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베네수엘라, 혁명의 역사를 다시 쓰다 - 차베스의 상상력, 21세기 혁명의 방식 ㅣ 새사연 신서 2
김병권. 손우정. 안태환. 여경훈. 이상동. 정희용. 한우림 지음 / 시대의창 / 2007년 2월
평점 :
최근 한국의 언론에 베네수엘라에 대한 기사가 뜬 적이 있다. 차베스 대통령이 베네수엘라에 투자한 다국적 석유기업(엑슨모빌 등)의 자산을 국유자산으로 몰수한 것에 대하여 다국적 기업들이 국제중개기관에 베네수엘라를 상대로 소송을 제기했고 차베스 대통령이 미국과 다국적 기업의 입김에 좌우되는 국제중개기관의 판정을 거부하면서 남미 차원에서 별도의 기관이 필요하다고 역설한 것이다. 이 사건은 한미FTA의 대표적인 독소조항인 '투자자-국가 제소(ISD)'와 관련하여 우리나라 사람들도 관심을 가질 수 밖에 없는 것이다.
솔직하게 말하자면, 난 대학시절 이후 남미에 대해서 아는 것이 거의 없었다. 당시 칠레 아옌데 대통령이 군부 쿠테타에 의해 무너지고 쿠테타군과 싸우다 죽은 것, 해방신학에 대한 남미 신부들의 책이나 글 등이 대부분이었고 헬비오 소토의 영화 <산티아고에 비가 내린다>를 숨어서 본 기억 정도에 불과하다.
당연히 베네수엘라에 대해 아는 것이 없었다. 지금 전혀 기억이 나지 않지만, 아마도 베네수엘라에 대한 내 첫 번째 기억은 차베스가 대통령에 당선된 1998년이었을 것이다. 1998년 겨울이라면, 1997년 말 대통령 선거와 IMF 구제금웅의 여파로 그동안 일하던 건축설계라는 업종을 떠나 부동산 개발업체에 처음 입사한 때였다. 국내 언론에서 베네수엘라 선거나 차베스 대통령 당선자에 대해 짧은 단신을 얼렸겠지만, 당시의 내 관심분야와 의식상태로는 차베스에게 별 관심이 없었을 것이다.
현재 한국사회의 화두 중 하나는 "1% 기득권의 지배에서 벗어난 99%의 사회"이다. 2012년 한국에서는 국회의원 총선거와 대통령 선거가 연달아 치러진다. 야당과 시민사회, 그리고 상당수의 깨어있는 시민들은 "99%를 위한, 99%에 의한, 99%의 정치"를 외치고 도전하고 실험하고 있는 중이다. 사실 지금 한국 뿐 아니라 전세계 어느 나라에서도 그러한 '99% 정치'가 이루어지고 있다고 인정된 바 없다. 자본주의와 사회주의, 중립국을 나눌 것도 없이 소위 '지배엘리트' 혹은 '특권층'에 의한 지배가 공통적으로 나타나고 있다. 대의민주주의니 입헌민주주의니 하는 것은 형식적인 허울만 있는 것이지 사실상 '99% 정치'는 없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차이라고 인정할 수 있는 것은 지배엘리트, 지배계층이 0.1%에 불과한 것이냐, 아니면 1% ~ 5% 정도로 많은 지배층이 구성되어 있느냐 정도라 할 수 있다.
그런데 이 책을 읽고 나서 나는 감히 베네수엘라야 말로 '99% 정치'를 직접 실현시키는 과정이라고 자신있게 말할 수 있다. 비록 이 책에 나타나지 않은, 내가 모르는 베네수엘라의 약점이나 위협요소가 있을 수 있을지는 아직 모르겠지만 1998년부터 2006년까지의 베네수엘라에서는 '99% 정치'가 동일한 방향으로 점진적으로 이루어지고 있다는 생각이다. 차베스의 집권 기간 동안(반혁명과 자본가 파업이 있던 기간을 제외하고는) 경제성장 뿐 아니라 그것보다 더 중요한 부분, 즉 경제, 교육, 건강 등 모든 분야에서 99% 민중들의 삶이 개선되고 있는 것이다.
