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꺼삐딴 리 - 전광용 단편선 ㅣ 문학과지성사 한국문학전집 39
전광용 지음 / 문학과지성사 / 2009년 11월
평점 :
저자 전광용은 1919년 한경남도애서 태어나 경성경제전문학교, 서울대학교 국문과를 거쳐 1953년 서울대 국문과 대학원을 졸업했다. 1955년 조선일보에 단편 소설 <흑산도>가 당선되면서 문단에 등장했다. 1962년 이 작품 <꺼삐딴 리>로 제7회 '동인문학상'을 수상했다. 그는 1988년 작고할 때까지 많은 작품을 남겼다.
이 책은 저자의 단편소설 작픔을 모아놓은 것이다. 책 속에는 <꺼삐딴 리>를 포함하여 '흑산도', '진개권', '지층', '해도초', 'GMC', '사수', '크라운 장', '충매화', '초혼곡', '면허장', '곽 서방', '남궁 박사', '죽음의 자세', '세끼미' 등 15개 작품이 실려 있다.
저자의 작품에 대해 해설을 하는 평론가 김종욱은 "1960년대에 발표된 전광용의 소설에서 주인공들은 물질적인 환경이나 신체적인 외양 때문에 열등감에 사로잡혀 있다. ...(중략)... 문제는 이러한 열등감을 극복하는 과정에서 주인공의 삶 또한 왜곡된다는 사실이다. 지금과는 다른 우월한 존재가 되고 싶다는 욕망 때문에 증오심에 사로잡혀 폭력을 쓰거나, 자신의 정체성을 내면에서 찾지 못한 채 사회의 규칙과 질서에 전면적으로 의존함으로써 인간적인 타락에 직면하게 되는 것이다."라고 평가한다.
작품 중에서 <꺼삐딴 리>는 왜곡된 인간 심리를 민족적,역사적 차원과 성공적으로 결합시킨 경우라 할 수 있다. 작품의 주인공 이인국 박사는 서울에서 개인 병원을 운영하면서 종합병원에 버금가는 명성과 수입을 올린다. 그는 일제 감정기 동안 '국어 상용의 가'라는 액자를 받기 위해 아이들을 일본인 소학교애 보내 일본어만 쓰게 강요하고, 마침내 잠꼬대까지 일본어로 할 정도로 철저한 친일파로 변신한다. 그리고 일본인들에게 밉보일 것이 두려워 형무소에서 풀려난 사상범을 외면한다.
이인국 박사의 이러한 행동은 식민지인이라는 열등감을 벗어던지기 위한 심리적 방어 기제였다고 할 수 있다. 그에게서 일본어를 사용하고 일본인들처럼 행동한다는 것은 일본인과의 교제에서 열등감을 벗어던지고 "떳떳한 구실"을 얻기 위한 방편이었던 것이다. 이인국 박사가 "내선일체의 혼인론"을 통해서 심리적인 우월감을 얻었다는 것은 그것을 잘 보여준다.
그래서 이인국 박사는 해방이 되고 소련군이 진주하자 다시 지배자의 언어인 러시아를 익히고 우연한 기회에 스탠코프 소좌의 수술에 성공함으로써 재기하게 된다. 이러한 면모는 월남한 후에도 그대로 이어진다. 병원의 고객을 권력층이나 재벌과 같은 부유층으로 제한하고, 영어를 부지런히 배우는 것이다.
저자는 이 작품을 통해서 독자들이 일제 치하, 해방, 한국전쟁이라는 역사적 격동기를 겪으면서 민족사적 비극과 역경을 이겨낸 정신적 승리자가 아니라 자기 일신만을 위한 처세술로써 민족적 위기를 외면했던 정신적 패배자를 만나게 해준다. 속물근성에 젖은 지식인이라고도 할 수 있을 것이다. 주인공과 같은 일제 시대의 지식인은 셀 수 없을 정도로 많을 것이다. <친일인명사전>에 수록되어 있는 수 천명의 친일부역자들은 '친일,부일'의 관점에서 보면 이 작품 속의 이인국 박사보다 더하면 더 했지 덜 하지는 않았을 것이기 때문이다.
그러한 속물적 지식인, 부도덕한 지식인, 권력지향적 지식인은 살아 남아 한국 현대사에 면면히 내려오고 있다.
이 작품은 저자의 실제 인생경험을 반영한 것이다. 평론가 이시형은 <인간 수호의 서신 - 전광용론>(현대한국문학전집 5, 신구문화사)에서 전광용을, 작품의 소재를 앉아서 구하는 작가가 아니라 직접 현장을 찾아다니는 "발로 쓰는 작가"라고 말한 바 있다. 작가가 작품을 창작할 때 직접 체험할 뿐 아니라 간접 경험에서도 소재를 구하는 것은 너무나 당연한 일이지만, 문단 데뷔부터 1960년대에 이르기까지 전광용의 창작 방법론으로 깊이 자리 잡고 있는 것이다.
저자 본인도 <전광용, 정한숙>(산구문화사, 1968)에서 "내가쓴 작품에는 현지의 답사에서 힌트를 얻거나 취재한 것이 적지 않다. '흑산도'는 흑산도의 학술답사에서, '진개권'은 휴전선 오지에 있는 찬구의 미군 쓰레기칸에서, '지층'은 태백산맥의 탄광에서..."라고 직접 애기한 바 있다.
한국은 민족의 위기를 외면하며 일본 제국주의에 헌신한 친일 반역자들을 처단하지 못한 현대사를 이어 왔다. 그런 현대사가 해방 후 60년 동안 한국사회에 어떤 악영향을 끼쳐왔는지는 오늘의 현실이 뼈저리게 알려주고 있을 뿐이다. 특히 민족과 다수의 국민, 약자와 정의를 외면하고 정치권력과 자본권력에 영합하는 자들이 지식인들의 상당수를 구성하고 있으며, 사회 전체에 공동체의 이해와 공존보다 개인주의와 이기주의를 물들이고 있는 중이다.
21세기 이후에도 이 땅에서 살아갈 후손들을 위해... 한국사회 공동체를 되살릴 수 있는 철학적, 사회문화적 분위기와 모범이 확산되어야 할텐데...
[ 2012년 2월 01일 ]