삼대에서 진나라를 거쳐 한나라에 이르게 되는 통일 중국의 맥을 가지게 되었다.
이전에는 다양한 민족의 크고 작은 나라들이 할거하며 패권을 다툴 뿐이었던 거대한 땅이 <사기> 이후 ‘중국’이라는 관념적 공간으로 전환되면서 수십 개 나라의 역사도 하나의 중국 역사로 편입된 것이다. 이러한 인식은 수천 년이 지난 현재까지도 이어져, 다양한 민족과 문화가 공존함에도 통합된 중국을 가능케 하는 바탕을 이루고 있다. 

물론 저자는 사마천이 [오제 본기]와 [하 본기], [은 본기]를 통해 시도한 '신화의 역사화'를 긍정적으로 평가함과 동시에 사마천이 <사기 본기>에 실은 '오제'가 실존했는지에 대해서는 현대의 역사가들 입장에 서 있다. '오제'와 하, 은, 주 3국은 역사적 실체보다 신화에 가깝기 때문이다. 은나라 시대의 유물로 추정되는 일부 유적이 발견되기는 하였지만, <사기 본기>애 담겨 있는 인물과 치세, 사건과 상황은 현대의 관점에서 평가할 때 실체보다는 신화에 가깝기 때문일 것이다.

이 책을 통해 내가 처음 알게된 것이지만, <사기>는 사마천이 궁형을 당하는 치욕을 겪으면서도 아버지의 유지를 받들어 발분(發憤)의 마음으로 쓴 역사서이다. 따라서 나라에서 관장한 관찬 역사서에서는 볼 수 없는 사마천만의 독특한 사관이 곳곳에 드러나 있는데, 대표적인 것이 <사기 본기>에 실린 [항우 본기]와 [여 태후 본기]이다. 사마천은 역사는 개개인의 움직임에서 비롯된다는 생각으로 <본기>의 시작부터 전설 속 제왕 황제(黃帝)를 전지전능한 신이 아닌 덕을 지닌 인간의 모습으로 묘사함으로써 ‘인(人)’을 역사의 중심에 두고자 했다. 이러한 인식은 <본기>의 구성에도 파격을 일으킨다.
항우는 진(秦)나라 멸망 후 한(漢)나라가 패권을 차지할 때까지 실질적으로 천하에 권력을 행사했다. 항우는 한 고조 유방과 끝까지 대적하며 한나라를 멸망 위기까지 몰아넣었던 인물이지만, 사마천은 이러한 항우의 역할을 인정하여 <본기>의 한 편으로 [항우 본기]를 쓰고 [고조 본기] 앞에 두는 모험을 감행했다. 또한 한 고조의 정실부인이자 혜제의 어머니로 고조 사후 권력을 행사했던 여 태후를 내세워 [여 태후 본기]를 쓴 것도 이례적이다. 형식적으로 권좌에만 앉아있는 '허세'가 아니라 현실을 움직인 '실세'를 인정하고 인간의 활동을 중심에 두는 사마천의 사관이 여실히 드러나는 부분이다.
이렇듯 사마천은 인간 중심적 역사관을 기저로 하여 탁월한 안목으로 인간과 세계를 탐구했고, 2000년이 넘도록 ‘인간학 교과서’라고 불리며 회자되는 <사기> 속에 생생한 인간상을 담아냈다. 

역자는 <사기>가 "역사서로뿐 아니라 문학적으로도 빼어난 작품"으로 평가한다. 그중에서도 항우가 입지를 굳히게 된 '거록'에서의 전투 장면이나 항우와 유방이 회동한 '홍문연'에서의 긴박한 장면 등을 묘사한 [항우 본기]는 독자마저도 숨죽이게 하는 명문으로 손꼽힌다. 또한 <사기>에 담긴 제왕들의 이야기는 '사면초가', '금의환향' 등 수많은 고사를 만들어 냈고 당시(唐詩)나 송시(宋詩) 등의 옛 문학뿐 아니라 현대의 여러 작품에서도 모티프가 되어 꾸준히 이어졌다.
[진시황 본기]는 <진용>이나 <영웅> 등의 영화에서 배경이 되었고, 항우와 우 미인의 이야기를 담은 [항우 본기]는 경극 <패왕 별희>를 낳았다. 그 외에도, 걸왕과 함께 폭군으로 유명한 주왕의 몰락을 담은 [은 본기]나 중국 3대 악녀로 일컬어지는 여 태후의 표독스러움을 그대로 묘사한 [여 태후 본기]는 중국 역사가 생소한 독자들에게도 널리 알려진 흥미진진한 이야기들을 보여 준다.


<사기 본기>의 처음부터 끝까지 사마천이 생각하는 정치의 이상적인 모습은 '덕치(德治)'였다. 나는 학자들과 역자의 분석과는 다르게 사마천이 [오제 본기]와 [하,은,주 본기]를 <사기 본기>에 앞세운 이유 중 하나가 역사자로서 자신이 생각하는 '덕치'를 당대의 한 무제와 이후 제왕들에게 이상적인 정치의 모습으로 제시하고 싶었기 때문이라고 생각한다.

<사기>는 한나라 이후 중국사 뿐 아니라 한반도에도 많은 영향을 끼친 것으로 보인다. 삼국시대, 남북국시대, 고려, 조선에 이르기까지 한반도에서 흥망성쇠를 이어간 국가의 왕들과 정치가, 학자들은 모두 중국사의 주요 국가들과 인연을 맺고 영향을 주고 받았으며, 정치와 경제 뿐 아니라 학문과 문화적인 측면에서도 크게 영향을 받았던 것을 부정할 수 없다.

[ 2012년 2월 16일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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