내가 베네수엘라의 혁명, 그들의 정치를 '99% 정치'라고 하는 이유는 혁명의 내용과 주체, 방법이 '99% 정치'로 이루어져 있기 때문이다. 1998년 새로이 확정된 베네수엘라 헌법을 들여다 보면 '99%'를 위한 내용을 담고 있음을 알 수 있다. 그리고 '볼리바리안 써클'과 '주민자치위원회'의 구성과 운영을 살펴 보면 '99% 정치이자 행정'임을 알 수 있다.
베네수엘라 혁명의 핵심역량은 '볼리바리안 써클'이라 할 수 있다. 이 써클은 정당도 아니고 노동조합이나 주민자치조직도 아닌 자발적인 '대중적 정치조직'이다.(초기 모습은 '노사모'와 비슷하게 출발하였다) 2003년 기준으로 무려 220만명이 이 써클 소속이다. 베네수엘라 인구가 2,700만이니 유권자를 80% 정도로 감안하면 2,160만명 중 10%가 넘는 정치적인 시민들이 조직을 결성하고 활동하고 있는 것이다.
차베스는 1998년 베네수엘라 선거 혁명 이후 기존 행정조직이 아닌 자발적인 주민자치조직을 유도하여 그 조직, 즉 '주민자치위원회'를 통하여 새로운 정부정책을 입안하고 결정하고 집행하고 평가하고 수정하고 있다. 주민자치위원회는 베네수엘라 전역에 2006년 현재 12,000~16,000개 정도이며, 개별 주민자치위원회는 도시는 200~400가구, 농촌은 20~30가구, 원주민은 10가구를 기준으로 하고 있다. 대략 전국 가구의 50% 전후가 주민자치위원회를 조직하여 차베스 행정부와 협력하여 활동하고 있는 것이다.
남미라는 지역적 상항에서, 베네수엘라의 역사적 과정에서 출발한 차베스와 한국 사이에는 커다란 차이가 있을 것이다. 그럼에도 차베스는 자신의 조국 베네수엘라의 특성과 문화, 국민적 수준과 요구에 입각하여 1% 기득권이 지배하는 베네수엘라를 99%가 지배하는 국가로 탈바꿈시키고 있다. 그것도 무장투쟁이나 무력혁명이 아니라 아주 평화적이고 헌법과 선거라는 합법적인 수단을 통해서.
분명히 차베스의 베네수엘라 혁명은 한국에서 99%를 위한 정치, 민주주의와 99%를 위한 사회를 원하는 이들이 배우고 연구해야할 점들이 무수하게 들어 있다.
물론 이 책 한 권으로 차베스와 베네수엘라에 대해 자세하게 알 수는 없을 것이다. 그리고 저자들의 주요 관심사를 중심으로 베네수엘라 혁명을 다루었기 때대문에 실제 전개상황 또는 해석이 많이 다를 여지도 있을 수 있다. 나 역시 차베스나 베네수엘라 혁명에 대해 기록하거나 분석한 다른 책들을 곧이어 읽으려 한다.
그럼에도 차베스와 베네수엘라 국민들이 1998년부터 10년 동안 진행한 '혁명'은 우리에게 많은 시사점을 던져 준다. [새로운 사회를 여는 연구원(이하 '새사연')]과 저자들이 2006년 연구원을 설립하고 그 해 <새로운 사회를 여는 상상력>을 처음 발간한 후, 두 번째로 이 책을 발간했는지 이해할 수 있었다.(아직 <새로운 사회를 여는 상상력>을 읽어보지는 못했다.ㅋ)
지금도 미국 행정부와 의회는 정파와 관계없이 차베스 대통령과 베네수엘라를 못잡아 먹어서 안달이다. 인구 2,700만 명, 2005년 GDP 규모 세계 55위, 연간 국방 예산이 미국의 0.3퍼센트 수준에 불과한 베네수엘라의 어떤 점이 미국 정부를 이렇게 긴장하게 만들었을까? 이 보고서는 그것에 대한 해답을 보여주고 있다. 그리고 2006년 12월 대통령 선거에서 다시 한 번 재선에 성공한 차베스는 베네수엘라식 ‘21세기 사회주의’의 행보를 한층 더 가속하고 있다.
이 책은 20세기 초반 자본주의의 변방 러시아에서 일어난 혁명이 이내 전 세계로 퍼져 20세기를 ‘혁명의 시대’로 규정짓게 만들었듯이, 2007년 신자유주의의 세계 체제의 변방 베네수엘라에서 진행 중인 혁명이 새로운 혁명으로써 도미노를 예고할지, 미국에 맞선 신자유주의의 대안 모델이 될 수 있는지를 분석했다.
'새사연'의 젊은 연구자들은 베네수엘라 혁명이 21세기에 일어난 사실상의 첫 혁명이라는 점에 관심을 두고 그 종적 진행 과정과 사회 체제의 횡적 단면을 해부한다. 신자유주의 세계화의 구조적 변화 한가운데에서 일어난 혁명이 갖는 독자적 특성을 정치, 경제, 산업, 사회 그리고 국가간 지역 협력체 모델 등 분야별로 추적해 들어갔다.
이 책은 전체 일곱 개의 장으로 나뉘어 베네수엘라 혁명을 분석하고 대안을 전한다.
우선 제1장은 베네수엘라의 사회경제적 현황과 혁명 전개 과정을 압축적으로 요약한 개요다. 20세기 후반 베네수엘라 혁명에 대한 사전 지식이 없는 독자들을 위해 경제적, 정치적 현황과 혁명 진행의 단계별 특징을 정리했다.
제2장은 베네수엘라 혁명의 정치적 특징을 살펴본다. 베네수엘라 혁명의 눈에 띄는 특징인 선거 혁명과 합법적인 혁명과정에 대해 분석했다. 차베스의 위로부터의 개혁이 민중의 주체적 참여를 이끌어낸 과정, 이렇게 창출된 아래로부터의 힘이 혁명을 급진전시킨 메커니즘을 살펴본다.
제3장은 이른바 베네수엘라 방식의 ‘참여민주주의’의 실체와 특성을 분석한다. 기존의 포퓰리즘이나 국가주의로는 해석될 수 없는, 새로운 유형의 참여민주주의의 구체적 사례로 정치 조직인 '볼리바리안 서클'과 자치 조직인 '주민자치위원회'를 중점 검토하여 ‘한국의 참여정치’와 어떤 점에서 근본적으로 구분되는지 시사점을 찾는다.
제4장은 경제 변혁에 대해 집중적으로 고찰한다. 베네수엘라 사회의 내부 경제 변혁 과정, 경제 구조의 변화에서 노동자와 민중의 참여와 역할, 신자유주의를 극복하는 경제 모델의 지향점 등을 검토한다.
신자유주의가 일반화된 이후 소규모 공동체나 운동 단체 차원이 아닌, 한 국가 전체의 경제 운용 방향이 신자유주의 시스템을 벗어난 첫 사례가 베네수엘라라고 할 때, 새로운 경제 모델의 실험은 베네수엘라의 경제 규모와 상관없이 전 세계적 차원에서 상당한 파급력을 지닐 수밖에 없다. 또한 차베스 자신이 목표로 하는 21세기 사회주의의 성패 여부도 결정적으로는 이 경제적 실험에서 좌우될 것이다.
제5장에서는 베네수엘라 ‘석유경제 체제’를 별도의 주제로 분리하여 분석한다. 국내 언론에는 흔히 차베스가 석유산업의 막대한 이익을 통해 정권 기반을 유지하는 것으로 소개된다. 그러나 실상은 베네수엘라 국부의 절대 비중을 차지하는 석유산업의 개혁 자체가 혁명의 가장 어려운 난제였다. 4년여가 넘는 단호한 투쟁을 통해 이룬 석유산업 개혁 과정은 달라지는 것은 없고 말만 무성한 한국 사회의 소위 ‘개혁 피로증’과 너무도 대조적인 장면이 목도된다. 이 험난한 석유산업 국유화 과정은 지금도 진행 중이라 할 수 있다.
제6장은 남미 지역 공동체를 향한 차베스의 독특한 구상과 지역 협력 방식을 정리했다. 클린턴 정부 시절부터 추진된 미국의 라틴아메리카 자유무역 협정(FTAA) 결성 시도는 차베스 정권 등장 이후 좌초 상태다. 최근 미국식 경제통합 모델을 추종하는 한미FTA 협정과 대척점에 선 남미 공동체 구상은 대안적 통상 전략과 대외 경제 전략 구상에 강한 영감을 제공해 준다.
마지막으로 맺는글은 이번 연구를 결산하면서 베네수엘라 혁명이 지니는 함의와 한국 사회에 주는 시사점을 종합 정리한다. 지난 시기에 진보가 주장한 ‘혁명’은 가슴을 뛰게 만드는 말이자 불온한 용어였다. 그러나 20세기 후반부 ‘IT 혁명’ ‘경영 혁명’ 등 혁명이라는 용어는 오히려 경영자 층과 보수 진영에서 더 일반적으로 쓰는 말이 되었다. 이제 21세기 혁명은 무엇을 추진하고자 하는 혁명인지 그 혁명은 어떤 방식과 경로를 통해 이루어지는지 나름의 결론을 도출한다.
저자들은 베네수엘라 혁명의 특징을 무장투쟁보다 단호했던 선거 혁명, 몰수 없는 혁명, 민중의 헤게모니로 추진되는 혁명, 파괴보다는 창조가 중심인 혁명, 국민의 지배 강화로 관료주의를 넘는 혁명으로 규정한다. 지구 상에 존재했던 많은 '혁명', 우리가 지금까지 알고 있던 '사회주의 혁명'과 다른 베네수엘라 고유의 '21세기 혁명'이라 할 수 있다.
그리고 이 책 부록으로 ‘베네수엘라 볼리바리안 헌법’ 전문을 번역하여 참고 자료로 달아놓은 것은 이 책의 실천적 목적에 충실하기 위함이다. 베네수엘라 혁명의 가장 큰 특징 가운데 하나가 바로 ‘선거혁명’과 ‘헌법을 통한 합법 혁명’, ‘국민이 동의한 헌법에 기초하여 구질서와 제도를 기저에서부터 바꿔 나가는 가장 단호하면서도 부드러운 혁명’이기 때문이다.
한국 사회에 남미는 1980년대만 하더라도 종속 이론, 파울로 프레이리의 민중 교육 이론 등 활발한 사회운동의 성과를 반영한 여러 이론과 실천 활동이 소개되고 보급된 지역이다. 그러나 1990년대 동구 사회주의권의 붕괴와 함께 진보적 담론이 썰물처럼 철수하면서 이 지역에 대한 관심도 급격히 식어버렸다. 대신 그 자리에는 스웨덴, 덴마크, 독일 등 사회민주주의적 영향이 강한 유럽 사회 모델에 대한 관심이 들어섰다.
그러나 '새사연'은 한국이 세계 11위권인 GDP 규모, 반도체와 IT를 위시한 신산업의 발전, 수출의 지속 성장 등 OECD 선진국에 비견할 경제 성과에도 불구하고 사회 변화라는 관점에서는 오히려 유럽보다 남미가 시사점이 많다는 의견을 제시한다. 19세기부터 전개된 노동운동의 강력한 기반을 바탕으로 2차 대전을 전후한 시기 노사 간 사회 대타협을 이끌어 낼 수 있었던 유럽 모델은 노동자의 노조 가입률이 10퍼센트에도 못 미치는 한국 사회에 원용한다는 자체가 그리 타당성이 높지 않다는 것이다.
반면 남미 지역은 대체로 한국 사회보다 10여 년 먼저 IMF 신세를 지면서 신자유주의를 뼈저리게 경험했다. 사회 양극화의 심화, 비정규직과 실업자의 대거 양산, 공공 부문의 약화와 시장주의의 일방적 득세, 성장 엔진의 결여 등 한국 사회가 직면하는 대부분의 문제가 노정되었고 이를 해결하기 위한 민중들의 자구적 노력 경험도 그만큼 축적되어 있다는 문제의식이다.
이 책에서는 생활인들을 중심으로 실천적인 한국 사회의 대안을 찾겠다는 새사연의 지향이 엿보인다. 일반적 학술 연구서와 달리 외국의 사례만을 소개하는 데 그치지 않고 그 세부적인 함의와 방법론을 끊임없이 우리 사회의 실정에 대비하고 비교 검토하며 시사점을 집요하게 파헤친다는 점이 이 책의 미덕이다.
예컨대 “조중동 등 발목을 잡는 언론 때문에 개혁이 어렵다”는 말은 수도 없이 들어온 참여정부의 자기변명이다. 이에 대해 이 책은 차베스 집권 당시 5개 주요 상업방송 전부와 10개 전국적 주요 일간지 가운데 9개가 노골적인 반차베스 진영으로, 이들 언론은 심지어 2002년 4월 반차베스 군부 쿠데타를 직접 홍보하고 함께 모의까지 했다는 사실을 전한다. 이들 반 차베스 언론의 대부격인 시스네로스 그룹의 매출액은 조선일보의 열 배 규모이고 중남미 전 지역에 영향력을 행사하는 수준임을 알게 되면 현 정부의 변명은 상당히 궁색해 보인다.
우고 차베스 베네수엘라 대통령에 대해 ‘포퓰리스트’라는 미국 언론의 기본 관점이 국내에도 별 문제의식 없이 횡행하는데, 중남미 각국을 대상으로 매년 정기적으로 국민 여론과 민주주의 성숙도를 조사 평가하는 ‘라티노 바로메트로’의 연구 결과에 따르면 현재 베네수엘라의 민주주의적 진전과 국민들의 정치적 만족도는 중남미 최고 수준이다. 룰라 대통령의 브라질을 훨씬 능가한다.
후보 시절 “사진 찍으러 미국에 가지는 않겠다”고 호언했다가 정작 당선되고 나서는 상당한 저자세로 미국을 다녀온 노무현 대통령에 비해 차베스는 유엔총회 연설장에서 부시를 “악마, 독재자”로 부르며 훌닦을 정도로 강경한 모습을 보이지만 미국과의 교역량을 늘리는 실용성을 결코 잃지 않는다. 그뿐 아니라 미국 중서부의 빈민들에게 석유를 무상 공급하는 등 공화당 정권이 아닌 미국 시민을 상대로 한 여론 선전전에도 능하다.
이 책은 2007~2008년에 어떤 친구로부터 선물을 받은 것으로 기억한다. 그 친구는 아마도 [새로운 사회를 여는 연구원]을 지지하였거나 한국사회에 새로운 철학과 정책, 방식을 고민하고 있었던 것 같다. 선물로 받았음에도 예의에 어긋나게 4~5년 동안이나 책꽂이에 꽂아놓고 지금까지 읽지 않았다는 애기... 책을 읽고나니 그 친구에게 고맙다는 생각과 더불어 선물로 받았음에도 읽지 않고 나버려 두었다는 미안함이 컸다.
아무튼, 고맙다 기억나지 않는 친구야!! ㅋ
[ 2012년 2월 08일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